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네티즌과 언론이 한국 역사 소설과 만화, 각종 마스코트 등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고조선 시대의 치우(蚩尤) 천황을 놓고 한국인들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홍콩의 친(親)중국계 신문인 문회보(文匯報)는 ‘대한민족통사(通史)’ 같은 한국 소설들과 인터넷상에서 4700여년 전 배달한국(倍達韓國)의 14대 황제인 치우 천황이 허베이(河北)성 탁록(?鹿)에서 벌어진 ‘탁록대전’에서 중국 황제(黃帝) 헌원(軒轅)을 패퇴시켜 무릎을 꿇렸다고 묘사하고 있으나, 이는 역사적 사실을 반대로 조작한 것이며 전문가들의 비웃음을 사고 있다고 8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상당수 중국 네티즌들이 “한국인들이 중국 민족의 조상 중 한 명인 치우 천황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인정할 뿐 아니라 치우 천황이 중국 황제를 정복했다고 주장하는 데 격분, 통렬하게 비난하고 있다”고 전했다.
문회보는 특히 ‘사기(史記)’와 ‘산해경(山海經)’ 같은 중국 사서(史書)에서 중국 황제가 치우 천황을 생포해 죽였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 한국인들의 주장이 잘못됐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치우는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 응원단인 ‘붉은 악마’의 공식 마스코트에 등장한 붉은 도깨비의 원조로, 한국 전통 기와와 방패, 전함, 갑옷 등에 있는 도깨비 상(鬼面像)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문회보는 “한국인들이 드라마 ‘주몽’에서 한(漢)나라를 폄하하고 중국이 원조인 ‘더우장(豆漿·중국인들이 상식하는 콩국)’이 한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등 중국인들의 영예에 속하는 것들을 잇따라 공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몇몇 환빠들이나 치우를 떠드는걸 가지고 무슨 한국전체가 치우에 대해 떠든다는 듯이 난리를 피는지...또 천왕이면 천왕이지 치우천황은 또 뭔지...皇이란 글자에 대한 열등감에 사로잡힌 몇 환빠들의 치우천황 삽질에 이젠 중앙일간지까지 그대로 받아적고 있으니 참 한심하군요. 중국이나 조선일보나...
큭, 치우천황이라.... 소요자님 말씀대로 치우'천왕' 이라면 몰라도 치우천황은 좀 그렇군요. <춘추좌씨전> 을 보면, 춘추시대 당시의 중원지역에서 천자급 지도자인 주나라 임금을 '왕' 내지는 '천왕' 이라 표현합니다. 시황제 이전에는 황제 개념이 나타나지 않아 '천황' 단어가 등장하기는 좀 무리라는 생각입니다. 치우씨와 헌원씨가 실존인물이더라도, 이들은 주나라보다도 훨씬 이전인 삼황오제 시기의 인물이 되지요. (그래서일까요? <삼국유사> 에서도 환웅을 '환웅천왕' 이라고는 해도 '환웅천황' 이라고는 하지 않지요)
저는 동이족 문제와 더불어서 중요하게 우리가 관련 사항이라 봅니다. 치우천왕문제는 말입니다. 치우는 본래 중국에서도 황제 헌원과 싸운 이민족으로 취급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와서 중국조상이라는 중국인들의 행동부터가 모순입니다. 그리고 치우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사기에서나 나온 글을 봐도 저마다 달라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본디의 사기의 진본에서의 뜻이 왜곡가능성도 존재한다는것을 의미한다 생각합니다.
참,,웃긴게 치우천왕의 실존여부나 계통이 어떻느냐를 떠나서 얼마전까지 중국에서 치우라는 존재는 황제헌원에 대항하던 악당의 대명사로 취급되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위대한 지네 조상이라고 떠벌리는군요. 아니,,그걸 떠나서 실존인물이라는 보장도 없는 유령같은 존재를 두고 누가 누구꺼네 하는 걸 보니,,이 무슨 뜬구름 잡는 얘기들인지,, 특정 목적에 얽매인 점에선 한국이나 중국이나 봉이 김선달이 따로 없습니다그려,,소설은 뭐 그렇다 쳐도,,소설이야 허구(개연성)를 추구하는 거니깐요. 귀동냥으로 듣기로 미셀 푸코의 '언어로의 전환' 이라는 표현이나 젠킨스의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라는 표현이 생각나는 까닭은 무엇인지?
