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서 1장 2절 – 9절
하나님은 사람들 가운데서 동역자를 택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택하시는 자들 즉 일꾼으로 부르시는 자들은 어느 시대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모든 것이었고 하나님이 그들의 손에 쟁기를 주셨을 때 그들은 결단코 뒤를 돌아 보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따라감으로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만났는데 그 때 그가 하나님을 따라 가길 거부하고 가족들이 살고 있는 하란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더라면 얼마든지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더 나은 본향을 바라 보았기에 하나님의 뜻과 목적의 성취를 위해서 고난받기를 기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나올 것을 아시면서도 아브라함이 감당하기 어려운 말씀들을 하셨습니다. 본토 친척 아버지의 집에서 떠나라고 하셨을 때도 아브라함은 자신이 가진 그리고 자신이 누리던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으로 갔습니다. 예수님이 레위를 부르셨을 때 레위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당시 레위는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수입이 좋은 남들이 부러워 하는 그런 직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리라는 직업이 유대인들에게는 죄인이고 배반자이지만 로마제국아래에서 행세하고 권력을 향유하는 그런 자리였습니다. 그런 레위가 세관 즉 갈릴리바닷가의 어부들로부터 세금을 거두는 몫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그런 레위에게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 두고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레위 즉 마태는 예수님을 따르는 과정에서 참으로 극한 고통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잠잘 곳도 없는 그런 상황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 때 마태는 얼마든지 예수님 따르기를 포기하고 세리의 직업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마태를 비롯한 제자들은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자들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이 가장 부강하고 번영을 구가하던 여로보암2세때 호세아를 선지자로 부르십니다. 호세아는 여호와는 구원자이시라는 뜻입니다. 호세아가 훗날 예수라는 이름으로 변형됩니다.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당시 음란한 여자라고 널리 알려진 고멜이라고 하는 여자를 아내로 맞아 자식을 낳으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서 분별할 때 성경만 가지고 분별하면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로 부르시며 창기와 결혼하라고 하신다면 이를 누가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하겠습니까? 하지만 호세아는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았습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음성듣는데서 자라났고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를 가지고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였을 것입니다. 성경말씀과 위배되는 말씀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잘못들었거나 실수 한 것으로 치부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으시고 근심하시는 것을 호세아는 알았던 것입니다. 호세아는 자신이 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가지고 혼란스럽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서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일관되게 호세아에게 말씀하십니다. 호세아는 아브라함처럼 그리고 마태처럼 자기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리에 섭니다.
호세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호세아는 사람들로부터 온갖 조롱과 멸시와 무시를 당하였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호세아뿐 아니라 고멜에게까지 온갖 못된 짓을 다하였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호세아는 십자가를 지고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호세아는 사람들로부터 조롱꺼리가 될 때 아내 고멜을 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볼 때 훌륭한 여자와 결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호세아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호세아는 고멜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습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고 하라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북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이 돌이킬 수 없는 심판이심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고멜이 임심하여 딸을 낳으니 이름을 로루하마 즉 긍휼히 여김이 아니다라는 즉 긍휼없는 심판을 베푸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회복이 없는 심판을 말씀합니다. 북이스라엘은 다시는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남유다는 긍휼이 여긴다고 하십니다. 바로 회복의 역사를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벨론포로됨에서 돌아오게 하심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역사입니다. 바로 구원이 유다에게서 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멜이 아들을 낳습니다. 하나님은 그 이름을 로암미라고 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 하여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길로 행하지 않는 북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바로 하나님이 북이스라엘의 왕이 되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북이스라엘은 이방인중에 하나가 되고 그들은 회복되지 못합니다. 오늘 우리도 로암미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북이스라엘사람들처럼 몇가지 의식을 잘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길로 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북이스라엘과 똑같은 상황을 맞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