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29일(화)
* 시작 기도
주님...
주님을 구합니다.
나는 주님이 필요합니다.
한 없이 어리석고 부족하며 연약한 인생이오니 이 불쌍하고 가련한 인생을 돌아보아 주옵소서.
수로보니게 여인의 간절한 심정으로 주께 간구하오니 상 아래 떨어지는 부스러기 은혜라도 허락하시어 비천한 이 종을 긍휼히 여기사 오늘도 주의 나라로 인도하옵소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나 육으로 오신 주의 말씀은 오늘 이 시대에 주의 영과 늘 함께 하시오니 주의 영 안에서 육이신 말씀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나의 심령은 가난할지라도 주의 말씀으로 부요한 자 되기를 원하나이다.
심령은 가난하고 말씀으로 배가 불러서 나의 영이 총명하여 주님의 뜻을 밝히 아는 반짝반짝 빛나는 주의 종이 되게 하소서.
나는 어린 아이와 같나이다.
생각하는 것이 죄요 행하는 것이 죄뿐이오니 연약한 이 죄인을 주의 보혈로 덮어 정결케 하시고 나는 부족하오나 주의 정결한 신부로 주의 안게 거하게 하소서.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조명하사 주의 말씀이 꿀송이보다 더 단 맛을 오늘도 느끼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출 32:15-24
제목 : 모세의 중보기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기도, 이를 통하여 새 언약 백성이 되다.
15. 모세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두 증거판이 그의 손에 있고 그 판의 양면 이쪽 저쪽에 글자가 있으니
16. 그 판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글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더라.
17. 여호수아가 백성들의 요란한 소리를 듣고 모세에게 말하되 진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나이다.
18. 모세가 이르되 이는 승전가도 아니요 패하여 부르짖는 소리도 아니라. 내가 듣기에는 노래하는 소리로다 하고
19. 진에 가까지 이르러 그 송아지와 그 춤추는 것들을 보고 크게 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
20. 모세가 그들이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게 하니라.
21.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 백성이 당신에게 어떻게 하였기에 당신이 그들을 큰 죄에 빠지게 하였느냐?
22. 아론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
23.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
24.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 나의 묵상
모세의 중보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 곧 이스라엘 민족을 진멸하시고 새로운 큰 민족을 이루시고자 하는 것을 돌이키시고 화를 내리지 않으셨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올 때 두 개의 증거판이 그의 손에 들려 있다.
각 판의 양쪽에는 각각 글자가 있는데 그 판은 하나님이 친히 만드신 것이요 글자는 하나님이 친히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다.
한편 모세와 함께 산에 올랐던 여호수아(출 24:13)는 산에서 내려오면서 백성들의 소리를 듣는다.
그는 금송아지 앞에서 춤추며 뛰노는 소리를 진중에서 싸우는 소리로 들었다.
이에 모세가 말하기를 이는 승리의 소리도 아니고, 패배의 소리도 아니며 노래하는 소리라고 한다.
모세는 진 가까이 이르러 그 송아지와 그 춤추는 것을 보고 대노한다.
그리고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린다.
나아가 그들이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고 물에 뿌려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게 한다.
금가루를 물에 타서 그 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먹이는 것은 일종의 언약 파기에 대한 ‘저주의 물’을 마시게 하는 것이다.
이같은 저주의 물은 죄인에게 먹여쓸 때 그의 유죄를 입증하는 효과를 일으키는데 사용되었다(민 5:11-28).
그러나 여기에서는 유죄를 입증하는 목적이 아니라 이미 유죄가 입증된 백성들을 하나님의 처벌에 맡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세가 증거판 둘을 깨뜨림으로서 피로 맺은 언약은 파기되었다.
하지만 모세의 중보로 인해 하나님은 언약을 파기한 백성들을 다시 용서하시고 재차 증거판을 만들어 언약을 갱신한다(출 34장).
오늘 본문은 모세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중보자임을 강력하게 각인시킨다.
모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의 중보자로서, 즉 이스라엘 제사제도를 통하여 언약을 회복하고 유지시키며 또한 발전시키는 제도가 완성되기 전에 언약의 중보자로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하나님은 은혜의 언약으로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언약 백성을 삼으셨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패역은 언약을 깨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공의의 하나님은 패역한 이스라엘을 마땅히 진멸해야 하지만 중보자를 통해서 다시 언약을 갱신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의 중보자 모세는 만민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신 18: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공의로 인하여 진멸 받아 마땅한 모든 인간을 위한 중보자가 되신다.
언약적 교제의 존재로 지음 받은 인간은 아담 안에서 죄를 지었고 언약을 파기한 자가 되었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모든 사람 위에 임하였고 그로 인해 ‘저주의 물’을 마시게 되었다.
아담 안의 모든 인간은 두 가지 악을 행한다.
하나는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린 것이요, 다른 하나는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이다.
그런데 그 웅덩이는 물을 저장하지 못할 터진 웅덩이요, 그 물은 언약을 파기한 자에게 임하는 저주의 물이다.
(렘 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영원의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깊은 층의 목마름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목마른 자는 어떤 물이든 구한다.
