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5일(주일) 주일예배 설교 – 성령강림 후 제23주 -
나와 너 사이에 필요한 것
( 빌립보서 2:1~8 )
Ⅰ. 서론
* 부버의 책 〈나와 너 Ich und Du〉(1923) : 나와 너, 나와 그것
나와 너 사이에 무엇이 있을까요? ‘와’가 있습니다. 마틴 부버는 나와 너라는 책에서 인간과 하나님 사이는 늘 ‘나–너’ 관계지만, 인간관계는 ‘나–너’ 관계가 아니라 ‘나–그것’의 관계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비인격적인 관계요 대화가 단절된 관계입니다. 나 외의 인간을 그것으로 보면 이해타산에 따라 행동합니다(눅 10:31-32). 나에게 이득이 되느냐 손해가 되느냐로 판단합니다. 그러나 나-너로 본다면 다릅니다. 가장 먼저 드는 마음은 ‘긍휼지심’입니다(눅 10:33). “너로 보느냐, 그것으로 보느냐?”
*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너’는 내 아들이라 부르신다. 결코 ‘그것’이라고 부르신 적이 없다. 그래서 우리도 서로 나-너로 부르며 살아야지, 그것으로 대하면 안 된다.
Ⅱ. 본론
* 너를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 책임적인 존재다.
아픔을 싸매주고 돌보아주는 사람, 끝까지 책임져주는 사람을 진정한 ‘이웃’이라 부릅니다(눅 10:34-35). 그는 그랬습니다. 그는 비록 유대인에게 멸시를 받았지만, 개의치 않고 여전히 그가 할 일을 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 나와 너 사이에 있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첫째, 서로 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2).
* 동상이몽(同床異夢) - 같이 있어도 한 마음이 아니다.
1절에 “권면, 위로, 교제, 긍휼, 자비”라는 다섯 단어가 나옵니다. 이 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효용가치가 가장 높아집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권면해야 상처를 치유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비로소 한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2). 같은 마음, 같은 사랑, 같은 뜻이라야 “한마음”입니다. 서로에게 맞춰주려고 애쓴다면 누군가 희생해야 합니다. 그러면 완전한 한마음이 되기 어렵습니다. 사람은 마음의 키 높이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한마음을 품으려면 방법은 하나뿐입니다(5). 그리스도의 마음!
* 마음의 키 높이를 맞추려면 함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한다.
* 채우려면 먼저 비움이 필요하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
둘째, 자기를 비워야 합니다(7).
* κενοσις - ‘자신의 의지를 스스로 비우는 것’
요한복음의 선언은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요 1:1). 그런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것을 성육신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몸을 입으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려면 먼저 비워야 합니다(7). ‘비운다’는 말은 특권 포기입니다. 기득권을 포기하고 영점(Zero-Base)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님을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마 16:24). ‘자기 부인’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죽는다 함은 자기를 없는 것으로 치고 새 출발하는 것입니다.
*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셋째, 나와 너를 돌보아야 합니다(4).
* 자기를 비우고 서로 수용할 때 한 마음이 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 “돌봄”이 필요합니다. 돌봄을 care한다고 합니다. 요즘 케어라는 말은 너무 흔하게 쓰입니다. 너-나 사이에 꼭 있어야 하는 것이 바로 ‘케어’입니다. 4절을 보면 2가지 케어를 말합니다. 먼저 자기를 ‘케어’해야 합니다. ‘케어’해 주려면 먼저 ‘케어’받아야합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레 19:18).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사랑을 받아보아야 사랑을 알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돌봄은 철저히 돌봄을 받는 입장에서 해야 합니다. 관용의 마음으로 돌봐야 참 돌봄이 됩니다(빌 4:5).
* 관용(寬容) - 자신과 다른 특성을 가진 이의 인격권과 자유를 인정
Ⅲ. 결론
* 모바일 중독 – 관계를 무너지게 한다.
‘나’는 ‘너’를 통해 ‘우리’가 됨으로 ‘진정한 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산다면, 나에게 너는 정말 소중한 존재입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나와 너 사이에 ‘그리스도’가 계셔야 합니다. 그래서 5절에 “너희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을 것을 요구한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 바로 우리가 출발할 ‘영점’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너를 소중한 존재로 수용하고, 나를 돌봄 같이 너를 돌볼 줄 아는 존재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 나에게 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