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응!! 내가 오빠 올 때 마중 나갈테니깐 걱정마셩~!
하나 밖에 없는 이 동생님이 오빠 옷도 가지고 나갈테니
내일은 나경언니랑만 놀지 말구 나도 데리고 놀아 달라궁~ 알았지?!"
[시끄럽다. 옷 나경이한테 줘서 보내고 너는 집에 가만히 박혀 있어라.]
"왜!! 이 치사 똥 빤쓰! 너는 예쁜 동생이 보고 싶지도 않냐?! 내 이쁜 얼굴 덕분에 너
군대 생활 편했잖아! 까먹었어?! 나뿐자식!!"
핑크 레이져 폰에 달려 있는 안나수이 핸드폰 줄이 보영의 움직임에 맞춰
달랑달랑 흔들렸다.
[오빠한테 너 라고 하지 말랬지? 아무튼, 넌 내일 나오지 마.
제대 첫 날 부터 니 그 시끄러운 수다 듣기 싫으니까.
예쁘긴 개뿔. 헛소리 하지말고 CK로 뽑아 가지고 보내라]
윤권의 말을 듣고 보영은 핸드폰을 어깨로 받혀서 받으면서 두손으로 윤권의 옷장을 열었다.
2년의 부재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을 만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옷장.
일 하는 아줌마가 매일 윤권의 방을 청소했기 때문 이었다.
보영은 여전히 핸드폰을 귀와 어깨 사이에 받혀놓고 윤권의 옷장을 뒤적 거렸다.
"뭐 거의가 캘빈이구만..머리는 까까 머리를 해 가지고
캘빈이 어울린다고 생각해? 웃기셩!!"
[아! 모자도 같이 보내라! 넌 따라 나오면 재미없다. 그럼 끊는다.]
"야..야..!!!"
뚝 -
매정하게도 끊겨버린 윤권의 전화.
보영은 애꿏은 핸드폰만 노려보면서 씩씩 거리다가 핸드폰을 침대위로 집어 던졌다.
"에라이!! 이 나뿐놈! 동생이 그동안 여자친구보다 훨씬 많이 면회도 찾아 가 주고
군대 뒷바라지 다 해 줬더니 뭐어? 따라 나오면 재미없어? 허이구! 어디 얼마나 재미가
없는지 두고 보자고!!!!"
"아..아가씨.."
"뭐예요!!"
잔뜩 약이 올라서 씩씩거리는데, 열려 진 문 사이로 아줌마가 보영을 조심스레 불렀다.
그러자 아줌마에게 소리를 빽 내 지르는 보영.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면서 남자와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모습을 본 보영의 표정은 언제 그랬냐는 듯 180도 변해서
활짝 웃으면서 여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꺄아~ 언니 왔어?!"
"야..야..니 남편은 여기 있는데 누구한테 덤벼들어..빨리 다시 안겨봐!"
자신의 가슴을 팡팡 치면서 보영을 내려다 보는 남자.
도진욱. 현재 스물 셋 으로 보영의 오빠인 윤권과 동갑내기 친구이자
대기업 회장님의 하나밖에 없는 손자로 보영의 약혼자.
보영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대로 결혼식을 치룰 예정.
보영이 달려가서 덥썩 안긴 여자는 한나경.
현재 스물 둘로 윤권의 약혼자. 즉 보영의 올케가 될 사람이다 이거지.
역시나 잘 나가는 집안의 장녀로 지금은 버클리 음대 바이올린 전공을 하고 있다.
"언니 언제 한국 들어온거야?? 이렇게 와두 되?? 학교는??"
보영은 진욱의 얼굴을 한번 쓰윽 무심하게 쳐다보았다가 다시 나경에게 시선을 옮겨
질문공세를 퍼 부었다.
"아유..얘는..숨 넘어 가겠다~ 진욱이 오빠 표정좀 봐..풉..나 때리는거 아냐?"