따지고 보면 중국에 있는 묘족의 신이니 그들이 주장한다면 할말은 없지만서도... 저쪽에서도 저렇게 들고 말할 정도라면 예전보다 환빠라는 이들의 입김이 거세졌다는 느낌이 들어 안타깝다는 생각마저 드는군요... 그리고 실존 가능성이 없는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그에 대해서 신격화하고 존경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는게 우습다는 것은 좀 아닌 듯 합니다. 우리나라의 단군이나 일본의 아마테라스나, 영국의 아더왕이나 다 매한가지 아니겠습니까. 그들의 실존성보단, 그들의 신화성을 더 중시하니 말이죠.
무령왕님.. 그렇게 단언해서도 안되지요. 아무리 옛 인물이라 할지라도 실존여부를 알 수 없을지라도 아예 부정해버리면 안되지요. 분석하긴 커녕 자기가 납득못하면 이건 뻥이라면서 욕뱉고 무관심하는사람들이 왜이리많은지..참..(그렇다고 무령왕님이 욕했다는것은 아니구요..) 그렇게따지면 고대사 폐지시키고 중세(고려)부터만 배워야겠습니다?
그럼 사기에 나오는 공화원년부터 실존인물로 보자는 말씀이신지요? 그런 억지가 어딨습니까? 사기에서 공식적으로 연도를 지정할 수 있다는것은 그 전부터 연도개념이 있어야 가능한것입니다. 어느 한순간부터 연도를 적용하긴 어려운법이며 고려가 있어야 조선이 있듯이 이전부터 사용하던 연도가 있어야 공식적인 연도가 있는법입니다..제발 그런 추측성 글은 자제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기의 신뢰성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잘 알고계실텐데...
사기의 신뢰성이 떨어지다니? 물론 사기를 쓴 인물 사마천이 자신의 관점으로 쓴 부분이 당연히 있겠지만 사마천 자신이 직접 조사를 다해서 쓴 책인데 어떤 관점으로 사기의 신뢰성이 떨어지네 마네를 운운하십니까? 그렇다면 사기를 통해서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다 바보겠군요? 그 신뢰성 떨어지는 것으로 공부하게 말입니다. 그리고 사마천이 공화원년부터 연도를 정했다는 것은 그 이전의 것은 그 자신이 조사를 했어도 연도를 자신이 짜맞추어야 할 정도로 전설이라고 봐야되는 거라고 봅니다만
사기만을 읽고 공부하는사람들이 바보일뿐이지, 사기를 비롯하여 여러 사료를 읽어보며 비판력을 기르고 역사적 공통점을 찾는사람까지는 바보가아니지요... 너무 단면적으로만 보시는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무제의 영향력을 받아서 왜곡도 없지않아 있는것이 사기입니다. 중화사상이 섞였다는것 즉 중국이 무조건 최고다라는거죠. 그렇게되면 패자의기록이 승자의기록으로 왜곡되어 승화될 수도있고 결국 조작까지 이어지게되어 신뢰성이 떨어진다는것이지, 사마천이 무식해서 조사도 안하고써서 제가 괜히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표현하겠습니까..
