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내일까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오늘 계묘년 8월 지장재일을 맞이해서 함께해 주신 여러분 반갑고 감사합니다.
추석 명절 가족들이 모이시고 조상님들께 차례를 잘 모시고 좋은 시간을 보내셨죠?
올 명절 분위기가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좋습니까?
며칠 전인가 잠깐 TV 프로그램을 봤더니 둘 부부가 나와서 인터뷰를 하고 있었습니다.
연세가 아주 지긋하신 분인데 그 보살님이 하신다는 말씀이 친정 분위기하고 시댁 분위기하고 천양지차(天壤之差)라고 그래요.
시집오기 전에 친정집 분위기는 정월 초하루에 웃음꽃이 피기 시작해서 한 해 동안 계속 웃는 분위기라는 거예요.
시집을 와보니까 설날 모여서 싸우기 시작해서 1년 내내 싸우는 분위기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만큼 친정하고 시댁하고는 여러 가지 분위기가 차이가 많이 났는데 견디고 살았다.
아마 이런 취지로 인터뷰를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거사님은 또 둘이 궁합이 잘 맞았으니까 여태 이렇게 살아왔겠죠. 하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명절에 가족들이 모이고 또 조금 더 넓게는 일가친척들이 모이기도 하고 요즘은 소가족들이니까 4촌, 6촌 8촌은 잘 안 모이게 되지만 저희들이 시골에서 생활할 때만 해도 명절이면 일가친척들이 다 집안 어른한테 인사드리러 오기도 하고 또 차례를 모실 때도 6촌까지, 또 증조부대 고조부대까지 다 같이 모이려면 더 넓게 모여야 됩니다. 다 모이는 그런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럴 때 집집마다 가문마다 그 가풍들이 있죠.
여러분의 명절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어땠습니까?
그 인터뷰했던 보살님은 좋은 분위기에서 자라서 싸우는 분위기가 있는 그런 시집으로 시집을 왜 갔을까요?
제가 보살님이라고 그랬잖아요. 보살님이 그 시집을 가셔서 친정집처럼 웃음꽃을 활짝 피우라고 가신 거예요.
그런데 뭐 농사일 바쁘고 그 시댁 식구들 그리고 새로 자녀들이 생기면서 살다 보니까 살기 바쁘지. 그 집안 분위기를 어떻게 바꾼다거나 더 좋게 만들 엄두를 낼 수도 없고 또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그냥 적응하기에 바쁜 그런 삶을 살기가 쉬운 거예요.
이게 우리들의 보통 삶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평생 수행하신 도가 높으신 스님들은 어떠한가?
또 스님이 아니더라도 다른 어떤 모습을 가지고 평생 수행한 분들은 어떠한가?
도 닦는 분들 있잖아요. 뭐 종교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그래서 큰 원을 세우고 세상 사람들을 이롭게 하겠다, 제도하겠다, 구원하겠다 하는 큰 뜻을 세우고 갈고 닦은 분들은 어떤가 하면요.
옛날에 그런 이야기가 있어요.
나는 수행할 만큼 해서 중생 제도를 해야 되겠다.
그런 하화중생의 길로 들어선 분이 저 깊은 산에 도적들이 모여서 오가는 길손들의 재물을 뺏아서 자기 것으로 취하고 또 그 인근 마을에 있는 열심히 부지런하게 농사지어서 수확한 것을 털어서 사는 그런 도적들 속으로 들어간 거예요.
왜 들어갔을까요? 제도 하려고.
제도하려고 들어갔는데 한 3년쯤 지나고 이제 제도가 됐을까요? 어떨까요?
여러분 같으면 제도를 하셨을까요?
3년쯤 지났는데 그 도인이라고 자처했던 사람이 똑같이 도적질을 하고 있더라.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환경에 그대로 젖어 드는 거예요. 환경의 힘이 그만큼 크다고 할 수 있죠.
그러니까 시집와서부터 적응하기 바쁘고 그래서 세월이 지나면서 내가 이 집에 시집와서 집안이 더 일어나고 가문이 일어나고 또 분위기도 점점 좋아지는 그러한 삶을 산 것이 아니라 거기 적응하기 바빠서 거기에 동화돼서 한평생을 살아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소굴에 들어간 그분이나 또 싸우는 이 가문에 시집온 이 보살님이 어떻게 하면 젖어 들지 않고, 자기가 그 속의 일원으로 똑같은 사람이 되지 않고 그 도적들을 구제하고 제도를 하고 이 집안 분위기를 친정집과 같이 웃음꽃이 피는 분위기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그 방법이 있을까요? 길이 있을까요?