"때리기만 해봐! 내가 배로 혼내 줄게! 언니 거실에 나가서 얘기해~
나 언니 무~지 보고 싶었어! 아줌마! 먹을 거 좀 내와요!"
"야! 진보영 너!!"
끝까지 무시당한 진욱군.
씩씩거리면서 보영과 나경의 뒤를 따라 거실로 자리를 옮겼다.
아줌마가 과일과 음료를 내 오고 다시 그들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언니 버클리는 어때? 지낼만 해?"
"응..우리 보영이 보고싶은 것만 빼면 지낼만 해~"
"나도 언니가 보고싶어서 죽는 줄 알았어 진짜루! 학교는 어쩌고 왔어??"
"교수님한테 양해 구하고 들어왔지."
"웃기시네.. 거짓말 하고 들어와 놓고는."
멜론을 한 조각 입에 물면서 퉁명스럽게 말하는 진욱군.
자신에게 전혀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보영 때문에 잔뜩 심술이 난 상태.
스물셋이나 되 서도 이런 애 같은 면을 가지고 있으니 누구든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길 남자.
"그럼 얼마나 있을건데??"
역시나 진욱의 말은 무시하는 보영.
진욱군 무지 상처 받았다..
"오래는 못 있어..일주일 정도 밖에.."
"씨이..언니 그냥 한국에서 음대 다니면 안되?"
"야야 진보영! 너 진짜 남편 옆에 두고 이럴래? 나경이가 윤권이 마누라지 니 마누라냐!!"
참다못한 진욱군. 드디어 버럭 했다.
"내가 뭐 먹으면서 말 하지 말라고 그랬지?! 다 먹고 말해!! 멜론 튀잖아! 더러워!!!"
소심한 A형의 대표주자 도진욱.
재기불능 상태.
in 갤러리아 #
"치이..뭐가 이쁘다고 옷을 사줘? 아까 오빠가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
제대 첫 날부터 내 얼굴 보기 싫다면서 나오면 재미없을 줄 알라는 거 있지!!!"
"윤권이 입장에서 한번이라도 생각 해 봤냐? 제대하고 사회에 나오는 첫날인데
너 같은 수다쟁이가 옆에 붙어서 쫑알거려봐라. 것도 그냥 쫑알 거리냐? 마누라도 아니고
잔소리 잔소리 해 가면서 쫑알 거리는데! 이거는 무슨 애가 아니고 50살 먹은 할머니 같애!
내가 윤권이 였더라도 그렇게 했을..끄악!!! 진보영!"
내일 제대하는 윤권에게 옷을 선물 하겠다면서 백화점으로 온 나경.
거기에 끼어서 같이 온 진욱군이 심술을 한번 부리다가
보영의 예쁘게 손질 된 분홍색 손톱에 옆구리를 잔혹하게 꼬집힘 당했다.
상당히 아팠지만 주위 시선을 의식 한 진욱은 애써 웃으면서
옆구리를 계속해서 문질렀다.
"언니! 가자!"
고개를 휙 하고 돌리고서 나경의 팔에 팔짱을 끼고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궁시렁 거리면서 뒤 따라오는 진욱군.
잔뜩 삐진 보영의 화를 풀기위해 몇번이나 미안하다고 해 보지만
보영은 진욱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들의 모습이 마냥 예쁘기만 한 나경은 빨리 윤권을 만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예전처럼 윤권과 자신 그리고 진욱과 보영. 이렇게 넷이서 나들이를 갔으면 하면서..
후에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바뀔지 그들중 아무도 알아채지 못 했다.
보영은 싫은 척은 하지만 마음에 꼭 담아준 진욱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승기업 차기 사장의 안주인이 되어 아주아주 럭셔리 하게 살아갈
자신의 미래를 그렸고 진욱 역시 귀엽고 사랑스러운 보영을 아내로 맞이 한다는 것에
한치의 의심도 없었다. 나경역시 음대를 졸업하고 자신만의 연주회를
가지면서 사랑하는 남자 윤권의 아내가 된다는 것만 그리고 있었다.
