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역'에서 '히읗'까지, '아'에서 '이'까지, 글자 순서는 어떻게 정해진 것일까?
아무렇게나 어휘가 나열된 국어사전을 상상해 보라. 끔찍하지 않은가 수십만 개의 어휘가 뒤죽박죽 섞여 있다고 한다면, 어휘 찾기는 악몽 그 자체일 것이다. 그러나 국어사전은 자모의 순서에 따라 어휘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음으로써 우리들의 어휘 찾기를 수월하고 즐겁게 만든다. 모든 사전들은 같은 순서로 어휘를 정리해 놓았고, 사전을 찾는 사람 또한 그 자리에 그 단어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사전을 찾는다. 이는 자모의 순서가 사회적 약속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말해 준다.
그럼 우리가 지금 약속하여 쓰고 있는 자모의 순서는 어떤 원칙으로 정한 것일까? 아무렇게나 정한 것이 아니라면 나름대로 뭔가 원칙이 있었을 텐데.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도 이러한 순서를 생각해 봤을까? 순서를 정했다면 어떻게 정했을까?
세종 때에 자모의 순서를 정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떤 근거에서일까? 세종 때의 자료 중 자모의 순서를 기록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은 《훈민정음》 해례가 유일하다. 세종 때 자모의 순서를 정했다고 본다면, 이는 《훈민정음》 해례에서의 자모 설명 순서를 정해진 자모 순서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례에서의 설명은 발음되는 위치와 글자의 관계나 기본자에서 획을 더해 글자를 만드는 원리를 설명하는 것이어서, 이 순서를 약속된 자모 순서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자모의 순서에 있어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훈몽자회》에 나오는 '언문자모'에 관련된 내용이다. 이 또한 자모의 운용을 설명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어, 이 순서가 설명의 편의만을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그 나열 순서가 자모의 순서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오늘날 자모의 순서는 이를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그 순서의 원칙을 알아 볼 필요가 있다. 그러고 보니 《훈몽자회》는 자모의 명칭뿐만이 아니라 자모의 순서에 있어서도 오늘날의 바탕이 되고 있지 않은가. 과연 《훈몽자회》는 《훈민정음》과 오늘을 이어주는 징검다리임을 알 수 있다.
《훈몽자회》의 설명은 초성과 종성에 두루 쓰이는 자모부터 시작하고 있다. 즉,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ㆁ이 그에 해당된다. 그리고 다음은 초성에만 쓰이는 여덟 자를 보이고 있다. 즉, 'ㅋ, ㅌ, ㅍ, ㅈ, ㅊ, ㅿ, ㅇ, ㅎ'이 그에 해당한다.
'ㄱ~ㆁ'까지는 어떤 원칙으로 순서가 정해졌을까? 《훈몽자회》에는 특별한 설명이 나타나지 않지만, 이는 훈민정음에서 기본자 'ㄱ, ㄴ, ㅁ, ㅅ, ㅇ'에 가획된 것을 해당 기본자 뒤에 배치하여 순서를 정한 것으로 보인다. 기본자의 순서는 훈민정음 해례에서 조음 위치에 따른 배열 순서와 일치한다. 즉, '어금닛소리(ㄱ), 혓소리(ㄴ), 입술소리(ㅁ), 잇소리(ㅅ), 목소리(ㅇ)'의 순서로 배열된다. 이 중 'ㅇ'은 초성에만 사용되므로 가획자인 'ㆁ'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ㄴ→ㄷ→ㄹ(가획의 단계)', 'ㅁ→ㅂ(가획의 단계)' 등과 같은 순서로 배열된다.
초성에만 쓰이는 여덟 글자의 순서는 어떻게 정해졌을까? 이 역시 'ㄱ~ㆁ'까지의 배열 순서와 같은 원리로 정해졌다. '(ㄱ)→ㅋ', '(ㄴ→ㄷ)→ㅌ', '(ㅁ)→ㅍ', '(ㅅ)→ㅈ→ㅊ ; →ㅿ(같은 계통의 이체자)', 'ㅇ→ㅎ' 등의 순서대로 배열된 것이다. 그래서 《훈몽자회》에서 보여주는 순서가 'ㅋ, ㅌ, ㅍ, ㅈ, ㅊ, ㅿ, ㅇ, ㅎ'와 같이 되었다.
이러한 배열 순서는 현대 우리말 자모의 배열 순서와 원칙이 같다. 단, 없어진 글자가 빠지고 'ㅈ'과 'ㅊ'이 'ㅇ' 뒤에 들어가, 현대의 자모 순서는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ㅋ, ㅌ, ㅍ, ㅎ'으로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ㅈ'과 'ㅊ'이 'ㅅ' 뒤에 오지 않고 'ㅇ' 뒤에 왔을까? 그것은 초성종성통용팔자가 자음의 기본이요 중심이기 때문에, 이를 먼저 배열하고 'ㅈ'과 'ㅊ'을 나중에 배열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럼 모음 글자의 경우는 어떠한가? 먼저 가획자(ㅑ, ㅕ, ㅛ, ㅠ)를 빼고 나면 'ㅏ, ㅓ, ㅗ, ㅜ, ㅡ, ㅣ'가 남는다. 그런데 이들은 중립 모음(ㅡ, ㅣ)을 뒤로 배치하고 나머지 모음을 앞에 배치했는데, 'ㅏ, ㅓ'와 'ㅗ, ㅜ'는 모음의 성격이 '양성(ㅏ, ㅗ)'이냐 '음성(ㅓ, ㅜ)'이냐에 따라 앞뒤 순서를 정한다. 이에 따라 모음의 글자순서는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ㅡ, ㅣ'와 같이 되었다. 이는 현대의 모음 글자 배열 순서와 같다.
《훈몽자회》는 세종과 우리를 이어주는 징검다리의 역할을 충실히 하였다. 우리는 《훈몽자회》를 통해 세종 시대의 한글 모습을 유추할 수 있었고, 세종 당시 자모의 이름과 순서를 아는 데도 큰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세종 때는 물론이고 《훈몽자회》에서도 글자의 순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글자의 순서는 사전 편찬과 같은 국어 정보처리 과정에서나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글자의 순서를 약속으로 정하는 것과 우리말 사전의 편찬이 이루어진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북한의 자모 배열 순서와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