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매일 거의 반복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돈다는 말같이 말이죠. 깨어나 대충 씻고 아침도 거른 채 출근 지옥길에 오르고 직장에 도착하면 이런 저런 매일 반복되는 일을 행합니다. 상사에게 혼나면서 시간이 흘러갑니다. 저녁에 일을 끊내고 힘든 발길을 집으로 옮기거나 때론 직장 동료나 친구들과 만나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시다 취해 본능적으로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똑같은 일상이 펼쳐집니다. 세상 살아가는 일에 무덤덤해지고 특히 자신과 관련이 없는 일에는 아예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나라밖에는 무엇이 벌어지는가에도 정신을 줄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도 간혹 외국사람들에게 한국인이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궁금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던 중 특정 이야기에 관심이 쏠립니다.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인플루언서이자 <신경끄기의 기술>이라는 서적으로 이름을 알린 마크 맨슨 작가는 최근 한국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작가는 K-팝 등으로 유명한 한국이 왜 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이 1위일까라는 물음을 지니고 방한했다지요. 하긴 그러기도 할 것입니다. K-팝 등 활달하고 전세계 젊은이를 들뜨게 만드는 문화를 지닌 한국인들이 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대표적인 나라가 됐을까 궁금도 하겠지요. 한때 저도 그 복지국가의 대명사같았던 북유럽 즉 스웨덴과 노르웨이에서 자살률이 왜 높을까 의아해한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크 맨슨 작가는 한국을 방문해 한국인과의 다양한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자살률이 왜 높은지에 대한 자기나름대로의 의견을 유튜브에 올렸습니다. 구독자 144만명을 보유한 그가 올린 영상의 제목은 '나는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를 여행했다'입니다. 제목이 상당히 도발적입니다. 물론 자살은 정신이 건강하고 즐거울 때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신이 허약하고 우울할 때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자살률 세계 1위국이 세계에서 가장 우울하다고 보는 것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닙니다. 한국인은 매일 그런 환경에서 살기에 잠시 잊고 지낼 뿐입니다. 따뜻한 물속 냄비에 들어앉은 개구리가 자신이 익어죽는 것도 모르는 것이나 다르지않겠지요.
작가는 하지만 지금껏 내려졌던 한국 자살률 1위와 갈등 1위국 그리고 우울한 한국인에 대한 결론과 조금 다르게 진단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울증은 자살로 이끄는 주요 원인인데 한국이 눈부신 경제 발전과 문화적 발달 그리고 겉보기에는 평온한데도 한국의 정신적 건강이 아주 위험한 이유를 여기서 찾았습니다. 바로 유교와 자본주의의 잘못된 만남이라고요.
작가는 유교가 가진 수치심과 남을 의식하는 판단 기준이 유교와 전혀 다른 자본주의의 현란한 물질주의와 만나 요상한 상관관계를 이루면서 형성된 괴물이 바로 한국의 우울증이라고 진단합니다. 유교의 좋은 점과 자본주의의 긍정적인 면의 결합으로 윈윈관계를 전혀 이루지 못하고 정반대의 역효과를 잉태했다고 본 것입니다. 유교의 장점이라는 가족과 지역 사회와의 친밀감이라는 것은 이제 찾을 길이 없어졌습니다. 가족과 급격한 분리속에 초핵가족 분위기가 한국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바로 올바른 자기 표현 능력과 긍정적 개인주의 아닙니까. 하지만 자본주의 그림자 다시말해 양극화의 심화와 부익부 빈익빈의 악순환이라는 부작용이 한국 사회를 짙게 물들이고 있다고 본 것이죠. 특히 유교의 부작용과 자본주의의 약육강식적 성향이 강하게 결합을 하니 정말 무시무시한 괴물이 탄생하고 말았다고 본 듯합니다.
작가는 한국의 성공 신화의 배경부터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스타크래프트 성공 신화와 K-팝의 성공 그리고 삼성전자의 성공 비결을 분석합니다. 그는 같은 숙소에서 살면서 서로 비법을 공유하며 같은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을 이끌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강한 법, 부작용으로 바로 '심리적인 낙진'이 생겨났다고 판단합니다. 강한 드라이브식 밀어부치기 성공가도에서 떨어져 나가는 숱한 먼지같은 사람들의 허탈감이라고 할까요.
한국전쟁도 분석합니다. 한국은 한국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폐허속에 한국인은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기로 합니다. 오로지 생존만을 위해 살아가기로 작정합니다. 생존을 향한 처절한 경쟁이 한국인의 몸과 심리속에 깊숙히 들어와 있었던 것이라는 말입니다. 일등지상주의와 성공을 위해서라면 다른 모든 것은 희생해도 된다는 마음이 한국인의 정서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는 분석입니다. 일등을 향한 온국민의 대약진 운동이 성공신화를 이뤘지만 일단 그것이 성공하고 난 뒤에 한국인의 심신을 위로하고 채워줄 그 어느 것도 이 사회에 존재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합니다. 노인 자살률도 마찬가집니다. 오로지 자식의 일등 생활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노인들에게 이제 자식은 나몰라라하고 늙어서도 생존을 위해 일을 해야하는 노인들에게 우울증과 자살률이 높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고 작가는 판단합니다.
직장 문화도 한국인을 우울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가는 보고 있습니다. 한국인이 직장 등으로 사회적 상호작용이 많지만 매우 거래적이라서 직장인들을 매우 외롭게 한다고 판단합니다. 이미 일등지상주의속에 함몰된 사람들이 같이 모여 비슷한 지향점을 향해 가고는 있지만 학창생활때부터 엄청난 경쟁속에 살아온 사람들이 직장속에서도 대단한 경쟁을 펼치는 그 경쟁지상주의의 악순환속에 모두 지쳐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러면 위안을 가족에게서 찾아야 하지만 가족은 이미 해체되어 버렸습니다. 배우자는 오로지 자식의 성공만을 위해 살고 자식들은 부모의 노고를 생각할 필요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 가정속에 위안을 얻을 수 있을까요.
한국인도 아닌 외국인이 정말 날카롭게 한국인의 정서에 메스를 댄 것같아 창피하기도 하고 자괴감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국인의 심신속에 오랜 기간 삶의 토대로 존재했던 유교적 정서와 한국전쟁후 세상의 대단한 진리처럼 받들어 모셔졌던 자본주의가 한국인을 이렇게 피폐하게 만든 아주 중요한 이유라는 것은 정말 충격적이자 정말 새로운 시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한국인이 우울하고 자살률이 세계 1위인 이유는 너무도 많겠지만 외국인의 지적을 우리는 겸허하게 받아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진단이 나왔으니 힘들겠지만 다시 처방전을 쓰야할 시기가 된 것같습니다.처방전은 이 나라와 사회를 이끄는 지도층들이 머리를 맞대로 만들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런 처방전을 국민 모두가 받아드리고 한국인의 몸과 마음을 다시 건강한 상태로 만들기 위해 약도 열심히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식사도 잘 챙겨먹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진단서와 처방전을 누가 내리면 어떻습니까. 우리가 우리 심신을 건강하게 하는 계기로 삼으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2024년 1월 29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