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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서문: 공부는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인간과 사회와 생명과 우주를 이해하는 일이다. 공부를 온전하게 하려면 과학을 알아야 한다. 과학 공부를 하면서 나는 달라졌다. 다른 사람에게 너그러워졌다.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이 덜 무섭다.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는 과학 요양서가 아니다. 과학을 소재로 한 인문학 잡담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이 책을 읽을 때 각주를 눈여겨보시기를 당부한다. 본문에 넣기 어려운 정보를 각주에 담았다. 과학 공부를 하고 싶은 독자는 <코스모스> <원더풀 사이언스> <엔드 오브타임> <이기적 유전자>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 <원소의 왕국>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김상욱의 양자공부> <과학 콘서트> 같은 책을 읽어라. 저자들은 대부분 이과지만 인간의 언어로 과학 이야기를 들려준다. 대한민국에는 탁월한 연구 능력을 지닌 과학자와 열정 넘치는 과학커뮤니케이터가 많다. 최재천 선생과, 김상욱, 정재승 교수께 감사를 드린다.
1부 그럴법한 이야기와 확실한 진리 [인문학과 과학]
-거만한 바보
2009년 다윈 탄생 200주년과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을 맞아 서점과 출판사들이 과학교양서를 알리려는 서가에서 코프모스 이기적 유전자 그리고 파인만을 골랐다. 구술 자서전 [파인만!]에는 최초의 핵폭탄 폭발 실험을 비롯해 과학의 역사와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험을 진지하게 회고한 대목리라든지 죽음을 앞둔 여인과 결혼한 경위, 암산 시합에서 일본인 주산마스터를 이긴 요령, 술집에서 여자를 유혹한 방법, 금고 따기로 동료들을 놀라게 한 비법 같은 사생활 일화가 있었다.
토론회에는 거만한 바보가 많았고 정직한 바보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정직하지 않은 바보는 골칫거리다
나는 토론회에서 거만한 바보를 무더기로 만났고 아주 낭패했다. 다시는 학제적 토론회에 가지 않을 것이다.
[리처드 파인만 지음 토론회에서 겪은일을 회고한 전기는 불입니까? 中에서]
파인만은 흔한 물리학자가 아니다. 아인슈타인의 뒤를 이은 과학 셀럽이었고 최조의 핵폭탄을 제조한 맨해튼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첫 핵폭발 실험을 현장에서 보았다. 양자전기역학과 임자 물리학을 비롯한 물리학의 여러 분야에서 중요업적을 냈다. 1965년 노벨풀리학상을 수상 이륙 직후 폭발해 승무원 일곱명이 전원 사망한 1986년의 미국 챌린저 우주왕복선 사고 원인을 규명해 세계인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평등의 윤리’를 주제로 뉴욕에서 열린 ‘학제적’토론회에서 파인만은 주제를 명확하게 정의해 엉뚱한 이야기를 걸러내자고 제안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토론하는 동안 모두가 자기 관점에만 집착했고 다른 사람의 관점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대화를 한 게 아니라 혼톤을 만들었가고 했다. 그들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스스로는 지혜롭다고 믿는 거만한 바보라고 학회에 참가한 인문학자들을 비판했다. 파인만의 이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주 은하 별 행성 물질 생명 진화 같은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살았다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다. 내가 옳다고 믿는 이론이 옳다는 증거가 있는지 여부를 따져보지도 않았다. 내가 바로 거만한 바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이 오십에 바보라니...자괴감이 들었고 그래서 과학 공부를 시작했다.
운명적 문과의 슬픔
나는 수학이 어려워 문과를 선택했다. 수학을 거의 쓰지 않는 생물과 지구과학을 시험과목으로 골랐다. 우연히 파인만의 자서전을 펼칠 때까지 30년 넘게 과학 책이라고는 읽지 않았다. 과학과 인문학은 여러면에서 다르다. 인간 지성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는데 과학이 인문학게 미친 영향이 인문학이 과학에 준 영향을 압도한다. 과학자는 쉽게 인문학으로 건너가는 반면 인문학자가 과학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는 지극히 어렵다. 나이를 먹을대로 먹은 지금 바보를 면해 보려고 과학 책을 읽었다.
