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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전 영 택
“꼬꼬오 ㅡ”
둥그스름한 달이 동리 뒷동산 중허리에 고요히 떠 있고, 해는 아직 뜨지 아니하였는데, 수탉이 제가 먼저 깨어 일어났다는 듯이 주둥이를 힘껏 벌리고 큰 소리를 친다.
“꼬댁 꼬댁 ㅡ 꼬댁 꼬댁 ㅡ”
금방 알을 낳고 둥지에서 내려오는 암탉이 화답을 하는 듯이 야단이다.
“꼬댁 꼬댁 꼬댁.”
“내가 금방 알을 낳았다누.”
하는 듯이 암탉이 또 큰소리를 친다.
“꼬댁 꼬댁.”
얼룩 수탉이 얼른 따라와서 알을 제가 낳기나 한 듯이 또 한 번 소리친다.
몸뚱이가 뚱뚱하고 곱실곱실한 머리카락이 늘어진 것을 거두어 올릴 새도 없이 컴컴한 부엌에서 골몰하게 보리방아를 찧던 마누라는 어느새 손과 이마에 진겨를 묻힌 채로 앞서서 거추장스럽다는 듯이 강아지를 걷어차면서 달려와서 닭의 둥지를 들여다보고 입이 잔뜩 벌어진다.
“아이구, 알이 크기도 하다. 내 딸 기특하지.”
뚱뚱 마누라는 암탉을 어루만질 듯이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알을 집어가지고 삐걱 소리를 요란스럽게 내면서 광문을 열고, 맨 뒤 모퉁이에 있는 동이에 소중한 듯이 집어넣는다. 알 항아리를 한번 들여다보고, 그 옆의 다른 항아리에서 보리 한 줌을 집어가지고 나와서 광문 앞에 쭈르르 뿌려준다. 암탉 수탉은 맛있는 듯이 서로 돌아가면서 쪼아 먹는다.
뚱뚱 마누라는 다시 가서 방아를 찧으려고 하다가, 강아지가 절구 술에 묻은 겨를 핥고 있는 것을 보고,
“아이구 속상해라. 저리 가!”
하면서 옆에 있던 모지랑비¹를 거꾸˙로 쥐코 때려 쫓고 다시 절구질을 시작한다.
“칫 처, 칫 처.”
방아를 찧으면서 마누라는 광의 항아리에 있는 알을 생각한다.
‘이제 몇 알만 더 낳으면 네 꾸러미가 될까? 남의! 닭은 며칠 만에 한 알씩 낳는다는데, 우리 닭은 매일 꼭꼭 낳는걸. 이제 네 알만 더 낳으면 네 꾸리미거든. 이번 장에 갖다 팔면 얼마 받을까? 팔아가지고 암탉을 또 한 마리 살걸. 있던 놈하고 모두 열 마리가 매일 알을 낳으면 잠깐 열 꾸러미는 될 거라. 그놈을 팔아 보태서는 이번에는 돼지를 사지. 아니 그럴 것 없이 좀더 보태서 암송아지를 사자. 그러면 송아지가 잠깐 자라서 또 새끼를 낳을 테지. 송아지, 큰 소 모두 한 열 마리가 되면 굉장하다. 그때에 소를 더러 팔아서 논도 사고 큰 집도 사고, 큰아이 장가도 보내고…….’
뚱뚱 마누라는 방아도 잘 찧지 못하고 보리를 절구에서 덜었다, 도로 쏟아 넣었다 하고 있다. 이때에 마침 장도 볼 겸 읍에까지 다녀오려고, 소를 먼저 먹여놓으려고 일찍 일어나 나온 주인은 외양간에 가서 암소를 슬슬 한번 쓸어주고 끌고 나오다가, 싱글싱글 웃고 있는 마누라를 보고,
“무얼 그렇게 혼자서 좋아 그러고 있소?”
“글쎄, 우리 암탉이 날마다 알을 낳는 게 하도 신통해서 그러지요. 잠깐 서너 꾸러미 되겠거든. 팔아다가 암탉 몇 마리 더 사 옵세다, 우리.”
사나이는 마누라의 속셈을 벌써 다 알았다. 돈을 모아보려고 어린 아들을 달걀 한 알 마음 놓고 못 먹이는 것이 불쌍하기도 밉기도 해서 비웃는 듯이 웃으면서,
“여보, 너머 그러지 말고 더러 어린애두 삶아 멕이기두 하구, 당신두 좀 먹 구 그리시우.”
