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학년도 대학입시를 둘러싼 해묵은 논쟁이 그동안 미봉책으로 임기응변으로 봉합되어오다가 최근 입시를 불과 몇 달 안남기고 폭발직전에 있어 쉽게 수습이 어려운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그 논란의 중심에 교육부와 청와대가 있지만 그 반대편 중심엔 사립대총장협의회(회장 손병두 서강대총장), 한국대학교육협의회(회장 이장무 서울대총장), 보수언론 등이 있다. 그런데 요즘 신규그룹이 더 생겨났다. 대학 평교수회가 그것이다.
연세대 평교수회, 서울대 교수협의회, ...... 금시초문이다. 그중엔 내 아이가 다니는 대학의 교수들도 들어가 있다. 아는 교수들에게 문의해보니 평소엔 있는 듯 없는 듯 친목계같은 모임이라한다. 어처구니없다. 그간 국가 장래를 결정짓는 굵직굵직한 현안인 한미FTA, 교육개방, 국가보안법, 교육민주화의 시금석인 사립학교법 논란이 우리 사회에 들끓었을 때도 서울대 교수협의회가 나섰다는 말은 못 들었다.
지난 7월 3일 개정사립학교법의 재개정으로 국회가 발칵 뒤집혔을 때도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냐며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사립대 교수평의회가 무슨 이유로 내신성적을 무시하는 대학에 자율을 달라며 집단행동을 하는 것일까?
치열한 입시경쟁의 폐해를 사교육비 지출이라는 민생문제로 겪고 있는 상황에서 내신이 공교육정상화에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은 될 수 있고 가르친 사람 즉 고교 교사의 평가인 내신을 대학이 존중하는 것은 기본 상식이다. 그러나 그간의 사정이 어떻든 사립대학들의 처사는 공교육정상화를 외면한 무책임하고 폭력적이며 국가정책을 정면 무시하는 것이다.
대학입시 1차 관문으로 수능성적을 전형요소로 채택한 대학들이 내신 1-4등급 성적까지 만점 처리 한다면 고교 3년 동안 학생들이 이룬 성취는 무용지물이 될 것이고 학교교육과정은 수능대비 중심으로 다시 종속되고 말 것 이다. 내신 40%, 한 반 35명 중 학급석차 1등과 15등이 같다고 하면 누가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수능성적은 고학력 부모, 사교육비를 많이 쓴 부모, 전문직 부모의 자식들이 점수가 월등히 높다. 지방학생, 소외계층 학생들이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일부 대학들은 학생선발의 조건으로 학생의 학력뿐만 아니라 학생의 배경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사립대학들의 특수목적고, 강남지역고교, 비평준화명문고의 집착이 지나치고 몰염치하다. 대학들이 학부모등급제를 하겠다며 노골적으로 설쳐대고 있는 것이다.
나는 교육운동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대학에 재학중인 두 아이의 부모이다. 한 가지만 잘해도 대학에 간다는 2002입시 때 많은 논란과 시행착오, 부작용이 있었지만 내 아이는 결국 학교공부를 바탕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그래서 내가 학교교육에 거는 기대는 각별하다. 또한 아이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보면 한미FTA 집회 때문에 도심이 막힌다며 툴툴거리는 아이에게, 노동자집회, 농민집회의 소란함과 번잡스러움을 기피하는 아이에게 그 정당성과 필요성을 설명하고 이해시키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인 것이다.
그나마 교수들이 뽄을 보여 시국집회에 동참하거나 아니 수업 중에 토론주제라도 삼으면 머지않은 미래에 아이 자신에게 닥칠 생존의 위협이나 불안정한 진로 등을 돌이켜보고 사회적 약자의 아픔도 공감하며 공동체의 일원으로 다시 태어날 가능성이라도 있을 것을 그런 말과 행동을 하는 교수는 성공회대나 일부 대학 말고는 눈 씻고 찾아보기 어려운 이 판국에 웬 평교수회가 웬 영화를 보겠다고 나선 것인가?
부모 잘 만나 돈 많고, 똑똑하고 외면 번듯한 학생들만을 선호하겠다는 천박한 논리 외에 무슨 할 말이 있다고 집단행동을 하는지 어이가 없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 같은데 교수평의회, 교수협의회는 부끄러움을 알아야할 것이 아닌가?
대학자율, 좋은 말이다. 반드시 자율은 확보되어야 한다. 그러나 대학입시에서의 자율은 이미 주어져있다. 계층선발제, 지역균형선발제, 기회균등할당제를 포함해 개별 대학이 가나다군 전형을 통해 십여 가지 입시 방법을 택할 수 있을 만큼 대학자율이 확보되어있다. 솔직히 3불 이외 모든 것이 자유로운 현행 대학 입시에서 자율을 달라는 것은 고교등급제, 학부모등급제를 할 자율을 달라는 것이다. 교육불평등, 사회불평등, 비정규직 양산의 낭떠러지에서 대학교수들이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본고사 권한을 달라고 백주에 주장할 수 있는가?
무책임하고 천박하다. 이는 한국사회의 학벌 왜곡구조가 쌓아올린 상아탑 속에 그 패권의식에 만족하여 세상 돌아가는 것을 외면하고 권리의식에 찌든 결과이며 대학의 사회적 책무, 적어도 공교육 정상화의 의무는 저버린 행태이다. 대학교수들이 최소한의 고등교육의 전망과 철학을 갖지 못했으면 창피한줄 알아야지 대학입시를 통해 대학자율을 달라며 어거지를 쓰는 것은 번지수가 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