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의 글 말미에서 그룹 [퀸]의 몇몇 노래에 조바꿈이 있다고 했다. 조바꿈은 무엇일까. 조바꿈이 있는 음악은 우리에게 어떤 느낌을 줄까. 음악 용어 조바꿈은 세상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프랑수아 뤼드 작 ‘1792년 의용군의 출발(Le départ de volontaires en 1972)’, 프랑스 파리 개선문 속 조각품. ‘라마르세예즈’는 ‘마르세이유인들’이라는 뜻으로, 원래는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마르세이유로부터 파리에 온 의용군들을 가리키는 용어였고, 오늘날은 프랑스 국가의 별칭이 됐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한참 인기를 끌었던 지난 연말, 나는 내 SNS 계정에 다음 질문을 던졌다.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와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 ‘위 아 더 챔피언’ 등의 노래에서 공통으로 확인되는 순수한 음악적 특징이 무엇일까요?”
예상대로 많은 분이 정답을 맞히지 못했다. 사람들은 조바꿈을 잘 지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SNS에서의 문답이 제대로 된 조사 연구는 아니었으니 섣부르게 예단할 수는 없다. 알아보니 사람들이 조바꿈을 잘 지각하고 인지하는지, 어떻게 하는지에 관한 연구가 많지는 않았다.
조바꿈, 조옮김 또는 전조는 문자 그대로 조를 바꾸는 일 또는 조가 바뀌는 현상이다. 영어 ‘modulation’을 번역한 이 용어들에 큰 문제점은 없다. 라디오나 TV 방송과 관련한 전자통신 영역에서 이 영어 단어는 ‘변조(變調)’로 번역된다. 주파수 변조(Frequency Modulation), 진폭 변조(Amplitude Modulation) 등이 예다.
어느 영역에서 쓰이건, modulation은 무언가를, 특히 그 무언가의 중요한 방식, 즉 모드(mode)를 바꾸는 작업이다. 주파수 변조에서는 주파수를, 진폭 변조에서는 진폭이나 신호의 세기를 바꾼다. 음악에서는 조(調, key)를 바꾼다.
오선악보를 떠올려보자. 다장조는 오선악보 첫 부분에 어떤 표시도 없을 때 적을 수 있는 조다. 샤프(#)나 플랫(♭)이 하나도 없는 오선악보에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의 음을 차례로 적어보자.
다장조(C major) 음계를 구성하는 음들이다. 이 음들을 주로 사용해 선율, 선율을 감싸는 화음을 만들면 다장조 음악이다. 다장조 음악의 악보는 읽기 쉽다. 교향곡에서 ‘떴다 떴다 비행기’로 시작하는 동요 ‘비행기’에 이르기까지 다장조 음악은 많다.
오선악보 첫 부분 파의 자리에 샤프(#)가 하나 있으면 사장조를 표기할 수 있다. 파의 자리에 붙은 샤프(#)는 항상 파를 반음 올려서, 즉 파#의 음으로 노래하거나 연주하라는 표시다. 사장조의 음계는 솔, 라, 시, 도, 레, 미, 파# 솔의 음으로 구성된다.
사장조 음악으로 잘 알려진 곡이 애국가다. 애국가는 선율에 이 음들만 사용한다. 미국 국가 ‘별이 빛나는 깃발’은 내림나장조 곡으로, 시와 미의 자리에 플랫(♭)을 붙인다. 플랫은 그것이 붙은 음을 반음 내리라는 지시다. 내림나장조 악보에서는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모든 시와 미는 반음 내려 연주해야 한다. 샤프나 플랫이 많을수록 악보 읽기는 어려워진다.
애국가는 사장조로 시작해 사장조로 끝난다. 동요 ‘비행기’는 다장조로 시작해 다장조로 끝난다. 미국 국가는 내림나장조로 시작해 내림나장조로 끝난다. 이 곡들에는 조바꿈이 없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도 조바꿈을 찾기 어렵다. 조바꿈이 들어가면 국가가 어려워지고, 국가를 어렵게 작곡하면 온 국민이 다 같이 즐겨 부르기가 어려울 것이다.
드물게 조바꿈이 있는 것이 프랑스 국가다. ‘라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라고 알려진 프랑스 국가는 과격한 가사와 강렬한 선율이 특징인데, 여기에 조바꿈이 덧붙었다.