-인문학과 과학의 비대칭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은 1998년에 처음 들었다. 외환위기로 한국경제가 바닥에 떨어진 시기였다. 외환 부족으로 인한 국가부도 위험이 국민경제의 파국으로 번지자 부채비율이 놓은 재벌 대기업이 줄지어 도산했다. 살아남은 기업은 ‘구조조정’이라는 말을 내세움 노동자를 대량으로 해고했다. 실업률이 치솟았고 신규 채용 시장이 얼어붙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사회를 덮치자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그나마 취업 전망이 나은 이과로 몰렸다. 정부는 전공 관련 취업률이 낮은 인문학 분야의 댜학 입학 정원을 줄이도록 압박했고 대학 운영자들은 인문학 분야 학과를 없애거나 통폐합했다. 출산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졌고 대입 수능시험 지원자 수는 급감했으며 서울에서 먼 지역의 대학부터 대규모정원 미달 사태를 맞는 현상에 언론은 ‘벚꽃엔딩’이라는 노래 제목을 붙였다. 벚꽁이 먼저 피는 곳부터 대학이 문을 닫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지방의 대학이 별종 상황에 들어가고 수도권 대학이 입학 정원을 줄인다면 어떤 학과가 과젹이 될까 말할 것도 없이 인문학 분야 학과들이다.
최근 100년 동안 과학자들은 우주와 자연과 인간에 대한 중요한 사실을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이 찾아냈다. 인문학자들은 과학에 관심이 없고 배척하는 자세로 일관한다.
새로운 지식과 정보가 학문의 경계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빛과 같은 속도로 퍼져 나간다. 대중은 대학기라는 제도를 거치지 않고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 인문학을 만나며 학습하고 있다. 문명의 역사는 세속권력이나 종교권력을 거머쥔 ‘거만한바보’들이 자연과 인간에 관한 사실을 탐구하고 밝혀낸 과학자를 가두고 고문하고 죽이고 책을 불태운 사건으로 얼룩졌다. 과학자는 인간의 언어와 우주의 언어 둘 모두를 쓴다. 큰 어려움 없이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든다 인문학의 질문에 자기네 방식으로 응답한다. 공부에는 너무 늦은 법이 없다는 말, 수학에는 통하지 않는다. 젊은 시절에도 잘 되지 않았던 수학공부가 노년에 잘 될 리 없다.
그런 나를 세이건 선생과 도킨스 선생이 격려해 주었다. “과학은 단순히 사실의 집합이 아니다. 과학은 마음의 상태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며 본질을 드러내지 않는 실체를 마주하는 방법이다.([원더풀 사이언스] 중에 ‘아름다운 기초과학 산책’이라는 부제 가운데 발췌 했다.
문과라도 나이를 먹었어도 과학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 집과 우리 엄마의 진실
어떤 과학 이론은 신기하고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보는 시각을 바꾸고 시야를 넓혀 주었다. ‘내 몸과 똑같은 배열을 가진 원자의 집합은 우주 어디에도 없다’ ‘정신은 물질이 아니지만 물질이 없으면 정신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아는 뇌세포에 깃든 인지 제어 시스템이다’ ‘내몸을 이루는 물질은 별과 행성을 이루는 물질과 같다.’ ‘지구 생물의 유전자는 모두 동일한 생물학 언어로 씌어 있다.’ ‘태양이 별의 생애를 마칠 때 지구 행성의 모든 생명은 사라진다.’ ‘모든 천체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서로 멀어지고 있으며 언젠가는 우주 전체가 종말을 맞는다’
#로마교황청의 권력을 등에 업고 천동설을 믿고 따르는 것도 어쩜 자연스런 일이겠거니와 이에 반박을 하고 폴란드인 코페르니쿠스가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지구를 포함한 행성들이 자전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면서 태양 주변을 돈다는 사실을 논증했다는 사실도 정말 놀랍다는 생각을 해본다.
거만한 바보들은 코페르니쿠스의 책의 만매와 유통을 금지했다. 코페르니쿠스가 뇌출혈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종교재판에 넘겨 화형에 처했을지도 모른다. 코페르니쿠스의 견해를 받아들여 무한우주 이론을 펼혔던 과학자 브루노를 로마의 광장에서 화형시켰다. 위대한 과학자 갈릴레이를 죽을 때까지 시골집에 가두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은 갈릴레이의 고전역학과 케플러의 행성 운행법칙 발견을 거쳐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 발견으로 이어졌다. 뉴턴은 우주의 근본원리를 수학으로 서술함으로써 고전역학의 시대를 열었다. 과학혁명은 생산기술을 혁신함으로써 생산조직의 형태와 운영방식, 대중의 생활방식, 정치제도와 법률, 사회적 계급의 성격, 국가의 기능, 가족제도와 문화양식까지 세상 모든 것을 바꾸었다. 인문학이 과학의 사실과 이론을 연구에 반영하지 않는다면 현실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다. 과학자는 물리법칙에 입각해 생명 현상을 이해하고 진화의 관점에서 인간과 사회를 설명한다. 인간의 몸은 입자의 집합이니 당연히 물리법칙을 따른다. 모든 생명체가 그렇듯 인간도 진화의 산물이다
진화와 정신에 관한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유전자가 생존을 위해 만든 기계다. 그런데 그 기계가 자신은 무엇인지, 왜 존재하는지,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 생각하고 고민한다.