해보았다.
“무어요? 당신의 상에두 새우짓 찌개 하나 못 해놓는 걸 우리가 먹어요? 모아서 이제 사 오는 암탉은 내 몫으로 할걸요.”
마누라는 깜짝 놀라서 이렇게 말한다.
“참, 내일이 당신 생일이지. 깜빡 잊어버릴 뻔했군. 장에 갔다가 고기나 한 근 사와야겠군.”
자기 말은 들은 체도 아니 하고, 새삼스러운 이 말에 고마운 줄도 모르고 마누라는 더욱 놀라는 듯이,
“아이구, 당신 정신 나갔구려! 생일이 다 무어구, 고기가 다 무슨 고기요. 이담에, 이담에…….”
‘이’ 자를 썩 길게 끌어서, 오래오래 있다가 돈 많이 벌어놓은 다음에나 고기를 사다 먹자는 말이었다.
그날 저녁에 베를 짜고 있던 마누라는, 남편이 뻘건 쇠고기를 사들고 오는 것을 보고 베틀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야단을 하였다.
“용덕이 아버지 미쳤소? 누가 고기 사 오랍디까. 우리 약속한 지 벌써 삼 년도 못 되어서 그게 무어요? 날더러 밤낮 주책없다구 그러더니, 자기가 먼저…….”
사나이가 들었던 고기를 부엌 솔나뭇단 위에 홱 내던지고, 독에서 물을 떠서 세수를 하면서, 그리고 마당을 쓸면서 지난 삼 년 동안의 일을 생각하였다.
*
강원도 춘천군 오여울이란 두메에 와서 농사를 지으면서, 벌써 삼 년째나 사는 홍이라는 이 젊은이는 나이도 서른이 훨씬 넘고, 말이 없고 게다가 태도가 진중해서 뉘게나 점잖다는 말을 듣고 대접을 받기 때문에, 어디 가나 젊은 축에는 들지 못하지만―본시 어디서 온 사람인지 무얼 하던 사람인지 동네 사람들도 자세히는 모른다. 일본 공부도 다닌 일이 있고, 교사 노릇도 하고, 어떤 군청에도 잠깐 다닌 일이 있다는 말을 들은 사람이 있고, 그리고 동네 사람들의 대서는 맡아두고 해주고 하기 때문에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나 ‘홍주사’ 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홍주사는 춘천 촌으로 오면서 몇 가지 결심한 것이 있다. 다시는 촌을 떠나지 않을 것이 그 첫째요, 소를 잘 기르고 소와 같이 부지런히 농사를 할 것이라는 것이 둘째요, 셋째는 무엇이나 제가 지어서 먹고 사 먹지 않기로. 마누라도 이것을 찬동해서 꼭 베를 짜서 입고 일체 옷감을 사지 않고, 고기나 반찬도 사다 먹지 않기로 약속하였다. 그때에 두 돌 지난 아들 용덕이가 열 살 되기까지는 이 약속을 지키기로 작정하였다.
춘천서 어떤 가까운 친구가 왔을 때에 처음으로 한 놈을 잡아먹은 일이 있고는 실상 달걀 한 알 못 먹고, 그 흔한 고무신 한 켤레 사다 신지 못하였다. 자기는 헌 구두를 출입할 때에만 신고, 두 사람이 다 밤낮 삼으로 손수 삼은 미투리²를 신었다. 마누라는 닭을 치는 것이 가장 큰 재미지마는 홍주사의 유일한 낙은 소를 먹이는 것이었다.
한국 사람은 소를 사랑하고 집마다 소를 먹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러고는 벌을 몇 통 쳤다. 꿀을 받아서 어린 것을 먹이고 동네 사람더러도 치라고 권한다.
*
“아버지, 아버지, 얼른 좀 나와보세요.”
전달리 일찍 일어난 용덕이는 무슨 큰일이나 난 듯이 안방 문을 열고, 여태 밖에 있다가 들어가서 잠깐 잠이 든 아버지를 들여다보면서 소리소리 지른다.
