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경心經
손동연
1. 구심求心* ― 찔레 열매
연비燃臂 뜰 적 핏방울이 어디로 갔나 했더니
찔레로 영글었구나, 새鳥 헤맬 눈밭에……
사리 알 맹그는 것보다 더 거룩한 저 보시布施!
* 구심求心 : 참된 마음을 찾음.
2. 단심丹心* ― 단풍
절집 없는 산에도 단청丹靑을 올리셨다.
산 하나 고스란히 대적광전大寂光殿 되는 순간!
딱, 딱, 딱! 죽비竹篦 치느니 딱따구리 한 게송偈頌.
* 단심丹心 : 결코 변치 않을 정성 어린 마음.
3. 방하심放下心* ― 가을 산사에서
서 있다, 부도浮屠 앞에 부도不渡난 한 사내가
떨어진다, 그 사내의 어깨 위로 낙엽 한 장
내리지 못한 마음을 내려 놓으라는 듯이
* 방하심放下心 : 일체의 집착을 버리고 해탈하는 일. 또는 모든 집착을 일으키는 인연을 버리는 일.
4. 개심開心* ― 겨울 산문에서
산문이 눈발에 지워지고 있었다
지우는 눈발마저 저를 잊고 있었다
지경地境이 경지境地가 되는 이 환한 찰나刹那여!
* 개심開心 : 깨달음을 얻기 위해 마음을 엶.
5. 휴심休心* ― 잠자리
잠자리가 앉아 있다, 죽은 싸리 꼭대기에.
명상冥想을 하는 건지 입적入寂을 하신 건지
그마저 잊어버린 듯 이승 반半 저승 반半을……
* 휴심休心 : 근심이나 불만을 내려놓고 마음을 편안히 가짐.
6. 명심銘心* ― 비구比丘
중보다 스님보다 비구比丘**가 더 좋습니다.
비구 비구 또 비구 그냥 비구 마냥 비구……
본디가 빌 공空인 삶을 비구 살아 좋습니다.
* 명심銘心 : 어떤 일이나 말 따위를 마음속에 깊이 새겨 둠. ** 비구比丘 :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은 남자 승려.
7. 자비심慈悲心* ― 배추
천불전千佛殿이 따로 없네, 밭에 나온 부처님들.
배추밭 배추들이 부도浮屠인 줄 알았더니
벌레들 맘껏 먹이려 속까지 내준 공양供養이라니!
* 자비심慈悲心 : 중생을 사랑하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
8. 세심洗心* ― 물소리
해탈하러 가는 건지 해탈하고 오는 건지
해탈교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여
해골 물 마신 원효도 도반道伴 되어 흐르는지
* 세심洗心 : 마음을 깨끗하게 씻음.
9. 금강심金剛心* ― 마애불
돌 속에 숨은 부처 끄집어내 천 년을……,
부처가 다시 돌로 돌아가는 또 천 년을……,
해 뜨고 그냥 달 지듯 몇 겁劫을 한 찰나刹那처럼!
* 금강심金剛心 : 어떤 유혹에도 움직이지 않는 신앙심.
10. 허심虛心* ― 염불의 본래면목
스님은 염불을 잊은 지 오래시네.
물소리, 바람 소리, 새소리, 풍경 소리……
자연의 맨 설법에다 그냥 귀를 맡기실 뿐.
* 허심虛心 : 마음에 아무 생각이나 거리낌이 없음.
11. 관심觀心* ― 까치밥
부처님 오신 날에 연등이 내걸리듯
성탄절 가까운 날도 연등이 걸립디다.
철새의 언 발, 언 마음, 녹이시라는 저 소신공양燒身供養!
* 관심觀心 : 마음의 본성을 바르게 밝혀 살핌.
12. 유심唯心* ― 싸락눈
단풍의 다비식茶毘式이 다 파한 한참 후에
부처님 진신사리가 한 가마니 쏟아졌다.
마음 밖 그 어디메에 삼계三界가 있냐는 듯
* 유심唯心 : 마음은 만물의 본체로서, 오직 단 하나의 실재實在라는 화엄경의 중심 사상.
13. 방심放心* ― 밥값
노스님은 법당 안 가고 툇마루에서 걸레질만.
노스님은 예불 안 보고 채마밭에서 호미질만.
면벽面壁은 벽이나 할 일. 밥값은 스님도 할 일.
* 방심放心 : 마음을 다잡지 않고 놓아 버림.
14. 무애심無碍心* ― 서별당에 누워
서별당** 섬돌 위에 흰 고무신이 놓여 있다.
동자승이 낙서했는지 나이키가 그려진,
노을을 다비장茶毘葬 삼아 서천西天 길이 가볍겠다.
* 무애심無碍心 : 막히거나 걸칠 것이 없는 마음 상태. ** 서별당西別堂 : 본채의 곁이나 뒤에 따로 떨어져 있는 집이나 방.
15. 일심一心* ― 백률사** 동백꽃
이차돈의 흰 피 같은 눈발 속에, 눈발 속에,
튀어나온 심장 같은 동백꽃이, 동백꽃이,
아직도 떨어집디다. 만다라曼陀羅***로 또 살아납디다.
* 일심一心 : 단 하나의 심성이라는 뜻으로, ‘진여眞如’를 이름. ** 백률사 :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에 있는 절. 이차돈 순교비가 있던 곳이다.
*** 만다라曼陀羅 : 불법의 모든 덕을 두루 갖춘 경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