한무제 영향을 받았다는 책이 흉노에게 한이 떡실신한 기록이나 한이 위만조선에게 떡실신 당하는 기록도 열심히 기록해두었군요? 사기는 사마천 자신이 최대한 객관적으로 기록한 책입니다. 이런 사마천이 공화원년 이전의 시대를 자신의 추측대로 연도를 짜맞추었다면 그 이전 시대는 사마천 마저 상상의 나래를 펼쳐야 할 정도로 아리송한 시기라고 봅니다만 -_ -
환단고기가 출판된 것이 1979년이고 출판한 인물인 이유립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1911년에 환단고기가 계연수에 의해 원본이 제작되었다고 하나 그 계연수라는 사람도 실존자체가 불분명한데다가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이 한계라는 것이 있는데 이유립은 자신의 기억력만으로 환단고기를 복원했습니다. 이것이 일단 환단고기가 사서로써 신뢰가치가 적다는 겁니다
그건 굳이 제가 말하지않아도 인터넷에 쳐보시면 다 알 수있는 내용입니다..검색해보시면 진짜일가능성이 있는 이유와 가짜일 가능성이 있는 이유로 대분류로 해서 여러내용이 나옵니다.. 내용이 워낙길어 인용도 못하겠고 기껏 인용해봤자 환빠라고 무시당할것같아서.. 아예 내용자체는 쓰지않겠습니다. 그리고 고고학적으로 증명되는것은 우리가 찾지못할뿐이지 고대인들이 전부 바보도아니고 있지도않는얘기를 그렇게 장황하게 주구장창 각국마다 써놨겠습니까..그것도 일치성도 많고요. 다만 아직까지 발견되지않을뿐이지 땅속에묻혀있던 관속에들어있던 발견되지않았을뿐이라고 생각됩니다..고고학적으로 밝히라니...
현재로서 고고학적으로 유물이나 유적이나오지않아 밝히지못하면 쌩거짓말이었다가 유적발견되면 그제서야 일리가있다면서 다시 진실로 하는 이면적태도보다는.. 두가능성을 열어두고 한쪽으로 확정이되면 그쪽으로 많은표를 주는것이 옳다고생각됩니다 단정하지않는것이 중요하다는것이지요.. 그리고 동아시아 수백여개의 나라가 흥망성쇠를했는데.. 설령 한국-구리국(환국-배달국)이 존재하였을지언정 수천년이 지난 현재 그 유적이 남아있을리가 있겠습니까..이런걸 알면서도 수천년이지난 유적/유물을 찾아보라는것을 물어보시는걸 보면.. 아예 닥치라는 소리로 들릴정도군요
라이센스님이 언급하려고 하신 인터넷 상의 글들은 그다지 논리적 완결성을 갖춘 글들이 없는 편입니다. 이미 저 자신이 한단고기 본문에서 전수자들이 전수과정에서 적잖은 윤색 흔적을 찾아냈고 본래의 순수한 글이 아니란 걸 확인해서 한단고기는 사학사적 가치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사료로 이용하기에는 몇차의 사료비판을 통한 사료 가공이 이뤄진 후에야 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다더라도 그것이 당시의 실제를 반영하는 것인지 아닌지는 또 별개이기 때문에 사실상 한단고기를 사료로 이용하는 건 위험한 발상입니다.(여기서 말하는 윤색 흔적은 단순한 지명이나 용어사용의 문제같은 저차원적인 한단고기 비판론얘기가 아닙니다.)
라이센스님이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 몇가지 지적을 하겠습니다. 우선 사기의 공화 연도부터 신뢰가 가능하다는 것은 사마천이 그 자신이 살았던 당대의 사료를 긁어모으고 사적을 돌아다니면서 사건의 경위와 시간 연차가 공통점을 보여 일말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한 부분부터가 바로 주 공화 연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존하는 공식 기록 중 출처가 명확하면서도 가장 이른 시기인 사기를 기준으로 판단함이 동양사학의 기본 출발입니다. 사기가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하신 건 고 임승국 선생이 한단고기에서 한사군 위치 비정과 한사군 전쟁의 성격 비정 때 일방적인 사기 비판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발생한 일종의 고정관념에 가깝습니다.
둘째, 고고학적인 증거물이 아직 발굴이 안되어서 확증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한단고기를 몰아붙여서는 안된다는 것이 한 요지인 듯 한데 이것은 한단고기 '내용' 상의 문제가 아직 검증을 하기에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이 시기 상조일 뿐이지 한단고기의 내용이 검증되는 반증으로 활용될 수 없다는 점을 밝힙니다. 이건 흑백논리나 소거법 같은 식으로 답을 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기존 학계에서 자꾸 고고학을 운운하는 이유를 대륙사관에서는 한번쯤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통계와 확률상의 논리 때문에 그렇습니다. 로또가 아닌 이상 한단고기를 입증하는 고고학 근거가 여지껏 발견되지 않았다? 글쎄요.