어느새 용덕이는 열 살이 넘었고, 홍주사네 살림도 꽤 늘어서 논도 새로 풀어서 몇 마지기 만들었고, 집도 사랑채를 지었고, 소도 두어 마리 되고 돼지는 남 준 것까지 열 마리가 넘는다. 이날 아침에는 새벽 일찍 일어나서 소 외양간을 깨끗이 치워주고 여물을 정성껏 끓여 먹였다. 새끼 뱄던 암소가 여물을 먹고 나더니 금방 새끼를 낳아놓았다. 홍주사는 너무 기뻐서 손수 송아지를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어미 소 등에 부대 자루를 뜯어서 덮어주었다. 초가을이라 새벽녘에는 꽤 쌀쌀하기 때문에 마치 산모인 듯이 생각하고 간수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는 약간 감기 기운이 있기 때문에 으스스해서 들어가 누웠던 참이다.
“아버지, 아버지, 소가 애기를 낳았어요. 그런데 금방 걸어 다녀요! 좀 나가 보세요!”
“보았어, 보았어!”
홍주사는 용덕이를 보고 끄덕끄덕하기만 하다가 이렇게 말하고, 종내 끌려 나와서 어미 소가 쭈그리고 있는 새끼를 쩔쩔 핥아주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가,
“아무리 짐승이라도 금방 나온 새끼가 크기도 하지!”
안에서 아침밥을 짓다가 나오는 마누라를 보고 홍주사는 이렇게 말한다.
“정말 이렇게 큰 송아지는 처음 보았어요. 수컷이지요. 여보 용덕이 아버지, 이 송아지는 용덕이 소라 하고, 이담에 암컷 낳거든 내 몫으로 주어요, 응. 이 송아지는 용덕아 네 송아지다.”
“이담에 암컷 날지 어떻게 알어! 용덕이 송아지 삼으면 제가 길러야지! 제가 먹일까 벌써……”
어린 아들 용덕이가 크고 그 송아지도 커서 먹이기도 하고 타고도 다닐 일을 생각하매 자기도 참말로 기쁘지 아니한 바가 아니려니와, 어린애같이 너무 좋아서 정신없이 지껄이는 마누라를 보고 웃으면서, 홍주사는 잊어버렸던 대문 돌쩌귀를 빼어놓고 용덕이를 한번 돌아보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마누라는 송아지를 보면서 무슨 궁리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럴 것 없이 내 몫으로 암소를 또 한 마리 사다가 두 놈이 새끼를 낳고, 그 새끼가 커서 또 새끼를 낳으면…….’
마침 이때에 ‘삐걱’ 하는 대문 소리에 마누라는 깜짝 놀라서, 재미있는 꿈을 깨친 듯 시무룩해서 가만가만 들어오는 앞집 장손이 어머니를 바라본다.
“용덕이네 소 새끼 낳았구만요. 아이구 크기도 해라, 새끼가……”
“이 송아지는 우리 용덕이 송아지라우.”
송아지만 바라보던 마누라는 옆에 있는 용덕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자랑삼아 이렇게 말했다. 바가지를 뒤로 감추고 어물어물 하던 장손이 어머니는 겨우 주인마누라 귀에다 입을 대고 보리쌀 두 되만 꾸어달라고 청한다.
“장손이 어머니, 오늘은 없는데요. 우리두 공출³인지 다 하고 마침 또 꾸어가고 보리 갈 때까지 양식이 모자랄 것 같은데요.”
마누라는 고개를 짤래짤래 흔들면서 단번에 거절을 한다. 너무 무안스럽고 딱해서 얼른 돌아서 달아나듯이 나가는 장손이 어머니의 뒷모양을, 방금 안방에서 나오던 주인 홍주사는 물끄러미 바라보고, 두 눈에 눈물이 글썽 글썽하였다.
갚는다고 하기는 했어도, 다 찢어져서 옆구리 살이 드러나는 저고리, 푸대 치마 밑에 빼빼 마른 종아리며 발목, 그보다도 집에서 배고파 울다가 잤을 어린것들의 모양, 그보다도 그것을 차마 볼 수 없어 애태우는 어미의 쓰라린 마음을 생각하여, 홍주사는 한없이 불쌍한 충동을 받은 것이다.
홍주사는 마누라를 부르고 장손이 어머니를 불렀으나, 마누라도 대답이 없이 어디로 없어지고 나간 손은 더구나 소식이 없다. 홍주사는 싸리비로 마당을 쓸다가 뒤꼍으로 돌아가서 마누라를 보고, 동네 사람에게 너무 박절하게 한다는 말을 하고 얼른 쌀을 좀 갖다 주기를 권하였다.