그렇게 실컷 싸우고 뜯어말리고 스트레스받고 그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들처럼 오늘 같은 이 자리에 나오는 거예요.
거기서 도적 굴에서 벗어나는 거죠. 싸우는 그 분위기에서 벗어나는 거예요.
벗어나서 어떻게 하는가 하면 스트레스받았던 것들을 방하착하는 거죠.
오늘 같은 자리에서 대비주 하면서 방하착합니다.
그러면 스며들어 있던 스트레스가 빠져나가죠.
스트레스가 젖어 있던 내 마음이 고요하고 밝아지게 됩니다.
그 앙금이 남질 않죠.
서운함이 남지 않습니다.
원망이 불만이 남질 않습니다.
젖어 들어서 서운해하고 불만스러운 상태로 살아가게 되면 자기 인생이 어떻게 되는가요?
맨날 서운하면서 삽니다. 집안이 어떻게 나한테 안 해줘서, 집안이 이래서, 우리 가족 중에 누군가가 이래서 불만스럽고 서운하단 말이에요.
이것은 바로 자기 인생의 권능이 자기한테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나의 행복과 나의 인생은 서운하게 생각하는 그 대상이나 집안 전체, 실체가 없는 추상적인 집안에 마치 그 권능이 있는 것처럼, 집안에 좌지우지되는 착각을 일으키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자리에서 우리가 대비주를 지성심으로 독송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그냥 빠져나가고 서운했던 생각이 나고 일어난 일이 다시 재생되면서 ‘보고 듣고 느끼기’ 하면서 서운한 마음이 싹 걷혀버린단 말이에요.
그래서 자기 자신의 권능, 내 삶의 주인인 그 왕의 통치권, 왕의 자재력, 주인공의 그 대비주(大悲主) 의식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그 분위기를 내가 그대로 다시 재생하면서 싹 걷어내게 되면 내 마음에는 불만도 없고 서운함도 없고 싸우려는 그런 마음도 싹 걷혀버려 있는 상태가 되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또 집으로 돌아갑니다.
집으로 가면 그저께 싸웠던 사람에 대해서 그저께 어떤 일 때문에 섭섭했던 사람에 대해서 아무런 마음이 일어나지가 않죠. 이런 일을 우리가 하는 거예요.
그러면 싸움을 벌였거나 아니면 나한테 짜증을 냈거나 하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나한테 짜증을 냈기 때문에 그 사람은 짜증이 더 활성화돼 있는 상태예요.
그리고 나한테 서운한 일을 했기 때문에 그 사람은 복을 까먹은 것이 돼버린단 말이에요.
그런데 내가 이제 마음을 아주 고요하고 아주 밝은 마음으로 회복해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그 가족을 새로 만나잖아요.
새로 만났는데 그 사람이 내 얼굴을 쳐다보니까 언제 싸웠는지 언제 뭐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생각이 안 날 정도로 마음이 그만 좋아져 버린단 말이에요.
마음이 내 얼굴 보는 순간에 내가 괜찮으니까, 내가 괜찮게 대하니까, 눈치 살짝 보다가 그만 괜찮아 버리거든요.
이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하면 내 마음을 풀지 않고 내가 기분 나쁜 흐린 상태로 계속해서 살아가게 되면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 사람은 감복(減福)이 되는 거고, 오히려 짜증 내고 싸우는 그 에너지가 활성화돼 있는 채로 살다가 또 짜증 내면 플러스되고 또 싸우는 그 에너지가 좀 더 더해져서 점점 굳어져 버리는 그런 일이 벌어지는데, 내가 마음이 아주 편안하고 자비궁전 지혜자리에서 그 사람을 대해주면요.
내 얼굴 보는 순간은 괜찮아 버리거든요. 실제로 괜찮아지잖아요.
언제 괜찮아지는가 하면 내가 괜찮을 때 상대방도 괜찮아지는 거예요.
