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이라 쉬고 있는데 동료로부터 쇼핑을 가자는 톡이 날아왔다. 난 자연스럽게 좌표부터 보내라고 한다. 그런데 동료는 그 때 갔던 그 곳이니 거기서 만나자며 '그'라는 지시어만 남발하고는 답을 더 이상 안한다. 난 내비게이션에 쇼핑몰을 검색해서 찍고 나서야 '그'것이 기억에서 기어 나온다. 난 항간의 명칭으로 '길치'인가보다. 분명 어제 갔던 곳도 기억이 잘 안날 때가 많다. 20분 거리에 있는 골프 연습장에 가는데 그것도 내비게이션을 켜고 열 번 이상 반복해 가봐야 그때서야 주변 건물이나 신호등, 길의 요철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러다보니 함께 연습장에 다니는 동료마저 조기 치매 아니냐며 비웃을 때도 많다.
동료 말대로라면 난 태어나면서부터 치매였던 것이겠지만 난 그렇지는 않다고 부정한다. 십리 길을 등하교하던 초등학교 시절엔 갔던 길을 그대로 갔다 오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름길을 발견한 한 친구를 따라갔다가 헤맨 이후로는 혼자서만 지름길을 마다하고 빙 둘러서 오는 원래의 길을 고수했던 기억이 있다. 벌써 동네 어귀에 도착해서 구슬치기 중반전까지 치르고 있는 친구들에겐 난 고집 센 샌님이었지 길치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건 그저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일 뿐이지 이것이 치매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인지 싶었다.
지금은 내비게이션이 있어서 그런지 길 찾는 데 별로 어렵다거나 그런 생각을 안 해 본 것 같다. 그럼 이게 없었던 시절에는 난 어땠나. 군대에서 위생병으로 근무할 때 계급이 낮아서 앰뷸런스를 못타는 시절이라 행군 말미에 의료 가방을 메고 보병들과 함께 보조를 맞추던 날이 있었는데, 상병이 본부에 알콜을 빠뜨리고 왔으니 뛰어갔다 오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있었다. 갔다 돌아오는 길을 잃어서 하마터면 탈영병이 될 뻔 했었다.
또 한 번은 직장인 초기에 전셋집으로 평수를 늘려 이사 가는 집을 그 전에 몇 번 어머니와 답사한 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퇴근 후 새 집이 기억이 나질 않아 근처까지만 겨우 겨우 찾아 간 다음에 전화로 어머니를 불러낸 적도 있었다. 대체 이건 무슨 병인가 싶었다.
그런데 이건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누나도 여동생도 모두 나와 같은 증세를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유전자가 그런가 보다. 내비게이션이 처음 등장했을 때 그래서 우리들은 쾌재를 불렀었다. 이젠 목적지에 가다 말고 가다 말고를 반복하며 차창을 내리고는 연신 행인들을 불러 세워놓고 물어보지 않아도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초기 모델들이 버퍼링이 너무 심해서 어떤 지역에서는 아예 기계가 멈춰서 길을 안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한 번은 여동생이 양재동에서 밤늦게 울먹이며 다급한 전화가 왔었다. 차가 밀리는 퇴근 시간에, 그것도 갓길도 거의 없는 서울 도심에서 네비게이션이 먹통이 된 것이다. 이것이 다시 일을 시작할 때까지 그 주변을 한 시간 째 빙빙 돌고 있다는 소리였다. 하기야 안양으로 오는 이정표가 눈에 안 들어오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믿음이 안서는 것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서울서 안양까지 계속 '안양'이란 글씨가 보여야 하는데 오다보면 중간에 이정표에서 '안양'이 사라져 있는 황당한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원래 길 잘 찾는 사람이야 추론이 가능할 것이다. 과천 쪽으로 넘어가면 거기서부터 또 안양이란 글씨가 등장할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지리 의식이나 공간 감각을 이용해 추론을 해야 하는 이정표의 불친절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날도 여동생은 밤늦도록 기계의 부활만을 기다리며 하염없이 양재동에서 주행 운전연습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그저 공간 감각이 남들보다 좀 떨어진다는 것으로 단정해서 그런가, 난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데도 주변의 시선들 때문에 그래도 한 번은 진짜 알츠하이머 뭐 그런 건 아닐까 싶어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 본 적도 있다. 그 때도 인지장애라든가 기억력이라든가 이런 검사 항목에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당연한 결과인 것이, 만약 기억력이 문제가 되었다면 가장 기억력이 중요한 공부는 어떻게 해서 사대문 안의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며, 또 학기 초에 새 학급의 아이들을 얼굴과 이름을 연결해 외워야 하는 담임의 역할을 다른 선생님들보다 더 빨리 끝낼 수 있었을까 말이다.
