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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십자가 ,갈6:12-14
워싱턴 대통령은 미국의 모든 국민이 왕처럼 모시려 했는데도 스스로 기도하고 물러난 위대한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스 대통령 때 프랑스가 쳐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미국에는 프랑스의 뛰어난 군대를 막을 장군이 없었습니다. 지휘자가 중합니다. 교회나 회사나 군대나 그 지도자, 그 장이 중합니다.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 승패가 걸리게 됩니다.
그런데 프랑스의 뛰어난 군대를 이길 사람은 백전의 용장인 워싱턴 대통령 오직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담스 대통령이 워싱턴 대통령을 찾아갔습니다."대단히 죄송하지만, 사령관이 되셔서 전쟁을 좀 막아 주셔야 되겠습니다."그때 사령관은 중장이었습니다. 대통령을 했던 분에게 대장이 아닌 중장 계급장을 달고 전쟁터에 나가서 싸워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워싱턴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 그래야죠. 미국을 위해서라면 나가서 싸워야지요."
워싱턴 대통령은 기꺼이 중장 계급장을 달고 사령관이 되어 전장에 나가 싸워 이겼습니다.미국 국민들은 더욱더 "워싱턴! 워싱턴!"하게 되었습니다.
아담스 대통령이 사령관이 되어 싸워 달라고 했을 때 워싱턴 대통령이 "나를 뭘로 보고 하는 소리야? 내가 그 정도밖에 안 돼?"라고 했으면, 미국민들이 "워싱턴도 별 사람 아니네."하며 존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낮아져서 전쟁터에 나갔기 때문에 미국민들이 지금도 워싱턴을 그렇게 존경하는 것입니다.
나라을 위해서 라면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 이는 그가 자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 하는데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왜? 십자가의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만드신 후에 사람을 너무 사랑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죄를 지어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담이 생겨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스탑되고 오지 못하여 사람은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망과 허물로 살다가 영원히 멸망하는 지옥 불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의 숙명이요 운명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너무 불쌍하고 애처롭게 생각하시어 사람을 구원하시는데, 하님의 영원한 아들이신 그가 이 세상에 오시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너무나 포악하고 썩어서
하나님의 아들이 오지 않고는 그 어느 것도 세상을 구원할 수 없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그가 왜 이것을 자랑하는가?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이 십자가로 말미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십자가가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는가?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주’이시다. 예수님은 그는 성자 하나님이시다.
모든 인간의 고통들은 교만에서 파생된다.
사람이 타락한 것도 교만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그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1. 자기들이 처한 방식의 차원에서만 생각한다.
2. 전적으로 자기 중심적이다(고후5:15). -
육신적인 사람은 자신을 위해서 살아간다.
언제나 자기를 의식하며,
자기를 쳐다보며,
자기를 존중하며,
그리하여 결국 자기를 사랑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인간은 본질상 자기를 의뢰하며 자기 신뢰심을 가지고 있다. “나는 운명을 마음대로 주장하는 자이다. 나는 내 영혼의 주인이다.” 그래서 종교를 거부한다. 세상의 심리학은 “너 자신을 믿어라”라고 말한다.
자기가 자신의 신이 된다.
인간은 문명을 발달시켜 일을 바르게 하려고 노력하여 왔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처럼 악하고 교육은 받았지만 더 도덕적이지 못하다. 아무것도 더 나아진 것이 없다.
어떻게 하면 정결하고 건전하고 순결하고 정조 있는 삶을 살 수 있는지 그 법을 모르고 있다.
왜 바울이 그것을 그처럼 자랑하는지 아는가?
하나님께서 이 비참하고 곤고하고 실패로 가득 찬 죄악 세상을 위하여 세우신 계획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세상이란 사고방식이나 관점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서 생각하고 보고 영위하는 삶을 의미한다.
삶과 죽음과 인간과 다른 모든 것을 하나님과 성경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보는 관점이다.
세상은 과학이나 철학, 인간적 사상 같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 없이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집합하여 놓은 것이다.