“그 여편네를 그렇게 생각하거든 당신이 좀 갖다 주구려. 무엇이 애가 타서 쌀바가지를 들고 댕기란 말이야. 글쎄 사람이 염체가 있지. 한번 꾸어가면 꾸어간 건 가져오구 또 꾸어달래는 거지…… 우리더러 그냥 양식을 대란 말이야. 저희 줄 게 있으면 우리 동생네 주지…… 가난은 나라도 못 당한다구, 난 몰라요, 몰라.”
본디 좀 나온 입이 완연히 더 나온 마누라는 우물에 나가는지 밖으로 나가버리고, 홍주사는 입맛만 다시고 마당을 마저 쓸어치우고 외양간에 가서 새끼 낳은 암소를 한번 쓸어치우고 소제를 하면서,
‘가난! 가난!’
가난의 설움을 생각하고, 가난한 동네 사람들의 정형을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동네에서 ‘가난’을 내쫓아버릴까 하는 궁리를 가끔 하는 것이었다. 마누라도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건만, 셈이 좀 피니까 인심이 사나워진다고 생각하였다.
그날 저녁이다. 유월달 꽤 뜨겁던 해가 넘어간 황혼이었다. 홍주사는 동네 앞 개울에서 소를 먹이다가, 언덕에서 풀을 깎고 있는 장손이를 만났다. 아침 일이 생각이 나서 홍주사는 매우 미안스러워서, 저쪽에서 무안스러운 듯이 돌아서려는 것을 일부러 쫓아가서 이야기를 붙였다.
“이따 오게. 내 마누라 몰래 좀 줄 테니 자루를 가지고 오게.”
“아직 보리 빌 땐 안 되구, 팔십 노인 할머닉하구 어린애덜하구 며칠을 굶다가, 참다못해 그만두시라니까 어머니가 종내 가셨던 모양이군요. 보리 좀 잘라다가 아침밥 해 먹었에요.”
“……”
홍주사는 고개만 끄덕인다.
“그런데 주사님께 말씀드리긴 어려워두, 그저 저희 몇 식구 먹여 살리시는 줄 아시구, 송아지나 한 마리 사주세요. 송아지를 사주시면 부지런히 농사지어서 댁에 쌀 꾸러 댕기지 않구 살겠어요.”
장손이는 새끼 딸린 홍주사네 소를 한번 쳐다보면서 꼴 베던 낫을 놓고 두 손을 모아 읍하고 엎드려 절이라도 할 듯이 이렇게 공손히 말한다. 장손이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와 외할머니를 모시고 어린 동생을 데리고, 부대 농사를 지어가면서 홍주사네 밭도 좀 부치고 간신히 살아갔다. 나이 스물다섯이 넘도록 총각으로 있다가 작년 가을에야, 사람이 무던하다고 누가 딸을 주어서 장가를 갔다.
홍주사는 고개만 끄덕끄덕하고 그러라든지 안 된다든지 말이 없다. 홍주사도 장손이한테는 사람 진실하고 술 담배 모르고 부지런하다고 퍽 호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장가갈 때에도 쌀말도 사주고, 속으로 ‘저렇게 착한 사람이 늘 저렇게 고생을 하고 있어서 안되었다’ 하고 은근히 동정을 하고 있던 차였다. 그리고 그중에도 소를 먹이겠다는 것은 꼭 마음에 들었다.
홍주사는 강원도 오기 전에 인천으로 서울로 돌아다니면서 고생하던 생각, 한동안 안변 시골서 농사짓느라고 고생을 하던 생각을 하고 더욱 장손이에게 동정이 갔다. 사람이 어쩔 수 없이 곤경에 빠졌을 때는 누가 조금만 거들어주면 거기서 솟아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은 남에게 늘리고 속고 빼앗기기는 할지언정 도움을 받을 길은 없다. 우리는 서로 붙들어주면서 살아야 하겠다ㅡ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홍은 장손이 일이 남의 일 같지가 아니하였다. 실상 홍 자신이 강원도 와서 자리를 잡고 살게 된 것이 춘천 읍에 았는 어떤 친구의 도움과 주선의 덕이 컸던 것이다. 사실은 홍은 형들도 있고 유여한 삼촌도 있었으나, 남을 의뢰할 생각을 아니하고 제 힘으로 살아보려고 다니다가 월급쟁이 노릇을 해서는 밤낮 그 턱으로 거지 노릇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다시 시골로 온 것이다. 와서 곧 닭치기와 벌치기를 부업으로 하면서 농사를 하였다. 물론 홍이 시골 온 것은 세월이 점점 험해지고 급해지면 제정신 가지고는 살 수 없으리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농사꾼이 된 데 더 큰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고생해서 한 푼 두 푼 모아가지고 앞으로 아이들이나 남에게 구차한 소리 안 하고 살아가도록 해봅세다.”
