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속사적 성경묵상 ● (셋째 해_11월 18일)
<시편 86편> “나는 경건하오니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
“여호와여 나는 곤고하고 궁핍하오니 귀를 기울여 내게 응답하소서. 나는 경건하오니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 내 주 하나님이여 주를 의지하는 종을 구원하소서. 주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종일 주께 부르짖나이다. 주여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오니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주는 선하사 사유하기를 즐기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 여호와여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주여 신들 중에 주와 같은 자 없사오며 주의 행사와 같음도 없나이다. 주여 주의 지으신 모든 열방이 와서 주의 앞에 경배하며 주의 이름에 영화를 돌리리이다. 대저 주는 광대하사 기사를 행하시오니 주만 하나님이시니이다.....여호와여 주의 도로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영토록 주의 이름에 영화를 돌리오리니 이는 내게 향하신 주의 인자가 크사 내 영혼을 깊은 음부에서 건지셨음이니이다.....하나님이여 교만한 자가 일어나 나를 치고 강포한 자의 무리가 내 혼을 찾았사오며 자기 앞에 주를 두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러나 주여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니 내게로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주의 종에게 힘을 주시고 주의 여종의 아들을 구원하소서. 은총의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저희가 보고 부끄러워하오리니 여호와여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심이니이다” (시86:1-17)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요15:16)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8:35-39)
『시편 86편은 시편 제 3권에 수록된 시편들 중에서 유일한 다윗의 시로서, 위기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을 호소한 탄원시입니다. 이 시가 어떤 사건을 배경으로 기록되었는지는 불명확하나 대적들이 다윗의 목숨을 노리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기록된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시인은 서두에서 자기가 곤고하고 궁핍하기에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셔서 구원해 주실 것을 간절히 요청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곤고하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니’는 ‘억압받는’, ‘고통받는’ 등의 뜻으로서, 시인이 현재 자신을 억압하는 자들에게 고통을 받고 있음을 나타내며, ‘궁핍하오니’의 히브리어 ‘에브온’은 일반적으로는 물질적인 면에서 결핍된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이지만 여기서는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서 오직 하나님밖에는 의지할 수 없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혼을 보존해 주시며 구원해 주시기를 간구하면서 ‘나는 경건하오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실 근거로서 자신이 경건하다고 말한 것이데, 이것은 자신이 도덕적으로 완전하다거나 종교적으로 열심이 있음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경건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는 ‘하시드’로서, 이 말은 성경에서 경건한, 또는 성도라는 말로 번역이 되지만, 원래 이 ‘하시드’라는 말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뜻하는 단어인 ‘헤세드’로부터 파생된 말로서, ‘하시드’의 원래의 뜻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덧입은 사람’임을 말합니다. 즉 다윗은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맺어진 불변하는 언약 관계에 근거해서 ‘나는 경건하오니’라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을 요청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자신이 극심한 환난 가운데 처해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의 위대하심을 찬양합니다. 그는 주님과 같은 참 신이 없으며, 주님만이 완전하게 행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장차 열방으로부터 온 백성들이 주님을 섬길 것이며, 그분만이 광대하신 하나님이심을 찬양하리라는 세계적인 선교의 비전을 노래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인은 다시금 교만한 자들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해 주시기를 간구하는데, 여기서 그는 자신을 ‘주의 종’이라고 칭하며, 또 ‘여종의 아들’이라고도 칭하는데, 이것은 자신이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임을 말한 것입니다. 이처럼 다윗의 신앙은 자기의 행위나 의를 주장하는 신앙이 아니라, 자기를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택하시고 항상 변함없이 베풀어 주신 언약적 사랑, 즉 헤세드를 의지하는 신앙이었던 것입니다.
참된 기독교 신앙은 행위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우선하는 신앙입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기에 그 관계가 끊어질 수 없음을 믿을 때 우리는 어떤 환난과 곤경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소망을 둘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근거로 해서 담대하게 하나님께 기도하는 경건한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 오늘의 기도 ●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덧입은 내가 경건한 자임을 알고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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