그러나 언약을 파기한 상태에서 얻는 물은 다시 목마르고 마는 저주의 물인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생수의 근원으로 세상에 오셨다.
그는 언약을 파기한 채 다시 목마르는 물을 구하던 수가성의 한 여인에게 찾아오셨다.
그리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깊은 층에서 솟아나는 생명수를 주셨다.
그가 주시는 영생수는 하늘로부터 오는 생명의 말씀이요, 태초부터 있는 영원한 생명이며 영원의 존재이신 하나님이시요 또한 그의 아들이다.
(요 3:31-32) 위로부터 오시는 이(예수 그리스도)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요일 1:1-2)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생명의 말씀이신 아들을 믿어 영생을 얻은 자는 언약적 교제의 존재로서 영원의 아버지와 그의 아들과 함께 교제하는 영생의 실제를 누린다.
영생의 사귐에서 오는 생수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원한 샘물이기 때문이다.
(요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주님이 주시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은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솟아나는 샘물이다.
나는 영원한 샘물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였다.
그저 예수를 잘 믿고 기도 열심히 하면 도깨비 방망이처럼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하면서 나의 필요를 채우려는 하나의 우상으로 섬겼다.
이런 나는 죽어 마땅한 자요, 이것이 나의 실존이다.
그런데 아무리 이렇게 나름 열심히 종교생활을 해도 나는 오히려 질곡의 구덩이로 빠져 들어만 갔다.
내가 만든 웅덩이는 물을 가두지 못할 웅덩이며 터진 웅덩이로서 그저 그 물을 마시면 마실수록 다시 목마르고 마는 야곱의 우물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예수를 믿어 나의 필요와 욕구를 채우고자 하였으나 다시 목마르고 마는 야곱의 우물에 천착하여 그 안에서 벗어나지를 못하였다.
하나님과 아들의 뜻도 모른 채 귀머거리와 육신의 눈을 뜬 소경으로 수십 년을 살아온 나는 나의 삶이 바로 영적 불구자에 지나지 않았다.
비록 나의 사지는 멀쩡할지 모르나 죄를 탐닉하고 나의 의를 드러내고자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는 나의 모습은 하나님과 언약을 깨트리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을 섬겼던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예수님 당시 사람들에게 잘 보여서 인정을 받으려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에 다름 아니다.
이런 나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아 죽어야 마땅하며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서 다 무너지고 깨지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공의이다.
이스라엘의 중보자 모세의 기도를 받으시고 하나님께서 진멸의 뜻을 돌이키셔서 이스라엘과의 깨진 언약을 다시 회복하셨던 것처럼 오늘 아담 안에서 죽은 나를 두 번째 아담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인하여 깨어진 옛 언약을 새 언약으로 갱신하시고 그 새 언약을 우리 주님의 피로 다시 세우셨다.
(눅 22: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다.
이제 나는 새 언약 백성이며 이는 창세전 언약에 근거하여 죄인 중에 괴수와도 같은 나를 새 언약 백성으로 삼으신 그 은혜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무릎으로 나아간다.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이 비록 고개도 못 들고 자신을 품꾼의 하나로 써달라고 하였으나 인자와 신실이 가득한 아버지는 품꾼의 하나가 아니라 더러운 죄의 옷을 벗기고 가장 좋은 옷을 입히며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는 신을 신기며 아들의 지위를 회복하여 주셨다.
나도 오늘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 맺었던 창세전 언약에 근거하여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우신 새 언약 백성이 되어 비록 초라하고 못난 모습이어서 머리를 푹 숙이고 아버지께 나아가지만 그런 나에게서 아들 예수를 보시고 나를 아버지의 품으로 맞아주시는 그 은혜를 누린다.
이 자리가 바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영생의 자리요, 또한 하나님 나라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죄의 구렁텅이와 같은 세상에서 나의 필요를 구하며 그것이 전부인양 착각하며 살던 죄인이 여기 있습니다.
말로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였으나 정작 삶의 모습은 예수를 부인하는 마음과 행동으로 주님을 거역하던 자였음을 고백합니다.
온갖 부정과 사욕과 정욕 그리고 탐심으로 하나님을 우상으로 삼고 예수를 도깨비 방망이처럼 대했던 나는 죽기에 합당한 자입니다.
그러나 나는 불의할지라도 하나님은 신실하며 의로우시기에 창세전 언약을 기억하시며 도둑이요 강도 같은 나를 아주 진멸하지 않으시고 공의로 심판하시되 징계를 통하여 나의 더럽고 추한 삶을 의로 교정하여 주셨나이다.
이를 위하여 죄를 알지도 못하신 예수를 죄로 삼으시고 십자가에 내어 주셨으니 그 은혜를 무어라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재와 티끌 가운데 앉아 회개할 뿐입니다.
입만 열면 거짓말을 일삼고 눈만 뜨면 죄로 가까이 달려가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사 내 맘속에 주의 나라를 세워 주옵소서.
나의 삶의 터전이 곧 영생을 누리는 하나님 나라가 되게 하시고 선교사로서의 직무를 잘 감당하여 예수를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전하는 사도적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몽골로 가는 모든 과정과 비행기 일정들이 순적이 이루어지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