물론 여지껏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앞으로 발견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지만 이것은 반대로 뒤집어 보면 여지껏 발견되지 않을 정도로 발견 가능성이 희박하며 어쩌면 처음부터 없었을 가능성이 전자보다 더 높다는 걸 인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지껏 대륙사관에서는 자신에게 유리한 경우만 상정했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대해서는 전혀 상정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때 대륙사관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저인지라 저런 폐해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요.
아,,참,, 또 한가지,, 기록이 실제를 반영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것이 어떤 목적에 의해 가해지는 윤색이란 개념이 없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인간의 기억은 항상 주관적이고 가변적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한단고기 전수자들이 설사 기록에 손을 대지 않고 고스란히 전수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 당대의 실제를 반영하진 않습니다. 때문에 사료 비판과 비교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고 현재 연구되는 사료들은 그런 간극을 매꿔줄 수 있을만큼 연차가 벌어지지도 않고 어느 정도 종류가 다양해 최대한 실제가 반영되게끔 노력하지만 한단고기는 그런 간극을 매꿔줄 기록이나 관련사료의 다양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점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ㅡㅡ;; 주몽에서 한나라를 폄하하다니 ㅡㅡ;;? 너무 멋지게 그렸던데 ......
솔직히 치우천왕 -_ - 우리쪽하고 관련이 없긴 하죠
글쎄......그저 신화의 인물가지고 추잡스럽게 뭐하자는건지 중국애들 이젠 별거가지고 다 난리구만 지네들이 언제부터 치우를 섬겼다고 쯧쯧
몇몇 환빠들이나 치우를 떠드는걸 가지고 무슨 한국전체가 치우에 대해 떠든다는 듯이 난리를 피는지...또 천왕이면 천왕이지 치우천황은 또 뭔지...皇이란 글자에 대한 열등감에 사로잡힌 몇 환빠들의 치우천황 삽질에 이젠 중앙일간지까지 그대로 받아적고 있으니 참 한심하군요. 중국이나 조선일보나...
큭, 치우천황이라.... 소요자님 말씀대로 치우'천왕' 이라면 몰라도 치우천황은 좀 그렇군요. <춘추좌씨전> 을 보면, 춘추시대 당시의 중원지역에서 천자급 지도자인 주나라 임금을 '왕' 내지는 '천왕' 이라 표현합니다. 시황제 이전에는 황제 개념이 나타나지 않아 '천황' 단어가 등장하기는 좀 무리라는 생각입니다. 치우씨와 헌원씨가 실존인물이더라도, 이들은 주나라보다도 훨씬 이전인 삼황오제 시기의 인물이 되지요. (그래서일까요? <삼국유사> 에서도 환웅을 '환웅천왕' 이라고는 해도 '환웅천황' 이라고는 하지 않지요)
저는 동이족 문제와 더불어서 중요하게 우리가 관련 사항이라 봅니다. 치우천왕문제는 말입니다. 치우는 본래 중국에서도 황제 헌원과 싸운 이민족으로 취급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와서 중국조상이라는 중국인들의 행동부터가 모순입니다. 그리고 치우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사기에서나 나온 글을 봐도 저마다 달라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본디의 사기의 진본에서의 뜻이 왜곡가능성도 존재한다는것을 의미한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드라마 주몽에서.. 중국놈들 아주 미쳤나..폄허는 얼어죽을.. 없던 중장기병까지 해놓아 주니까.. 지랄 댄스네..
참,,웃긴게 치우천왕의 실존여부나 계통이 어떻느냐를 떠나서 얼마전까지 중국에서 치우라는 존재는 황제헌원에 대항하던 악당의 대명사로 취급되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위대한 지네 조상이라고 떠벌리는군요. 아니,,그걸 떠나서 실존인물이라는 보장도 없는 유령같은 존재를 두고 누가 누구꺼네 하는 걸 보니,,이 무슨 뜬구름 잡는 얘기들인지,, 특정 목적에 얽매인 점에선 한국이나 중국이나 봉이 김선달이 따로 없습니다그려,,소설은 뭐 그렇다 쳐도,,소설이야 허구(개연성)를 추구하는 거니깐요. 귀동냥으로 듣기로 미셀 푸코의 '언어로의 전환' 이라는 표현이나 젠킨스의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라는 표현이 생각나는 까닭은 무엇인지?
