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며칠 전부터 무문관에 이상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이상한 것까진 아닌 데 전에는 안 그러다가
요즈음엔 저녁예불 종소리가 나서부터
잠을 자기 전까지 거의 몇 시간 동안 불을 켜지 않는 것이다.
문이 암만 잠겨 있어도 마당에
불빛이 비치니까 옆방에서 불 켜는것은 얼마든지 알 수 있다.
아마 이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정진하기 좋은시간인 줄을 다들 공감하고
서로 보이지는 않지만 팽팽한 정진 경쟁이라도 하는 듯해 뿌듯하다. .
열시가 훨씬 지나야 잘 준비를 위해
불을 하나씩 켜는데 그것도 아주 조심스럽게 한다.
혹시라도 삼매에 들어 있는 다른 대중에게 조금의 누라도 될까 봐.
하여간 요 며칠을 불도 켜지 않고 사물이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밖을 보고 않아 있으니 불을 켰을 때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인다.
대표적인 게 '반딧불이'다
불 꺼진 마당이 마치 자기들 운동장이라도 되는 듯이
꽤 많은 놈들이 와서 종횡무진 헤집고 다니는 게 볼만하다
유년 시절 반딧불이를 잡아
병 속에 넣어 머리맡에 두고 자던 기억이 난다.
그 불빛으로 공부를 했으면 아마 지금쯤----
방 안이 깜깜해질수록 밖에 보이는
짙은 어둠도 밤이 싫어 바다로 바다로 도망가는 듯하다.
바다 쪽은 희미한 어둠이 죽도를 감싸고 있고,
포구에 보이는 불빛이 대여섯 개.
가끔 방파제 위를 오가는 차들의 질주하는 모습이
흡사 밤바다에 배들이 출항이라도 하는 듯하다.
이곳 바다는 갯벌이라 오가는 배 구경하기가 힘들다.
어쩌다 물이 많이 들어 올 때 가끔 볼 수 있을 정도다
어둠 속에서 가만히 앉아 있으면 마음이 착 가라앉는다.
마치 흙탕 물을 한 번 휘젓고 난 뒤 앙금이 가라앉듯.
낮 동안의 산란해진 마음.
이 어둠의 입자에 눌려 가만히 숨죽이고 있는 듯하다.
혼자 지내는 방이지만,
먹고살겠다고 이것저것 들여놓은 비품들이 이 시간만큼은
모두 사라지고 오직 나 혼자만이 존재하는 거룩한 시간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어둠
내 의식의 강을 가로지르고 있는 이 무명의 업장
그긴 터널을 지나면 마침내 새벽은 오고 말리라.
고통이 깊어지면 그만큼 업장 소멸이 되는 것이고
어둠이 깊어가면 새벽도 그만큼 가까워지는 것이다
6.12 수
6.12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