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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정원 스크랩 애틋한 사랑이 담겨있는 익산 쌍릉
연초록 추천 0 조회 22 14.02.19 22:1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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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변하지 않고 영원할 수 있을까?

나는 늘 사랑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변하는 것이라 생각을 한다.

 

익산 여행에서 만난 쌍릉에서 영원한 사랑을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말 그대로 영원한 것은 사랑에 대한 믿음일 것이다.

나는 쌍릉을 바라보며 그 영원성은 삶에서 죽음으로 이어진다고 믿고 싶었다.

 

저만치 떨어져 있어도 애틋함이 담겨있는 두기의 무덤을 바라보며

실제 주인공이 누구였든 두 사이의 사랑이 깊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 무덤의 실제 주인공은 누구일까?

2005년에 열린 익산 쌍릉과 관련한 학술발표회는 이 무덤이 백제 무왕과 그 왕비인 선화공주의 무덤이라는

학술적 주장이 발표되어 전설이 사실이었음을 밝혀주었다.

나는 쌍릉을 바라보며 무왕의 천도지인 익산을 백제 무왕은 이곳에 누워서라도 지키고 싶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쌍릉이 있는 주변을 테마 공원화하여 거닐기에 좋았고, 

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를 모티브로 만들어 놓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겨울이라 쌀쌀한 바람이 불었지만, 쌍릉 주변에 흐르는 오래전 사랑의 이야기는 훈훈했다.

 

 

 

 

나는 안내문을 읽어보고 두 곳의 능을 돌아보기로 했다.

 

두기의 무덤은 200m 정도 저만치 떨어져 있다.

두 무덤 모두 원형의 봉토 무덤으로 흙을 높이 쌓아 만든 봉분뿐이어서 바라보면 무척 썰렁한 일반 묘보다는

 큰 것 빼고는 별다른 장식이 없는 그저 무덤일 뿐이었지만, 떨어져 있는 거리만큼 만나고자 하는 애틋함이 있으리라.

서동요의 내용처럼 죽어서도 두 사람은 깊은 밤이면 서로 만나 은밀한 사랑을 나눈 것은 아니었을까?

이승의 애틋함이 저승의 설화로 연결된 쌍릉은 남북으로 나란히 앉아 있는데,

북쪽의 능이 커서 대왕릉이라 부르고 작은 것은 소왕릉이라 부른다.

 

 

 

 

 

익산 쌍릉(사적 제87호)

 

전라북도 익산에 있는 굴식 돌방무덤으로, 남북으로 2기의 무덤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어 쌍릉이라고 부른다.

무덤 안의 구조는 백제 후기의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이며, 무덤의 봉분과 돌방의 크기가 큰 북쪽의 것을 대왕묘라 하고

남쪽의 작은 것을 소왕묘라고 부른다. 크기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2기 모두 원형의 봉토무덤으로 흙을 높이 쌓아 만든

봉분 이외에 별다른 장식이 없다. 북쪽에 있는 무덤을 현지에서는 '말통대왕릉' 또는 '대왕릉'으로도 불러왔는데,

'말통'은 서동의 이름인 마동이 잘못 전하여진 것이라는 설이 있다.

이 무덤은 고려 충숙왕 13년 왜구의 노략질로 인하여 여러 차례 도굴되었는데 1917년 일인학자에 의하여 발굴이 시행되었다.

조사 당시 사별형 토기 1점을 제외하고는 무덤은 이미 도굴이 되어 유물이 남아 있지 않았다.

다행히 대왕묘 안에서 나무로 만든 관이 일부 발견되어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나무관은 바닥면보다 위쪽 면이 약간 넓고, 뚜껑의 윗면이 둥근 모양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관고리에는 8쪽의 꽃잎을 가진 연꽃무늬가 있었던 것도 확인되었다.

복원한 나무관은 현재 국립전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이와 같은 무덤은 백제에 있어서 7세기 전반기에 나타나는

무덤양식으로 크기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부여 왕릉이 자리하고 있는 능산리 굴식 돌방무덤과 같은 형식의

판석제 굴식 돌방무덤으로 백제 후기의 것이 틀림없으며, 근처에 미륵사가 있어서

미륵사를 처음 만든 백제의 무왕과 그 왕비인 선화공주의 무덤일 것으로 짐작되고 있으나 뚜렷한 증거는 없다.

