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辭典)에 포퓰리즘(Populism) 을 이렇게 정의해 있습니다.
"일반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 형태. 대중을 동원하여 권력을 유지하는 정치 체제로 대중주의라고도 하며,
엘리트주의와 상대되는 개념이다.
즉 '인기 영합을 위해 재정은 고려하지 않고 거저 퍼주는 개념'으로 이해되는 말입니다..
또한 우리 속담에 "외상이면 소도 잡아 먹고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러한 인기 영합에 의해 포퓰리즘 정책을 시행한 결과 국가가 거지 나라로 전락한 사례를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작금의 우리나라 일부 정치인 그리고 단체가 포퓰리즘 정책을 계속 주장하고 있음이 안타까와 여기
위대한 지도자가 있어 소개해 드립니다. 우리도 이러한 지도자가 출현하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지 도 자 상 /스웨덴 타게 엘란데르 총리
'스웨덴은 1인 당 국민소득이 무려 5만 달러가 넘을 뿐더러,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입니다.
또한 스웨덴은 전 세계에서 국민 행복 지수와 반 부패지수 (국가 청렴도 지수)가 최상의 순위를 유지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약 80 여 년 전만 해도 스웨덴은 가난, 실업, 빈부 격차, 좌우 갈등.극심한 노사 분쟁 등으로
그야말로 절망의 나라였습니다.
특히 노동 손실 일수가 세계에서 가장 높을 정도로 노사 분규가 가장 극심한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꿈꾸는 최상의 복지국가로 변모 되었습니다.
이처럼 많은 국가와 국민들이 부러워하는 스웨덴을 일구어낸 데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타게 엘란데르>라는 정치가입니다.
스웨덴에서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이 누군지 물어보면 대답은 한결 같습니다.
1946년 45세부터 23년 간 총리를 지낸 "타게 엘란데르"(1901~ 1985)는 재임 중 11번의 선거를 모두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마지막 선거에서는 스웨덴 선거 사상 처음으로 과반을 넘는 득표율로 재 집권한 후 후계자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떠납니다. 정말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20여 년의 장기 집권이 가능하도록 스웨덴 국민들이 신뢰를 보낸 이유가 무엇일까요?
1. 대화와 타협
타게 엘란데르는 청년 시절 급진주의 활동을 한 좌파 정치인 이었습니다.
그래서 총리로 선출되었을 때 왕과 국민들은 많은 걱정을 했고, 특히 노사분규로 힘들어 하던 경영자
들의 거부감은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취임 후 그의 행보는 전혀 달랐습니다.
야당 인사를 내각에 참여 시키고 경영자에게 손을 내밀어 대화를 한 후 노조 대표와 함께 3자 회의로
노사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의 대화 정치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목요회의 입니다.
매주 목요일 스톡홀름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총리 별장에 정·재계 노조 인사를 초대해 저녁 식
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곤 했습니다.
국회의원, 지방 의원, 경총 노총 대표 등 안 가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목요회의가 성공한 것은 보여 주기식의 대화가 아닌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
하는 진정성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국민을 행복하게 만든 복지 제도도 이런 대화 정치 덕분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2. 검소한 삶.
스톡홀름 남쪽 린셰핑이라는 작은 도시가 있습니다. 그곳에 타게 엘란데르의 아들 부부가 살고 있습
니다. 그의 아들은 대학 총장을 역임한 후 아버지가 살아온 길을 책으로 발간했습니다.
아들 부부가 들려주는 부모님의 이야기는 동화 속의 이야기처럼 감동의 연속입니다. 엘란데르는 최고
권력자 이었지만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총리 시절에도 이십 년이 넘은 외투를 입고 구두도 밑 창을 갈아가며 오래도록 신었습니다.
검소함은 부인도 똑같았습니다.
집권 23년 동안 국회 개원 식에 참석하기 위해 입던 옷은 단 한 벌이었다고 합니다.
아들 부부는 부모님이 국민을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 하셨다며 검소함은 두 분의 삶의
전부라고 자랑스러워했습니다
3. 특권 없는 삶
부모님은 총리 시절에도 관저 대신 임대 주택에서 월세를 내고 살았습니다. 출퇴근도 관용 차 대신
어머니가 직접 운전하는 차를 이용했습니다.
임대 주택은 자신의 재임 시절 서민을 위해 지은 아파트입니다. 그는 특권을 버리고 국민의 삶 속으로
들어와 친구처럼 다정한 이웃처럼 지냈습니다.
1968년 국민들은 다시 한 번 깜짝 놀랍니다.
타게 엘란데르가 총리를 그만둔 후 거처 할 집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당원들이 급히
돈을 모아 집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스톡홀름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봄메쉬빅이라는 한적한
시골 마을입니다.
총리 부부는 마을 호수 옆에 있는 이 작은 주택에서 16년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총리 시절보다 더 많
은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지지자보다 반대편에 섰던 사람이 더 많이 찾았다고 합
니다.
4. 정직한 삶
아들 부부가 또 다른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어머니 아이나 안데르손 이야기 입니다.
그녀는 고등학교 화학 교사로 남편이 총리를 하고 있던 시절에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평범한
삶을 살았습니다.
엘란데르가 퇴임한 후 어느 날 부인은 정부 부처 장관을 찾아갑니다. 그녀의 손에는 한 뭉치의 볼펜
자루가 들려 있었습니다.
장관이 반갑게 인사하며 방문 이유를 묻자 볼펜 자루를 건넸습니다. 볼펜에는 정부 부처 이름이 쓰여
있었습니다.
남편이 총리 시절 쓰던 볼펜인데 총리를 그만 두었으니 이제는 정부에 돌려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
니다.
부모님 이야기를 들려주던 아들 부부는 그리움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립니다.
타게 엘란데르는 떠났지만 23년 동안 국민을 위한 그의 헌신은 스웨덴 정치의 교과서로 자리 잡았고
스웨덴을 세계 최고의 행복한 나라로 만든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도 이런 지도자가 반드시 출현해서 G-2로 가는데 길잡이가 되고
국민들의 자랑이 될 것을 기대하고 소망 합니다.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