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산에서 바라본 두위봉 연릉
놀처럼 번지는 情 그 季節이 하 그리워
벅찬 숨결마다 닮아가는 諦念인가
호젓한 좁은 산길을 홀로 걷고 싶은 마음
―― 영담 김어수(影潭 金魚水, 1909~1985), 「봄비」에서
▶ 산행일시 : 2017년 2월 18일(토), 맑음
▶ 산행인원 : 14명(버들, 영희언니, 모닥불, 악수, 대간거사, 한계령, 킬문, 상고대, 사계,
두루, 신가이버, 제임스, 오모육모, 메아리)
▶ 산행거리 : GPS 거리 12.1km(1부 5.6km, 2부 6.5km)
▶ 산행시간 : 8시간 16분
▶ 교 통 편 : 24인승 버스 대절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6 : 30 - 동서울터미널 출발
08 : 58 - 영월군 중동면 직동리, 별의계곡 펜션, 산행시작
09 : 48 - 704m 고지, 바윗길
10 : 55 - 단풍산(1,150.9m)
12 : 36 - 직동천, 김어수 공원, 1부 산행종료, 점심, 이동
13 : 25 - 장수골, 2부 산행시작
14 : 42 - 1,054m봉
15 : 03 - 단풍산 주릉
15 : 52 - 1,206.0m봉
17 : 14 - 장수골 아래, 산행종료
17 : 50 ~ 19 : 25 - 영월, 목욕, 저녁
21 : 48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단풍산 정상에서
2. 산행궤적
▶ 단풍산(1,150.9m)
오늘 우리는 영월군 중동면 직동리를 단풍산 북릉 산행의 들머리로 잡았다. 직동리는 직동천
양쪽으로 1천 미터가 넘는 고산준봉이 쭉 늘어선 천혜의 오지다. 이 직동리(稷洞里)에 대한
두산백과의 설명이다.
“백운산(白雲山) 자락의 두메산골인 이 마을은 민초들의 한 어린 사연이 남아 있는 곳으로
동학교도들이 관군과의 접전에서 집단으로 피살되었으며, 가까이는 1949년 좌익 빨치산에
의해서 이 동네의 우익 청년단원 10여 명이 학살당한 곳이다. '직동리'의 유래는 수많은 의병
과 동학교도들이 죽으면서 흘린 피가 계곡 전체를 붉게 물들였으므로 '피 稷'자와 '골 洞'자를
써서 '稷洞里', '핏골'로 부르게 되었다.”
'피 직(稷)'자가 쓰이는 또 다른 지명으로 지리산의 직전(稷田)을 들 수 있다. 옛날 이 일대
에 피밭[稷田]이 많아서 ‘피밭골’이라는 이름이 생겼고 이것이 변해 피아골이 되었다고 한
다. 임진왜란과 한말 격동기, 여순반란사건, 6·25동란 등 싸움이 벌어질 때마다 많은 사람들
이 이곳에서 피를 흘리고 목숨을 잃었다.
‘직전단풍(稷田丹楓)’은 지리10경 중의 하나다. 예로부터 이곳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피를 흘
린 탓으로 초목조차 붉게 물들었다는 데에서 직전단풍이 유래하는 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직동리에 단풍산이 있다. 단풍산 이름 또한 수많은 의병과 동학교도들이 죽으면서 흘린 피가
초목을 물들였다는 데서 유래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피[稷]는 피[血]가 아니라 풀과 벼의 중간 식물인 피를 말한다. 볏과의 한해살이풀로
높이는 1미터 정도이며, 잎은 가늘고 긴데 잎 면이 칼집 모양으로 줄기를 싸고 있다. 여름에
연한 녹색 또는 자갈색의 꽃이 원추(圓錐) 화서로 피고 열매는 영과(潁果)를 맺는다. 이런
피[稷]를 피[血]로 오해하지만 기묘하게 피를 피로 이해하여도 무방하다.