한단인님 말씀처럼 치우는 중국이나 우리하고도 관계없다는 거 -_ -.. 실존 가능성마저 없는 신화속 인물이라는 거 -_ - .. 그런 인물들 가지고 우리꺼네 니꺼네라고 바득바득 우겨대는 우리나 중국이나 한심하다는 거 -_ -;;
따지고 보면 중국에 있는 묘족의 신이니 그들이 주장한다면 할말은 없지만서도... 저쪽에서도 저렇게 들고 말할 정도라면 예전보다 환빠라는 이들의 입김이 거세졌다는 느낌이 들어 안타깝다는 생각마저 드는군요... 그리고 실존 가능성이 없는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그에 대해서 신격화하고 존경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는게 우습다는 것은 좀 아닌 듯 합니다. 우리나라의 단군이나 일본의 아마테라스나, 영국의 아더왕이나 다 매한가지 아니겠습니까. 그들의 실존성보단, 그들의 신화성을 더 중시하니 말이죠.
소설이 역사랑 다르다고 뭐라고 하다니 --; 그럼 삼국지 연의는 수호지는!!
무령왕님.. 그렇게 단언해서도 안되지요. 아무리 옛 인물이라 할지라도 실존여부를 알 수 없을지라도 아예 부정해버리면 안되지요. 분석하긴 커녕 자기가 납득못하면 이건 뻥이라면서 욕뱉고 무관심하는사람들이 왜이리많은지..참..(그렇다고 무령왕님이 욕했다는것은 아니구요..) 그렇게따지면 고대사 폐지시키고 중세(고려)부터만 배워야겠습니다?
실존 그 자체도 불분명한 사실상 신화속에나 나오는 인물들인데요. 신화 속 인물들을 가지고 실존인물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코미디라고 생각합니다만
무령왕님 그럼 실존 자체가 분명한사람은 언제부터봐야합니까 도대채?
참고로 사마천이 사기를 지을 때 공식적으로 연도를 지정해서 쓴 것이 주여왕이 도성으로 돌아오지 못해서 왕이 통치를 못한 14년간의 시기인 공화원년부터입니다만(기원전 841년). 그 전부터는 사마천이 자신이 추측해서 연도 설정해놓은 것입니다만
그럼 사기에 나오는 공화원년부터 실존인물로 보자는 말씀이신지요? 그런 억지가 어딨습니까? 사기에서 공식적으로 연도를 지정할 수 있다는것은 그 전부터 연도개념이 있어야 가능한것입니다. 어느 한순간부터 연도를 적용하긴 어려운법이며 고려가 있어야 조선이 있듯이 이전부터 사용하던 연도가 있어야 공식적인 연도가 있는법입니다..제발 그런 추측성 글은 자제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기의 신뢰성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잘 알고계실텐데...
사기의 신뢰성이 떨어지다니? 물론 사기를 쓴 인물 사마천이 자신의 관점으로 쓴 부분이 당연히 있겠지만 사마천 자신이 직접 조사를 다해서 쓴 책인데 어떤 관점으로 사기의 신뢰성이 떨어지네 마네를 운운하십니까? 그렇다면 사기를 통해서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다 바보겠군요? 그 신뢰성 떨어지는 것으로 공부하게 말입니다. 그리고 사마천이 공화원년부터 연도를 정했다는 것은 그 이전의 것은 그 자신이 조사를 했어도 연도를 자신이 짜맞추어야 할 정도로 전설이라고 봐야되는 거라고 봅니다만
사기만을 읽고 공부하는사람들이 바보일뿐이지, 사기를 비롯하여 여러 사료를 읽어보며 비판력을 기르고 역사적 공통점을 찾는사람까지는 바보가아니지요... 너무 단면적으로만 보시는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무제의 영향력을 받아서 왜곡도 없지않아 있는것이 사기입니다. 중화사상이 섞였다는것 즉 중국이 무조건 최고다라는거죠. 그렇게되면 패자의기록이 승자의기록으로 왜곡되어 승화될 수도있고 결국 조작까지 이어지게되어 신뢰성이 떨어진다는것이지, 사마천이 무식해서 조사도 안하고써서 제가 괜히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표현하겠습니까..