이렇게 아내하고 약속하고 땅마지기나 사가지고 시골로 온 뒤로, 다행히 아내가 튼튼해서 병 없이 일을 잘 해주어서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그럭저럭 살게 된 것이다.
“글쎄, 어디 보세. 그래서 자네가 걱정 없이 살아간다면 이웃사촌이라구 낸들 안 좋겠나!”
이렇게 막연한 대답을 하고 ‘홍주사’ 라는 창수는 집으로 돌아와서 그날 저녁에 곰곰 생각하였다.
‘이 동네는 장손이 같은 사람이 하나만이 아닌데, 그 사람들이 다 소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면·…….’
이런 생각을 하고 여러 가지로 궁리를 하다가 우선 장손이 한 사람으로 시험을 해보기로 하였다.
“이제는 나도 불가불 이 동네를 떠나야 할까 보다.”
홍주사는 남산을 바라보고 그 옆으로 넘어가는 신작로 길 고개를 바라보고, 지난날 새벽에 아내가 뿌리치고 넘어가던 길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홍주사는 그 뒤에 장손이하고 어렴픗이나마 약속한 약속을 지켜서, 자기가 친히 송아지를 사다가 주었던 것이 집안 싸움의 시작이 되었다. 홍주사는 아무 말도 아니하고 사다가 주는 것을 장손이가 굳이 송아지에 대한 조건을 물어보는 말이 귀찮다는 듯이,
“여러 말 할 것 있나. 그냥 그저 사준다고 했으니 사주는 것이니 부지런히 농사해서 잘 살게 그려. 정 못 알아듣겠거든 나를 형이나 아비로 알아주게나.”
이런 말을 해두었다. 그런 것을 장손이 어머니는 너무 고마워서 일부러 치하하러 와서 용덕 어머니더러 그런 말까지 죄다 하였다. 이번에는 자기 몫으로 소를 사겠다는 셈을 치고 있던 마누라는, 자기하고는 한마디 의논도 없이 장손네를 사주었다는 것이 노엽고 분하다고, 밤새도록 자지 않고 못 견디게 비위를 거슬리기 때문에, 홍주사는 홧김에 옆에 있던 질화로를 내던지는 바람에, 마누라는 이마를 다치고 얼굴을 데고 하여서 며칠을 먹지도 않고 누워 있었다.
그런 뒤에 홍주사는 빌듯 달래듯 하면서 자기 속뜻을 알아듣도록 이야기해주었건만 마누라는 종내 알아듣지 못하였다.
“이 재물이 당신 혼자 모은 겐 줄 아시오. 내가 먹고 싶은 것 먹지 못하고, 입고 싶은 것 입지 못하고, 밤잠도 못 자고 해서 모은 것이지……”
이런 말을 늘어놓으면서 마누라는 소리쳐 울었다. 이런 것이 첫번 싸움이요, 그다음에는 용덕이가 몹시 체해서 앓는 것을 보고 음식을 주의하지 못하고 함부로 먹여서 앓는다고 무식하다고 말한 것이 나무랍다고 마누라는 또 울고 야단을 하였다.
이번에는 홍주사는 가만 내버려두었건마는, 마누라는 혼자서 추석도 안 지내고 친정으로 간다고 달아나듯 가버린 것이다.
앓는 어린것을 데리고 추석을 혼자서 지낸 홍주사는 매우 쓸쓸 하였다. 이리하여 마누라는 그 뒤에 오기는 왔지마는 집에 있는 때보다 나갈 때가 많았다. 마누라가 없는 때는 앞집 장손네가 와서 식사를 해주고 한집처럼 지냈다.