그러면 그 사람은요 그저께 명절 때에 나한테 짜증 내는 것, 나한테 아주 큰 소리를 내는 것이 어떻게 돌변해 버리는가 하면요, 지금까지 쌓여 있는 그 사람 마음의 스트레스, 그 사람 마음의 뭉침, 응어리가 풀어지는 것으로 변해버리는 거예요.
업장 소멸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로 인해서 그분이 업장 소멸이 일어났으니까 나는 또 작복이 되고 복이 또 늘어나는 겁니다.
이렇게 서서히 서서히 너무 급하게 욕심낼 필요는 없습니다.
이렇게 몇 번만 하다 보면요, 명절 몇 번만 지내게 되면 집안 분위기가 이제 싹 바껴요.
싸우던 분위기가 없어져 버립니다.
서운해서 막 입이 나와서 고생스럽게 명절 음식 준비하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고 그냥 하는 거예요. 즐겁게 기쁘게 하는 거예요. 감사한 마음으로 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분위기가 정말 정겹고 여러분들 집안처럼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하고 바라지 않고 내가 베푸는, 베푸는 것은 물질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얼마든지 베풀 수 있잖아요. 그죠? 편안하게, 내가 편안할 때 저절로 편안해지는 거예요. 편안하게 해주려고 안 해도.
편안하고 정말 고맙고 감사하잖아요.
그리고 오랜만에 온 그 일가친척들이 사랑스러워 보인단 말입니다.
감사한 마음, 사랑스러운 마음, 편안한 마음입니다.
이 마음하고 집안이 가문이 번창해서 가족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출세했을 때 어떨까요?
정말 사랑스러워 보이겠죠? 정말 감사하겠죠?
집안 식구들이 다 건강하고 풍요롭고 행복하니까 마음이 태평하고 편안하잖아요.
이게 일치되는 마음입니다.
지금 이 명절 때 내 마음이 편안하고 그래서 가족들에게 편안함을 제공해 드리고 이게 보시하는 거잖아요.
내 마음이 사랑스러워서 사랑스럽게 대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이 가족들과의 좋은 시간을 보내게 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와 같은 일들이 계속해서 늘어나요.
그래서 가족 구성원들이 일이 잘 풀리고 건강하고 가내가 화평하다는 말이에요.
가화(家和)가 되는 거잖아요. 만사(萬事)가 이루어져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아직 연휴가 내일까지인데도 오늘 이렇게 시간 내가지고 오신 그 공덕으로 이 가문의 숙업(宿業)들입니다. 이게.
가문의 중심 분위기 이런 것들이 이 자리에 앉아가지고 저쪽 사촌네, 육촌네, 이쪽 사촌네 저쪽 사촌네 마음의 응어리까지 내가.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내가 스트레스받을수록 좋아.
스트레스받았으면 그거 풀려고 그 사람 생각하면서 대비주 한편 더 하잖아. 그죠?
그러니까 스트레스 준 것으로 그 사람들은 여러분들한테 좋은 일 한 거야.
스트레스를 줬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성불한단 말이야. 그 사람들 일이 잘 풀려.
이게 바로 천수다라니경에서 이야기하는 그 내용이에요.
여러분 몸을 스쳐 지나간 바람이 어떤 사람의 몸에 닿을 때 그 사람까지 해탈하는 원리예요.
이 명절은 또 하나의 의미가 한 마디를 짓는 거예요. 명절(名節)이잖아. 한자도 ‘마디 절節’자 잖아요.
그래서 한 매듭을 새로 짓고 새로운 마디로 또 성큼 시작하는 시절이기도 합니다.
계절도 이제 바야흐로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입니다.
가장 좋은 그런 계절에 건강도 더 잘 돌보시게 되면 건강이 더 좋아져요.
그리고 오곡백과들이 결실을 맺듯이 우리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지금까지 자라게 하고 꽃을 피운 것들을 한 톨 한 톨씩 이제 결실을 맺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결실을 맺을 때 그것이 새로운 씨앗이 돼요.
결실은 그대로 종료가 아니라 그대로 시작입니다.
그러한 좋은 결실과 시작이 일어나는 정말 좋은 계절에 오늘 지장 법회 오신 여러분들에게 또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결실이 주렁주렁 열리기를 축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