우리의 뇌는 생존에 필요한 것은 밝게 비춰 보지만 그렇지 않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객관적 진리보다는 신화와 자기기만과 부족의 정체성처럼 ‘적응의 이익’이 있는 것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였다. 자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르 채 수천 세대를 이어가며 번식했다. 과학이 제공하는 사실을 모르면 우리의 마음은 세계를 이룹밖에 보지 못한다.([통섭:지식의대통합]-과학과 인문학을 아무르는 지식 통합의 필요성과 방법론에 관하여 )
2부 나는 무엇인가 (뇌과학)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너 자신을 알라” 이 말은 지금까지 널리 오래동안 퍼져 전해졌다. 이는
첫째 사람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 싶어 한다. 모두는 아니지만 대개는 그렇다
둘째 자신을 알기 어렵다. 그런 노랫말이 있지 않은가 제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나는 누구인가? 왜 존재하는가?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나는 물리적 실체로 존재한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아는 나는 물리적 실체인 내가 아니다. 그 둘이 같지 않다는 것을 아는, 또 다른 내가 있다.‘ 나를 온전히 알려면 인간의 본성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발 딛고 선 물질 세계를 이해해야 한다. 우주는 언제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가?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입자가 어떻게 생명과 의식을 만들어내는가? 나는 왜 존재하는가? 왜 이런 방식으로 사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이런 질문에도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를 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는 인문학적 질문이고
나는 무엇인가?는 과학적 질문이다. 묻고 대답하는 사유의 주체를 ‘철학적 자라’라고 하자 철학적 자아는 물질이 아니다. 그러나 물질인 몸에 깃들어 있다. 나를 알려면 몸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일반 명체로 확장하면 ‘과학의 질문은 인문학의 질문에 선행한다. 인문학은 과학듸 토대롤 갖추어야 온전해진다.’
우주 전체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내 몸과 똑같은 배열을 이룬 원자의 집합은 어디에도 없다. 나는 우주에 딱 하나뿐인 존재다. 물질인 내 몸을 지휘하는 제어 센터는 단단한 머리뼈 안에 들어 있는 주름진 회백색 세포 덩어리다. 나를 나로 알고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철학적 자아는 우리가 뇌갈고 하는 세포 덩어리에 깃들어 있다. 내가 뇌일 수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뇌르 ㄹ떠나서는 철학적 자아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소유욕부터 경쟁심, 구애 행동, 차인에 대한 공감과 연민, 예술적 창조, 낯선 것에 대한 경계, 자존감, 불안, 공포 외로움, 복수심에 이르기까지 헐학적 자아의 모든 감정과 생각은 뇌가 작동해서 생긴다. 뇌의 구조와 작동 방식을 모르고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을 이해할 수가 없고, 호모 사피엔스의 본성을 모르면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말한다. ‘나는 뇌다’
-1.4킬로그램의 우주
요즘 대중의 ‘최애과학’은 뇌과학이다. 사람들은 두 가지 목적으로 뇌과학 책을 읽는다. 첫째는 생존이다. 생존경쟁에 필요한 지적 능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뇌과학을 공부한다. 둘째는 자기 이해다. 자신의 성격과 기질을 파악하고 다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는데 뇌과학은 도움이 된다. 뇌과학을 알면 생존에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자기 이해에는 확실히 유용하다.
