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의 시간
『참된 예배자』
창세기 4:3-5. 284, 285장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에덴동산에 쫓겨난 아담과 하와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가인과 아벨입니다. 가인은 자신이 지은 곡식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아벨은 자신이 기른 양의 첫 새끼와 그의 기름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창세기 4장 5절을 보면 여호와께서는 아벨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지만, 가인과 그의 제물을 받지 않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인의 다음 행동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물을 받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서 가인은 어떻게 해야 옳은 것입니까?
예배하는 자신과 자신의 제물을 돌아봐야 합니다. 혹 아벨처럼 처음 것을 구별하였는지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첫 예물로 다시 예배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가인은 분하여 안색이 변하고 급기야 자신의 아우인 아벨을 죽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가인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 자신이 칭찬받고 자신을 뽐내는 것이 예배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분하고 안색이 변하게 되었으며 아벨만 없으면 하나님을 독차지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하나님만이 드러나시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가인은 그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아벨은 단 한 번의 예배를 드리고 순교하였습니다. 그것이 아벨이 이 땅에 온 목적이었으며 그의 사명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는 것. 그것이 아벨을 부르신 소명이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약 우리가 아벨처럼 단 한 번의 예배를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면 우리는 어떨까요?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그저 습관이나 형식이 아니라 이처럼 고귀하고 소중한 것입니다. 비록 단 한 번의 예배, 단 한 번의 예물이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될 수 있다면 그 길을 선택하는 것이 참된 예배자의 자세인 줄 믿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단 한 번 향유 옥합을 깨뜨려 주님 발에 부어드린 막달라 마리아는 왜 비싼 향유를 허비하냐고 주변에서 눈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님의 십자가와 장례를 위한 것임을 알았기에 오히려 주님께서는 그녀를 칭찬하셨습니다.
이처럼 단 한 번의 예배와 단 한 번의 예물 그러나 주님께서 아신다면 이보다 더 기쁨과 감사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예배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주님께 어떤 예물, 어떤 시간, 어떤 열정과 정성을 들이고 있습니까?
혹 가인처럼 내가 예배의 주인이 되어 나를 뽐내기 위해 예물을 드리다가 인정받지 못하자 가인처럼 낯빛이 변하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단 한 번의 예배일지라도 아벨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참된 예배자가 되길 소망합니다.
삶의 적용 : 나는 어떤 예배자입니까?
마무리 기도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는 참된 예배자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