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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왕 아사랴의 통치(1-7)
모든 권력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은 부패하기 쉽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할 수 있으므로 국가 권력에 대한 적절한 규제와 제한은 필수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권력이 남용되면 국민들이 피해를 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오는 큰 악행입니다.
1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제이십칠년에 유다 왕 아마샤의 아들 아사랴가 왕이 되니 2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십육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이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골리야라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3아사랴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4오직 산당은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고 5여호와께서 왕을 치셨으므로 그가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어 별궁에 거하고 왕자 요담이 왕궁을 다스리며 그 땅의 백성을 치리하였더라 6아사랴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7아사랴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다윗 성에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요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1-7)
본문은 더욱 급박하게 요동치는 남북 이스라엘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소용돌이치는 두 나라 모두 더 깊은 죄악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점차 멸망의 길로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나라의 멸망의 길을 끊을 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문화가 중요합니다. 악이 만연하면 처음에는 괴롭지만 나중에는 내성이 생겨서 견딜 만해집니다. 자신도 생존하기 위해 자신도 악을 범하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자신도 악한 문화의 일부가 되어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심판이 닥치면 옴짝달싹도 못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의 통치 아래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을 때, 남 유다는 아사랴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16세에 왕으로 등극합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52년을 다스리는데,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왕위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사랴의 통치 기간이 긴 것은 아버지와 아들과 공동으로 통치한 기간이 포함되었기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열왕기 왕들의 연대기는 정확하게 밝히기 어렵기 때문에 학자들마다 견해가 다릅니다. 아사랴의 평가는 아마샤와 동일한데,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신실하지는 못했습니다. 얼마든지 할 수 있었는데도, 그의 아버지처럼 산당을 제거하지 않아 백성들은 지도자의 묵인 아래 그 산당에서 분향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왕은 하나님만 믿기에는 그의 믿음이 적었고, 백성들은 혼합주의입니다.
아사랴의 가장 기억할 만한 사건은 여호와께서 그를 치셔서 나병에 걸리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된 원인을 열왕기에서는 생략하지만, 역대기에선 그가 마음이 교만해져 성전에 들어가 직접 향단에 분향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역대기에 따르면 아사랴가 암몬을 쳐서 조공을 바치게 하였고 나라의 영토를 넓혔으며, 예루살렘 성에 망대를 세우고 견고하게 하는 등 많은 업적을 세웠지만, 바로 그런 번성과 성취 때문에 그가 교만해졌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열왕기는 업적이나 자세한 사항보다는 그가 하나님 보시기에 성했는지 악했는지에 대한 평가 자체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놀랍게도 52년 동안 이룬 업적과 사건들은 모두 생략하고 있습니다. 왕이 하는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사랴의 나병은 나아만의 나병과 다른 병으로 보이는데, 나아만의 경우는 격리되지 않고 공적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사랴는 레위기에서 부정 하다고 간주되어 다른 곳에 홀로 격리되어야하는 종류의 나병으로 더욱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교만하게 얼굴을 들던 아사랴는 사람들 앞에 서도 얼굴을 들지 못하는 철저히 낮아진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7절에서 바로 아사랴의 죽음에 대해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는 무사히 다윗 성에 있는 조상의 묘실에 안장되고 그의 아들 요담이 왕위를 계승합니다.
이스라엘 왕 스가랴의 통치(8-12)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오지만, 인간의 자기중심적 욕망은 모반과 살인으로 얼룩진 권력을 만듭니다. 북 이스라엘의 왕실은 쿠데타로 피범벅이 되었고, 갖은 왕권 교체로 왕의 자리는 더는 권위 있는 영적인 지도력을 발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8유다의 왕 아사랴의 제삼십팔년에 여로보암의 아들 스가랴가 사마리아에서 여섯 달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며 9그의 조상들의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지라 10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그를 반역하여 백성 앞에서 쳐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11스가랴의 남은 사적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12여호와께서 예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네 자손이 사 대 동안 이스라엘 왕위에 있으리라 하신 그 말씀대로 과연 그렇게 되니라(8-12)
여기서부터는 이스라엘 왕국에서 계속 반란이 일어나 왕들이 짧은 시간에 계속해서 바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후에게 약속하신 4대가 지나자 이스라엘은 반란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왕국은 혼돈에 빠집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왕과 왕가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유다 왕 아사랴의 통치 38년에 여로보암 2세가 마침내 죽고 그의 아들 스가랴가 왕이 됩니다.
그런데 그의 통치 기간은 6개월밖에 되지 않습니다. 스가랴 왕도 이전의 선조들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스가랴의 경우는 그의 조상들의 행위대로'라는 문구가 추가되었는데, 이것은 그동안 예후 가문이 계속해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으며 이제 그 결과 예후 왕조는 망하고 이스라엘도 망하게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점점 임계점에 이르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스가랴가 통치한 지 6개월 정도 되었을 때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반역하였고, 살룸은 백성들 앞에서 스가랴를 공격하여 죽이고 대신 왕이 됩니다. 스가랴의 업적은 일절 언급되지 않고 있으며, 다만 그가 왕이 되었고 또 때가 되어 죽었다는 언급이 전부입니다.
열왕기 저자는 이 반역 사건으로 예후 가문에 네 명의 후손이 이스라엘 왕위에 있으리라는 예언이 그대로 성취된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열왕기 저자의 사상을 보여 주는 표현으로, 하나님의 예언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에 여로보암의 죄가 있었다면, 남유다에는 산당의 죄가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여로보암의 죄보다 산당의 죄가 더 가볍지 않느냐 하지만, 더 나은 죄란 있을 수가 없고, 둘 다 여호와로 진노하시게 하기에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여로보암의 죄가 때와 법을 고친 죄라면, 산당의 죄는 예루살렘 성전을 버리고 다른 곳에서 다른 것을 섬긴 죄입니다 사실 사무엘도 다윗도 산당에서 예배했고, 솔로몬도 산당에서 일천번제를 드리고 여호와께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되고 나서는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에 마땅히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산당이라는 오래된 전통을 떠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여호와의 말씀의 영광보다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사람의 전통의 영광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막7:9)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리의 복음을 버리고,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의 거짓 복음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복음은 없고 훼파될 산당일 뿐입니다 "너희 산당을 멸하리니 너희 제단들이 황폐하고 분향제단들이 깨뜨려질 것이며 너희가 죽임을 당하여 너희 우상 앞에 엎드러지게 할 것이라"(겔6:3~4) 그러나 만약 우리도 복음의 원천 십자가에서 눈을 뗀다면 산당의 꾀임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갈3:1) 그러므로 눈을 돌려 허탄한 것을 주목하지 않기 원합니다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시119:37) 눈을 돌려 허무한 재물을 주목하지 않기 원합니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잠23:5) 오직 우리를 대속하신 십자가만 바라보며 따르기 원합니다 우리에게서 세상 멍에를 벗기고 구원한 것은 십자가뿐이고, 우리의 유일한 자랑도 십자가뿐이며, 우리가 질 쉽고 가벼운 겸손의 멍에도 십자가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