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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에게도 배운다
"바둑은 이치만으로는 안된다. 책으로만도 안된다. 실전을 통해 감각을 익히고 하수에게도 배우는 자세가 중요하다."
하수를 좋아한다
사람들의 성미는 가지가지여서 맞수라야만 바둑을 상대하는 이가 있는가하면 자기 보다 상수가 아니면 두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또 어느 사람은 굳이 하수만을 골라잡는다.
맞수를 선호하는 것은 줄다리기와 같은 짜릿한 맛을 즐김이며, 상수를 찾는 뜻은 조속한 향상을 바라는 마음이고, 하수를 택하는 것은 상수가 두렵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그 같은 세가지 부류로 크게 나누어 볼 때 누구나 그중 하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상수가 두려운 마음은 인지상정이다. 상수를 만나야만 두려고 하는 사람도 실은 상수가 겁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두렵기 때문에 반동작용으로 미리 매맞기를 자청하는 것이다.
호선주의자는 상수도 두려워하고 하수도 두려워 한다. 몇 점 놓아주고 두려고 하면 어쩐지 둘 데가 없는 느낌이 들어 부담스러운 나머지 기피하게 된다.
오히려 솔직한 측은 하수만을 상대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하수와 두면 항상 주도권을 잡으니 겁날게 없다. 간단한 속임수에도 잘 걸려들고 이쪽에서 큰 실수를 해도 상대가 응징하지 못하며, 죽기를 자청하기 일쑤이므로 온판을 휘젖는 재미에 빠진다.
그래서 하수를 찾는 사람은 상수앞에서는 더욱 약체가 되고 상수를 찾는 사람은 하수 앞에서 쩔쩔 맨다.
단급 사정의 어려움이 이런 데서 연유한다. 접힐 때, 호선일 때, 접을 때의 평균치가 정당한 급수이다. 맞바둑 상대와 둔다는 사람들도 자세히 살펴보면 호선이 아닌 경우가 많다. 백을 들고 있는 것이다. 상대가 흑이라면 엄격하게 따질 때 하수이다.
결국 누구나 부담없고 마음 편한 하수와 즐겨 두려고 하는 것이 상정이 아닌가 한다. 말하자면 하수가 실상 인기가 있고 그로 인하여 하수는 향상 발전하게 되어있다.
하수와 두면 손해인가
흔히 하수와 두면 바둑을 버린다고들 말한다. 억지수단을 서슴지 않으며 속여먹으려는 나쁜 습관이 생긴다는 뜻이다. 상수만을 찾아 두는 사람의 기본 태도는 바로 그와 같은 악습의 전염을 차단하고자 함이다.
그러나 면역성을 기르지 않아 대수롭지 않은 병균 감염에도 치명상을 입는다.
1도 | 2도 |
3도 | 4도 |
5도 |
6도 |
그 한가지 예가 1도이다.
화점의 오른쪽에서 걸쳐 두다 말고 다시 1로 육박한 감각은 뭔가 정상적인 수단이 아닌 억지인데, 이때 백2로 붙이는 상수 선호자를 본 일이 있다. 이는 2도의 틀 즉, 형식에 사로잡힌 소화불량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흑1에는 3도의 백2가 호구 자리의 급소이며 절대수이다.
직접 붙이는 수단은 공격이 아니라고 하니까4도와 같은 백1의 저공비행에 대해 흑2로 받고 백3을 허용한다. 이것은 5도의 상황과 혼동한 것이다. 이때의 백1에는 흑2로 3 · 三에 지킴이 정법. 지킨다기 보다 상대방에게 근거의 소지를 주지 않으면서 다음에 하변에서의 공격과 우변으로의 공격을 맞보기 한다.
4도의 흑에게는 맞보기가 없지 않은가. 때문에 이 경우의 백1에 대해서는 6도 흑2쪽으로 직접 붙여 이하 7까지 빈틈없이 두어 백으로 하여금 약점이 노출되게 함이 바람직하다.
식물도 비바람에 더러 시달려야 튼튼하게 자라는 것처럼 바둑도 상수에게 얻어맞아 보고 맞수와 힘겨루기도 해보고 하수를 밟아보기도 해야 고갱이가 찬다. 상수에게 시달리기만 해서는 언제나 피해의식에 젖어 움추리는 바둑을 두게 되며 하수만 상대해서는 그야말로 탈선을 일삼는다.