*
그 뒤 다시 오 년이 지났다―. 지나간 오 년은 우리 전 민족과 같이 창수도 상당히 괴롭게 지냈다. 용덕이는 불행히 늑막염으로 오래 누웠다가 죽고, 아내도 그 뒤로부터는 몸이 약해져서 앓기만 하고 누워 있는 시간이 많고 늘 신경질만 부리고, 그리고 자기는 번번이 보국대로 끌려 나가고, 양식은 공출로 빼앗기고 나니, 잘 먹지 못하고 일만 하는 동안에 몸이 퍽 쇠약해졌다. 그러나 홍주사는 여전히 농사를 짓고 멀치기와 소 먹이기를 힘썼다. 그동안에 소를 하나씩 하나씩 사주억서 동네 사람 중에 소를 안 먹이는 집은 하나도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십 년 동안에 이 오여울 동네는 전에 비해서 훨씬 살림이 윤택해졌다.
“우리네가 이만큼 살게 된 것은 홍주사님네 덕이야. 그래도 홍주사네는 집안이 말이 아니야.”
동네 사람은 고맙고도 미안스러운 듯이 이렇게 말한다.
*
기막히고 억울한 일정시대, 지긋지긋한 전쟁도 끝나고 해방의 기쁨이 삼천리 전역에 넘치게 되었다. 팔월 십오 일이 지나서 몇 날 뒤에 그 소식을 들은 창수는 동네 사람들을 지도하여 자치로 질서를 유지해가고, 모든 일을 정부가 생겨서 지휘하는 대로 하기로 하고, 그동안 경솔히 하는 일이 없이 자중해서 지내자고 동네 사람들의 다짐을 받았다.
창수 자신도 춘천 읍에 한번 잠깐 다녀온 후로 여전히 가을 준비와 소 먹이기, 벌치기에 바빴다. 겨울도 그럭저럭 지나고 새해가 오고 봄이 되었다. 창수는 다시 농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당신 친구들은 모두 춘천오로, 서울로들 가서 한자리씩 하고 출세를 하는데, 이 좋은 세월에 우리는 그냥 촌에 묻혀서 일만 하고 있잔 말이오.”
홍주사네 동네는 공교히 바로 삼팔선 이남에 들었으나, 자기는 아직 세상에 가서 덤벼들 마음이 없어서 본래 결심한 대로 그대로 농촌을 지키기로 하였던 터이라,
“농사하는 사람이 있어야지, 농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백성들이 먹고 살아간단 말이오. 우리는 그냥 이 동네서 살아봅세다.”
하고 아내를 달랬다.
“나는 암만해도 여기서는 못살겠어요. 이제는 힘이 없어서 일도 못하겠구, 하기도 싫고, 사람이 웬만큼 고생을 하다가도 좀 편안히 살자구 그러는 것이지, 누가 밤낮 이 꼴을 하구 산단 말이오. 이제는 우리두 대처에 가서 먹고 싶은 것도 먹고, 구경도 하구 산 드키 살아봅세다그려.”
마누라는 여전히 불평이 대단하고 도회지에 나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한 모양이다. 그동안 고생하고 일한 것은 촌에서라도 언제든지 돈을 모아가지고 호화롭게 잘살자는 뜻이었다.
“글쎄, 당신의 말도 그럴듯하지마는 이제 갑자기 대처로 가면 무슨 별수가 있소? 어디 가면 이만한 데가 있겠소?”
홍주사는 그대로 이 촌을 떠나지 말기를 고집하였다.
“그럼 당신이나 여기서 살구려. 나는 싫소. 내 소 팔아가지고 춘천으로 가든지 서울로 가든지 갈 터이야요.”
“소를 팔아? 소를 팔아가지고 무얼 한단 말이오?”
“장사하지. 아랫동네 구장네도 이북으로 다니면서 돈 많이 벌었는데…….”
“당신이 꽤 장사를 할 것 같소? 그리구 소두 우리 식구가 아니오? 제 식구를 팔아서 무슨 이를 보겠다고 팔아 없이한단 말이오. 인제 아주 살림 끝장내려우?”
“글쎄 내 소를 내 맘대로 한다는데 걱정이 웬 걱정이오? 제 걸 가지고 제 맘대로 못 한단 말이오. 두어야 잃어버리기나 할랴구. 장손네 소 잃었으니 이번엔 우리 소 잡아갈 차례로구만. 바로 몇 날 전에 장손네 소를 잃어버렸는데…….”
아직도 장손이 소 사준 것을 빈정대는 말이다.