조가 바뀌면 하나의 조가 가졌던 성격이나 특성이 다른 조가 가지는 성격이나 특성으로 바뀐다. 다장조의 특성은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의 음을 주로 사용함으로써 형성되며, 사장조의 특성은 솔, 라, 시, 도, 레, 미, 파#, 솔의 음을 주로 사용할 때 형성된다.
(영어 key를 한자 ‘고를 조(調)’로 번역한 이유는 이렇게 각 조의 구성음들이 서로 다르다는 점, 각 조는 요소들을 잘 ‘골라’ 형성된 것이라는 점을 부각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이런 특성들을 ‘바로’ 인지할 수 있을까? 사장조든 라장조든 어떤 조의 음계나 그 조로 작곡된 음악을 ‘바로’ 들려주면 대부분의 사람은 그것이 사장조인지 라장조인지 알지 못한다. 이러한 사람들과 달리, 무매개적으로 바로 들은 어떤 음악의 조를 알아맞히는 이들이 있다.
절대음고 또는 절대음감을 지닌 사람들은 어떤 음악을 처음 듣고서 그 곡의 조를 금세 또는 약간의 계산 끝에 알아맞힌다. 그 곡에서 나오는 음들의 대부분 또는 전부를 맞히기도 한다. 화음까지 맞히는 이들도 있다. 고난도 문제를 바로 맞히는 이들을 강한 절대음고 능력자라 부르며, 저난도 문제를 계산 끝에 맞히는 이들을 약한 절대음고 능력자라 부른다.
어떤 이가 자신을 절대음고 능력자라고 말했을 때, 그것이 사실인지를 알아낼 쉬운 방법이 있다. 노래방에 가면 된다. 그에게 애국가와 같이 잘 알려진 노래를 부르라고 한 후, 몰래 버튼을 조작해 조를 바꾼다. 원래의 사장조가 아닌, 그것보다 약간 높거나 낮은 조로 전주가 나오면 그에 맞춰 노래를 시킨다.
“어! 이상한데?”라며 당신이 조금 전에 몰래 한 일을 알아내면 그는 신뢰할 만한 사람이다. 그는 각 조의 고유한 특성들을 잘 인지하며 그것들을 마음속에 강하게 각인시킨 사람이다. 반면 보통 사람들은 그것들을 잘 인지하지 못하며, 따라서 각인할 그 무엇을 가지고 있지 않다.
조바꿈이 여러 음악에 있다는 것은 많은 음악 감상자가 여러 조의 특성이나 차이를 잘 인지하는 절대음고 능력자라는 이야기일까?
그렇지 않다. 절대음고 능력자는 극소수다. 모차르트는 그 능력자로 알려져 있고, 베토벤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절대음고 능력자와 무능력자, 즉 상대음고 능력자는 서로 다른 사람들일 뿐이다. 상대음고는 어떤 음을 먼저 듣고 난 후 그것을 기준 삼아 이제부터 듣게 될 음악의 조와 그 구성음들을 알아맞히는 이들이다.
연주회 직전에 440헤르츠(Hz)의 라(A)음을 오보에 연주자가 먼저 내면, 다른 연주자들이 그 음에 맞추어 자신의 악기를 조율한다.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조차 상대음고가 다수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조바꿈은 감정 변화 느끼게 할 음악적 조치
▎다장조 음계: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의 음들로 구성되어 있다. 세 번째 음인 미와 네 번째 음인 파, 그리고 일곱 번째 음인 시와 여덟 번째 음인 도 사이가 반음이다. 모든 장조 음계는 첫 음이 다를 뿐, 이처럼 3~4음과 7~8음이 반음이며 나머지 음 사이의 음정 간격은 온음이다.
상대음고 능력자들은 여러 조가 저마다 가지는 고유한 특성들을 잘 알지 못한다. 그들 중 일부가 하나의 조가 다른 조로 바뀔 때 모종의 분위기가 바뀐다는 사실 정도는 지각할 수 있을 것이다.
‘분위기 변화’의 관점에서 프랑스의 국가를 들어보자. 어디서 분위기가 바뀌는가? 가사가 프랑스어이니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 분들은 음악만 듣고 그것을 감지해야 한다. 곡 중간 어디에선가 약간 어두운 느낌으로 바뀌지 않는가? 이제 가사 차원의 변화도 확인해보자. 프랑스 국가의 1절이다.
조국의 형제여 나가자! (Allons enfants de la Patrie!)
영광스러운 날이 왔다! (Le jour de gloire est arrivé!)
