턴테이블 돌리는 사내 / 송연숙
빗소리를 잘라 넣고 찌개를 끓인다. 해감을 토한 오후가 길게 하품을 하고 빗소리는 거세진다. 창밖 체리 나무가 수직으로 젖고 있다. 숟가락으로 맛보는 국물에서는 덜 익은 구름 냄새가 난다.
사진 속 그 사내가 생각났다. 헤드셋을 쓰고 두 눈을 감은 채 인덕션을 턴테이블 삼아 맨손으로 돌리던 남자. 턴테이블은 붉게 달아올랐고, 반쯤 탄 그의 손은 검게 변해 있었다.
조금 열어 놓았던 창문을 닫는다. 감자, 호박, 두부, 굳이 순서를 따지지 않는다. 뚝뚝 잘라 넣은 빗소리는 잘 끓고 있다.
냉장고에 보관 중인 빗줄기로 기타 줄을 만들었다. 요란하게 울리는 기타의 볼륨을 낮추고, 그 사내를 바라보았다. 양손으로 헤드셋을 잡고 있는 그는 여전히 끓고 있는 중이다. 바닥부터 끓어 넘치는 빗소리들은 저녁의 가장자리에 얼룩을 남겼다. 수북하게 쌓인 재는 치우지 않기로 했다.
― 『시 see』 2021년 11월호
* 송연숙 시인
1952년 강원도 춘천 출생. 강원대 가정교육과와 교육대학원을 졸업,
2016년 월간 《시와 표현》 등단.
2019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 2019년 《국민일보》 신춘문예 밀알상 당선.
시집 『측백나무 울타리』
현재 철원고등학교 교감으로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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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기]
이 시의 주인공 ‘턴테이블을 돌리는 사내’만 알면 시의 모든 비밀이 풀린다. 그래서 추측해 본다. 턴테이블로 보아 이 사내는 좀 오래된 뮤지션이다. 턴테이블을 인덕션으로 바꾸는 환상적 상상에 담은 제2연은 이 사내가 매우 뜨거운 열정으로 전신을 불태웠던 사람임을 짐작하게 한다. 그 턴테이블 때문에 손이 반쯤 검게 변했다니까. 그런데 이 사내와 서정적 자아의 관계는 단단한 비밀 속에 갇혀 있다. 그냥 한번 만나보지도 못했지만 매우 좋아했던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니면 반대로 아주 밀접한 관계였던 사람일 수도 있다.
이 비밀 속의 사내는 그 관계의 구체성과 관계없이 현재 서정적 자아의 시간 전체를 잡고 있음이 분명하다. 비 오는 날 빗소리를 들으며 찌개를 끓이고 있는 시간 모두가 그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여전히 끓고 있는 중이다.’라고 말함으로써 그의 예술혼 또는 영혼이 서정적 자아의 가슴 한복판에서 아직도 끓어 넘침을 알겠다. 그 열정의 재는 치우지 않기로 함으로써 그 예술적 파도는 영원할 것임을 예고한다.
이러한 의미적 구조는 별로 새로울 것도 특이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 형식적 구조 특히 전체를 이루고 있는 부분들의 세부적 언어미들은 단연 새롭고 특이한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한 단어 한 문장이 모두 역동적 상상력으로 빚어낸 보석들이다. 보기 드문 묘사 능력의 감화력에 감전된다. 시는 결국 형식 만들기에 좌우되는 것이지 내용 소개하기에 달려 있지 않음이다.
- 서범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