‘별의계곡 펜션’이란 이름이 그럴 듯하다. 첩첩준봉에 가린 하늘이라 밤에는 별이나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이다. 우수(雨水) 물 흐르는 직동천을 건너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결국은
‘별의계곡 펜션’ 마당을 지난다. 출렁다리가 놓였다. 제법 길다. ‘거기는 산에 가는 길이 아
녀…’라는 펜션 할아버지의 다급한 말씀이 뒤따른다.
얕은 지계곡을 사이에 두고 일행이 갈렸다. 다수 일행이 건너편 가파른 사면을 기어오르기에
두루 님과 나는 왼쪽의 완만하게 보이는 산자락을 잡는다. 잡목과 가시덤불 헤치고 잠깐 오
르자 흐릿한 소로가 안내한다. 저들과 곧 지능선 합류점에서 만나겠지 하는 계산이다. 그런
데 그 계산은 착오였다. 처음에 야트막하던 지계곡이 점점 깊어가고 건너편 산등성이의 일행
들 수런거리는 소리는 차츰차츰 아련하게 들린다.
그제야 지도를 들여다보니 갈 길이 달랐다. 단풍산 정상에서나 만날 터이다. 저들이 특히 두
루 님을 외쳐 부르는 건 두루 님의 저간의 길 헤맨 전과를 고려하였기 때문이다. 이래서 전과
자는 늘 괴롭다. 1시간 가까이 잡목과 싱갱이하고 나서 바윗길과 자주 만난다. 직등. 완만하
던 바위 슬랩은 낭떠러지로 막힌다. 뒤로 돌아내려 설사면으로 비켜 오른다.
눈이 딴딴하게 얼었다. 고산 설벽을 크램폰 찍어 오르듯이 등산화 앞축에 힘준다. 땀난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다. 단풍산 주릉이 눈에 잡히고 상고대 눈꽃이 환하여 조급한 마음에 발
걸음을 서둘렀으나 이내 지치고 만다. 가로누운 거목의 고사목을 넘는 것이 쉽지 않다. 단풍
산 주릉이 가까워지고 눈이 깊다. 어쩌다 발목이 푹 빠지고 나면 빼내기 고역이다. 멧돼지 무
리의 러셀 자국을 따른다.
단풍산 주릉에 오르고 정상이다. 일행들을 마중할 겸 조망 찾으러 간다. 서릉 1,072.0m봉의
전위봉인 암봉이 첩첩설산을 둘러보는 드문 경점이다. 그 가경을 맨입으로는 볼 수 없어 암
봉에 걸터앉아 탁주 자작한다. 주릉 약간 비킨 설사면으로 돌아 오르는 대간거사 님을 선두
로 일행들과 반갑게 만나고 단체로 기념사진 찍는다.
하산. 단풍산 북쪽 지능선 5개 중 가운데 능선으로 내린다. 눈은 거의 무릎 차게 깊다가 차츰
얕아지고 직등하기 까다로운 바윗길이 나오고 잡목과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오르막길의
판박이다. 수렴(樹簾)은 두위봉은 물론 하늘까지 가렸다. 아무 볼 것이 없고 뚝뚝 쏟아져 내
린다. 이윽고 직동천. 징검다리 바위가 미끄럽다. 교대로 쌍장 짚고 건넌다.
3. 단풍산 들머리, 앞 암봉은 핏대봉산
4. 단풍산 정상 주변, 상고대 눈꽃이 움트다가 말았다
5. 단풍산에서 바라본 목우산
6. 단풍산 남릉
8. 앞의 암봉은 단풍산 서릉 1,072.0m봉
9. 앞의 암봉은 단풍산 서릉 1,072.0m봉
10. 핏대봉산
▶ 직동리 김어수 공원
직동천을 건너면 김어수 공원이다. 김어수는 이 고장에서 태어난 시인이자 승려이다. 소나무
숲 양쪽과 아래로 평평한 공터에 잔돌을 깔아 단정하게 꾸몄다. 눈 들어 핏대봉산 암벽을 감
상하는 것이 (저기를 어떻게 오를까 하는) 여러 생각으로 즐겁다. 양광 가득한 공터에 빙 둘
러앉아 점심밥 먹는다. 동태탕, 칼국수, 탄탄면 다 맛보려니 오늘도 어깨 들썩여 숨 쉬는 만
복이 불가피하다.