생각건대, 이건 골프 동료가 오이를 못 먹는 것처럼 음식 알러지 같은 것은 아닐까. 대개 다른 것들은 다 정상인데 유독 한 분야에서만 뇌가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것 말이다. 아니면 어쩌면 디지털 치매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내비게이션이란 기계에 대한 의존이 반복되다 보니 애써 지도를 찾고, 가는 길을 구상해 보고 하는 부분을 생략하는 데서 오는 편리함에 익숙해져 있는 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서'라는 말을 가장 싫어하는 내가 어느 때부턴가 나도 모르게 '그런 사람'으로 날 편입 시키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의 샌님이나 공간감각의 부재자로서도, 기계의 탄생 후에 그 뒤에 치부를 숨겨버린 결핍자로서도 난 이것들을 이겨낼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적이 있었는지 반문하고 있다.
용기를 내어 오늘은 골프연습장에 내비게이션 없이 출발해 보려한다. 가다가 동료 집에 들러 그를 태우고도 갈 요량이다. 또 헤매다가 평소보다 두 배나 걸릴 나를 동료는 다시 핀잔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오늘만큼은 태평할 것이다. 왜냐하면 줄곧 지금까지 내 삶의 내비게이션은 안내자 따로 없이도 정직했고 정확했기 때문이다. 만약 동료가 치매냐고 또 묻는다면 난 이렇게 답할 생각이다.
"길은 가끔 잃을지언정 그래도 네가 누군지는 안 잊어 먹었잖아!“
첫댓글 단축번호 생기고 전화번호 잃어버리듯 네비게이션 때문에 길치가 많이 생겼죠.
나는 17~8년 전쯤 되는데 쪽지 하나 들고 경기도 구석구석을 잘도 찾아다녔는데 지금은 안 될 것 같군요.
전화번호도 집사람 거 말고는 아들 번호(자주 바꾸기도 하지만)도 단축 외에는 몰라요.
심한 길치에다 기계치인 내게 많이 공감되는 내용입니다.
그래도 네비게이션과 오토매틱이 생겨서 운전도 하고, 직장생활 할 때 컴퓨터 관련 문제도 잘 도와주는 동료가 있어서 큰 어려움 없이 살아왔습니다.
언제까지나 인생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망각하지 않고 성실히 사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탈영병 될 뻔한 이야기에 빵 터졌습니다.
이제 국민 모두가 내비게이션, 네이버 지도 없으면 약속 장소 잘 못 찾는 길치가 많아졌어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에그머니나~~제 얘기를,,,
여동생일화까지도요.
저는 디지털치매는 분명하고
공간감각이 떨어지는 것도 있지만
겁이 많다는 점이 큰 것 같아요.
모험, 도전을 두려워하다 보니 가던 길만 갑니다.
겁이 새로운 길, 새 공간을 보는 눈을 가로막는 것 같아요.
고속도로 노우, 멀더라도 국도 오케이~~
가던 길만 쭈욱~~
이제는 당연히
의지할 수밖에 없는
문명의 편리함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