폭군에 결연히 맞서 (Contre nous de la tyrannie)
피 묻은 군기가 올려졌다! (L’étendard sanglant est levé): (1회 반복)
우리 강토에 울려 퍼지는 포악한 적군의 함성이 들리는가? (Entendez vous dans les campagnes mugir ces féroces soldats?)
적들은 우리의 아내와 선량한 시민들의 목을 조르려 한다! (Ils viennent jusque dans vos bras, egorger vos fils, vos compagnes!)
무기를 들어라, 시민이여! 모두 앞장서라! (Aux armes citoyens! Formez vos bataillons!)
나가자, 나가자! (Marchons, marchons!)
피 묻은 행진이여 목마른 밭고랑에서! (Qu’un sang impur abreuve nos sillons!)
위 가사에서 파랗게 표시된 부분이 그 앞뒤 부분과 좀 대조적이다. 적들의 학정을 묘사하는 이 부분이 그 앞뒤에 나오는 의지적이며 투쟁적인 명령과 대조된다.
공병 대위 루제 드릴은 1792년, 프랑스 혁명군이 혁명에 간섭하려는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 곡을 작곡했는데, 이러한 가사상의 분위기 변화를 조바꿈으로 잘 표현해 선동적인 군가를 만들었고, 이것이 이후 프랑스 국가가 됐다.
붉게 표시된 부분에서 조가 바뀐다. 적의 함성과 그들의 학정을 묘사하는 부정적인 이 부분을 어떤 조로 바꾸었을까? 이 곡은 애국가와 같은 조, 즉 사장조로 시작된다. 부정적인 부분은 다른 ‘장조(major)’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어둡고 비장한 느낌을 주기에 알맞은 ‘단조(minor)’, 즉 사단조로 바뀐다. 붉게 표시한 가사 부분이 끝나면 이제 다시 싸우러 나가자는 이야기가 제시된다. 다시 원래의 조인 사장조로 바뀐다. 음악은 다시 씩씩하며 결연해진다.
다장조에서 사장조로의 조바꿈에 비해 장조에서 단조로의 조바꿈, 단조에서 장조로의 조바꿈은 이렇듯 좀 더 극적이다. 프랑스 국가가 그렇고, 다단조로 시작된 1악장이 다단조로 끝난 후 3악장에서도 계속 다단조로 지속되다가 3악장과 연결된 4악장에서 갑자기 다장조로 조가 바뀌는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도 그렇다.
이 교향곡에서 다단조의 음악이 어둡고 비통하며, 도전적인 운명에 항전하는 격렬한 투쟁을 그린다면, 4악장의 밝은 다장조 음악은 그러한 투쟁에서의 승리와 자축 등 긍정적 감정을 표현한다. 조바꿈은 이러한 감정 변화를 느끼게 해줄 강력한 음악적 조치다.
[퀸]의 노래 ‘위 아 더 챔피언(We are the Champions)’에도 단조와 장조를 오가는 조바꿈이 있다. 자신의 부정적 상황을 묘사하는 듯한 가사들(“내 형벌도 끝났지, 난 죄가 없어, 내 얼굴로 쏟아지는 비난과 시련을 맞았어” 등)이 단조로 노래되다가 “우리는 챔피언, 나의 친구들. 난 끝까지 싸워나갈 거야. 우리는 챔피언. 패배자를 위한 시간은 없어”(We are the champions, my friends. And we’ll keep on fighting till the end. We are the champions. No time for losers.)와 같이 영광스럽고 자신감 있어 보이는 가사에서는 밝고 빛나는 승리의 장조 음악이 된다.
대부분 사람이 이 노래의 앞부분, 즉 단조 부분에서는 따라 하지 않다가, 우리가 챔피언이라고 선언하는 부분에서 열광적으로 제창한다. ‘운명 교향곡’과 ‘위 아 더 챔피언’에는 공통점이 있다. 단조에서 장조로 바뀌고 이것이 투쟁과 그에 따른 영광된 승리를 묘사한다는 것.
‘보헤미안 랩소디’에는 훨씬 더 복잡한 여러 번의 조바꿈이 있다. 그렇게 조바꿈이 많음에도 그걸 다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퀸]에 대한 결례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팬이라면 말이다. 맛 집에서 비싼 돈 내고 요리를 시켜 먹었는데, 맛있고 황홀한 경험은 했으나 그 경험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면 좀 안타까운 일 아닐까.
김진호 안동대 음악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