 

 

 

 

 

왜구로부터 노략질을 당하지 않고 보존이 잘 되었다면 누구의 묘인지 확실할 수도 있을 테고

또 많은 유물을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먼저 소왕릉부터 가보기로 했다.

산책하듯 걷다 보면 작은 능에 도착하는데, 무왕과 선화공주의 이야기가 없었다면, 

 별 장식도 없는 봉분만 있는 썰렁한 모습을 만나게 된다.

 

 

 

 

 

신라 시대의 왕릉과 비교하면 크기가 빈약하게 느껴지지만

백제 시대의 왕릉 중에서는 큰 편에 속한다고 한다.

봉분에 비해 옆으로 넓게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란다.

 

 

 

 

소왕릉 무덤은 아담하고 여성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묘지 주변도 소나무들이 감싸고 있어 아늑한 느낌도 들었다.

무덤을 바라보고 서 있노라니...무왕릉과 떨어져 있는 만큼 만나고자 하는 애틋함이 느껴지고...

그런 마음이 느껴져서 인지 나도 대왕릉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곳 쌍릉 앞 익산 둘레길은 KBS가 선정한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곳이다.

그래서인지 걸어보니 두 왕릉 사이를 오가는 길이 무척 아름다웠다.

소나무 숲길을 걸으며 무왕과 선화공주의 애틋한 사랑을 그려보게 되고...

정말 밤마다 그들은 이 길을 통해 만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산새 소리도 들리고 걷는 내내 상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의 사랑은 과정도 극적이었지만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며 사는 사람들에게 그 순수함과 열정을 되새겨 보는

계기를 부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솔숲을 걷는 내내....

 

이곳 쌍릉에서 사랑의 영원함을 느껴보는 것도 참 좋은 여행이 아닌가 싶었다.

 

 

 

 

 

두 왕릉을 사이에 두고 길게 이어지는 소나무 숲길은

무척 아름답다.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대왕릉은 소왕릉에 비해 남성미가 흐른다.

설화속 백제무왕과 선화공주의 사랑은 죽어서도 믿음을 보여주는 듯하였다.

아늑한 자리를 아내에게 내어주고 죽어서도 지키고자 하는듯한...

비록 그것이 진실이 아닐지라도 서로 바라보고만 있는 무덤이지만

영원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누군가가 만들어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이 무덤이 그들이 주인공이 아닐지라도, 떨어져 바라보는 애틋함이 느껴지는 것만 보더라도

사람들은 그들의 영원한 사랑을 믿고 싶은지도 모른다.

이곳 쌍릉에서 무왕과 선화공주의 아름다운 사랑을 떠올리며

미소 지어보는 것도 살아가면서 자신의 사랑을 한 번쯤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렇다 할 비석이나 호안석조차 없이 덩그러니 봉분만 있지만

다행히 마주 보고 있는 소왕릉이 있어 덜 외로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백제의 역사는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많다. 백제의 역사가 백제인이나 후손이 쓴 것이 아니기에

바르지 않다는 것도, 확실하지 않다는 것도 우리는 인정을 해야 한다.

백제의 역사는 정말 알 수 없는 수수께끼란 말이 맞는 것 같다.

 백제는 멸망했다. 패자는 말이 없는 법이다...

그러기에 이곳 쌍릉이 무왕과 선화공주의 것으로 추정할 뿐 정확한 고증은 어렵다는 것이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우리는 무왕과 선화공주의 무덤이라고 믿고 싶은지 모른다.

다만 이곳이 삼국시대 최고의 사랑이야기의 주인공인 서동과 선화공주의 무덤이라는 생각으로

쌍릉을 바라보니 훈훈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쌍릉의 진실규명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두 능이 다정하게 있는 모습에서 두 사이의 사랑이 깊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인지

우리는 서동설화의 주인공인 두 사람의 것으로 믿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쌍릉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무왕이 꿈꾼 익산 천도의 미래처럼 아직도 진행형이다. 

 

누구의 묘지면 어떠리...

죽어서도 함께하는 애틋한 모습만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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