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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산리 농로에서 바라본 백운봉
들쭉날쭉한 해안선을 척도(scale) 없이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것이 1킬로미터에 걸쳐 길게 뻗어 있는지,
아니면 10킬로미터, 100킬로미터를 뻗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이렇게 서로 다른 척도에서 구별할 수
없는 배열의 성질을 프랙탈(fractal)이라고 한다. 이것은 자연의 패턴이 가진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이다.
솜털 같은 구름의 가장자리, 나뭇가지 끝의 잔가지가 나무의 전체 모양을 모방하는 방식, (……) 자연에
존재하는 많은 프랙탈은 처음 볼 때는 무질서해 보인다. 나무나 산세는 정확한 대칭성이 없지 않은가. 그
러나 프랙탈 성질이 패턴에 ‘숨겨진 논리’를 드러낸다. 다시 말해 척도가 줄어들어도 똑같은 일반적인 형
태가 계층적으로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과연 무엇일까?
―― 필립 볼(Philip Ball, 1962~ ) 지음, 조민웅 옮김, 『자연의 패턴』
▶ 산행일시 : 2020년 12월 19일(토), 맑음, 추운 날씨
▶ 산행인원 : 5명
▶ 산행시간 : 9시간 44분
▶ 산행거리 : 도상 20.1km(도로 3.0km 포함)
▶ 갈 때 : 청량리에서 무궁화호 기차 타고 일신으로 감
▶ 올 때 : 광탄에서 시내버스 타고 용문에 와서, 전철과 무궁화호 기차에 나누어 타고 청량리 등지에 옴
▶ 구간별 시간
07 : 05 - 청량리역, 일신 가는 무궁화호 기차 탐
07 : 59 - 일신역, 산행시작
08 : 34 - △326.4m봉
09 : 00 - 성지지맥 진입, 490m봉
09 : 44 - 황거고개, ╋자 갈림길 안부
10 : 00 - ┫자 성지지맥에서 추읍기맥 분기
10 : 18 - 삼각산(△538.3m)
10 : 33 - 추읍지맥 분기점
11 : 16 - 수리봉(461.3m)
11 : 35 - 447.8m봉
11 : 57 ~ 12 : 54 - 한치고개, 임도, 점심
13 : 15 - ┫자 추읍지맥 분기점
13 : 36 - 511.1m봉, 산불감시초소
14 : 26 - 노기산(老驥山, 485.9m) 갈림길
14 : 56 - 노고봉 갈림길
15 : 14 - 노고봉(417.3m)
15 : 39 - 다시 노고봉 갈림길
15 : 55 - 423.9m봉
16 : 14 - 330m봉, ┫자 능선 분기, 왼쪽으로 잘못 내림
17 : 03 - 월산리 아랫담 마을, 도로
17 : 43 ~ 19 : 31 - 양평군 지평면 광탄리 광탄교, 산행종료, 저녁
19 : 53 - 용문역, 해산
20 : 51 - 청량리역
1-1. 산행지도(삼각산, 수리봉,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여주 1/25,000)
1-2. 산행지도(노기산,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여주 1/25,000)
1-3. 산행지도(노고봉,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용두, 여주 1/25,000)
▶ 삼각산(△538.3m)
주말에 산에 갈 때는 주로 새벽 첫 시내버스나 첫 전철을 타고 터미널이나 역에 나가 6시 30분을 전후하
여 서울을 빠져나가곤 하는데 오늘은 느긋하다. 청량리역에서 동해선 일신역을 가는 첫 기차는 무궁화호
로 7시 5분이다. 그래도 동짓달이라 캄캄한 밤으로 가고 일신역에 도착해서야 여명이 밝아온다. 일신역은
두메산골의 한적한 간이역이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를 포함하여 여러 지도에는 일신역이 구둔역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개명된
역 이름을 아직까지 고치지 않았다. 이곳 역은 원래 위치했던 일신2리의 구둔 마을의 이름을 따서 1940.
4.1. 구둔역(九屯驛)으로 영업을 시작하였으나, 철로의 복선화에 따라 일신1리의 노곡 마을 근처로 옮겼
으며, 구둔 마을에서 벗어남에 따라 2013.11.20. 소재지 행정구역인 일신리의 이름을 딴 일신역(日新驛)
으로 개칭되었다.
