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2월이다. 눈 깜짝 새에 지나가 버린 가을이 아쉽기만 하다. 곧 새해가 가슴 벅차게 열릴 것이다. 시간은 이렇듯 빠르게 가버린다. 겨울이 길다고 하지만 시간은 어쩔 수 없이 흘러간다. 어쨌거나 겨울의 서천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 서해안고속도로를 탄다.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마량포(馬梁浦). 마을 어귀 언덕에 오르자 차가운 갯바람이 훅 달려든다. 눈앞에 펼쳐진 초승달 모양의 해안 풍경이 참으로 아름답다. 마량포는 여행자들에게 별난 갯마을로 통한다. 서해안인 데도 석양은 물론 바다에서 떠오르는 아침해를 맞을 수 있으니, 별난 마을로 통하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마량포에서 일출을 볼 수 있는 건 독특한 지형 구조 때문이다. 양쪽에 바다를 품고 있어 같은 자리에서 등만 돌리면(350도 각도)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비인만을 감싸고 길게 돌아간 해변은 동쪽으로 장구만을 두고 금강하구로 이어진다. 해는 비인만의 띄섬과 장구만의 개야도 사이에서 떠오른다. 비인만은 군산 앞바다 인 장항에서부터 보령땅 대천해수욕장으로 올라가는 길 중간쯤에 활처럼 굽어 돌아나간 땅을 말한다. 해가 뜨는 곳은 겨울과 여름이 다르다. 11월 22일부터 다음해 1월 20일경까지는 동남 방향에서 뜨지만 하지가 가까워올수록 다시 정동 쪽 방향인 산 위에서 떠오른다. 마량포구 끝머리에 걸쳐 있는 비인방파제는 갯바위 낚시 포인트로 딱 좋다. 우럭, 숭어, 도미, 백조기, 망둥어 등 팔뚝만한 고기들이 심심찮게 걸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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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량항의 겨울. 한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 마량포구에서 언덕을 넘으면 해안길이 쭉 이어진다. 바다 생물들의 귀한 표본이 많이 전시된 서천해양박물관에 잠시 들른다. 마량포구에서 5분 거리. 사람을 한 입에 삼킬 듯한 거대한 식인상어, 사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복해마, 방사선을 방출해 다른 물고기의 병을 고쳐주는 개복치…. 멸종 위기에 처한 희귀한 어패류 표본들과 철갑상어, 바다뱀 같은 살아 있는 물고기도 만날 수 있다. 박물관 2층에 전망대가 마련돼 있어 서해 바다와 주변 경관을 두루 조망할 수 있다. 관람시간: 연중무휴(09:00-17:00), 문의:(041)952-0020.
해양박물관에서 3분 거리에는 수령 500여 년을 자랑하는 동백나무 숲(천연기념물 제169호)이 있다. 숲 언덕에는 동백정이란 정자가 있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서해 바다와 낙조는 탄성이 절로 나올 만큼 환상적이다. 바로 옆에 거대한 화력발전소가 들어서 풍경의 반은 잠식해 버렸지만 사철 풍기는 매력 때문인지 외지인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동백정 옆에는 수 백 그루의 우람한 해송이 바닷바람을 받으며 늘어서 있고, 한쪽에는 당집이 하나 있는데 여기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먼 옛날, 어부인 남편과 자식을 한꺼번에 잃고 실의에 빠져 있던 할머니가 꿈을 꾸었는데 백발노인이 나타나 백사장에 널빤지가 밀려오면 그것으로 신당(神堂)을 만들고 제사를 지내라고 했다. 꿈이 하도 이상해 백사장에 가보니 과연 큰 널빤지가 밀려와 있어 뚜껑을 열어보니 동백씨 한 되가 들어 있었다. 할머니는 신당을 짓고 그 둘레에다 동백씨를 뿌렸는데 지금의 동백숲은 그 때 뿌린 동백씨가 자란 것이란다. 동백정 밑 절벽으로는 기암 괴석이 웅장하게 펼쳐져 있다. 파도를 맞는 바위 언저리에 듬성듬성 앉아 있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낚시꾼이다. 뾰족 바위에 걸터앉아 입질을 기다리는 그네들이 왠지 위태위태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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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량항 언덕에서 본 해돋이. | 동백정을 보고 인근에 있는 홍원항에도 들러보자. 홍원항은 봄에는 주꾸미, 가을엔 전어로 유명하다. 주꾸미와 전어가 없다고 아쉬워하진 말자. 겨울은 겨울대로 독특한 정취가 풍긴다. 잔잔한 바다와 들고 나는 어선들, 끼룩대는 갈매기들의 합창이 정겹다. 배가 들어오면 포구는 활기가 넘친다. 고기를 부려놓은 어부들과 고기를 사러 나온 사람들로 왁자지껄하다. 잡혀온 고기들도 다양하다. 새우, 가자미, 멸치, 게, 보골치, 백조기, 범치 등등. 해질 무렵, 홍원항에서 바라보는 해넘이 또한 장관이다. 하나 둘 들어오는 고깃배 사이로 주황빛 노을이 걸쳐지면 바다는 한 폭의 풍경화가 된다.