부와 명예 그리고 사랑까지 가진 그들을 하늘이 시샘이라도 했던 걸 까.
사건은 바로 다음 날.
윤권이 제대를 하던 날 아침에 터졌다.
잠이 많아 새벽에 일어 나는 건 생각 도 안 하던 보영이 새벽부터 일어나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미우니 고우니 해도 2년만에 보는 오빠니 보고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그도그럴 것이 군 입대를 하고 휴가를 나오면 말도 없이 언니에게만
연락해서 언니만 보고 들어가거나 진욱이 오빠만 보고 돌아가는 일이 대부분 이었기 때문.
샤워도 하고 머리도 곱게 빗어 내리고 옷장에서 옷을 골라 입고 화장을 다 하고
향수 까지 뿌리고 있을 때도 곧 벌어질 끔찍한 일은 상상도 못 했다.
딩동 - 딩동 -
"응? 언니가 벌써 왔나?"
향수의 뚜껑을 닫고 거울을 보면서 마무리 치장을 하면서 보영은 거울에서
눈을 때지 않았다.
딩동 - 딩동 -
딩동 - 딩동 - 딩동 -
계속 해서 울리는 초인종 소리.
언니는 한번도 이렇게 초인종을 누른 적이 없는데..
그건 그렇고.. 아줌마는 뭐 하는거야..
밀려오는 짜증에 미간을 좁히면서 방문을 열고 나왔다.
"아줌마!! 아줌마!!"
불러도 대답이 없는 아줌마.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이제 겨우 7시.
아.. 아줌마는 9시부터 출근이지..
엄마랑 아빠는 오늘도 안 들어 오셨나..
딩동 - 딩동 - 딩동 -
"에이씨!! 가요!!!"
계속해서 들리는 초인종 소리에 짜증을 내면서 보영이 현관문을 열자
처음보는 남자들이 우르르 집 안 으로 몰려 들어왔다.
그것도 신발을 신은 체.
"실례합니다. 경찰입니다."
난데없는 경찰의 방문에 놀랄 사이도 없이 그들이 집안 가전제품에 붙이고 있는
빨간딱지에 보영은 기절 하는 줄 알았다.
"뭐...뭐하는 짓이야!! 당신들이 경찰이면 경찰이지 왜 남의 집에 들어와서 행패야?!
이봐!! 당신들 신발이나 벗고 들어오라구!! 여기가 어딘 줄 알아?!!"
"진성원씨와 차영숙씨가 부모님 되시죠?"
"마..맞아..엄마 아빠한테 무슨 일이 생긴거야?! 그래?!"
그 남자의 입에서 부모님의 이름이 나오자 보영의 마음이 급해진다.
"진성원 씨와 차영숙씨가 한달사이에 회사의 주식을 팔아 넘기고
그 돈으로 어젯밤 해외로 도주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집과 이 집의 모든 가구들이나
가전제품은 지금부터 국가소유 입니다."
"마..말도..말도 안되.."
이건.. 유치한 드라마에서나 벌어지는 일이다..
이건.. 아주 잔인한 악몽이야.. 그렇지 않아.. 사실이 아니야.. 빨리 꿈에서 깨!!
"집에 있는 건 모두 붙였습니다."
라는 한 남자의 말 때문에 보영은 다시금 이 악몽을 실감했다.
"어..얼마나..얼마나 엄마랑 아빠가..가지고 도망을..갔다는 거야..?"
"45억원 입니다. 오늘 오후 까지 집을 비워주셔야 겠습니다."
"웃기지마!! 여긴 우리집이야!! 니가 뭔데 집을 비우라 마라 헛소리야!!"
"보영아!!!"
그때, 현관문이 다시 열리고 나경이 달려 들어왔다.
