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더위가 지구를 덮쳤다.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지구는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넜나 보다. 지구온난화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인간이 배출한 이산화탄소가 주요 원인 중에 하나라고 지목된다. 이산화탄소를 뿜는 원인은 우리가 먹는 소고기, 비행기, 자동차, 발전소 등이다.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간 다음 렌터카를 타고 소고기 맛집에 가 전기 그릴로 고기를 왕창 구워 먹는 행위는 지구온난화를 가속시키는데 1등인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사랑하는 에어컨도 문제다. 에어컨이 아니면 이 더위를 피하기 힘들지만, 에어컨은 엄청난 전기를 먹고 이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화력발전소가 다시 이산화탄소를 뿜어내 지구온난화를 가속시키는 악순환을 일으킨다. 에어컨을 개발한 캐리어는 인류의 구원자가 아니라 인류의 적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선풍기에게 희망을 걸어야 한다. 무지막지한 전기 요금으로부터의 구원자, 그리고 더욱더 뜨거워지는 지구의 구원자, 30대를 한꺼번에 틀어도 에어컨 한 대보다 적은 전기를 먹는 선풍기의 모든 것을 알아보자.
※ 이 기사는 찬물 샤워 후 시원한 선풍기 앞에서 수박을 먹으며 보는 것을 권장한다.
최초의 선풍기는 언제?
▲ 응? 형이 거기서 왜 나와?
선풍기를 만드는 것은 정말 쉽다. 어려운 기술이 하나도 없다. 전기로 돌아가는 모터에 날개만 달면 끝이다. 날개에 손이 닿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안전망을 달면 바로 완성품이다. 모터 빠르기를 3단 정도로 구분하고 회전 기능만 넣으면 21세기에도 팔리는 선풍기가 된다. 아주 쉬운 기술이기 때문에 선풍기의 발명자를 굳이 찬양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참고로 전기로 돌아가는 현대적 의미의 선풍기는 미국, 러시아, 중동 등에서 서로 원조를 주장하고 있다. 각기 신빙성이 있기 때문에 누가 진짜 원조인지는 애매하다. 선풍기로 유명한 기업인 '다이슨'은 1882년 미국 엔지니어 '스카일러 휠러'가 만든 것을 최초의 선풍기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전에도 태엽을 이용한 기계식 선풍기에 전원을 연결해 자동 선풍기를 만든 기록이 여러 나라에 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진 제품이다. 다만 전기모터를 달아 속도가 빨라진 이후에는 아이들이 선풍기가 돌아갈 때 손가락을 집어넣어 손가락이 잘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한국에서의 선풍기는 언제 등장했을까? 1959년 금성사(현재의 LG전자)가 최초로 선풍기를 생산했다. 사실 국내 전자제품 대부분은 금성사가 최초로 생산했다. 전화기, 라디오, 세탁기, 에어컨, TV 등등. 한편, 한국에서는 선풍기를 틀고 잠이 들면 죽는다는 선풍기 괴담이 유행하기도 했다. 그 괴담에 따르면 에어컨을 틀고 자면 아마 뼛가루도 찾지 못할 것이다.
100여 년간 거의 변화가 없던 선풍기 업계에 변화의 바람이 분 것은 21세기에 들어서다. 2009년 영국의 다이슨은 제트엔진 원리를 도입해 날개 없는 선풍기를 개발했다. 이 선풍기는 겉으로 드러난 날개가 없다. 날개가 없는데 어떻게 바람이 불까? 사실 트릭이다. 몸통에 날개가 있다. 이 날개가 맹렬히 회전해서 원형 고리의 좁은 틈 사이로 바람을 밀어낸다. 그런데, 이 바람만으로는 바람이 약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유체역학이 개입한다. '베르누이 효과'다. 베르누이 효과는 비행기 제트엔진의 원리로 고리 안쪽 부분이 공기 흐름이 빨라지면서 압력이 낮아지고 이에 따라 주변 공기가 고리 안쪽으로 모여들면서 바람이 거세진다. 다이슨 선풍기의 중앙이 비어 있는 것은 머리를 집어넣기 위함이 아니라 베르누이 효과의 구현 때문이었다는 얘기다!
