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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오늘도 거룩한 주의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예배자로서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과 가정과 일터 가운데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게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앞뒤 좌우에 계신 분들과 사랑의 고백, 축복의 인사 나누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사랑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오래된 물건 중에 쉽게 버리지 못하고 지금까지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 한두 가지씩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어떤 사람은 시계를 아주 귀하게 보관하고 있고요. 어떤 분은 낡은 가방이지만 아주 좋은 자리에 이렇게 잘 모셔놓듯이 모셔놓습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았던 것일 수도 있고요. 어쨌든 하나쯤은 오래됐지만 버리지 않는 것들이 있죠. 남들이 볼 때는 사실 별것 아닌 것일 수 있어요. 저게 뭐라고 저거를 가지고 사나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실 요즘 나오는 물건과 비교해 보면 옛날 거 성능이 좋겠습니까? 좋을 리가 없죠. 그렇다고 값이 비싸겠어요 그렇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릴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물건에 담긴 시간 사건 또한 사연 때문인 것이죠. 누군가의 사랑이 담겨져 있고 어떤 사람과 함께했던 추억이 있기 때문에 쉽게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모든 물건의 가치는 가격표로만 결정되는 게 아니죠. 그 안에 담긴 이야기 거기에 따라서 다른 사람은 가치 없게 볼지라도 나에게는 정말 가치 있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세상은 사람을 평가할 때 눈에 보이는 것 이것을 매우 중요시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 얼마나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느냐, 얼마나 큰 일을 해냈는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가 이런 것들이 우리의 삶 앞에 놓여져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어느 순간부터 인생과 인생을 비교하면서 살아가는 거죠. 내가 저 사람보다 더 많이 가졌나 내가 저 사람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가 내가 누구보다 더 인정을 받는가 등등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나라는 사람의 존재를 자리매김해 갑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에 하나님은 우리를 보실 때 우리를 평가하실 때 우리가 지금까지 얘기했던 세상의 기준, 세상의 평가의 기준을 가지고 우리를 판단하고 평가하실까요?
큰 일을 더 많이 한 사람은 더 귀히 여기시고, 작은 일을 한 사람들은 별 볼 일 없이 바라보시는 하나님이실까요?
제가 믿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본 성경에서 만났던 하나님 그런 하나님이 아니죠.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달란트 비유 이거 한번 다시 한 번 들어보시죠.
주인께서 종에게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기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돌아와서 결산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결산의 장면에서 놀라운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다섯 달란트 받았던 종과 두 달란트 받았던 종에게 주인이 똑같이 칭찬했다는 거예요.
사실 우리가 볼 때는 다섯 달란트 받아서 다섯 달란트 남긴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이 벌어낸 거죠. 물론 받을 때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결과도 그것이 더 크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은 결과가 다르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섯 달란트 받았던 사람, 두 달란트 받았던 사람을 똑같이 칭찬했다.
왜 그랬을까를 우리는 이제 궁금해야 하는 것이죠. 주인이 보고 있는 것은 우리가 표현하는 세상의 기준과는 분명히 달랐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성령의 열매 중에 일곱 번째 표시되어 있는 충성 이 충성이라는 단어는 우리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 9가지 열매가 쭉 기록되어져 있잖아요. 거기에 쓰인 이 충성이라는 단어는 피스티스라는 단어로서 이것이 문맥에 따라서 믿음, 신실함, 신뢰라는 의미로 해석이 되어집니다. 따라서 성령의 열매에서 말하는 충성은 그냥 우리가 생각하는 일 많이 한 사람, 충성된 사람이다 열심히 봉사하면 충성된 사람이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을 신실하게 변함없이 지켜 나가는 것 그것을 가지고 충성이라고 말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충성의 열매가 맺는 사람 어떤 모습일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한번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 충성은 맡겨주신 것을 은혜로 아는 사람이다. 우리 한번 읽어보실까요? 시작
충성은 맡겨주신 것을 은혜로 아는 것입니다. 맡겨주신 것의 핵심이 있어요. 맡겨주신 것 매우 중요한 단어죠. 맡겨주셨다. 여러분 종들이 주인의 재산을 스스로 얻어낸 게 아닙니다. 주인님 주십시오. 내가 이거 해야겠습니다고 얻어낸 게 아니라는 거예요. 주인이 자기 소유를 종들에게 맡겨주신 거라는 거.
