산같이 쌓였던 무성한 나뭇잎은 다 떨어지고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아
더없이 작아진 산은 갈색의 향연이 펼쳐지면서 저마다 옷을 던져 버리고
황량한 모습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감나무 꼭대기에 매달린 감들이 늦가을의 정취를 더해 갈 즈음이면
어느덧 북풍이 고개를 들고 서서히 불어오면서
이내 겨울이 오고 있음을 알려 줍니다.
화려했던 시절을 잊기라도 한 듯이 한풀 꺽인 채 주저앉아 버린 늦가을
가슴 시리게 해주는 겨울이 오는것을 막아 보려고 저러나 봅니다.
15:00 낙조대 등이 시려 슬픈 사내와 가슴이 시려 서러운 여인이 있었습니다.
늦가을 해도 뉘엿뉘엿 지려는데 둘은 산등성이 계단 아래에서 딱 마주쳤습니다. 마침내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냐고?
현명한 사내는 여인에게
영원히 당신을 업어주면 어떻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당연히 여인은 사내의 기막힌 제안에 동의했습니다.
그 사내는 어쩔줄 몰라라 하면서 두손을 번쩍 높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사인'을 보냈습니다. 슈 슈 슉~~~(날아 가는 소리)
사내의 시린 등에 여인의 시린 가슴이...
문수 딱 맞는 신발처럼 포개졌습니다.
낙조대 아래에서 내려다 보는 저 위대한 자연의 모습처럼 자연과 한 몸이 되었습니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구름이 흩어지고 온 산이 사랑으로 가득찼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그걸 물어 뭣해.
늦가을 계곡가에 꽃무릇 흐드러지게 피어났지.
지나던 사람들이
희한하다 별일이다 세상에나
늦가을에 꽃무릇이 이리도 흔하게 피다니
깍아지른 절벽아래 아담한 절 마당에 두채의 건물이 오누이처럼 다정하게 들어 서 있습니다.
이쁘긴 참 이쁘구먼
한마디씩 했지.
지금은 꽃이 다지고 연초록 꽃대만 덩그러니 남았다.
꽃은 잎을,잎은 꽃을 그리워한다는 꽃무릇.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한다는 뜻에서 비롯되었지만
선운사 꽃무릇에는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전해 옵니다.
아주 오래전,선운사 스님을 짝사랑하던 여인이 상사병에 걸려 죽은 후 그 무덤에서 꽃이 피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절집을 찾은 아리따운 처녀에 반한 젊은 스님이 짝사랑에 빠져서 시름시름 앓다가
피를 토하고 죽은 자리에 피어난 꽃이라고도 합니다.
새색시의 녹의홍상을 연상시키듯 가녀린 연초록 곷대 끝에서 붉게 피어오르는 꽃무릇.
9월중순~10월초순에 개화하는 수선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이름은 돌 틈에서 나오는 마늘종 모양을
닮았다 하여 '석산화'라고도 합니다.
칠송대....마애불상(보물 제 1200호).
배꼽속에 든 비결이 햇빛을 보는 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한다는 전설이 깃든 불상입니다.
늦가을 볕을 한껏 품은 붉은빛의 그리움이 이곳 도솔암의 찻집까지
여인네의 긴눈썹에서 퍼져나오는 그윽한 향기가 맴돕니다.
그향기에 반한 수련도 연보랏빛 수줍음으로 피어나 애처로움을 더해 줍니다.
도솔천을 따라 내려가는 선운산 풍경이 10월이면 붉게 빛나는 꽃무릇이
선운사의 가을을 더욱 붉게 물들이는데 차암! 아쉽습니다.
언젠가 내마음도 물들일 그 날이 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