홍원항 바로 위에는 춘장대 해수욕장이 펼쳐져 있다. 봄이 유난히 길어서 춘장대(春長臺)라 한다던가. 겨울 춘장대는 쓸쓸하면서도 서정이 듬뿍 깔린다. 칼바람이 몰아치지만 드문드문 데이트족들이 보인다. 경사가 완만해 한참을 걸어들어 가도 물이 발목에 머물 정도로 수심이 낮다. 해변 뒤로는 소나무와 아카시아 숲이 둥그렇게 둘러싸고 있고, 1.7km에 이르는 백사장은 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다. 춘장대는 갯벌 체험지로 아주 좋다. 검붉은 고운 모래밭에는 게(맛살) 구멍이 수없이 뚫려 있다. 게들이 파낸 모래가 볼록볼록 솟아 있는 모습이 신기하다. 춘장대에서 위쪽으로 더 올라가면 부사방조제를 지나 보령땅으로 접어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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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눈 덮인 춘장대해수욕장. | 장항 쪽 종천면 산천리에 있는 희리산 해송자연휴양림에도 들러볼 만하다. 휴양림 입구에는 저수지(산천지)가 있어 낚시와 삼림욕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소나무, 잣나무, 낙엽송, 삼나무, 해송 등으로 내부를 장식한 숲속의 집도 눈길을 끈다. 휴양림을 품에 안은 희리산 정상(문수봉, 해발 329m)에 오르면 서천 들녘과 서해바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산행은 저수지 옆 산막촌에서 시작한다. 산막촌에서 등산로 입구 표지를 보고 능선을 타게 되는데, 약 15분 올라서면 무너진 성터에 닿고, 다시 15분 정도 오르면 희리산 정상에 닿는다. 산을 한 바퀴 돌아보는 데는 약 2시간(5.4km)정도 걸린다. 휴양림을 이용하기 위해선 반드시 예약해야 한다. 문의(www.huyang.go.kr, 041-953-9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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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리산 휴양림의 해송. | 서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한산 세모시다. 한산면 지현리에 있는 한산모시관에 가면 서천의 특산물인 한산세모시의 제작 과정을 살펴볼 수 있고, 상설 매장에서는 모시제품을 싼값에 구입할 수 있다. 한산모시는 섬세함과 통풍성이 단연 으뜸인 옷감으로, 색깔이 백옥처럼 희고 맑으며 올이 가늘고 짜임이 고를 뿐만 아니라 오래 입어도 빛이 바래지 않고 질감이 좋다. 한산모시는 연간 약 2만필 정도 생산하고 있는데, 모시 가격은 한 필에 약 20-6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한산모시관 건너편에는 한산모시만큼이나 유명한 한산소곡주 제조장이 있다. 소곡주는 찹쌀을 빚어 100일 동안 익혀서 마시는 명주다. 달콤한 첫 맛에 반해 독한 줄 모르고 마시다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하여 일명 ‘앉은뱅이술’로도 불린다. 인터넷 사이트(www.sogokju.co.kr)에 상세한 설명이 나와 있다.
한산모시관에서 29번 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15분쯤 내려가면 금강 하구에 닿는다. 금강이 서해로 흘러들기 전, 드넓은 강폭을 만드니 바로 금강 하구둑이다. 이즈음 금강 하구둑은 온통 갈색이다. 길게 자란 갈대가 강바람 들바람에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다. 특히 금강하구와 붙어 있는 신성리는 6만여 평의 갈대밭이 장관을 펼쳐 보이고 있다. 겨울이면 철새가 찾아오는데,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이밖에 한산면 종지리엔 독립운동가 월남 이상재 선생의 생가가 있다. 또한 고려조 목은 이색의 영정을 모신 문헌서원과 부여 정림사지 모방탑으로 전해오는 비인리 5층석탑도 서천을 찾았다면 꼭 둘러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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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리산 휴양림의 통나무집. | ◆여행쪽지(지역번호 041)=서해안고속도로 춘장대 나들목-서면 소재지-마량리(해양박물관, 동백정, 마량포구, 홍원항, 춘장대해수욕장). 서천에서 동백정행 시내버스 이용. 매시간 20분 간격으로 운행(내도둔에서 하차). 서해안고속도로 서천 나들목-삼거리에서 좌회전-서천시내 방향으로 진입-오거리-부여/강경 방향 29번 국도-금강하구언 입구-한산방향-한산모시관. 한산에서 신성리까지 하루 4회 시내버스 운행. 택시를 타면 2천 5백원 정도 나온다. 경부고속도로-천안나들목-아산-예산-홍성-광천-대천-웅천-비인-서면-홍원항 또는 천안나들목-아산-예산-홍성-대천-웅천-부사방조제-춘장대해수욕장-홍원항. 신성리 갈대밭은 모시마을에서 금강 방향으로 10분 정도 가면 나온다. 서해안고속도로 서천 나들목-4번 국도-21번 국도 3.2km-희리산휴양림. 호남고속도로 논산 나들목-68번 지방도로-강경-봉황교 삼거리(부여군 임천면 구교리)에서 좌회전-29번 국도 장항 방면-한산모시관-영모리 회동교 삼거리에서 우회전-602번 지방도-21번 국도 보령 방면-희리산휴양림 입구. 21번 국도에서 휴양림으로 들어서는 마을 진입로는 길이 좁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기차는 장항선 서천역이나 춘장대역에서 내린다. 문의 서천군 문화관광과(950-4114), 한산모시관(951-4100), 한산소곡주양조장(951-0290), 서천해양박물관(952-0020), 동백정 관리사무소(950-2466).
잠자리와 맛집=춘장대해수욕장 주변에 화신장(951-8828), 백이모텔(952-4812), 춘장여관(952-2090), 아드리아호텔(951-6699) 등이 있으며 마량포 언덕에 모텔 노을(951-6697), 동백정별장(952-2245), 동백산장(952-3020) 등이 있다. 홍원항이나 마량포구에 횟집이 많다. 홍원항횟집(953-3405), 아드리아횟집(951-9339) 등.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