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박찬호는 초등학교때 부터 유난히 운동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4년때 육상부에 들어가면서 운동선수로 접어들었죠..
달리기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육상코치가 박찬호를 대려다가
선수로 키우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은 고민을 했었죠..
그런데 중동초등학교 야구부 코치가 박찬호가 손바닥이 크고 하체가
좋다는걸 알았죠..그래서 두명의 코치가 박찬호를 서로 키우겠다고
했죠..부모님들은 야구코치에게 손을 들어주었죠.
박찬호의 야구 인생은 이렇게 시작되었죠...
박찬호가 선수로 뛰던 중동초등학교는 손혁,홍원기 등이 주축이
되어 전국 최강을 꾀차고 있었죠.
이때 박찬호의 포지션은 3루수 였죠. 발이 빠르고 타겨겡 재질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중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주중학교로 진학했습니다.
박찬호는 신입생때는 여전히 3루수로 뛰었습니다.
내야수치고는 빠른 볼을 던지는 데다 손목의 스냅이 좋은 점을 눈여겨본
오감독이 단안을 내렸습니다. 투수로 키우겠다고..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모두가 반대했다고 합니다. 팀을 꾸려 나가기에 충분한데 왜 굳이 박찬호까지 투수로 만드느냐는 게 반대의 이유였다고 합니다.
특히 자식을 투수로 키우는 학부모들의 반대가 극심했다고 합니다.
굳이 이해하자면 제 자식에게 라이벌이 생기는 걸 좋아할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때 일어난 말썽때문에 박찬호가 공주중학교를 졸업한 직후 해고당하는
아픔까지 겪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박찬호는 공주중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투수 수업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공은 빨랏지만 제구력에는 문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대성의 기미가 엿보인 것은 3학년으로 진급하면서 부터였다고 합니다.
겨울방학 때는 아예 오감독 집에서 숙식을 함께했다고 합니다.
새벽에 일어나 러닝부터 시작해 밤 에 끝나는 지옥훈련이었습니다.
박찬호의 어머니가 그때 박찬호가 지독한 연습 벌레 였다고 합니다.
저녁 늣게 안오자 옥상에 올라가 보니 옥상에서 운동을 하다가 곤히 잠들어있다고 했습니다.
박찬호는 공주중학교를 졸업하고 공주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물론 손혁
,홍원기,오중석 등과 함께..
박찬호가 중학교 때 대성의 자질을 발견한 시기였다면 고등학교시절은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는 시기였습니다. 김정무 공주고 감독(전 한화코치)을 만난 것도 그로서는 행운이었죠. 입학하자마자 신입생인 그에게 3번타자 중책을 맡긴 김정무 감독은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체 단련'이라며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러닝 훈련만 반복시켰다고 합니다.
김정무 감독이 말하길 고교입학 당시만 해도 시속 140Km대였던 직구 스피드가 졸업할 무렵엔 150Km대로 늘었다고 합니다.
꾸준한 러닝, 끊임없는 반복 훈련이 가져다준 효과죠..
직구 스피드가 150Km를 넘나들자 박찬호의 인생에 급격한 변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죠.
가장 먼저 박찬호에게 눈독을 들인 곳은 한양대학교였습니다.공주고 2학년인 박찬호를 유심히 살펴본 한양대 이종락 체육부장은 1년내내 공주를 들락거렸다고 합니다.
연고 구단인 빙그레(현 한화)의 움직임은 한방 뒤졌죠.그리고 오판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스카우트 였던 사람은 1천만원 정도 쥐어주면 잡아올 수 있다 고 상부에 건의한게 고작이었다고 합니다.
박찬호는 당연히 한양대행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공주고가 90년 전국체육대회레서 정상에 오르며 2학년생이던 박찬호가 급성장세를 보이자 빙그레의 마음도 동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고교 3학년 때인 91년7월 LA 인근에서 열리는 한.미.일 친선 고교야구대회에 참가하기 직전이었습니다. 이미 한양대에 가등록을 해놓은 박찬호의 마을을 돌리려고 빙그레는 그가 공주고 1학년 때 감독이었던 김정무 코치와 개인적으로 친한 김성호 코치를 동원했습니다. 또 수시로 장종훈 등을 보내설득잡업도 병행했죠.
박찬호의 마음이 결정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김영덕 감독과 만났을때였습니다. 박찬호를 본 김영덕 감독은 뜻밖의 말로 호언장담했습니다.
'빙그레에 입단하면 선동열을 능가하는 선수로 키워주겠다.'
그러자 박찬호는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계약금 이었죠...당시 빙그레가 제시한 계약금액은 2천만원
단돈 2천만원 이었습니다. 그 액수가 빙그레가 박찬호를 평가한 금액이었죠
당시 서울구단에서는 박찬호의 동기들인 임성동,조성민을 놓고 2억 3억 하는 소리가 난무할 때였습니다.당연히 박찬호는 자존심이 상했을것입니다.
그래서 박찬호는 한양대 입학을 했죠.
아마도..재 생각인데 빙그레에서 단돈3~4천만원 만 더 줬으면 박찬호는
빙그레에 입단 했을것 같은데...빙그레는 몇 천만달러 의 선수를 단돈 몇천만원에 날려 버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