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 이수영선생님 특선
당선인 : 이수영.
당선작 : 38년 만에 보는 사진
수필창작반에서 그 동안 공부하신 이수영선생님께서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부문 수필 특선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



이수영선생님 수상 모습

수필창작반 회원들과 함께
38년 만에 보는 사진
이 수 영
아이들은 차렷 자세로 똑바로 서 있었다.
손은 양쪽 바지선에 꼭 쥔 주먹으로 굳어 있고 박박깍은 머리, 혹은 단발머리의 아이들은 굳은 얼굴로 정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학교에 들어오면서부터 굳어진 차렷 자세는 사진기 앞에서도 변함없었다. 따지고 보면 그 자세는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어른들로부터 배운 최고의 자세였다.
며칠 전부터 내 전화기에 낯선 전화가 몇 차례 걸려왔다.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 받아보니 중후한 중년 남성에서 자지러지게 말을 쏟아내는 아줌마들까지……. 그들은 38년 전, 내가 30대 초반에 Y초등학교 6학년 담임을 했던 나의 제자들이었다.
그들은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내 핸드폰에 무수히 많은 문자들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그들과 찍은 빛바랜 흑백 사진들과 졸업앨범에서 빼 낸 수학여행 사진들까지 ……. 그리고 나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그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을 카톡에 올려놓고 이런저런 설명을 붙여 놓았다.
내가 그들을 담임한 것은 1977년으로 기억된다. 당시만 해도 초등학교 졸업식은 무엇이 그리 서럽고 아쉬움이 많았던지 울음바다였고, 특히 여학생들은 졸업식이 끝나고도 오랫동안 집에 가지 않고 서성거리거나, 며칠씩 학교 주변을 맴돌곤 했다.
졸업식이 끝나고 교실에서 담임과의 마지막 인사가 끝나면 아이들은 내 손을 끌고 학교 안 이곳저곳 다니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쨌든 나는 그들의 모델이 되어 점심을 굶어가며 마지막 한 사람까지 사진찍기 봉사(?)를 해야 했다.
그때만 해도 사진기를 가진 집은 드물었고, 학교에 행사가 있을 때마다 학교 주변 사진관의 사진사가 학교 안을 누비고 다녔다. 특히 졸업식 날은 사진관의 대목장날이었다.
그들이 보내 준 사진 속의 나는 아무리 보아도 내가 아닌 것 같았다. 젊은 얼굴, 그때 유행했던 덥수룩한 머리, 어색한 웃음, 어울리지 않는 양복과 넥타이 혹은 운동복 차림의 헙수룩한 모습이 낯설었다.
그 사진들을 보면서, 그들의 문자를 보면서 그리고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들의 추억담을 들으면서 나의 기억은 점차 그 옛날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칠순이 되던 해, 그 많던 사진들 중 대부분을 버렸다. 외국 여행과 국내 여행에서 찍은 사진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빛이 바래기도 했지만 내 기억에서 멀어진, 이를테면 사진 속의 풍경이 어디였는지도 잘 모르는 사진은 다 버렸다. 엄청나게 많았다. 뿐만 아니라 13년간의 6학년 담임을 하면서 찍은 사진들 그리고 재직했던 학교마다 매년 교사에게 주어지는 졸업 앨범종류들, 직원간 혹은 졸업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도 사진 속 얼굴들을 기억할 수 없게 되면서 그 사진의 보존가치는 없어졌다. 그리고 내 자녀들의 어릴적 사진이나 가족 행사 때 찍은 사진들은 따로 모아 자녀들에게 보냈다.
그렇게 며칠을 정리한 후 뒤뜰에서 커다란 깡통에 담아 훨훨 태우면서 그 모든 사진 속의 인연들을 날려 보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날려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기억하고, 그것을 소중히 하고, 내 기억에 기쁨을 느끼게 하는 이런 기회가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내가 잊고 버리려했던 그 기억들을 그들은 하나하나 사진 속에 담고 있었고 내가 모르는 나의 버릇과 말투까지 흉내내고 있었다. 부끄럽기도 하고 후회스럽기도 했지만 그건 나에 대한 그들의 세계이니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그들에게 초대되어 38년 만의 해후를 했다.
가물가물 하던 기억의 끝자락에 아직도 그들의 어릴 적 얼굴과 버릇이 조금씩은 남아 기억할 수 있게 하는걸 보면 비록 짧은 1년의 담임이지만 인연의 끈이 무서웠고 그 끈은 나와는 상관없이 그들의 삶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음을 보면서 이 또한 무서운 업보임을 깨닫게 했다.
그들과 함께한 사진들 속에는 그 모든 것들이 들어 있었다.
사진은 가상의 현실이다.
신문이나 TV에 이웃돕기 등의 현수막을 내걸고 잘 생긴(?) 얼굴들을 뽐내는 사진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참 잘 났구나’라고 생각하지만은 않는다.
가을이 되어 가로수가 오색 낙엽의 치마를 한 겹 두 겹 포도에 깔아 놓은 이른 아침, 그 위를 호젓이 걸어가는 사람의 외로움이 묻어나는 사진을 보면서, 해돋이나 해넘이, 그리고 억새의 스산한 흔들림이 가슴을 일렁이게 하는 사진을 보면서 느끼는 황홀감은 사람의 시각보다는 사진이 훨씬 더 아름다울 수 있다.
그러니까 같은 사상을 눈으로 보는 것과 사진 속의 영상으로 보는 것, 그리고 가슴으로 느끼는 것은 모두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진은 보는 대로, 느끼기도 하지만 상상이 보태어 지면서 사진과 현실 사이에는 괴리가 있게 마련이다. 그것도 38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다음이라면 말해 무엇하랴.
내가 잊었다고 버렸던, 내가 모른다고 버렸던 그 사진들을 그들은 소중히 추억으로 간직하고 내게 다시 그날들을 기억하게 해주었다. 사진 속에는 그 옛날의 모든 것이 살아 있었다.
첫댓글 이수영작가님의 매일신문시니어 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대경상록수필창작반의 자랑입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이수영선생님의 수상을 다시한번 축하드립니다. 1500여명의 응시작품에서 선정된 작품입니다. 많이 축하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