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은원(恩怨)이 많은 세 사나이가 만나 뜨겁게 한 판 벌렸습니다.
두고 두고 수십 년을 만났으니 어찌 우정만 쌓였겠습니까? 마음에 쌓인 그 원한도 예사롭지는 않으나 이렇게 간혹 한 판 승부를 벌임으로써 한 매듭을 짚고 넘어가곤 합니다.
이 세 사나이를 지켜보면 신언서판을 비롯하여 별로 나무라거나 빠진 데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거기다 목소리 우렁차지 영웅호색하지 안광 형형하지, 그야말로 오색이 영롤한 사람들입니다.
다만 金色이 부족하여 세상살이가 별로 여의치 못하고 옥석을 분별하지 못하는 여인네들에게 간혹 괄시를 받고 있을 따름입니다.
이 금색에 대하여 한 말씀 드리건데 그 조화가 정말 오묘한 겁디다. 호주머니에 무심코 넣고 다녀도 낭중지추처럼 그 끝이 뾰족히 내보이고, 몇 겹을 싸두어도 그 빛이 십리 밖까지 은은하게 번진다고 합니다. 특히 여인네들은 이 金의 냄새를 맡는 특별한 후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같은 빈털털이들은 아무리 금매끼를 해도 콧방귀도 뀌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짜로 있는 놈은 돈 한푼 쓰지않고 그저 빙그레 미소만 짓고 있어도 여자들은 콧방울을 벌름거기며 그 놈 주위만 맴돕니다.
아무튼 이 결정적인 색깔이 부족한 세 사나이가 저녁 밥값을 뜯기 위하여 여느 때처럼 고스돕을 한 판 벌렸습니다.
그 날 저녁은 오랫만에 붕장어를 먹어치워 식사비가 좀 과다하게 나왔습니다. 밥값 오만구천원에 오봉 아가씨 차값 삼천원까지 도합 육만이천원을 뜯어야 했습니다. 이 오봉 아가씨에 대하여도 할 말이 많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죠.
문허대사(文虛大師)와 성색지존(性色至尊)이 가벼운 잽을 주고 받으면서 화기애매하게 라운드는 진행되었습니다.
문허대사는 한 때 예술고에 근무했던 관계로 그 때부터 자신의 모든 행위에 art라는 말을 덧붙이곤 했습니다. 자신이 하는 연예는 art dribble이라거나 art intercourse라고 부릅니다. 어쩌다 상대방의 과욕으로 인하여 자행한 무리한 쓰리고를 저절로 막고나서는 art soccer니 art play니 자화자찬합니다.
성색지존은 원래 열을 잘 받는 체질인데 그간의 오랜 수행과 용맹한 정진으로 말미암아 요즘은 그 火氣를 겉으로 잘 표출하지 않는 편입니다. 다만 주변이 시끄러우면 지존께서 잘 나가고 있다는 증거이며, 지존께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으면 치미는 화기를 뚜껑이 벗겨지지 않도록 지긋이 누르고 있는 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지나치게 인위적으로 화기를 누르다 보니 거기에 정신이 팔려 정작 플레이는 거의 자표자기 상태에 이르고 맙니다.
요즘은 더구나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아 세 사나이 모두 필사적이었습니다. 오늘따라 지존이 분발하여 지존쪽 그라운드에 지전이 수북히 쌓여있었습니다. 지존의 목소리 낭랑하고 분위기 너무 좋았습니다. 반면에 대사께서는 요즘 좀 더 큰일에 신경을 쓰고 있어서 최선의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본인 말로는 실력은 자신이 월등한 데 체력이 뒤따르지 못해서 번번히 낭패를 본다고 합니다만 요즘 세상에서는 체력이 곧 실력 아니겠습니까?
본인은 거의 오만원 돈이 나가고 있어서 얼굴이 약간 흙색으로 변하고 있지 않았나 짐작됩니다. 이러다간 오늘 밥값을 거의 혼자 다 물게되는 황당한 사태가 예상되엇습니다. 더구나 시간은 사시미칼처럼 저며오고 드디어 뜯은 돈이 천원 부족하여 게임종료가 임박하였음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한 판만 더 치면 게임아웃이 선언되는 절대절명의 순간이 온 것입니다.