"이게..대체..무슨...보영아!"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바들바들 떨고있는 보영을 본 나경은 보영이를 보듬어 안으면서
경찰이라는 남자에게 시선을 옮겼다.
"여자 아이가 혼자 있는데 너무들 하시네요!! 책임은 후에 묻겠습니다!! 빨리 나가 주세요!"
나경의 고모부는 경찰청장이었다.
나경을 알아 본 남자는 나경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하고서 데리고 들어온 남자들을
다시 데리고 돌아갔다.
스르륵..
그제야 긴장이 풀려 바닥에 주저 앉는 보영.
덕분에 보영을 안고 있던 나경도 함께 주저 앉았다.
"보영아..."
"언니..이게..어떻게 된 일이야..응...? 이게...무슨..일이지.."
"아버님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았다는 건.. 보영이 너도 알고 있었지."
"응..하지만..아빠는 금방 좋아 질 꺼라고.. 그랬단 말이야.."
분명..아빠와 엄마는 요 몇 달사이 집에도 제대로 들어오시지 못하고 집에 오더라도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하지만 아빠는 그냥 조그만 구멍이 생겼다고 금방 때워 질 꺼라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웃어주셨는데..어째서..
"어떻게..설명을 해야할지..나도 자세한건 몰라서..보영아 일단 쇼파로 가서 앉자.."
하얗게 질린 얼굴의 보영을 일으켜 세워서 쇼파에 앉혀 놓고
나경은 부엌으로 들어 가 냉장고에서 쥬스를 꺼내 잔에 따뤄 보영의 앞에 내려 놓았다.
"언니가..좀 알아볼게..이거 좀 마시고 진정하고 있어..알았지..?"
보영의 어깨를 살짝 두드리고 나경은 핸드폰을 들고 베란다로 나왔다.
걱정스런 얼굴로 보영을 한번 쳐다보고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 가는 소리가 몇번 들리더니 중후한 음성의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나경이냐..]
"네..고모부. 안녕하셨어요?"
[그래. 잘 지냈지. 한국에 들어 와 있었구나..]
"윤권이 제대가 오늘이라 어제 들어왔었어요."
[아..벌써 그렇게 됐던가..흠..그럼 니가 전화 한 이유가 윤권이 부모님 때문이겠구나.]
"네.. 정말 신문에 적힌게 사실이예요?"
[나도 사실이 아니길 바랬는데..허어..진 회장이 그럴 줄은 생각도 못 했어.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도는 좋았는데 너무 많은 돈을 투자 했어..진사장은 그게 대박이
날 꺼라고 믿었던 거지..]
국내 자동차 브랜드 중 1,2위를 다투는 기업이 이렇게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다니..
"45억원을 가지고 해외로 나가셨다고 하던데 정말 45억원이예요?"
[그건 신문에서 튀겨서 기사를 내 보낸 것 같구나.. 새로운 프로젝트 투자 명목으로
회사 주주 들에게 받은 돈과 여러 은행과 다른 기업들의 투자한 돈이 대충 그정도
되는 게지..진 회장이 들고 나간 돈은 10억원도 안되.]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고모부...?"
[... 나로써도 방법이 없구나.. 워낙 언론에서 크게 떠들고 이 일이 작은 일이 아니라..
길게 통화는 못 하겠구나. 다음에 밥이나 한끼 같이 하자.]
"예.."
뚝 -
나경은 한숨을 내 쉬면서 아랫입술을 지긋이 깨 물었다.
확실히.. 이번 일은 작은 일이 아니라 아주 큰 일이다..
이름만 대면 알아주는 기업의 회장 내외가 거금의 돈을 투자받아 만든 프로젝트가 망하자
회사의 주식을 헐값에 팔아 밤사이 해외로 도주 해 버린 사실은..
어제 까지만 해도 정말 행복했는데. 아주 행복해서 죽을 지경이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벼랑 끝으로 밀려 버리다니..
"차영숙!!! 이 개같은 년 어디있어!!!"