김어수(金魚水, 1909~1985). 호는 영담(影潭). 본명은 소석(素石). 그는 1909년 영월군 중
동면 직동리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가 1905년 을사조약에 반대하는 규탄을 하였으나
한일늑약이 체결되자 가족 모두 부산으로 피신을 와 범어사에 의탁하게 되었다. 13세가 되
던 해인 1922년 그는 범어사에서 출가하였다.
그는 1983년에 한국현대시조시인협회를 창설하여 초대 회장을 맡기도 하였다. 그는 왕성한
집필 활동으로 현대 시조를 불교 정신으로 승화시키는 데 있어 독보적인 경지에 오름으로써
만해 한용운을 이어 종교 문학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한국향토문화전자대
전, 한국학중앙연구원)
길옆에 김어수 시인의 대표작인 시조 ‘봄비’를 새긴 시비를 세웠다. 시비의 높이는 5.5m 폭
은 3.6m이며, 좌대로 앉힌 디딤돌의 무게는 62톤, 시비의 무게가 70톤으로 전국에서 제일
큰 자연석 시비다. 그의 시조 몇 수를 들어본다. 산 첩첩한 이 고장 출신답게 산이 자주 등장
한다.
노래를 잊자 해도 젖어드는 냇물 소리
외로워 거닐어도 산이 앞에 서는 것을
탱자 알 손에 굴리며 번히 보는 저 하늘
―― 「靜」 3수 중 제2수
말이나 할 것처럼 산은 앞에 다가서고
五月 긴 나절에 번져 드는 메아리를
공연히 턱 괴고 앉아 그저기는 내 마음
―― 「落書」 3수 중 제2수
낙낙히 별빛 아래 산과 마주 섰는 마음
천년 낭떠러지 새 하얀 저 그림자
가슴 속 흐르는 강물 쏟아질 것 같으이
―― 「早春漫情」 3수 중 제1수
11. 핏대봉산
12. 영담 김어수 시비, 시비의 높이는 5.5m, 폭은 3.6m이다
13. 장수골 임도
14. 두위봉 연릉
15. 앞은 매봉산 전위봉, 그 오른쪽 뒤 멀리는 태백산
16. 멀리 가운데는 구룡산
▶ 단풍산 동릉 1,206.0m봉
2부 산행. 장수골 쪽으로 이동한다. 임도가 좁아 더 들어가다가는 차를 돌리기 어려울 것 같
아 갈림길에서 멈춘다. 산그늘 진 임도는 빙판이다. 미끄러워 걷기가 산길보다 더 조심스럽
다. 단풍산 북쪽 지능선 5개 중 가장 왼쪽 지능선을 잡는다. 산 이름의 유무를 가리랴. 산을
만들어 오른다. 잡목 헤쳐 산속에 들고 줄곧 오르막이다.
걸으면 덥고 멈추면 춥고, 오늘의 날씨다. 긴 한 피치 오르고 야트막한 안부께에 모여 휴식하
는데 나는 관성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제임스 님 뒤따라 계속 간다. 걷다 보니 불현 듯 욕
심이 생긴다. 이대로 내쳐 조망 좋은 매봉산까지 가자. 제임스 님은 잘 다녀오시라 길을 비켜
준다. 지도를 보지 않고 건방을 떨었다. 이 욕심 때문에 어려운 산행이 되고 만다. 여러 일행
에 누를 끼치지 않고 매봉산을 갔다 오려면 엄청 서둘러야 한다.
환청인가, 일행들의 말소리가 바로 뒤에 쫓아오는 것 같아 더 빨리 걷는다. 생비지땀 쏟는다.
