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최상의 보물, 부처님 진신사리를 건네신 자월 큰 스님의 빛viit만남
"부처님 공부를 하고서도 보지 못했던 부처님의 빛viit을 만났습니다.
평생 불도를 닦고도 막상 죽음 앞에 서니 얼마나 두렵고 나약해지던지요.
이제 제가 찾고자 하는 바로 그것을 얻었으니 아무런 회한과 미련이 남지 않습니다."
- 자월 큰 스님 -
큰스님의 진신사리
울산의 한 호텔에 있을 때였다. 하루는 무척이나 풍채가 좋으신 스님 한 분이 새벽부터 호텔로 찾아와 앞마당이며 로비를 쓸고 있는 것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하고 지나쳤던 스님의 기이한 행동은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도록 멈추지 않았다. 가타부타 말도 없이 직원들보다도 일찍 나와 빗자루질만 하시는 스님께 그 사연을 물어보게 했다.
"이 곳에 계신 정 이사님을 뵙고자 하는데 무작정 찾아오는 것이 참으로 송구하여 이렇게 청소를 하였습니다."
이것이 스님의 대답이었다. 당시 이미 빛viit에 대한 소문이 주위에 퍼져 나를 만나러 오는 사람들이 꽤 있었고, 그 중에는 자신의 지위와 명예를 앞세워 거만한 태도인 사람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스님은 누구보다 낮은 태도로 참으로 겸손하게 다가오시니, 도리어 스님의 깊은 속사정이 더욱 궁금해졌다.
큰스님을 모셔 차 한 잔을 대접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려는데 호텔 커피숍 손님으로 오신 분들이 하나 같이 스님께 합장을 하며 공손히 절을 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대체 이 분이 누구시기에 이렇게 다들 절을 올리느냐고 물으니 '자월 큰스님을 모르시냐'며 도리어 그 분들이 내게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그제야 비로소 이 분이 자월 큰스님임을 알 수 있었다.
자월 큰스님은 보통의 스님들과는 달리 불교의 발생지인 스리랑카 현지에서 출가해 득도하시고 이후 국제적인 포교 활동은 물론 종정에 추대될 만큼 높은 법력을 인정받은 고승이셨다. 그러한 명성과 지위에도 불구하고 일개 평범한 사회인을 만나고자 몸소 마당 쓰는 일조차 마다하지 않으신 것이다.
찬찬히 그 분을 살펴보는데 문득 우주 마음이 보여주는 장면 하나가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큰스님에게 간암이 있었다. 그것도 생명을 위협할 만큼 치명적인 상태였다. 이 느낌을 있는 그대로 전하니 큰스님은 깜짝 놀라시며,
"실은 제가 병원에서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하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지금 우주 마음의 느낌에 의하면 위 보다 간이 더 급합니다. 한번 다시 검사를 받아보시지요."
이후 며칠이 흘러 자월 큰스님이 다시 찾아오셨다.
"말씀대로 간암이 위암보다 더 위중하다고 합니다. 이미 손 쓸 시기도 놓쳤다 합니다."
큰스님은 이미 자신의 생명을 반쯤 포기한 듯 했다.
"우주 마음이 그러한 장면을 저에게 보여주셨을 때에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희망을 갖고 우주마음에 청하십시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 하였으니
보이지 않는 이 빛viit이 곧 모든 것을 품는 불광佛光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큰스님의 심신이 정화되기를 바라며 빛viit을 가득 안겨드렸다. 이후로도 한 동안 자월 큰스님은 매일 아침 호텔로 출근해 빛viit을 받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셨다. 그 과정에서도 그 분은 행여나 내게 누를 끼칠까 염려하여 작은 부분까지 솔선수범 하는 것을 잊지 않으셨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큰스님은 살을 저미는 듯 고통스러운 말기암의 통증에서 자유로워지며 차츰 기력을 회복해가셨다. 몸으로 느껴지던 아픔이 사라지니 얼굴색도 밝고 환하게 바뀌었고 어느 샌가 큰스님 스스로도 자신이 병자라는 사실을 잊게 되었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아직 살아있었느냐며 놀라더군요. 더 놀라운 사실은 검사 결과 제 몸 속에 있던 암세포들이 모두 사라지고 없다는 사실입니다."
자월 큰스님에게 분명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이윽고 큰스님은 품안에서 무언가를 소중히 꺼내셨다.
"부처님 공부를 하고서도 보지 못했던 부처님의 빛viit을 만났습니다. 평생 불도를 닦고도 막상 죽음 앞에 서니 얼마나 두렵고 나약해지던지요. 이제 제가 찾고자 하는 바로 그것을 얻었으니 아무런 회한과 미련이 남지 않습니다."