"나와!! 떼 먹을 게 따로 있지 친구 돈을 떼 먹냐! 이 썅년 빨리 나와!!!"
와장창창 - !!
"꺄악!!!!"
갑자기 들이닥친 아줌마 무리.
차려입은 행색이 척 보아도 있는 집 부인들 같은데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하나같이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들어오자 마자 욕을 하면서 보영의 엄마 이름을 부르더니 빨간 딱지가 붙어진
도자기와 액자들을 마구 집어던졌다.
그 바람에 겨우 진정 해 가던 보영은 더 놀라 쇼파위에서 무릎에 얼굴을 박고는
소리만 지르고 있었다.
"뭐하는 짓이예요!!!"
"뭐하는 짓? 이년이! 너는 뭐야! 어?! 차영숙 숨겨 놓은 딸이라도 되냐?
차영숙 어딨어!!"
"이년이라뇨! 남의 집에 들어와서 이게 뭐하는 짓이예요!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경찰서에 가서 하세요!"
"아니, 이년이! 넌 뭔데 눈을 똑바로 뜨고 대들어?!"
"전 진윤권의 약혼자 한나경 이라고 합니다. 진윤권이 누구인지는 아시죠?
지금 윤권이 집의 모든 가구들은 국가소유로 되어있어요. 여기 붙어있는 빨간딱지
보이시죠? 사모님들이 깨 부쉰 것 들이 국가소유물 입니다. 보상은 경찰쪽에서 물을테니
경찰서 가서 얘기 하시고 지금은 돌아가 주시죠. 저희 가족도 지금 충분히 얼떨떨합니다.
돌아가 주세요."
중년여자들의 거친 욕설에도 불구하고 나경은 눈 하나 꼼짝하지 않고
한마디 한마디 또박또박 말 했다.
이미 나경의 입에서 한나경 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부터 중년여자들은 움찔하기 시작했다.
실물은 한번도 본 적이 없지만 티비나 신문에서 윤권의 약혼자 이며 꽤나 이름있는 기업의
장녀로 버클리 음대에 수석입학 했다는..여자 라는 건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게다 한나경의 친척역시 시시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
"보..보상 같은 소리 하고있네! 우리가 손해 본 돈이 얼만데!!
그래 경찰서에서 얘기 하자고! 가세들!!"
중년의 여자들은 나경의 기세와 뒷 배경에 눌려 화를 참으면서 나갔고
집안은 난장판인 체로 다시 조용 해 졌다.
RRRR.. RRRR.. RRRR..
갑자기 울리는 전화 벨.
쇼파 위에서 고개를 무릎에 푹 박고있던 보영이 고개를 번쩍 들고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엄마 일지도 몰라..
"엄마?! 엄마야?!!"
[하아..야..진보영.. 너 빨리 대충 짐 싸서 서울역으로 나와..빨리..]
"오..오빠..? 오빠 어디야? 응?!"
하루아침에 길 바닥으로 나 앉게 생겼는데도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던 보경이
윤권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려댔다.
[기자들 깔린 거 같으니까 너 최대한 변장하고 내 통장이랑 카드 빨리 가지고
서울역 공중전화 있는데 서 있어. 알았지?]
"으..응..오빠 지금 어디있는데..응?"
[내 폰 아니라 길게 못써. 지금 ktx타고 올라가는 중이야. 곧 도탁하니까 빨리나와]
뚝 -
다급한 목소리의 윤권이 전화를 끊자마자 보영은 뚝뚝 흘리던 눈물을
소맷자락으로 훔쳐내며 벌떡 일어났다.
아침에 곱게 한 화장 덕분에 아이라인이 눈 옆으로 보기 흉하게 번졌다.
"유..윤권이야? 뭐래?"
"오빠가 지금 서울역으로 나오래..돈 가지고 빨리 나오래.."
"그래? 언니가 옷 챙길테니 보영이 넌 세수 다시 하고 나와..어서.."