사람 뇌는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일한다. 그래서 1.4킬로그램 안팎으로 평균 체중의 2퍼센트 밖에 되지 않는데도 혈액의 25퍼센트와 에너지의 20퍼센트를 쓴다. 사람만큼 뇌가 발달한 동물은 없다. 뇌의 주름을 펴면 쥐는 우표 한 장, 원숭이는 엽서 한 장, 사람은 신문지 한 장 정도다. 주름진 뇌의 안쪽은 밝고 바깥쪽은 어두워서 각각 ‘백색질’과 ‘회색질‘(또는 대뇌피질)이라고 한다. 회색질에는 신경세포(뉴런)의 중심이 세포체가 밀집했고 백색질에는 축삭돌기가 퍼져 있다. 대뇌피질은 두께가 4밀리미터도 안 되지만 형태와 기능이 다른 신경세포가 여러 층을 이루고 있다. 뇌신경페포도 다른 세포처럼 핵과 미토콘드리아 같은 소기관이 있고 DNA 정보를 번역해 단백질을 만든다. 세포체 크기는 보통이지만 축삭돌기는 1미터 넘는 것도 있어서 뇌와 발가락을 신경세포 2개로 연결한다.
뇌는 약 860억개의 신경세포가 얽힌 정글이다. 뉴런 마다 줄기인 축삭돌기 하나와 많은 수상돌기가 있는데 수상돌기로 다른 뉴런의 정보를 받아 들이고 축삭돌기로 정보를 내보내면서 100조 개 넘는 연결말을 만든다. 한 뉴런의 돌기와 다른 뉴런의 돌기는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으면서 사이의 빈 공간인 시냅스에서 화학물질을 주고받아 교신한다. 뉴런은 서로 연결함으로써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유발하고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뉴런의 연결 패턴에 영향을 준다.
뇌는 부위마다 하는 일이 다르다 해마는 기억을, 이마 쪽 전전두엽은 의사 결정에 관여한다. 후두엽은 시각정보 처리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측두엽 안쪽에 있는 편도체는 공포 반응과 주의 집중에 관련된 여러 부위에 신호를 보낸다. 뉴런이 100조개의 연결망을 통해 만들어내는 연결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데도 부위에 따라 기능이 다른 것은 뉴런의 종류 구성 연결형태 정보처리 방식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에 관한 정보는 초보적으로 파악했을 뿐이다 살아있는 사람의 뇌는 들여다 볼 방법이 없어서 오랫동안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MRI와 PET 기술을 확보하고 나서야 뇌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신경세포와 경제법칙
경제학개론 교과서는 보통 소비자행동이론으로 시작하는데, 그 핵심은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다. 하지만 이것은 법칙이 아니라 신경세포이 작동방식과 특성을 드러내는 ‘현상‘일 뿐이다. 19세기 후반 과학자들이 신경세포를 발견하고 작동 방식을 일부 파악했다. 같은 종류 같은 강도의 자극을 계속 가하면 신경세포가 점점 둔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은 지금으 상식이지만 당시에는 새로운 정보였다. 생물은 외부 환경의 변화를 신속 정확하게 인지해 최적대응을 해야 생존할 수 있다. 호모사피엔스도 그렇다. 우리의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엄청난 데이터들을 신속 정확하게 접수하고 분류하고 평가해 신체 기관이 적절한 행동을 하게 하려면 효율적으로 일해야 한다. 경제학은 경제학자 말고는 아무도 이해 하지 못하는 학문이 되어 현실에서 멀어졌다. 스미스의 국부론 이후 국부 증진 방법과 소득분배 문데를 중심 의제로 삼았던 ’고전파 경제학‘은 점차 밀려났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은 ’한계효용 균등의 법칙‘을 낳았다. 최대효용을 높이기 위해 한계효용이 같도록 조합을 하면 된다.