저는 이 막판에 마지막 희망이 걸려 있어서 막판에도 꼭 돈을 줘야한다는 다짐을 두 사람으로부터 다시 한번 받아내는 소심함을 보였습니다. 드디어 패는 돌았지만 광(光)과 쌍피가 분산됨으로 인하여 큰 승부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의 3점 승리로 끝이 나고 저는 중생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다는 심정으로 마음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매사에 정확하기로 소문난 문허대사께서 '한 판 더'를 외쳤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박없는 삼점을 먹었기 때문에 뜯을 돈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 이 때부터 기가 막히는 반전의 드라마가 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제 표는 그저 그런 편이어서 별 기대 없이 무심타법으로 진용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매사에는 때가 있고 대사에는 천운이 따르는 법입니다. 문허대사가 야심있게 첫 패에 쪼카를 풀고 팔광을 먹었습니다. 그 순간 재껴진 표가 바로 또 하나의 팔 껍질이어서 그만 싸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 때 나에게 팔 껍질이 있으면 바로 쪼카를 뺏어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닥친 것입니다. 좌측에서 두 번 째에 숨어있는 예쁜 공산 껍질. 나는 문허대사의 시선을 피하면서 바로 쪼카를 인정사정없이 회수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그냥 기분이 좋을 정도였습니다. 그 이후의 사태는 마치 신들린듯 오로지 나에게만 유리하게 판이 돌아갔습니다. 비와 국진이 각진되면서 쌍피가 무르익어 갔습니다. '오호, 12방위지신이여, 철따라 피고지는 꽃의 여신들이여, 그대들이 모두 협력하여 나를 돕는구나.' 이 때 정말 결정적으로, 절대 퀸카가 빵끗 미소지으며 나에게 다가오듯, 오른 쪽에 앉아 있던 지존께서 평생의 동지답게 삼짜를 아름답고 풍성하게 싸주셨습니다. 삼짜를 먹으면서 나는 첫고를 외쳤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거의 무아지경에 빠졌습니다. 상대방의 표 따위는 거의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투고' 엑스타시, 삼매경, 헤르메니아, 코마, 크랙다운, 무슨 단어로 그 때의 황홀경을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이때 문허대사께서 '이미 한도가 넘었다'고 망연자실한 상태로 나지막히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달리는 기차를 멈출 수 있으리요! 무엇이 넘쳐오르는 쓰나미를 막을 수 있으리요!
'쓰리고!!!' 거의 환각 상태 속에서 멀리서 들려오는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문허대사가 까놓은 비 껍질을 내가 비광으로 먹으면서 대단원의 막이 내렸습니다.
믿어지십니까? 본 소생이 오광에 쓰리고라는 대위업을 달성한 것입니다.
두 패장이 재미삼아 쓸쓸하게 점수를 확인하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습니다.
무려 28점을 양쪽 공히 따따블로 때린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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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혹시 K1 같은 데서 두 놈이 서로 죽일 것처럼 살기등등하게 싸우다가 막상 시합이 끝나면 다정하게 끌어안는 것을 보신 적이 있겠지요? 그때 계단을 내려오던 우리의 심정이 그랬습니다. 지존께서는 '맞을 바에는 그렇게 화끈하게 맞어버려서 오히려 속이 후련하다'고 술회하였습니다. 때린 자나 맞은 자나 모두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 겁니다. 기분 좋은 밤, 다정한 친구들, 정말 분위기 넘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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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여기까진 그냥 개적은 농담이었습니다. 그나저나 주성식 회원께서 오래 품어온 숙원사업을 필생의 각오로 시작할 계획입니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비장한 배수진을 치고 임한 사업이기 때문에 회원 여러분도 관심과 애정을 갖고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부디 그의 신문 사업이 성공하여 그의 능력에 상응하는 위치에 그가 올라 설 수 있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