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휴대폰으로 여행의 흔적을 남기고 사진으로 뽑지 않는다.
70~80년대엔 사진이 비싸서 필름을 사면 카메라를 빌렸고 24장도 50장 정도 찍을 수 있도록 아꼈다.
대신 화질이 좋지 않았고 그래도 사진으로 남은 흔적을 보면서 과거를 추억했다.
당시 관광지를 가면 작가나 정부에서 찍은 사진을 편집 화보집을 만들거나 엽서로 제작하여 팔았다.
수학여행이나 단체관광을 가면 사왔고 처음엔 자주 보고 살피다 어느날 집에서 사라졌고 새로운 장면에 익숙해졌다.
70년대 촬영한 강릉의 모습은 지금과 많이 다르지만 기본적인 것은 별 차이가 없다.
관동지방의 중심도시로 대관령 구부러진 길을 넘으면 동해가 끝없이 펼쳐져 있고 과거엔 강릉역 주변에 터미널이 있었지만 90년대 외곽으로 터미널을 이동을 했고 교동이니 옥천동, 강릉의 인물인 신사임당의 이름을 딴 임당동 교산 허 균과 인연이 있는 초당동 바닷가에 가까운 포남동 송정동도 가보고 아담한 시가지를 걸으며 다른 도시완 달리 일 때문에 가거나 누구를 만나러 가도 관광 왔다는 느낌을 더 받았던 도시가 강릉 이었다.
6.25당시 큰 폭격이 없었으며(초기엔 북한군과의 격전에서 8사단이 크게 밀리지 않았고 철수작전을 월할하게 한다.) 예전 건물이 남아 있어 문화적 가치가 높고 바닷가 도시지만 생각보다 어업의 비중이 낮고 주문진이 어항으로 있지만 강릉시가지완 정서가 다른 것 같고 이웃인 평창의 도암이나 정선의 임계 같은 경우는 태백의 서쪽이지만 강릉의 영향을 많이 받고 말투도 비슷하다.
사시사철 아무 때나 가도 아름다운 곳이지만 막상 생활을 영위하는 시민들 입장에서는 느낌이 다를 수 있다.
바다와 산이 아름다운 강릉!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