나경이 윤권의 방으로 들어가고 보영은 훌쩍거리면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나쁜 인간들.. 욕조에 까지 빨간 딱지를 붙여놨다.
빨간 딱지를 보고 울컥 한 보영은 딱지를 떼서 구겨버린 다음에 화장실 바닥에
떨어트리고서 발로 꾹꾹 밟았다.
"나쁜놈들..히..씨이.."
쏴아 -
정확히 누굴 향해 원망을 하는 지는 모르지만 보영은 계속해서 나쁜놈들을 중얼거리며
훌쩍거리다 차가운 물을 두손 가득 담아 얼굴을 문질렀다.
눈물이 흐를 것 같을 수록 쉴세없이 물을 얼굴에 문질렀다.
폼클렌징을 쭉쭉 짜서 얼굴에 마구마구 문질른 다음 얼굴을 빡빡 문질러 화장기를 전부 다
씻어 내고서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냈다.
그리고 다시 거울을 보았다. 맨들맨들한 얼굴.
좀전의 흉하던 아이라인의 흔적은 보이지도 않았다.
"보영아! 아직 멀었어?"
윤권의 방에서 나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보영은 수건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집어던져 놓고 자신의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방학 때 마다 해외여행을 갈 때 쓰던 크렁크를 옷장에서 끄집어 내어 손에 잡히는데로
아무 옷이나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서랍을 열어서 여태 모아온 통장과 카드 그리고
도장을 꺼내서 토트백 안에 집어넣었다. 또 뭔가 챙길 것이 없나 하고 찾다가 발견한
진욱과의 커플링. 말만 커플링이지 백금에 다이아 까지 박혀있는 초 호화 커플링.
케이스 체로 토트백에 집어넣고 트렁크를 끙끙거리면서 들고 나왔다.
나오면서 옷 걸이에 걸려 져 있는 에고이스트 모자도 잊지 않고 챙겼다.
방을 나오다가 문 앞에 서서 자신의 방을 돌아보는 보영.
역시나 빨간딱지 투성이지만 분홍색의 아주 예쁜 공주 풍의 방.
사람만한 크키의 곰 인형에서 부터 손가락 크기의 아주 작은 인형까지 옹기종이
모여있는 더블 싸이즈의 침대에서 시선을 땔 수가 없다.
저 인형들은 모두 진욱이 선물 해 준 것들. 가지고 가고 싶다.
"다 챙겼어? 뭐하고 서 있어? 또 사람들 오기전에 얼른 나가자..
이거 윤권이 통장이랑 카드 맞지?"
끄덕끄덕.
나경도 윤권의 트렁크에 이것저것 윤권의 짐을 넣고서 끌고 나왔다.
나경이 트렁크를 끌면서 현관으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보영은 방 앞에서
멍 하니 움직일 줄을 몰랐다.
"보영아!"
"가기..싫어..."
눈물이 그렁그렁 한 눈으로 나경을 쳐다보는 보영.
그런 보영을 보고 나경도 울컥했다.
"지금은 가야되..시간이 없어..어서..보영아.."
"에그머니! 아가씨!"
출근시간이 가까워 온 건지 일 하는 아주머니가 문 안으로 들어서서
여기저기 붙어있는 빨간 딱지와 마루에 깨져있는 도자기 들을 보고서
소리를 질렀다.
"아주머니. 월급은 제가 돌아와서 붙여 드리겠어요. 계좌번호 적어놓고 가세요..
그리고 그동안 수고많으셨어요..보영아 어서나와!"
나경의 재촉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옮기면서 보영이 나경의 뒤를 따랐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와서 차 트렁크에 옷 트렁크를 넣어놓고
보영을 옆 자리에 태우고 빠른 속도로 서울역으로 향했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고 생각하지도 못 했던 일이라
지금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저 지금 일어난 이 끔찍한 일이 그저 꿈이기를 바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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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꿈이기를 저도 바랄뿐!!ㅠ0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