암봉인 1,054m봉에서는 이곳저곳 더듬거리다 내린다. 암릉은 아무리 가파를지언정 미리 설
사면으로 돌아 오른다. 단풍산 주릉이 가까워지고 얼었던 눈이 그새 녹아 발이 푹푹 빠진다.
매봉산 쪽을 향하여 설사면을 대 트래버스 한다.
주릉. 비로소 오룩스 맵을 켠다. 대체 여기서 매봉산 정상까지 거리가 얼마나 될까?
아, 2.4km나 된다. 그것도 눈길, 편도다. 갔다 오려면 2시간은 넘게 걸릴 것. 글렀다. 어쩌면
그만한 거리이기에 가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1km쯤 되었더라면 아마 마음고생 좀 할 뻔했
다. 일행이 오도록 서성이기 무료하여 조망이 트일까 옆의 1,206.0m봉이나 갔다 온다. 하늘
가린 숲속일 뿐이다.
오래지 않아 일행이 모두 모이고, 따뜻한 양지쪽에 둘러앉아 배낭 털어 먹고 마신다. 그리고
하산! 내가 방금 올랐다가 내려온 1,206.0m에서 북쪽 지능선을 타고 내리자 한다. 산행에서
온 길을 다시 간다는 건 대단히 괴로운 노릇이다. 게으른 발걸음에는 아까보다 더 가팔라진
설사면이다. 앞사람이 낸 발자국계단 딛고 오른다.
아이젠 찬다. 눈길 함부로 지쳐 내린다. 경주하듯 내리 쏟는다. 등로 사정은 다른 지능선과
똑 닮았다. 이대로 빈 카메라로 내릴 수야 없다 하고 잡목 뚫고 전망 트이는 바위에 올라 단
풍산 북사면이며 두위봉 연릉과 백운산 들여다본다. 등로의 울창한 소나무 숲 또한 볼거리
다. 산허리 도는 임도와 만나고 임도 따라 내린다.
고사리밭을 지난다. 때로는 ‘호젓한 좁은 산길을 홀로 걷고 싶은 마음’보다 함께 걸어 마냥
흐뭇한 마음이 더 나을 수 있다. 오랜만에 킬문 님과 함께 걸을 때처럼 말이다. ‘말이나 할 것
처럼 산은 앞에 다가서고’는 질운산이다. 멀리서는 미끈하게 보이더니만 가까이 다가가니 울
퉁불퉁한 근육질이다. 산그늘이 드리워 한층 강단 있게 보인다. 산굽이 돌고 돌며 임도 빙판
을 지나고 우리 차가 기다리고 있는 갈림길이다. 맨 후미는 킬문 님과 나다. 무사산행 자축
하이파이브는 차 안에서 나눈다.
17. 단풍산, 그 북사면
18. 단풍산 북사면 너덜
19. 두위봉 연봉
20. 두위봉
21. 하산 길 소나무 숲
22. 두위봉 연릉
23. 오른쪽 뒤는 질운산
24. 하산 중, 킬문 님
첫댓글 가보니 단풍보단 솔이 더한 산입니다 !!!
가을에 가보고 싶습니다 ~~~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눈도 많이 밟아 보고.. 된비알 오름길 힘도들었지만 함께하는 즐거움도 컸습니다.
오랜만에 오지팀과 즐거운 산행을 했습니다. 이번은 M 산행이고 다음은 X 산행이라고 했나요...? ^^
킬문님이 나오시니 단풍산이 명산이 된 듯한 느낌이~ ㅋㅋ. 곧 아프리카로 떠날 짜임새와의 기억도 소중하고, 더 쎄져서 돌아온 산진이형의 모습도 좋네요. 화이팅.
제법 짭짤한 산행이었습니다...두번의 오르내림으로,,,2주만에 오지를 찾아서 그런지 힘이 배가 되는 듯 했습니다...역시 지난주에 이어 조망이 좋아 눈도 호강을 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