한무제 영향을 받았다는 책이 흉노에게 한이 떡실신한 기록이나 한이 위만조선에게 떡실신 당하는 기록도 열심히 기록해두었군요? 사기는 사마천 자신이 최대한 객관적으로 기록한 책입니다. 이런 사마천이 공화원년 이전의 시대를 자신의 추측대로 연도를 짜맞추었다면 그 이전 시대는 사마천 마저 상상의 나래를 펼쳐야 할 정도로 아리송한 시기라고 봅니다만 -_ -
저도 한단고기를 참.. 비판 많이하며 읽어왔습니다만, 읽지도않고 다 뻥이라면서 떠드는사람들이 대다수더군요..심지어는 한단고기 전체를 계연수가 썼다는사람도있구요(삼성기,단군세기,북부여사,태백일사로 나뉘어져있음..각자 저자가 다 다르고 이것을 한권으로 묶은게 계연수일뿐..계연수가 실존인물이든 아니든 내용과는 무관함) 아무튼 한단고기가 아무리 말도안되는내용을 수두룩하게 담고있다고할지어도.. 한번 냉정하게 분석하고 잘 살펴볼필요가있습니다.. 옛선조들은 책 한권을 익히는데 수만번을 읽어보았다고합니다.. 우린 고작 한두번..관심있는사람들은 두세번에 지나지않습니다.. 그런 적은횟수의 연구만으로 평가하기엔 좀..
이미 위서인데 말입니다
단칼에 무우자르듯이 말한다고 어느분이 저한테 비판하시더니.. 저와 비슷하시군요.. 위서인지 진서인지 그 누구도 정확하게 판단내리지못하는부분입니다.
환단고기가 출판된 것이 1979년이고 출판한 인물인 이유립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1911년에 환단고기가 계연수에 의해 원본이 제작되었다고 하나 그 계연수라는 사람도 실존자체가 불분명한데다가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이 한계라는 것이 있는데 이유립은 자신의 기억력만으로 환단고기를 복원했습니다. 이것이 일단 환단고기가 사서로써 신뢰가치가 적다는 겁니다
이유립이 사익을 위해 왜곡하거나 과장되어 말했다면은 어떤말이 필요할까요? 배경을 이해하면 좋지만 제일 중요한것은 내용을 가지고 이해해야합니다 그렇다고 내용을 받아들이라는것은 아니구 내용을 조목조목 따져가면서 옳고그름을 따져봐야 안다는것이죠
그렇다면 환단고기에서 주장하는 환국과 치우의 이야기가 현재 고고학적으로 뒷받침된다고 보십니까?
그건 굳이 제가 말하지않아도 인터넷에 쳐보시면 다 알 수있는 내용입니다..검색해보시면 진짜일가능성이 있는 이유와 가짜일 가능성이 있는 이유로 대분류로 해서 여러내용이 나옵니다.. 내용이 워낙길어 인용도 못하겠고 기껏 인용해봤자 환빠라고 무시당할것같아서.. 아예 내용자체는 쓰지않겠습니다. 그리고 고고학적으로 증명되는것은 우리가 찾지못할뿐이지 고대인들이 전부 바보도아니고 있지도않는얘기를 그렇게 장황하게 주구장창 각국마다 써놨겠습니까..그것도 일치성도 많고요. 다만 아직까지 발견되지않을뿐이지 땅속에묻혀있던 관속에들어있던 발견되지않았을뿐이라고 생각됩니다..고고학적으로 밝히라니...
