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대청도 '돼지식당'에서 갓 잡은 홍어를 해체했다. 오른쪽 상단 모퉁이 부위가 제일 맛있다는 볼살이다. 아래는 미식가가 찾는 애다. 애 왼쪽 아래가 코 부위고, 오른쪽 아래가 지느러미 부위다.
홍어만큼 논란 많은 생선도 없다. 홍어가 없으면 잔치가 아니라는 남도 밥상의 불문율은 흥미롭지만, 툭하면 불거지는 지역성 논란은 영 볼썽사납다. 생선을 삭혀서 먹는 문화는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삭힌 홍어 특유의 고린내는 호불호가 명확히 갈린다. 셰프들은 홍어가 한식 세계화 최후의 과제라고 입을 모은다.
우리가 알고 있는 홍어에 관한 잡다한 상식은, 홍어는 전라도 생선이라는 믿음에서 시작한다. 홍어 앞에 붙는 ‘흑산도’라는 브랜드는 어떠한 지역 브랜드보다 강력하다. 하나 이 오랜 믿음이 수정돼야 할지 모르겠다. 지난 30여년간 홍어 어획량 1위 고장은 목포 앞바다 흑산도가 아니라 인천 앞바다 대청도이기 때문이다. 대청도에 들어가서 홍어를 취재했다. 대청도에선 홍어를 삭혀 먹지 않았다. “우린 삭힐 줄도 몰라. 그냥 먹는 게 더 맛있는데 왜 삭혀?” 대청도에서 30년간 홍어를 해체한 ‘돼지식당’ 서응택(59) 대표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 많은 대청도 홍어는 다 어디로 갔을까?
인천시와 전라남도의 연도별 홍어 어획량. 인천시 어획량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래픽 인천관광공사
먼저 김용구 인천대 경영학과 겸임교수가 작성한 그래프를 보자. 김 교수는 1990년부터 2018년까지 인천시와 전라남도의 홍어 어획량을 비교 분석했다. 1990년대 초반에는 최대 20배 넘게 차이가 나던 두 지역의 어획량이 10년쯤 뒤엔 두 지역 모두 바닥을 찍는다. 1990년대 홍어잡이에 GPS가 도입되면서 1990년대에는 어획량이 크게 늘었지만, 너무 많이 잡은 나머지 2000년대엔 최악의 어획량을 기록했다. 이후 홍어 어획량이 서서히 회복해 현재는 연간 1000톤 정도에 이른다. 홍어가 금보다 비쌌던 2000년대 초반을 제외하곤, 인천의 홍어 어획량이 전라남도보다 적었던 적은 없다.
인천에서도 대청도에서만 홍어를 잡는다. 인천의 홍어 어획량이 대청도의 홍어 어획량이다. 현재 대청도에는 홍어 전문 어선 8척이 있다. 멀리는 백령도 북쪽 어로저지선까지 올라갔다가, 중국 쪽 먼바다에도 나갔다가. 대청도나 소청도 연안에서 잡기도 한다.
홍어를 잡을 때 쓰는 바늘. 아라비아숫자 '7'처럼 생긴 바늘 450개가 용기에 촘촘히 들어가 있다. 이러한 용기 40개가 들어간 틀을 바다에 내리고 닷새쯤 기다렸다 올리면 바늘에 걸린 홍어가 따라 올라온다.
홍어는 미끼 없이 잡는다. 홍어 배가 한 번 던지는 낚싯바늘이 5만4000개다. 아라비아숫자 ‘7’처럼 생긴 낚싯바늘 450개가 ‘바퀴’라 불리는 용기에 촘촘히 들어가 있는데, 바퀴 40개가 들어간 걸 ‘틀’이라 한다. 이 틀 세 개를 수심 30∼80m에 내렸다가 5일쯤 뒤 수거하면, 헤엄치다 바늘에 걸린 홍어가 줄줄이 올라온다(바늘 450개X바퀴 40개X틀 3개=바늘 5만4000개). 이와 같은 방식을 건주낙(걸낙)이라고 한다. 김 교수는 1970년대 중반 대청도의 건주낙이 대청도 어민에 의해 흑산도에 전파됐다고 주장한다. 건주낙 전에는 노래미를 미끼로 썼다.
해체하기 직전 홍어. 눈처럼 보이는 건 입꼬리다. 눈은 홍어 등쪽에 있다. 양쪽 입꼬리 옆에 제일 맛있는 부위라는 볼살이 있다.
그 많은 대청도 홍어는 어디에 있을까? 해마다 500톤 넘게 잡는다는 데 다 어디로 갔을까? 정답은 전남 목포다. 목포 유통상이 대청도 홍어의 약 90%를 사 간다. 나머지는 군산이나 인천의 유통상에 넘긴다. 목포 어시장의 ‘국내산’ 홍어는 십중팔구 대청도 홍어라고 보면 맞는다. 흑산도 어선이 잡은 홍어는 일일이 ‘흑산도 홍어’ 바코드가 찍혀 있다. 그러니까 서울의 남도 음식점에서 먹는 국내산 홍어는, 인천 앞바다에서 잡은 홍어를 목포에서 삭힌 뒤 서울로 올려보낸 홍어란 뜻이다.