▲ 도시바의 특허 출원 도면
사실 날개 없는 선풍기는 1981년 도시바가 먼저 개발했지만, 제품 출시를 하지 않았고 20년이 지난 2001년 특허가 자연 소멸됐다. 다이슨이 이를 낚아챈 것. 다만 날개 없는 선풍기는 바람이 그리 시원하지 않았고 제트엔진 소리가 났다. 다이슨도 이를 의식해 소음을 줄이고 바람 세기를 높이는 식으로 개량했지만, 최근에는 선풍기의 목적보다는 공기청정기나 히터, 가습기 등의 파생상품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선풍기의 세 번째 혁명은 BLDC 모터가 아닐까? 2010년 일본의 발뮤다는 새로운 선풍기를 기획한다. BLDC 모터를 도입한 선풍기다. BLDC 모터는 DC 모터에서 정류자와 브러쉬를 빼면서 내구성을 높이고 소음을 줄인 모터다. 기존에 쓰이던 AC모터에 비해 열이 나지 않고 속도 제어가 자유로웠으며 전기소모도 적었다. 전기소모가 적으니 배터리를 넣어 이동이 가능한 선풍기도 개발이 가능했다. 하지만 단 하나의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값이 비쌌다. 심지어 작은 벽걸이 에어컨보다 비쌌다. 이렇게 비싼 선풍기를 누가 쓸까 했는데 의외로 인기를 끌며 발뮤다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발뮤다 덕분에 BLDC 선풍기는 큰 인기를 끌어 샤오미, 도시바, 플러스마이너스제로 같은 해외 업체들은 물론 국내 업체들 사이에서도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선풍기 평균가격은 엄청나게 상승했지만 소비자들은 좀 더 시원하고 쾌적한 바람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선풍기의 네 번째 혁명은 스마트다. 대표 제품은 샤오미의 스마트 선풍기다. 샤오미는 원래 보조배터리나 스마트폰으로 유명한 중국 기업이었는데 2016년 샤오미 선풍기를 내놓으며 큰 인기를 끌었다. 샤오미는 스마트폰 제조업체답게 앱으로 모든 제품을 구동하는 일종의 하드웨어 생태계 전략을 만들었다. 따라서 샤오미 선풍기는 단 두 개의 버튼밖에 없다. 회전 버튼과 전원 버튼이다. 회전 반경이나 세부 제어는 앱으로 조절이 가능하다. 심지어 집 밖에서도 선풍기를 끄고 켤 수 있어 가족들이 시원하게 바람을 쐬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 또, 다른 샤오미 제품과의 연동도 가능하다.
해묵은 떡밥! 날개수에 따른 효과는?
▲ 무려 7년 전에도 논란이 되었던 선풍기 날개
일반적인 선풍기의 날개는 3개, 4개, 5개가 많다. 그런데 최근 많은 연구를 통해 선풍기의 날개 수가 다양해지고 있다. 샤오미는 7개의 날개가 가장 시원한 바람을 만든다고 주장하고 발뮤다는 14개의 날개를 이중으로 배치하여 소용돌이형 바람을 만들기도 한다. 사실 어느 날개 개수가 가장 효과적인 바람을 만들어 내는지는 정답이 없다. 날개 개수뿐만 아니라 날개의 형태, 날개의 두께, 모터 성능 등 많은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날개 개수는 거의 고려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날개 개수가 늘어나면 확실히 바람을 멀리 보내는 데는 유리하다. 대신 소음이 커질 수 있다. 그럴 경우는 날개의 크기를 줄이고 두께를 줄이면 소음을 줄일 수 있다. 대신 바람이 멀리 가지 않는다. 반대로 3엽 선풍기라도 날개 크기를 키우고 두께를 크게 하면 바람을 멀리 보낼 수 있다. 대신 소음이 증가한다. 그러니 날개 개수에 따라 선풍기를 고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밸런스다.
지난해와 올해, 거리에서 휴대용 선풍기를 쉽게 보게 됐다. 처음에는 휴대용 선풍기를 든 사람이 다소 이기적으로 보였지만 이제는 흔해지니 자연스러워 보일 정도다. 특히 여성분들은 화장이 지워지지 않아 휴대용 선풍기가 필수품이 됐을 정도다.
▲ 이거 알아보면 아재 인증?
휴대용 선풍기의 초창기에는 아이들의 유모차에 달아주거나 장난감 정도의 수준이었다. 주로 알카라인 건전지를 사용하는 저가품으로 심지어 뽑기로 뽑는 500원짜리 선풍기도 있었다. 그런데 수요가 늘어나자 USB 충전 타입 제품들이 선보였고 초창기 모델에 비해 디자인도 예뻐지고 배터리도 오래가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전문 디자이너가 설계해 완성도를 높이고 목에 걸고 다닐 수 있는 핸즈프리 선풍기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마크앤드로의 'H-fan'이 대표적이다.
선풍기는 편리하다. 전원만 꽂으면 바로 바람이 나오고 실외기를 설치할 필요도 없다. 이사할 때도 그냥 덜렁 들어 옮기면 된다. 휴대용 선풍기부터 탁상용, 벽걸이용, 천장용, 스탠드형 등 형태도 다양하다. TV는 없어도 선풍기가 없는 집은 없을 정도로 우리에게는 친근한 필수품이다. 하지만 너무 흔하다 보니 소중함을 모르는 것은 아닐까? 모두 에어컨을 외치고 있지만, 이 위기만 벗어난다면 선풍기 하나만으로 천국에 온 듯한 행복을 맛볼 날이 곧 올 것이다. 그때까지 모두 건강 잃지 말고 잘 견디시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