우리는 삼각산을 오르는 선답의 등로 유무와 상관없이 지름길을 고른다. 역사를 빠져나와 노일 마을을 지
나고 산기슭을 향하는 노곡로를 따라간다. 은행나무 한 그루가 온몸으로 한 겨울을 맞선 산자락이다. 은
행농원이 나오고 그 옆의 개울을 건너 산속을 들려했으나 덤불숲이 너무 깊다. 아서라, 뒤돌아 나와 그 위
쪽의 성긴 덤불숲을 뚫는다.
개울을 건너자마자 오르는 밭두둑이 마치 댐 둑처럼 가파르고 높다. 불현듯 내 젊은 시절 샘터의 ‘노란 손
수건’을 떠오르게 하는 노란색의 빈 봉지만 주렁주렁 달린 복숭아밭이 나온다. 그 윗녘에서 뒤돌아보는
일신역 뒤쪽의 매봉산과 배미산이 어엿한 준봉이다. 산기슭 숲속을 좌우로 누벼 옅은 지능선을 추려낸다.
수북이 쌓인 낙엽을 눈이 덮었으니 발목 차는 깊은 눈이 되었다. 부지런히 갈지(之)자 그리면서 오른다.
가파름이 다소 수그러들고 모양 갖춘 능선에 올라선다. △326.4m봉이다. 삼각점은 그 위에 덮인 부토가
얼어붙어 판독하기 어렵다. 잣나무 숲속을 간다. 땅에 떨어져 뒹구는 잣송이가 얼어 돌멩이가 되었다. 고
도 150m를 단번에 올려친다. 낮은 산이라고 만만하게 대할 일이 아니다. 이쯤이야 했더니 더 힘들다. 눈
에 버무려진 낙엽이라 미끄럽다. 흙이 나오도록 낙엽을 헤집어가며 오른다.
성지지맥에 진입한다. 490m봉이다. 거칠던 길이 비로소 풀린다. 성지지맥은 한강기맥 금물산에서 서남쪽
으로 분기하여 성지봉(787.4m)을 그 종주(宗主)로 하고, 여주 강천의 자산(245.6m)까지 이어져 섬강과
남한강의 합수점에서 그 맥을 놓는 도상 68km의 산줄기이다. 우리나라 남한 쪽 지맥 162개의 당당한 일
원이다. 준족들은 한 번에 종주하기도 한다.
첫 휴식한다. 메아리 님이 산중진미인 과메기를 일습 준비해 왔다. 사실 술맛은 분위기와 안주에서 우러
난다. 나는 오늘처럼 한겨울 쌀쌀한 산중에서 이가 시린 탁주에 과메기보다 더 잘 어울리는 안주를 알지
못한다. 과메기는 얼어도 아작아작 맛있다. 그 개운한 뒷맛을 다시며 눈길을 간다. 발길에 차이는 낙엽은
얼었다. 부서지는 소리가 날카롭게 들린다.
바람이 없지만 우리 닫는 걸음에 칼바람이 인다. 말소리조차 얼어 어눌해진다. 눈길 내리막이다. 눈길 선
답의 발자국 모양으로 미루어 고라니가 러셀하였다. 그러나 기왕의 등로는 더 미끄럽고, 사면으로 비켜
잡목 붙잡으며 게걸음 하여 내린다. 뚝뚝 떨어져 ╋자 갈림길 안부다. 황거고개다. 고개 오른쪽 아래에 황
거 마을이 있다. 여태 저축한 고도를 그만 한 입에 털어 넣고 말았다.
산은 으레 이런 것. 다시 산을 오른다. 하늘 가린 숲속이니 아무 볼 것이 없어 그저 걷는다. 준봉을 오르듯
먼 길을 가듯 차분한 걸음 한다. ┫자 갈림길. 추읍지맥 분기점이다. 추읍지맥은 여기서 시작하여 수리봉,
배미산, 추읍산, 개군산을 넘어 한강에서 맥을 놓는 도상 28.5km의 산줄기이다. 귀여운 지맥이다. 우리는
직진하여 성지지맥 삼각산을 다녀오기로 한다.
배낭 벗어놓고 간다. 완만하게 오르내리는 숲속 산책길이 왕복 2.0km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용문산과 그
주변의 산들이 감질나게 보인다. 저 앞에 오르면 조망이 트일까 하고 잰걸음하다 보니 삼각산이다. 정상
은 널찍한 공터인데 사방 키 큰 나무숲 둘러 조망은 무망이다. 그래도 주변의 나뭇가지에 달린 산행표지
기 수가 21개이니 명산 반열이다. 삼각점은 낡아서 어렵사리 판독하여 ‘303 복구, 78.10 건설부’이다.
