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속사적 성경묵상 ● (셋째 해_11월 19일)
<시편 88편> “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야로 주의 앞에 부르짖었사오니 나의 기도로 주의 앞에 달하게 하시며 주의 귀를 나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소서.....대저 나의 영혼에 곤란이 가득하며 나의 생명은 음부에 가까웠사오니 나는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인정되고 힘이 없는 사람과 같으며 사망자 중에 던지운 바 되었으며 살륙을 당하여 무덤에 누운 자 같으니이다 주께서 저희를 다시 기억지 아니하시니 저희는 주의 손에서 끊어진 자니이다.....주께서 나를 깊은 웅덩이 어두운 곳 음침한 데 두셨사오며 주의 노가 나를 심히 누르시고 주의 모든 파도로 나를 괴롭게 하셨나이다 (셀라).....주께서 나의 아는 자로 내게서 멀리 떠나게 하시고 나로 저희에게 가증되게 하셨사오니 나는 갇혀서 나갈 수 없게 되었나이다.....곤란으로 인하여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께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 주께서 사망한 자에게 기사를 보이시겠나이까 유혼이 일어나 주를 찬송하리이까 (셀라). 주의 인자하심을 무덤에서, 주의 성실하심을 멸망 중에서 선포할 수 있으리이까. 흑암 중에서 주의 기사와 잊음의 땅에서 주의 의를 알 수 있으리이까.....여호와여 오직 주께 내가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달하리이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나의 영혼을 버리시며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내게 숨기시나이까. 내가 소시부터 곤란을 당하여 죽게 되었사오며 주의 두렵게 하심을 당할 때에 황망하였나이다. 주의 진노가 내게 넘치고 주의 두렵게 하심이 나를 끊었나이다. 이런 일이 물같이 종일 나를 에우며 함께 나를 둘렀나이다. 주께서 나의 사랑하는 자와 친구를 내게서 멀리 떠나게 하시며 나의 아는 자를 흑암에 두셨나이다” (시88:1-18)
“전능자의 살이 내 몸에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치는구나” (욥6:4)
“욥이 또 비사를 들어 가로되 나의 의를 빼앗으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욥27:1,2)
“제 구 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마27:46)
『시편 88편은 표제에 고라 자손의 시 곧 에스라인 헤만의 마스길이라고 표기했는데, 이것은 이 시가 다윗과 솔로몬 때에 성전에4; 27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직무를 맡았던 지혜로운 사람이었던 헤만(왕상4:31; 대상15:19; 16:41-42; 25:1-6)이 지은 시로서 이후에 고라 자손이 시편 모음에 수록했음을 말합니다. 그런 가운데 이 시편은 가장 비통하고 슬픈 탄식시로서, 이 시의 표현이나 사상들이 욥기와 유사한 점이 아주 많아서 흔히 ‘시편 속의 욥기’로 불립니다.
이 시의 서두에서 시인은 하나님을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짖음으로써 노래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주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고 있음을 아뢰면서, 자신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기를 안타까이 호소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당한 현실과 고통을 죽음 가운데 있는 자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즉 자신이 음부에 버려져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지 못하는 잊혀진 자와 같은 처지에 있다고 묘사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통을 하나님께서 주셨으며 하나님의 노가 성난 파도처럼 자신을 괴롭게 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자신이 당하는 고난의 분명한 이유를 알 수 없으며 또 하나님께서 침묵하고 계신 것이 당황스럽고 고통스러움을 호소한 표현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런 시인의 호소는 의인이었던 욥이 수많은 고난을 당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호소와 거의 동일합니다(욥6:4; 27:2).
시인은 자신이 곤란을 당하자 가까운 친구들이 그에게서 멀어지게 되었다고 말하는데, 이 역시 욥이 겪었던 경험과 유사합니다. 시인은 그런 사회적인 소외로 말미암아 자신은 마치 옥에 갇힌 자처럼 되어서 나갈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하는데, 한마디로 희망의 출구를 발견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사망한 사람이 어떻게 무덤에서 하나님의 하신 일과 그 성품을 찬양하겠느냐고 말하면서 자기가 다시금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며 노래할 수 있도록 구원해 주시기를 간청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은 자신이 고통과 사회적인 소외, 그리고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시인의 탄식과 호소로 끝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그가 서두(1절)에서 하나님을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부른 것은 그가 그 극도의 고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가졌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이해할 수도 없고 견디기 힘든 고통 가운데서도 결코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지 않을 것을 믿는 믿음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이처럼 극한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시인의 모습은 나중에 십자가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으면서도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짖으신 예수님의 모습을 예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마27:46).
오늘도 우리 성도들은 때때로 이해할 수 없고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에도 우리는 간절히 구원을 간구하면서도 이 시편 기자나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믿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 오늘의 기도 ● “어떤 곤경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의지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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