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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애관극장, 1895년 최초의 민간극장 ’협률사(協律舍)’라는 이름으로 문 열어 |
김승국 전통문화콘텐츠연구원 원장(전 노원문화재단 이사장)
나는 고향이 인천이다. 인천 출신이라는 것에 자부심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문화예술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인천의 역사 문화공간들에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데 그중 한 곳이 ’애관극장‘이다.
애관극장은 한국인이 세운 최초의 민간극장으로 1895년 ’협률사(協律舍)’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인천 중구 용동에 문을 열었다. 서울 정동에 1902년 조선 황실이 서울 정동에 세운 ’협률사(協律社)‘와는 다르다. 극장을 연 사람은 객주업에 종사해 큰돈을 번 정치국이라는 사업가였다.
초기에는 신파극 등을 무대에 올리다가 1915년에 홍사헌이라는 이가 인수해 ’애관극장’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연극과 영화를 올리는 상영관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이름난 연극인들과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 등이 이곳에서 공연했다고 한다.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도 애관극장 무대에 올라
사진: 무용가 최승희
음악평론가로서 평생을 공연예술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셨던 박용구(1914~2016) 선생의 예술사 구술 총서 ’한반도 르네상스의 기획자 박용구‘에서 자신도 시 향수로 널리 알려진 정지용 시인과 애관극장에서 최승희의 춤 공연을 보았다고 회고하고 있다.
당시 무대에 오른 이는 최승희 외에 최승희의 수제자 장추화(張秋華)라는 여성이 있었는데 키도 훤칠하거니와 에바 가드너(Ava Gardener, 1922~1990) 비슷한 인상의 대단한 미인이었다고 한다. 과거 우리나라 무용계를 이끈 송범, 조광, 이인범, 김진걸 등이 장추화의 제자였는데, 장추화는 6.25 전쟁 시 최승희와 함께 월북하여 활동하였다고 회고하고 있다.
사진: 무용가 송범
사진: 음악 평론가 박용구
특히 우리나라 무용계의 거장이었던 고 송범(1925~2007) 선생은 양정중학교 2학년 때 최승희의 공연을 보고 춤에 반하여 무용계에 입문하였는데, 송범 또한 박용구 선생이 애관극장에 들렀을 때 장추화가 자기 제자 송범을 자신에게 소개하였다고 회고하였다.
사진: 시인 정지용
세월은 가도 옛 예인들의 발자취는 영원히 남아
세월이 흘러 지금의 ’애관극장‘은 옛 명성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그 자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인천에 내려갈 때마다 나는 ’애관극장‘ 근처를 배회하곤 한다, 아직도 ’애관극장‘ 안에는 땀에 젖어 춤추는 최승희의 거친 숨결과 명창들의 노래와 악사들의 흥겨운 연주 소리가 맴돌고 있는 것 같은 환상에 젖어보는 것도 나의 특권이 아닐까 한다.
사진: ’과거의 애관극장 개관 광고
’사진: 과거의 애관극장
’애관극장‘은 옛 명성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그 자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지금의 애관극장)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그의 눈동자 입술은/내 가슴에 있어/바람이 불고/비가 올 때도/나는 저 유리창 밖/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 하지/사랑은 가고/과거는 남는 것.....
사진: 박인환 시인
박인환의 시(詩) <세월이 가면>의 시구(詩句)처럼 세월은 흘러갔어도 옛 예인들의 발자취는 애관극장 안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문화칼럼니스트 김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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