2. 일산역에서 바라본 옥녀봉, 고래산 방향
3. 산자락 복숭아 밭에서 뒤돌아본 배미산(뒤쪽)
4. 잣나무 숲 오르막길
5. 멀리 가운데가 금물산, 그 왼쪽이 성지지맥의 시작인 성지산
6. 백운봉
7. 황거고개 가기 전 성지지맥 눈길
8. 성지지맥 눈길
▶ 수리봉(461.3m)
삼각산의 서쪽 자락에 자리 잡은 더스타휴 골프장이 조용하다. 눈이 쌓여 골프를 칠 수 없어서일 것. 우르
르 내려 추읍지맥 분기점이다. 당분간은 면계(지평면과 양동면) 따라 추읍지맥을 간다. 여기 내리막도 되
게 가파르다. 고도 100m를 한 피치로 떨어진다. 수리봉을 잔뜩 높여 놓고 오르는 셈이다. 대단한 첨봉이
다. 낙엽 또한 미끄러워 엎어질 듯 비틀거리며 오른다.
수리봉 치고 첨봉이 아닌 경우는 없다. 박성태의 『신 산경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한에 ‘수리봉’은 31
개다. 매봉(매봉산)이나 응봉(응봉산)을 포함하면 135개나 된다. 수리봉은 대부분 산의 형세가 독수리처
럼 생겼다고 하거나, 예전에 봉우리에 독수리 떼가 많이 살았다고 하여 그 이름이 붙여졌다.
수리봉 정상에는 이정표와 추읍지맥 종주꾼들이 달아놓은 정상 표지판, 무수한 산행 표지기 등이 떠들썩
하다. 계속 서진한다. 수리봉을 오른 그 가파름 그대로 내린다. 봉봉을 조심하여 오르내리느라 때 이르게
허기진다. 점심자리 찾는다. 능선은 살랑살랑 부는 바람도 그 끝은 날카롭고 양쪽 사면은 가파르다.
447.8m봉을 길게 내린 안부인 한치고개가 명당이다.
한치고개(-峙--)는 ‘큰 고개’라는 뜻이다. 이따금 승용차가 지난다. 아마 이 고개 북쪽 골짜기에는 있는
신천교회 수양관을 오가는 사람들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고갯마루 살짝 비킨 양광 가득한 산자락에 자리
를 편다. 대패삼겹살 볶고, 길쭉한 만두 넣은 넙죽이 어묵탕 끓이고, 그 국물에 라면 끓이고, 잘 익은 마가
목주를 곁들인다. 이 맛에 겨울 산이 더욱 즐겁다. 엄동이 멈춘 1시간이 너무 짧다.
부른 배 어르며 눈길을 간다. 추읍지맥을 왼쪽 모라치고개로 보내고 일로 직등한다. 오른쪽 산 아래로 보
이는 신천교회 수양관이 고즈넉한 동네다. 그 뒤로 우뚝한 삼각산은 이 근방의 맹주다. 넙데데한 △490.5
m봉에는 ‘푯대봉’이라는 표지판이 붙여 있다. 삼각점은 낡아 판독하기 어렵다. 한 피치 더 오른 511.1m봉
에는 산불감시망루가 녹슬고 망가져 초라한 몰골로 늙은 참나무에 기대고 있다.
511.1m봉 내리막은 독도주의 구간이다. 정상을 약간 벗어나 일견 북진이 당연하게 보였다. 냅다 내리쏟
다 보니 골로 가는 길이다. 뒤돌아 올라 지도와 실지를 자세히 살피고 동진한다. 한 차례 뚝 떨어졌다가
그 반동으로 오른다. 사진은 발로 찍는 것. 등로 벗어나 잡목 헤치고 사면으로 내려 백운봉과 용문산, 문
례봉, 중원산, 봉미산, 도일봉을 카메라에 담고야 만다.
480m봉. ┫자 노기봉 갈림길이다. 노기봉은 놓아준다. 아깝지만 너무 멀다. 거기까지 왕복 2.6km나 되
고, 3개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 흔히 잔매에 골병들고, 애기 매도 많이 맞으면 아프다고 했다. 오늘 산행
산행이 딱 그 짝이다. 숱하게 오르내리는 봉봉의 굴곡이 매우 심하다. 더구나 눈길이다. 비록 산이 낮지만
깊다.