“자, 아무리 당신의 소라구 해두 여태껏 공손히 아무 말도 없이 주인을 위해서 일을 해준 소를 인정간에 어떻게 어따가 팔아먹는단 말이오. 이 동네 사람은 살 사람이 없을 테니 장에 갖다 팔면 잡아먹는 거 아니구 뭐요.”
“원! 소에게 무슨 인정이야. 그까짓 짐승에게!”
“그까짓 소! 그 소가 좀 귀하오. 사람이 소만 못하다오. 사람은 저 할 일은 안 하구 불평만 하지마는, 소는 아무 소리 없이 수걱수걱 일만 하는 걸 좀 보아요. 당신은 이 근래는 밤낮 웬 불평만 그렇게 많소?”
“몰라요, 몰라요. 나는 여기서 살기 싫어!”
마누라는 나중에는 울기를 시작한다. 창수도 가만히 생각하니까 자기가 너무 무리한 것 같고 마누라가 불쌍한 생각이 불현 듯 일어나서,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눈물이 나는 것을 참느라고 아무 대꾸를 아니 하고 돌아누워버렸다.
*
창수는 변변히 깊은 잠을 못 들고 일찍 일어나서 대문 밖으로 나갔다. 마침 장손이가 헐떡거리고 올라오고 있다.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뵐 낯이 없습니다……”
장손이는 두 눈에서 눈물이 글썽글썽해서 그다음 말을 못 한다.
“인제야 알았어요. 재 건너 이북 동네 놈들이 우리 소를 잡아먹었대요. 이쪽에서 간 것을 잡아먹었다니 우리 소밖에 더 있어요. 그놈들을 어떻게 하면 좋아요?”
창수도 눈시울이 벌게지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하늘만 바라보고 서 있다.
“소경 제 닭 잡아먹기로 제 동포의 것을 잡아먹고 마음이 편할까?”
창수는 이렇게 중얼거리고 그날 하루를 매우 괴롭게 지냈다. 혼자서 뒷산에 올라가서 오여울 동네를 내려다보고, 재 건너 소위 이북 땅을 바라보고, 하루 종일 먹지도 않고 울고 있다가 밤에 별이 총총해서야 내려왔다. 내려와 본즉 집안은 안팎에 도망한 집처럼 늘어놓고 마누라는 말도 없이 자기 치마를 짓고 있다. 창수는 사랑 문턱에 잠시 앉았다가 도로 산으로 올라갔다. 마누라 생각, 지나간 십 년 동안의 일, 동네 일, 나랏일을 생각하면서, 조용한 모퉁이 바위 위에 걸터앉아서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이남이고 이북이고 분간할 수 없이 안개 속에 잠긴 동네들을 바라보고 있다. 생각을 해서 앞길을 정하려고 해보았으나 눈물만 나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 이때에 밑에서 수선수선하는 소리에 따라서 동네 젊은이들이 올라온다. 웬 서투른 황소 한 마리를 끌고 소나무 새로 올라온다. 그 가운데, 장손이도 섞여 있다. 마침 이북에서 넘어온 소를 잡아먹겠다고 끌고 온 것이었다.
“저희도 우리 소를 잡아먹었는데요.”
장손이가 씨근거리면서 말한다. 젊은이들은 모두 흥분해서 기어 잡아먹는다고 야단이다.
“안 됩니다, 안 됩니다. 동포끼리 그래선 안 됩니다. 돌려보내시오. 정 소를 잡아먹고 싶거든 우리 소를 잡아먹어.”
이 말 한마디를 남기고 창수는 달음질도 바삐 동네로 내려갔다. 자기네 소를 끌어다 주려고 대문을 열고 들어가 외양간을 본즉 외양간이 텡텡 비었다. 밖에도 집 근방 아무 데도 소는 없다. 방에 들어가본즉 서투른 글씨로 이런 말이 씌어 있는 종잇조각이 방바닥에 구르고 있다.
‘나는 내 소를 가지고 갑니다. 다시는 기다리지 마시오.’
창수는 얼빠진 사람 모양으로 멍하니 방 한가운데 서 있다가 궤짝에서 돈을 꺼내서 소 한 마리 값만큼 장손에게 갖다 주고, 자기도 얼마 가지고는 장손이 어머니보고 몇 마디 이야기를 하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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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오여울 동네에서 아무도 홍창수를 본 사람이 없다.
-끝-
2016년 6월 14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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