문제는 두루두루 경험을 쌓고 싶어도 여러 여건이 맞지 않고 골치도 아프니 손쉬운 하수만을 상대한 경우가 흔하다. 그러니 어떻게 하는가. 하수와 상대하면 나쁜 버릇이 붙을 뿐 아니라 바둑이 줄어든다는데 어찌하면 좋은가.
하수도 훌륭한 선생
국학(國學)의 대가중 한 분인 辛鎬烈씨를 바둑과 관련하여 기억하는 독자가 더러 있을 줄 안다. 바둑계에서 은퇴한지 오래됐으나 50년대에 전문기사로 경쟁하던 신호열2단이 바로 그분이다.
辛선생은 프로가 되기 전까지 상수를 별로 접해보지 못했다고 한다. 소년시절 盧史楚國手 등의 바둑을 어깨너머로 구경한 일 이외에는 누구에게도 지도를 받은 바가 없고 시골 동네에서 어울려 두다보니 어느 사이에 그들을 능가하게 됐고 이후는 항상 辛선생이 상수의 위치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평생을 하수만 상대했는데 입단의 수준에 이른 것이다. 辛선생의 얘기에 독자 여러분은 즉각 반론을 제기할 줄 안다. 그것은 예외다. 그분이야 타고난 기재(棋才)가 있었겠지만 우리는 보통 사람들이라고-.
물론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보통이 아니었기에 하수에게 바둑을 배워 프로가 되지 않았는가.
여러분은 프로가 되고자 하는게 아니라 눈 앞의 적수가 대상이고 더 욕심을 낸다면 두 세점 쯤 늘고 싶다는 욕망에 차 있다. 두 세 점이라면 사정권내의 거리이다. 그런데 辛선생의 얘기가 보통에 적용되지 않는 것일까.
여기서 다시 한 번 하수와 두다가는 바둑을 버린다는의미를 되새겨 보자.
첫째, 얕보고 경적하는 버릇이 는다.
둘째, 여러 점 놓아주었기 때문에 자연히 무리하는 습관이 생긴다.
셋째, 상대가 잘 속아넘어가는 까닭에 속여보려는 악습이 젖는다.
대충 이상과 같은 세 가지 폐해로 나누어 볼 수 있겠다. 그것은 사실임에 틀림없다.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게 교만한 것이 인간의 속성이며 타성이다.
그러나 누구나 지니고 있는 그와 같은 인간적인 약점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발전을 기약할 수 없다. 여러분들도 상대가 하수라고 경적하다가 뜻밖의 허를 찔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경적필패라는 교훈은 상수나 상대하는 경우에도 다름이 없다.
상대를 속이려고 드는 것은 속아 넘어가기 때문에 재미가 있겠지만 하수라고 언제 어디서나 속지는 않는다.
왜 속이려고 하는가. 그것은 국면이 불리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유리하다면 속을 필요가 없다. 특히 버릇이 되어 유리한데도 습관이 되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때문에 불리할 일 수록 당당하게 맞서 최선의 수단을 찾지 않으면 안된다.
속이자는 것은 아니나 하수에게는 의례 무리를 감행한다. 접바둑에서 약간의 무리가 불가피한 것은 어쩔 수 없으나 그렇다고 해서 터무니없이 저돌하고 기리(棋理)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야 하겠는가. 그것이 습관이 되어 상수에게까지 그렇게 대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상수에게 통할 리가 없고 상수 기피증은 점점 더해간다.
무리를 하는 심리도 열세를 느끼기 때문이다. 여러 점 접었으므로 처음부터 당연히 열세이며 무거운 부담을 지고 둔다. 이를 뒤집어 보면 상수와 둘 때의 부담과 상통한다. 상수에게는 억지가 통하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차근차근 형편을 살피고 마땅한 대책을 강구하게 된다.
그렇다면 여러 점 접은 부담의 경우에도 상수에게서 처럼 최선을 찾아 타개를 해야 할 것 아닌가. 얕보지 말고, 속이려 하지 말고, 억지를 쓰지 않고 정정당당한 자세로 대하면 하수 상대로 상수의 역할을 해 내는 것이다.
앞서 辛鎬烈선생의 얘기가 천부적인 재질이거나 비상한 머리의 소산이 아니라 바둑에 임하는 자세라는 뜻이다. 보통 사람이 보통으로 해 낼 수 있는 능력에 지나지 않는다.
어떻게 배울 것인가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고 하거니와 하수에게 설사 물을 것까지는 없다 하더라도 모르던 점을 배우는 게 얼마든지 있다. 일상생활에서도 사람은 남의 잘못을 보고 자신을 깨우치며 스스로를 가다듬는다.