- 또 바울은 세상의 사고방식은 인간적인 생각과 능력에만 의존하여 있다. 그 나름의 교훈과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 속에는 사람을 중심에 놓는 방식이요,
사람을 궁극적인 권위로 만드는 사고방식이다.
그것이 바로 사람들 대다수를 통제하고 있는 생각이요,
그리스도인이 아닌 모든 사람들을 조정하고 있다.
그들은 초자연적인 것이나 기적적인 것이나 영적인 것을 믿지 않는다. 사람 위에 사람보다 초월하는 어떤 것도 믿지 않는다.
창6장 3-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세상적 사고방식의 특징은 탐욕이다.
탐욕은 강한 욕심을 말한다.
성경은 이생은 욕심의 조정을 받는 삶이라고 말한다.
비그리스도인들은 내면에 원초적인 본능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이성보다 더 강력한 것이 정욕과 욕심과 엄청난 충동이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행한다.
그것은 탐욕과 불순한 정욕 같은 것들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 요한은 그것을 “육신의 정욕”이라는 말로 특징지어 말하고 있다.
세상의 삶은 주로 몸을 위해서 영위되는 삶이라는 뜻이다.
-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세상을 이처럼 무섭게 만드는 것이다..
- 왜 인류는 죽음을 두려워 하는가?
그들은 죽은 다음에는 심판을 알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한다.
성경의 메시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세상이 끝이 있으며 끝은 심판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다시 세상에 오실 것이고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과 대적하는 모든 것은 심판받을 것이며 멸망 당할 것이다.
당혹한 인간들이 “바벨론이여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계14:8)라고 울부짖게 될 날이 오고 있다.
바벨론은 그리스도 없는 세상이다.
그처럼 위대하고 놀랍던 바벨론, 모든 왕들과 임금이 왕래하던 그 바벨론 사람들은 바벨론이 얼마나 위대한가라고 자랑한 그것이 그리스도 없는 세상이다.
요한계시록 20:12-13은 책이 펼쳐지고 그 앞에 각 사람이 서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
-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다 세상에 속하여 태어났다.
세상에서 구별되지 않는 한 그 운명을 함께 당할 것이다.
- 하나님은 의로우시며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시다.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죄를 미워하심을 말한다.
하나님은 죄와 타협할 수 없다.
빛과 어두움, 선과 악이 서로 타협할 수 없다.
하나님의 진노는 모든 불의에 대하여 나타난다(롬1:8).
우리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순결과 절대 의와 절대 거룩을 생각할 수 없다.
오늘날 미국이나 유럽은 나라 전체가 기독교 분위기입니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취임사를할 때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손을 얹고 하나님 앞에서 선서를 합니다. 또 목사님의 축복 기도를 받습니다. 아무도 그것을 반대하지 못합니다. 만일 한국에서 대통령이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하고 목사님이 축복 기도를 하면 다른 종교 단체에서 무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세계에 복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미국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는 재채기만 해도 옆에 있던 사람이 "God bless you(하나
님께서 당신을 축복하시기를)!"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Thank you."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스운 일은 이민 온 사람들은 옆 사람이 재채기를 해도 "God bless you!"라는 말을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데, 미국 사람들은 옆 사람이 그 말을 했지만 자신이 재채기한다고 못 들은 줄 알고 "Thank you."라고 하는 것입니다.
조금만 놀라운 일을 만나도 "Oh God!"일이 잘 안 풀려도, 기가 막힌 일을 당해도 "Oh my God!"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돈에도, 큰돈이든 작은 돈이든, 일 센트짜리 동전에까지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IN GOD WE TRUST).'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처럼 미국은 나라의 분위기가 교회의 분위기와 같습니다. 그러면 미국 사람들은 다 예수님을 믿습니까? 아닙니다.
미국 사람이라고 다 주일에 교회에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에서도 주일에 바다로 가는 사람은 바다로 가고, 골프하러 가는 사람은 골프하러 가고, 교회에 오는 사람만 교회에 오는 것입니다.
미국에 십자가가 영광스럽게 나타나지만, 모두가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성령과 말씀을 통해 순종 [행하는자]하는자만이 천국에 갈수 있다.