큰스님이 내미신 빨간 보자기 안에는 부처님 진신 사리가 소중히 담겨 있었다.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부처님 진신 사리입니다. 제가 드릴 것이라고는 이것밖에 없습니다. "
훗날 스님이 거처할 암자를 마련하게 되면 소중히 모시려고 보관해온 지구 최상의 보물이라고 하셨다. 그러한 귀한 물건이 나에게 필요할리 만무해 극구 사양하였지만 큰스님은 기어코 떠넘기다시피 진신 사리를 내게 안겨주셨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 하였으니 보이지 않는 이 빛viit이 곧 모든 것을 품는 불광佛光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이 큰스님이 내게 남긴 마지막 말씀이었다.
* 진신사리란?
사리란 범어 사리라(Sarira)를 음역한 말입니다. 원래의 뜻은 신체를 의미하는 말이지만 유골, 영골(靈骨)의 뜻도 있습니다. 부처님의 육신을 화장한 뒤 나온 작은 구슬 모양의 결정체가 그것입니다. 크기도 여러 가지고 색깔도 황금빛, 검은빛, 붉은빛 등의 오색(五色)이 뒤섞인 영롱한 빛깔을 띠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입멸(入滅)하시고 나서 장례는 부처님의 유훈에 따라 재가 신자들에 의해 치러졌습니다. 경전에 의하면 화장을 치르고 난 뒤 남은 유골을 수습하니 8말 8되가 나왔답니다. 정확한 도량형을 알 수 없어서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상당히 많은 양의 사리가 나온 것은 분명합니다. 이 유골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부처님의 입멸 소식을 전해들은 여러 나라에서 각각 사신을 보내 부처님의 유골을 요구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지요. 일부 국가에서는 전쟁불사를 외치기도 하였답니다.
결국 한 수행자의 중재로 여덟 나라에 사리가 배분되고 이것으로 탑을 세워 공양하도록 했는데 이 탑들을 근본8탑(根本八塔)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사리를 담았던 병을 대신 넣어 만들어진 9번째 탑, 이어 다비식에 나왔던 재를 가지고 만든 10번째 탑이 초기에 존재했던 사리탑의 모습입니다. 탑은 그 후에도 계속 만들어졌는데 부족한 사리 대신 의발, 족적(足跡) 등으로 탑을 만들기도 했고 나중에는 경전과 불상도 봉안하게 되었습니다. 불교에 깊이 귀의했던 인도의 아쇼카 대왕은 나중에 근본8탑을 해체합니다. 그리고 부처님사리를 8만4천개로 나누어 많은 곳에 탑을 세웁니다.
〈대당서역기〉에는 당나라 때의 현장스님이 150과를 인도에서 중국으로 가져왔고, 의정스님이 300과를 모셔왔다고 전합니다. 우리나라는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스님이 당나라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정골 100과를 모셔와 황룡사, 통도사 등에 봉안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리를 최초로 봉안한 탑은 황룡사의 대탑으로 알려져 있지만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불자님이 질문하신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 - 양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은 이와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을 지칭합니다.
연관해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삼성문화재단에서 소유하고 있었던 현등사 사리와 사리함의 반환 문제로 불교계가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불국사 석가탑에서 나온 사리를 모신 사리병과 금제사리함 등의 사리장엄구 일체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불교계로 이관하는 문제를 가지고 다시 정부와 불교계가 시끄럽습니다.
사리나 사리함은 거래대상도, 매장 문화재도 아닙니다. 부처님의 사리는 곧 부처님의 몸이자 불교에서 공경하고 예배하는 성보(聖寶)입니다. 부처님의 법체(法體)를 상징하는 숭고한 예배 대상이지요. 조각이나 회화형식의 불상과 탱화 같은 성보와는 성격이 매우 다릅니다. 표현하기가 그렇지만, 불상과 탱화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문화재 성격의 성보라면 사리는 육바라밀(六波羅密)과 삼학(三學)의 수행에서 얻어지는 한량없는 공덕으로 만들어진 영적인 유골이자 청정한 정신의 영골입니다.
진신사리를 찾아 참배하는 것은 부처님을 친견하는 의미로 받아 들여졌습니다. 그래서 탑 신앙도 생겨난 것이지요. 또한 진신사리를 모신 곳에는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입니다.
출처 : 서울 정혜사 주지[불교신문 2336호/ 6월20일자]
첫댓글 불조의 가르침은 자등명 법등명입니다. 초광력이라고 사이비같군요... 혹세무민하지 맙시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