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실화냐!
럭비경기가 끝날 즈음, 전철역을 나와서 운동장으로 향했다. 빨간색과 파란색의 옷을 입은 대학생들이 인도를 이어가고 있었다.
파란색 티에게 “럭비는 어디가 이겼나요?” “저희학교가 26대21로 이겼습니다.”
나는 주먹 쥔 오른손을 번쩍 치켜들면서 “좋았어, 이젠 축구만 남았네.”
“동문이십니까?” “아들과 사위가 그 학교 출신이야”
경기장이 가까워지면서 확성기와 함성의 데시 빌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미 동문 석과 학부모 석은 만원이라 교직원석에 엉거주춤 자리 잡았다. 좌석에는 ‘00대학 학장 000’라는 표시가 있었지만 오래 비운 것 같아 다행이다. 라이벌 명문사학이어서 양교의 동문 애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대단했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도 여럿이고, 40대 후반의 아주머니 세분도 경기가 끝날 때까지 응원가에 맞추어 현란한 몸짓과 손짓으로 분위기를 이끌어 주었다. 유학생흑백과 어깨를 두르고 응원단에 따라서 움직이는 젊은이들의 모습엔 정열이 넘쳤다. 이들의 열띤 응원의 열기에 늙은이도 몸을 가만히 둘 수가 없다.
어제는 일찍이 잠실야구장을 찾았다. 아들의 학번과 이름을 기록한 종이를 내미니 컴퓨터로 확인하고는 독수리문양이 새겨진 파란색등산모와 도시락을 챙겨주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초청장을 보내고도 선착순으로 배부해서 서운함도 있었는데 진일보한 느낌이다.
야구경기는 1회 초에 고대선수가 풀카운트 상황에서 안타를 치면서 2점을 선취하였다. 2회 말에는 연대가 몸에 맞는 볼과 안타로 1.3루를 이루었으나 후속타불발로 4회 초까지 끌려갔다. 질것 같은 불안감에 서둘러서 도시락을 먹고는 자리를 떴다.
오늘 새벽 5시, 컴퓨터로 확인하니 연대가 첫날 3종목 전체를 석권했는데 이는 26년 만에 거둔 성과라고 한다. 우승이 확정되어 마음 놓고 축구를 관람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목동운동장을 찾은 것이다. 축구장은 입추의 여지없이 가득 찬 학생들로 빨간 물결, 파란 물결의 함성으로 옆 사람과의 대화도 불가능했다. 연대가 코너킥상황에서 헤딩으로 선취점을 만들었다. 파란색 학생들을 따라 벌떡 일어나서 양손을 치켜들고 고함을 쳤다. 이후 공 반전이 계속되고 후반전에 가서야 고대가 1점을 넣어 무승부로 끝나는 줄 알았다. 전광판에 45라는 문자가 나타남과 동시에 연대선수가 좌측에서 공을 몰고 중앙으로 들어가며 슈팅한 것이 골로 연결되었다. 다시 한 번 벌떡 일어나 손뼉을 치고 목청이 터져라 고성을 내질렀다. 언저리타임까지 끝나고 심판의 휘슬이 울리자 학생과 교직원들이 운동장으로 뛰어 들어 선수들을 끌어안고 펄떡펄떡 뛰었다. 하얀 연기와 불꽃이 날아올랐고 키다리 풍선도 덩달아 춤을 추었다. 빨간색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지만, 파란색은 모두가 일어나서 춤을 추며 기쁨을 만끽했다. 동문과 학부모역시 그들에 질세라 온몸으로 합세했다.
5:0. 이게 실화냐!
필승. 전승. 압승. 매년 정기연고전을 앞두고 양교응원단이 외치는 슬로건이다. 연호하는 오대 빵은 연대로서는 처음이고 6년간이나 승리를 가져보지 못한 연대는 축구의 승리를 마지막으로 전승하며 2014년의 완패를 설욕했다. 역대 전적 18승 10무 18패에서도 앞서가게 되면서 또 한 페이지의 역사를 기록하게 된 것이다.
아들과 사위에게 ‘연대 전승, 나도 열광의 현장에 있었다.’ 는 문자 메시지를 날렸다.
곧이어 도착한 아들의 답신에는 ‘헐, 대단하다. 아버지도 대단하십니다. 따끈한 차 한 잔 드시고 푹 쉬세요.
자식 덕에 젊음의기를 듬뿍 받아 일 년은 거뜬할 에너지를 충전했다.(碧草. 2017. 09.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