현재로서 고고학적으로 유물이나 유적이나오지않아 밝히지못하면 쌩거짓말이었다가 유적발견되면 그제서야 일리가있다면서 다시 진실로 하는 이면적태도보다는.. 두가능성을 열어두고 한쪽으로 확정이되면 그쪽으로 많은표를 주는것이 옳다고생각됩니다 단정하지않는것이 중요하다는것이지요.. 그리고 동아시아 수백여개의 나라가 흥망성쇠를했는데.. 설령 한국-구리국(환국-배달국)이 존재하였을지언정 수천년이 지난 현재 그 유적이 남아있을리가 있겠습니까..이런걸 알면서도 수천년이지난 유적/유물을 찾아보라는것을 물어보시는걸 보면.. 아예 닥치라는 소리로 들릴정도군요
라이센스님이 언급하려고 하신 인터넷 상의 글들은 그다지 논리적 완결성을 갖춘 글들이 없는 편입니다. 이미 저 자신이 한단고기 본문에서 전수자들이 전수과정에서 적잖은 윤색 흔적을 찾아냈고 본래의 순수한 글이 아니란 걸 확인해서 한단고기는 사학사적 가치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사료로 이용하기에는 몇차의 사료비판을 통한 사료 가공이 이뤄진 후에야 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다더라도 그것이 당시의 실제를 반영하는 것인지 아닌지는 또 별개이기 때문에 사실상 한단고기를 사료로 이용하는 건 위험한 발상입니다.(여기서 말하는 윤색 흔적은 단순한 지명이나 용어사용의 문제같은 저차원적인 한단고기 비판론얘기가 아닙니다.)
치우가 묘족의 조상이라는 것도 불분명 합니다. 솔직히.. 최소한 한단고기는 확실하게 몰라도 규원사화는 입장이 달라진다 봅니다. 치우 기록만 해도 시대마다 각각 달라서 문제이고.. 애매합니다..
라이센스님이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 몇가지 지적을 하겠습니다. 우선 사기의 공화 연도부터 신뢰가 가능하다는 것은 사마천이 그 자신이 살았던 당대의 사료를 긁어모으고 사적을 돌아다니면서 사건의 경위와 시간 연차가 공통점을 보여 일말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한 부분부터가 바로 주 공화 연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존하는 공식 기록 중 출처가 명확하면서도 가장 이른 시기인 사기를 기준으로 판단함이 동양사학의 기본 출발입니다. 사기가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하신 건 고 임승국 선생이 한단고기에서 한사군 위치 비정과 한사군 전쟁의 성격 비정 때 일방적인 사기 비판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발생한 일종의 고정관념에 가깝습니다.
둘째, 고고학적인 증거물이 아직 발굴이 안되어서 확증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한단고기를 몰아붙여서는 안된다는 것이 한 요지인 듯 한데 이것은 한단고기 '내용' 상의 문제가 아직 검증을 하기에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이 시기 상조일 뿐이지 한단고기의 내용이 검증되는 반증으로 활용될 수 없다는 점을 밝힙니다. 이건 흑백논리나 소거법 같은 식으로 답을 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기존 학계에서 자꾸 고고학을 운운하는 이유를 대륙사관에서는 한번쯤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통계와 확률상의 논리 때문에 그렇습니다. 로또가 아닌 이상 한단고기를 입증하는 고고학 근거가 여지껏 발견되지 않았다? 글쎄요.
물론 여지껏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앞으로 발견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지만 이것은 반대로 뒤집어 보면 여지껏 발견되지 않을 정도로 발견 가능성이 희박하며 어쩌면 처음부터 없었을 가능성이 전자보다 더 높다는 걸 인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지껏 대륙사관에서는 자신에게 유리한 경우만 상정했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대해서는 전혀 상정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때 대륙사관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저인지라 저런 폐해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요.
아,,참,, 또 한가지,, 기록이 실제를 반영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것이 어떤 목적에 의해 가해지는 윤색이란 개념이 없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인간의 기억은 항상 주관적이고 가변적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한단고기 전수자들이 설사 기록에 손을 대지 않고 고스란히 전수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 당대의 실제를 반영하진 않습니다. 때문에 사료 비판과 비교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고 현재 연구되는 사료들은 그런 간극을 매꿔줄 수 있을만큼 연차가 벌어지지도 않고 어느 정도 종류가 다양해 최대한 실제가 반영되게끔 노력하지만 한단고기는 그런 간극을 매꿔줄 기록이나 관련사료의 다양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점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