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알아듣는 꽃
노혜숙
길가에 핀 꽃이여, 말을 알아듣는 꽃이여, 뭇 남자를 취하게 하고 길이 이름을 남긴 노류장화여. 서쪽 부안에 지지 않는 꽃 매창梅窓이여.
부안읍에 들어서니 ‘매창로’란 이정표가 먼저 나그네를 반긴다. '창가의 매화'란 뜻을 지닌 향기로운 길쯤 되려나. 한 떨기 해어화* 매창, 꽃은 지고 없건만 수백 년 지지 않는 향기를 전하는 내력은 무엇일까.
한때는 ‘매창이뜸’이라고 불리던 공동묘지였으나 이제는 부안의 명물이 된 매창공원. 이화 나무 그늘 아래선 마을 어른들의 장기판이 한창이고, 정갈하게 다듬어진 매창의 무덤가엔 햇살과 바람만 희희낙락이다. 애잔한 눈길로 비문을 더듬노라니 어디선가 구슬픈 거문고소리 들려오는 듯하다. 죽어 이토록 아낌과 기림을 받는 기생이 있을까. 제 이름을 지닌 단행본 시집에, 제 시비가 호위하듯 둘러선 공원의 주인공. 게다가 무덤까지 지방기념물 65호로 지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매창은 한시․가사歌詞는 물론, 가무․현금에도 능한 조선중기 최고의 시기詩妓였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상처보다 상대의 아픔을 더 헤아릴 줄 아는 결 고운 여인이었다고 한다. 매창이 죽자 고을 아전들은 시 수백 편 중 애창되던 58수를 묶어 《매창집》을 발간했고, 이름 없는 민초들까지 나서서 조촐한 돌비석을 세워 주었다. 근래에는 그녀의 이름을 건 다양한 문화제 행사에 유림이 주관하는 묘제까지 부안 사람들의 매창 사랑은 남다르다.
서림공원의 금대琴垈 혜천惠泉은 매창이 시름을 달래며 거문고를 뜯었다는 장소다. 매창공원과 지근거리에 있어서 무장무장 걸어 올라도 좋은 곳이다. 그 옛날, 관아와 고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였을 나지막한 언덕에 매창의 시비가 마을을 굽어보고 있다. 금대라고 새겨진 바위엔 담쟁이덩굴이 기어오르고 매창이 목을 축였다는 샘터엔 잡초가 무성하다. 속절없이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사랑이라니 얼마나 허망했을까. 눈물 젖은 노래인 양 바람의 수런거림만 숲에 가득하다.
이화우 흩날릴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하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이매창 <이화우>
기생 어미 탓에 천역賤役을 대물림해야 했던 매창은 걸음마를 시작하면서부터 기생 수업을 받았고, 열두 살 무렵 비녀를 올렸다 한다. 그 후 매창은 바람처럼 스쳐가는 남정네들을 숱하게 품었으리라. 세상에 허무한 것이 그네들에게 정 주는 일임을 온몸으로 알았을 그녀. 어떤 이는 매창이 평생 한 사람만을 사랑했다 하고, 또 어떤 이는 모든 사람을 사랑했다고 말한다. 진실이 어떠하든, 시 속에서 드러나는 매창의 인간적인 면모는 낮은 자리에서도 사람들을 두루 끌어안을 줄 알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매창과 유희경의 사랑을 입에 올리지만 나는 허균과의 관계에 더 마음이 끌린다. 허균은 매창과 십 년 넘게 교유를 나누면서도 “비록 우스갯소리를 즐기기는 했지만 어지러운 지경에까지 이르지는 않았다”고 술회했다. 제대로 플라토닉 러브를 한 것이다. ‘성소부부고’에서는 허균이 매창이 죽었을 때 “한바탕 소리 내어 곡을 하고 율시 2편을 지어 애도했다”고 알려준다. 남녀 사이에 은근한 수작이 왜 없었을까만 매창은 끝내 살수청을 들지 않았고 오래도록 시들지 않는 우의를 나누었다.
매창이 혁혁한 문사들과 당당하게 교유하며 시문을 논할 수 있었던 것도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문장가였던 허 균의 높은 평가 때문이었다. 많은 문인들이 그녀와 시를 주고받기를 원했고 그를 통해 매창은 조선 최고의 시기라는 명성을 얻었다. 기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삼종지도라는 조선 시대 유교 윤리관에서 벗어나 권필이나 한준겸, 유희경, 이귀 같은 내로라하는 시객들과 시문을 논하며 여한 없이 자기의 재주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 축복이라 해야 하리라.
매창은 스스로 호를 지어 가질 만큼 자의식이 강했다. 서얼 출신의 개혁적인 성향을 가진 허균의 벗들을 접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가졌을 것이다. 그에 더해 허균과 함께 불교 도교를 공부하고 참선하면서 자신의 존재이유와 가치를 찾게 되지 않았을까. 그녀의 말기 시에 자연의 섭리를 좇아 인생을 관조하고 참선을 통한 내세를 그린 내용들이 등장하는 것도 그런 배경에 있지 않나 싶다.
부안읍을 벗어나 벚나무가 터널을 이룬 오리 길을 구불구불 달리다보면 능가산 울금바위 아래 개암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절 왼쪽으론 천 년 고찰을 지켜온 고목이 우뚝하고, 오른쪽 산비탈엔 순하게 이랑진 차밭이 눈길을 끈다. 돌계단 중간쯤 올라 고개를 들면 개암사의 대웅전이 한눈에 들어온다. 개암사는 아전들이 주선하여 처음 《매창집》을 목판본으로 엮어낸 곳이다. 절간 살림이 거덜 날 정도로 많이 찍어내는 바람에 목판본을 불사르게 되었다니 요새로 치면 베스트셀러쯤 되나보다.
먼발치로 스친 월명암이며 어수대까지 부안 곳곳에 남아 있는 매창의 흔적은 자못 선명하다. 그러나 만인의 연인이면서 한 남자의 그 무엇도 되지 못한 채 홀로 죽어간 비운의 여인. 그녀로선 어쩌면 영원히 잊고 싶은 천역의 삶이었을지 모른다. 유언대로 그녀는 평생 고락을 같이 해온 거문고와 함께 묻혔다.
매창의 흔적을 좇아 부안을 더듬다 마침내 채석강 노을 앞에 앉는다. 내 뒤로는 수만 권의 책이 꽂힌 층암절벽 서가가 장엄하게 둘러서 있다. 누가 서가에서 책 하나를 빼내 일몰의 바다 한 페이지를 내 앞에 펼쳐 놓은 것일까? 갈매기가 그 위를 날며 한 줄의 행이 되어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읽는다. 나도 따라 매창의 시 한 수를 읊조린다.
千年 옛 절에 임은 간데없고/ 「御水臺」빈터만 남아 있고나/ 지난 일 물어 볼 사람도 없이/ 바람에 학이나 불러볼꺼나
이매창 <어수대>
누가 꽃에게 이토록 아름다운 글의 씨앗을 심어 주었을까? 해어화에 취하고 노을에 취한 저녁, 속절없이 흔들리고 흔들린들 어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