-칸트 철학과 양자역학
뇌는 감각기관이 보내는 정보를 특정한 패턴으로 처리함으로써 외부 환경변화를 빠르게 인지하고 몸을 신속하게 제어한다. 그렇기 때분에 우리는 사물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한다...고 칸트는 말했다. 빛은 전자기파의 일종이다. 전자기파는 전기장과 자기장이 상호 변화를 유도하면서 퍼져 나가는 파동으로 진행방향과 수직으로 진동한다. 초속 30만킬로미터에 가까운 속도로 이동하는데 매우 긴 것부터 극히 짧은 것까지 파장의 길이가 매우 다양한다. 속도가 일정하기 때문에 파장이 긴 전자기파는 초당 진동수가 적고 파장이 짧은 전자기파는 진동수가 많다. 인간의 신경세포는 파장이 380~720나노피터인 전자기판만 감지한다. 그것을 ‘가시광선’ 또는 ‘빛이라고 한다. 우리 뇌는 가시광선 영역으리 전자기파를 파장의 720나노미터보다 긴 전자기파(적외선)의 38-나노미터보다 짧은 전자기파(자외선)는 감지하지 못한다.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전파, 전자레인지의 마이크로파, 진단 장비에 쓰는 엑스선은 모두 전자기파다. 파장과 진동수가 다르지만 물리학의 관점에서는 아무 차이가 앖다. 별개의 현상인 줄 알았던 전기와 자기가 서로를 유도하는 결합 현상임을 밝힌 영국 물리학자 패러데이와 몇 갱의 방정식으로 빛이 저자기파라는 사실을 정리한 스코틀랜드 물리학자 멕스웰 덕분에 우리는 이런 사실을 안다. 그들은 자신이 발견한 사실이 무슨 효용이 있을지 짐작하지 못했지만 전기부터 전화, 라디오, 텔레비전, 인터넷과 휴대전화까지 우리가 쓰는 모든 전기, 전자 기기는 페러데이와 멕스웰의 발견에서 비롯했다.
우리는 빛이 우리 신경세포가 감지하는 영역의 전자기파임을 알면서도 전자기파나 가시광선보다는 빛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빛은 파동이고 입자다. 이 말은 5장에서 말하겠다. 다만 물 분자가 파도를 이루는 것처럼 입자가 파동을 그리며 움직인다고 해석하지는 말기 바란다. 빛 자체가 입자이고 파동이라는 말이다 인간은 감각기관으로 인지한 것을 언어로 표현한다. 파동인 동시에 입자인 전자기파의 성질은 눈으로 볼 수 없다. 모든 입자가 그런 것처럼 빛도 일정한 양의 에너지가 있다. 태양이 내뿜은 빛의 에너지는 지구에서 공기를 만나 열에너지로 바뀐다. 우리가 햇볕이 따스하다고 느끼는 것은 빛 자체가 따뜻해서가 아니라 빛이 공기를 데우고 우리가 따뜻해진 공기와 접촉하기 때문이다 진공에서도 ‘빛의 속도’로 달리는 빛은 어떤 대상을 만나면 자신의 에너지를 아무 대가도 받지 않고 덜어 준다. 이 현상을 우리는 복사(radiation)라고 한다. 그런데 빛은 또한 파동이고 파장에 따라 에너지가 다르다. 독일 물리학자 플랑크는 빛의 에너지를 파장별로 측정하는 과정에서 빛에는 불연속적으로 변화하는 에너지 값을 가진 진동자가 있다고 추측했다. 진동수에 작은 상수를 곱하는 방식으로 빛의 에너지를 알아냈다. 그 상수를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플랑크 상수’라고 한다. 플랑크는 빛의 복사가 불연속적인 에너지 덩어리으 방출, 전달, 흡수 현상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가 발견한 불연속적인 에너지 덩어리가 바라 ‘양자(quantum)다.
빛의 복사는 물체에 작용하는 힘과 운동의 관계를 설명하는 고전역학으로는 다룰 수 없는 현상이었다.
플랑크가 발견한 현상을 설명하고 원자를 수성하는 입자의 운동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물리학이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양자역학이다. 플랑크의 발견은 아인슈타인과 프랑스 물리학자 드브로이의 연구를 거쳐 오스트리아 과학자 슈뢔딩거으 파동방정식으로 결실을 맺었다. 독일 정부는 막스 플랑크가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수십 개의 분야별 과학 연구소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칸트의 인식론으로 돌아가자 우리는 빛이라는 사물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파장 380~720 나노미처 영역의 전자기파가 물방을 만나 굴절한 것을 우리는 무지개라고 한다. 뇌가 특정한 파장 영역의 전작파에 대한 정보를 각각 다른 패턴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우리는 부지래를 일곱 색깔로 본다. 일곱 색깔 무지개는 우리으 감성형식으로 질서를 부여한 ‘현상’이다. 어디 빛만 그런가 물의 온도에 따라 분자의 활동성이 달라서 고체 액체 기체로 바뀌는 상전이 현상을 일으킨다. 물분자 사이의 간격이 넓어졌을 뿐 ;사물 자체‘가 달라진 건 아니다. 사람만 주관적 감성형식이 있는 게 아니다. 뇌를 가진 동물은 다 저마다의 감성형식이 있다. 칸트의 불가지론을 확실하게 이해해보자 박쥐가 그 예다ㅣ 앞을 보는 박쥐 종도 있지만 어떤 종은 빛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특유의 주관적 감성형식으로 외부 환경을 신속, 정확하게 파악한다. 박쥐는 자신이 쏜 초음파가 대상에 부딪쳐 되돌아 오는 것을 감지해 뇌에서 외부 세계의 이미지를 만든다. 사람이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처럼 박쥐는 소리로 사물을 보는 것이다.