대청도 vs 흑산도
대청도에서 홍어 말리는 모습. 대청도에선 주로 홍어를 말린 다음 쪄 먹는다.
홍어는 회유성 어종이다. 서해 넓은 바다가 제 집인 양 헤엄치고 다닌다. 대청도 어선이 잡으면 대청도 홍어가 되고 흑산도 어선이 잡으면 흑산도 홍어가 된다. 흑산도 쪽에선 홍어가 산란기를 앞두고 흑산도 쪽으로 내려오기 때문에 흑산도 홍어가 더 맛있다고 하지만, 홍어는 대청도 앞바다에서도 산란한다. 대청도에선 외려 대청도 앞바다가 물살이 세기 때문에 대청도 홍어가 더 맛있다고 반박한다. 물살 센 바다의 생선이 더 쫄깃쫄깃하다.
홍어는 6월부터 7월 15일까지 금어기를 제외하고 연중 잡는다. 1월부터 초봄까지 잡는 홍어가 맛있다는데, 대청도에선 꽃게와 홍어 계절이 같다고 한다. 꽃게가 풍년이면 홍어가 흉년이다. 올가을엔 꽃게가 풍년이었다.
대청도의 홍어 전문 어민 노진석씨. 평생 홍어를 잡은 아버지를 이어 3년 전 홍어잡이에 나섰다.
“옛날부터 홍어 잡으면 다 내려보냈어요. 홍어 10마리 넘기면 좁쌀 한 가마를 받았다네요. 우리가 잡은 홍어가 전라도 특산품처럼 유통되는 게 기분 좋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인천 쪽으론 판로가 없으니까요. 인천에는 냉장창고도 부족해요. 대청도 홍어잡이도 어르신이 대부분이어서 새 판로를 개척할 생각을 못 하세요. 저라도 대청도 홍어 바코드 작업을 하고 새 판로를 열려고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대청도 홍어 어부 노진석(37)씨가 답답한 현실을 털어놨다. 그는 평생 홍어를 잡은 아버지에 이어 3년 전 홍어잡이를 시작했다. 9.77톤 ‘태양호’도 새로 장만했으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어민은 막막하고 억울한데, 인천시에선 도통 관심을 안 보인다.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
대청도 '돼지식당'의 생홍어회 한 접시. 여러 부위가 고루 올라가 있다. 생홍어여서 살점에 붉은 기가 돈다.
지난 14일 대청도 ‘돼지식당’에서 홍어회 한 접시는 5만원(대)이었다. 물론 생홍어회다. 선홍빛으로 반짝이는 생선 살이 밥상에 올라왔다. 홍어가 나왔어도 특유의 고린내는 없었다. 홍어와 삼합을 이루는 묵은김치도, 돼지고기 수육도 없었다. 한 점 씹으니 찹쌀떡처럼 식감이 쫄깃쫄깃했다. 초장보다 기름장에 찍어 먹는 게 고소한 풍미가 도드라져 더 나았다. 생홍어회는 막걸리보다 소주와 더 잘 어울렸다. 삭히지 않은 홍어는 다양한 메뉴로 개발할 가능성이 충분해 보였다.
대청도에선 그 귀하다는 홍어 애가 흔했다. 대청도 사람들은 홍어 애를 생으로 잘 안 먹는단다.
“생홍어회는 볼살이 제일 맛있어. 코는 삭혔을 때나 찾는 거고. 애(간)가 많지? 많이 먹으면 배탈 나니까 적당히 드셔. 대청도에선 애를 생으로 잘 안 먹어. 탕으로 끓여 먹지. 홍어도 보통 말린 다음에 쪄 먹어요. 가끔 손님이 삭힌 홍어를 찾아서 살짝 삭혀봤는데, 왜 그 냄새 나는 걸 찾나 몰라.”
‘돼지식당’ 서응택 대표가 홍어를 해체하며 들려준 말이다. 서 대표에 따르면, 대청도 관광객 대부분이 대청도가 홍어의 고장이란 사실을 모른다. 식당에서 생홍어를 먹어보고서야 대청도가 홍어의 고장이란 걸 안다.
홍어 수컷. 꼬리 양쪽에 있는 게 그 유명한 홍어 수컷의 거시기다. 홍어는 버릴 게 하나도 없다.
홍어는 암컷이 수컷보다 두 배 가까이 비싸다. 암컷이 크고 굵고 뼈가 연해서다. 암컷은 12∼13㎏까지 크는데, 수컷은 다 커야 7∼8㎏이다. 가격은 암컷이 1㎏ 2만원, 수컷은 1㎏ 1만2000원이다.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수컷이 워낙 상품성이 없어 비하하는 뜻으로 쓴 표현이다. 옛날엔 수컷 거시기를 잘라내고 암컷인 양 속여 팔았다는데, 서 대표 같은 전문가는 바로 알아챈다고 한다. 수컷은 지느러미에 가시가 있다. 수컷은 뼈가 단단해 만져만 봐도 안다고 한다. 맛도 암컷이 훨씬 낫다지만, 접시에 담긴 홍어회는 삭힌 홍어든 생홍어든 암수 구별이 불가능하다. 여태 먹은 홍어의 팔 할은, 만만한 수컷이었을 게다.
ㅇ출처: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