바둑도 마찬가지다. 하수는 형편없는 악수를 보통으로 두는데 그것을 보고 나도 저와 같은 악수를 혹시 범하지 않는가를 반성하며, 때로는 하수 자신이 의식하지 못한채 두는 좋은 수를 보고 저런 경우 저런 수단도 성립하는구나 하고 깨달을 점이 없지 않은 것이다.
7도
8도
9도
10도
몇가지 예를 들어 보자. 7도의 백1에 대해 흑2로 협공한 것은 공수겸비의 호착. 백3의 양걸침에 대한 흑4 · 6은 성립되는 수. 백7 때에 흑8로 백1한점을 제압해 놓고 사람들은 안심한다.
흑8로는 A에 뛰는 것이 좋다고 일러두어도 위쪽이 허전한 느낌이 들어 위축되는 것 같다. 두말할 나위없이 8도의 흑1에 뛰어 백2로 움직여오기를 기다려서 흑3 · 5 · 7로 운석하면 쉽게 국면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것을 그처럼 움츠림으로써 9도, 10도와 같은 꼴을 당한다. 질때 지더라도 초반 포석단계에 시원시원하게 둘 줄 알아야 한다.
11도
12도
하수측의 그같은 보수심리를 보고 상수측은 웃을 게 아니라 11도 및 12도와 같은 포진 상황에서 각기 A의 지점이 세력 소장(消長)의 요충지임을 유추하여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남의 잘못을 보고 자기를 확충하는 방법이다.
13도 | 14도 | 15도 |
6점 접바둑에서는 13도와 같은 꼴이 자주 등장한다. 흑가 석어 말이 아니다. 백1에는 14도의 흑2로 왜 두지 못하는가. 또는 15도의 흑2로 뛰기만 해도 백은 답답하다. 상수측은 속으로 웃고 이 바둑은 보나마나 이겼다고 생각한다.
6점이나 접고 이기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가. 그보다는 13도와 똑같은 수는 아니지만 그와 유사한 수를 자기는 상수와 둘 때 범하지 않는가를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 이기는 즐거움에 설렁거릴게 아니라 이 상황에 최선의 변화를 나름대로 확인해두는 연수심이 있어야 하겠다.
16도와 같은 상황에서 하수측이 흑1에 붙여 3 · 5로 좌변을 키우려고 하는 것을 보고 그냥 넘어갈 게 아니라 17도와 같은 멋진 수단이 있음을 스스로 확인해야 한다.
16도
17도
18도
19도
또 18도의 좌하귀는 흑1 · 3으로 공격해봤자 백4로 건너붙이는 맥이 있어 간단히 살아 있는 것이라고 수를 읽고 상수측이 손을 뺐는데, 하수측에서 19도의 흑1로 사석을 활용, 이하 흑13에 패가 났다. 하수라고 항상 잘못 두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정확하고 통렬한 수를 하수도 때로는 구사할 줄 안다.
여기서 상수측이 배울 점은 언제 어디에서든 수읽기가 정확해야 한다는 점과 상대방을 의식하여 적당히 두는 습관이 생기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바둑의 실력은 그 사람의 끝내기 솜씨를 보면 간단히 측정할 수 있다. 사람들이 소홀히 하는 끝내기가 그처럼 중요한 것이다. 특히 접바둑에서는 2, 30집이 오락가락하기 일쑤이다. 18집 끝내기를 옆에 두고 백다섯점을 따먹는다. 당장 8집을 손해보고 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크기를 분간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자. 석집내기를 버려두고 두집 끝내기를 하기도 한다. 이것도 계산이 안돼서 그렇다고 하자, 선수와 후수의 가장 기초적이며 간단한 끝내기를 분간하지 못하고 굳이 후수를 골라 잡는 사례가 보통이다.
이런 경우를 당할 때 승패에 정신이 팔려 상대의 잘못을 기대하고 있을 게 아니라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끝내기 수치를 연구해야 한다.
바둑은 이치만으로 되지 않는다. 책으로 배우는 것 만으로도 되지 않는다. 실전을 통하여 감각을 익히고 단련이 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바둑이다. 하수에게도 배우는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은 무한한 발전이 약속된다.
하수에게 배우는 방법이란 하수의 수단을 거울삼아 스스로의 약점을 보완하는 것이다. 남의 실책과 남의 잘못은 질량의 차이가 있을 뿐 그것이 바로 나의 실책. 내 잘못의 거울임을 알아야 할 것 같다.
참고 도서 : 노영하, 「바둑 이래야 늘어」, 한국기원, 1995. 03. 01
첫댓글 좋은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