-측은지심과 거울신경세포
‘자아’ ‘인격’ ‘정체성’은 무엇인다 일단 물질은 아니다. 사람의 몸을 해부해 샅샅이 뒤져도 그런 것은 나오지 않는다. 원자 단위짜지 쪼개오 헛일이다. 그런데도 그런 것이 있다고 믿으면서 인간은 자신과 타인을 대한다. 인문학자는 그건 것이 있다는 전체를 두고 인간과 사회를 연구한다. 그런 믿음이 없었다면 인문학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던 스물다섯 살 무렵, 우연히 [맹자]를 읽고 ‘4단론’을 받아 들였다. 맹자는 군자의 미덕인 인의예지가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라는 본성에서 나온다고 했다. 나는 제자백가 중에 맹자를 가장 좋아하는데 그는 철학자라기 보다느 ㄴ이론가 또는 정책전문가에 가까운 전투적 지식인이었다. 효孝를 최고의 가치로 여겼고 가족의 질서를 사회 전체로 확장하려 했다는 점에서는 공자와 같은 보수주의자였지만 혁명적 변화가 필요한 영역에서는 누구보다 혁명적이었다. 역성혁명 덕치 호연지기 조세제도 등 중요한 이슈에 대해 서늘할 정도로 날카로운 논리를 폈으며, 유가으 사상을 비판하는 세력과는 치열하게 논쟁했다. 당시 큰 인기를 누린 묵가와 양주의 세력을 특히 강하게 비판했다. 인간은 군집을 이루고 살면서 사회적 기술적 분업을 한다. 다른 생물 개체가 그렇듯 사람도 이기적 또는 자기중심적이다. 자신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본성을 지녔다. 그런데 인간은 이타 행동도하낟. 남을 위해 또는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낮추는 행위를 한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으 이타 행동은 생물학적 유전자를 공유한 가족 구성원 사이에 가장 먼저 그리고 강력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친족이타주의를 설명한 생물학 이론은 3장에서...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이기적인가 이타적인다 인문학자들이 오랜 세월 논쟁했지만 찾아내지 못했던 그 일을 신경과학자들이 해냈다. 1992년 이탈리아 파르마대학교 연구진은 특정한 생동을 할 때 발화하는 원숭이 두피질의 일무 뉴런이 다른 원숭이가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볼 때도 발화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인간의 뇌에도 같은 기능을 하는 뉴런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거울신경세포’라고 한다. 거울신경세포는 대뇌피질을 비롯한 뇌의 어러 부위에 분포해 있으면서 다른 사람의 행동을 모방하는 행위를 조장하거나 억제하는 등 여러 일을 한다. 또한 공감과 도덕적 동기 유발의 기초를 제공하며 타인의 고통을 느끼고 염려하고 덜어주는 행위를 장려한다. 거울신경세포가 모방과 공감에 관여한다 이런 능력 더문에 우리는 언어를 익힌다. 언어가 있기 때문에 큰 규모의 공동 행동을 조직할 수 있었고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으며 생산력을 높이고 문명을 전설했다. 언어는 종교와 함께 문명을 가르는 가장 강력한 경계선이다. 그러나 거울신경세포 혼자 그런 일을 하는게 아닐 수도 있다. 남을 모방하며 남에게 공감하며 남을 배려하고 남과 협동한다. 악한 행동을 삼가며 옳은 일을 하려고 한다. 때로는 공동체를 위해 죽을 위협을 떠안는다. 우리가 그런 존재임을 안다. 우리의 뇌는전체가 하나의 시스펨이다. 서로 공감하고 소통하고 협력하고 배려하게 해주는 것은 거울신경세포라기보다는 여러 종류의 뉴런이 협동해서 만든 거울신경 ‘시스템’인지도 모른다. 인간본성이 선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선한 본성도 지니고 있다. 맹자는 인간이 이러한 생물학적 본성이 있으며 그것을 측은지심이라 했고 거기에서 인仁이라는 가장 중요한 미덕이 나온다고 판단했다.
-자유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