죄를 그저 행동의 차원에서만 생각하지 말라.
죄는 태도의 문제이다.
죄를 죄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다.
죄를 심판하셔야 한다.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다.
구약에서 죄에 관한 희생제사에서 보게 되며, 애굽에서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죽음이 지나쳤으며 그들의 죄는 심판받지 않았다.
세례 요한은 “보라 ---저 하나님의 어린양,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외쳤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의 육체 속에 죄를 정하시고 십자가에 세우셨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사야 53장을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셨다”(고후5:21).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내어 주셨다”(롬8:32). 그는 친히 아들을 때렸다.
하나님은 우리가 징벌을 당하지 않고
지옥에 가지 않고
지옥에서 비참과 불행 속에서 영원히 보내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그 일을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가 받으실 제물을 공급하셨다.
저와 여러분의 죄를 취하여 그 자신의 아들의 머리위에 두시고 그 아들을 치셨다. 심판으로 끝내 죽이셨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우리는 하나님께 화해하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이 마귀와 그의 군대로부터 우리를 건져내고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긴다.
십자가는 어떻게 이 일을 하는가?
복음은 단순하다. 복음은 문제의 뿌리로 원천으로 들어간다.
첫 번째 우리에게 우리 자신을 보여준다.
- 다소 사람 바울은 자신이야말로 완전한 사람이요,
절대적으로 도덕적이고 종교적이고 바라새인 중에 가장 잘 배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자랑한 사람이다.
바울은 자기가 이스라엘 사람이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베냐민 지파에 속한 사람이요, 팔일 만에 할례 받았다는 사실을 자랑하곤 했다.
또한 율법의 지식에 능한 사람이요,
지극히 종교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자랑했다.
그는 언제나 강하고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모든 것은 끝장이 난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바울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는 이유는
구원이 바로 그 십자가로 말미암기 때문임을 알았다.
우리를 구원한 것은 십자가 위에서의 주님의 죽으심이다.
그는 그리스도를 만나 한번 보았는데도 그는 먼지 가운데 주저앉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하여 자기가 그처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율법에 비추는 빛을 통해서 자기는 그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즉시 깨닫게 된 것이다.
자기가 완전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이렇게 부르짖고 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그리스도의 피는 해석과 선언, 선포에서 머물지 않고 초청과 호소이다.
우리에게 들으라고 요구한다.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사45:22)
- 바울도 그는 전에 자신을 위해서 살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렇지 않다. 그는 값으로 산 것이 되었다.
바울은 감격을 말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버리신 예수 위해 산 것이라”(갈2:20)
둘째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속에 들어오고 우리는 거듭나서 새 본성을 받고 새 사람들이 되었다. [말씀과 성령 ]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고
그리스도의 임재가 우리를 돕기 위해 항상 우리 앞에 가까이 있다.
레오나드 우드 경이 프랑스 왕의 초청을 받고 왕궁에 갔습니다. 우드 경은 프랑스 왕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신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드 경을 본 프랑스 왕이 의외라는 듯이 말했습니다.
"오! 우드 경이 오셨구먼. 나는 경은 안 오는 줄 알았는데 오셨구먼."
"폐하, 저를 초청하지 않으셨습니까?"
"초청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어서 못 오시는 줄 알았지."
"폐하, 폐하의 초청에는 응답이 필요 없습니다. 무조건 오는 것이, 순종하는 것이 제 도리인줄 압니다."유명한 말입니다.
왕께서 오라고 하시는데 어찌 거절하겠습니까? 왕께서 오라고 하시면 오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왕이십니다.하나님은 왕이십니다.
성령은 왕 되신 주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우리가 살아갈 때 예수님을 바로 믿고 교회 생활을 잘 하도록만 가르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범사를 카운셀러로서 도와주십니다.
그러니 성령의 감동에 순종만 하면 실패할수가 없습니다. 교회 생활도, 직장 생활도, 학교 생활도, 어디에 가서도 실패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1:16)
그 능력은 십자가에서 발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