9. 추읍지맥 수리봉
10. 멀리 가운데 괘일산
11. 삼각산, 그 아래는 더스타휴 골프장
12. 오른쪽은 도일봉, 왼쪽은 중원산, 가운데는 봉미산
13. 노고봉 가는 길
14. 왼쪽은 백운봉, 오른쪽은 용문산 가섭봉
▶ 노고봉(417.3m)
이번에는 지평면과 단월면의 경계를 간다. 414.5m봉을 넘고 잠시 잔잔한 숲길이 이어진다. Y자 갈림길.
오른쪽은 옆구리봉인 노고봉으로 간다. 왕복 1.8km. 서슴지 않고 간다. 쭉쭉 내린다. 398.7m봉을 곤두박
질할 듯 쏟아지다가 엉금엉금 기어오른다. 산행표지기 4장 달려 있는 데가 정상이었다. 저 앞 약간 내렸다
가 오른 봉우리가 정상인 줄 알고 더 갔다. 돌아보니 지나온 봉우리가 더 높아 보인다.
다만 지도상의 노고봉이다. 정상 표지석이나 표지판도 없다. 정상주 탁주 분음하고 뒤돌아간다. 398.7m
봉 오름길이 제법 짭짤하다. 눈과 낙엽이 미끄러워 번번이 엎어지다 뒷걸음질한다. 요령이 생긴다. 아까
처럼 맨땅이 나오도록 발길질로 낙엽 헤치며 오른다. 이제 이름 붙은 산은 없다. 광탄까지 곧장 간다. 몇
번의 출렁거림이 있지만 대세는 내리막이다.
423.9m봉. 배낭 털어 먹고 마신다. 423.9m봉을 길게 내린 안부는 임도가 근처 마을이 가깝다고 유혹하지
만 우리는 거들떠보지 않고 직등한다. 330m봉. ┫자 능선이 분기한다. 경솔했다. 지도를 살폈더라면 직진
했을 것을 의심하지 않고 왼쪽 능선을 내렸다. 방향착오를 알아챘을 때는 이미 늦었다. 광탄교까지 2.2km
로 갈 것을 그 두 배로 간다.
인적도 수적도 사라진 덤불숲을 헤치고 내린다. 아랫담 마을 근처다. 대로 따라 가다 농로로 질러간다. 해
는 추읍산 너머로 졌다. 금세 어둑해진다. 참으로 오랜만에 하늘을 쳐다본다. 초승달이 홀로 광활한 우주
를 비추고 있다. 저러하니 고래로 많은 시인들이 초승달을 사랑했다. 동계 정온(桐溪 鄭蘊, 1569~1641)
의 「반갑다 초승달(見新月)」이다.
來從何處來 어디서 와서 이렇게 뜨는가
落向何處落 어디로 가서 저렇게 지는가
姸姸細如眉 어여뻐라 눈썹같이 고운 달
遍照天地廓 하늘도 비추고 땅도 비추고
(한국고전번역원 | 조동영 (역) | 2000)
김소연의 『한 글자 사전』에 나오는 ‘달’이다.
“변해 가는 모습에서 ‘예쁘다’라는 말을 들어온 유일무이한 존재”
초승달은 윙크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이정록(李楨錄, 1964~ ) 시인은 「더딘 사랑」에서 그렇게 보았다.
돌부처는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모래 무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도 없다.
그대여
모든 게 순간이었다고 말하지 말라
달은 윙크 한 번 하는 데 한 달이나 걸린다.
겨우 다섯 명 산행인데도 두 팀으로 흩어져 하산했다. 메아리 님과 나 둘이는 330m봉에서 길을 잘못 드
는 바람에 한참 늦는 줄 알았다. 캐이 님과 칼바위 님, 두루 님이 더 늦다. 그들은 더 멀리 길을 잘못 들었
나 보다. 광탄교 건너 광탄시내다. 대처다. 썰렁하다. 주유소 아래 짜장집에 가기로 하였으나 그 바로 옆집
의 뒷고기가 먹음직하게 보여 그리로 간다.
15. 노고봉 가는 길
16. 노고봉 가는 길에서 뒤돌아본 눈길
17. 월산리 농로에서 바라본 백운봉
18. 월산리 농로에서 바라본 백운봉과 용문봉
19. 월산리 농로에서 바라본 백운봉
20. 하늘에는 초승달, 홀로 광활한 우주를 비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