15절에 보면 주인은 각 사람의 재능에 따라서 야 너는 다섯 달란트를 내가 맡기겠다 너는 내가 두 달란트를 맡기겠다. 너는 한 달란트를 맡기겠다고 한 것이죠. 상대적으로 보면 한 달란트라는 개념이 매우 작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달란트 비유를 수차례 들어보셔서 아시겠지만 한 달란트가 적은 금액이 아니에요. 여러분 적어도 16년에서 20년 동안 평생 일을 해서 얻어낸 금액 그 정도의 가치 한 달란트가 이 한 달란트 받았으니까 얼마 안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죠.
여러분 3명에게 주인은 달란트를 맡겼다는 것에 매우 중요한 포인트가 있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걸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처음부터 태어날 때부터 저와 여러분들이 가지고 태어난 것이 있습니까?
태어나는 것도 내 마음대로 태어날 수가 없죠. 여러분 가정 선택해서 태어나신 분 있습니까?
내가 시대를 선택해야겠다. 지금 이제는 살기 좋지가 않다. 앞으로 10년 후가 더 살기 좋으니 10년 후에 태어나겠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생명과 시간을 내가 만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물론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열심히 살아요. 노력하면서 삽니다.
그런데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노력할 수 있는 기회 능력조차도 사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라는 사실이죠. 고린도전서 4장 7절에 말합니다. 내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사도 바울이 고백하는 거예요. 내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다 받았다는 이야기죠.
그런데 사실 우리는 보통 무언가 많이 가지게 되면 이렇게 표현할 것입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애쓰고 노력했는데 남들 잘 시간 덜 자고 더 공부하고 더 애쓰고 노력한 나의 삶의 결과물이다. 내 수고가 여기까지 오게 했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저는 그게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맞죠. 누구보다도 수고하고 애쓰셔서 그 자리에 선 것입니다.
분명 내 수고와 노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믿음의 사람, 믿음의 사람은 거기에서 그 수고 뒤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볼 줄 아는 사람 그게 믿음의 사람이라고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믿음의 사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을 믿는 거잖아요.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고 나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고 나의 삶을 이끄시는 분이고 나의 모든 것들을 도우시는 분이라는 그 믿음의 고백이 있다면 내가 수고하고 애쓰고 노력한 거 맞지만 그 뒤에서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보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은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성전 건축을 위한 예물을 준비할 때 그는 이렇게 고백해요.
역대상 29장 14절인데 한번 말씀을 읽어보실까요? 역대상 29장 14절 시작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입니다. 성전 건축을 위해서 성도들이 그 백성들이 이렇게 하나님 앞에 들렸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보니까 이 백성들이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신앙의 고백을 담아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주께로 말미암았다. 그래 내가 지금까지 산 것,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선 것, 나에게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 지금 내가 생각해 보니 이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왔구나. 내가 주의 손으로 받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니 주께 드리는 것이 그렇게 부담 없고 기쁨이 될 수 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고백이 바로 충성의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나에게 허락하신 모든 것, 주님께로부터 왔음을 믿으십니까?
실제 한번 그냥 형식적으로 말고 스스로 마음속에 한번 대답을 나에게 허락하신 생명, 나에게 허락하신 가정, 나에게 허락하신 물질, 나에게 허락하신 모든 상황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라는 것 그것을 믿음으로 고백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드리는 것이 부담이 없어야 되는 거예요. 그렇죠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하나님께 내 삶을 드리는 것이 어렵지 않아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헌금을 한번 좀 생각해 보시죠. 헌금을 드릴 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가 열심히 벌어 내가 얻은 수익 그중에 일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 맞습니까? 튤립니까? 맞죠? 내가 열심히 수고하고 내가 노력한 것에 일부를 드리는 것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수고하고 땀을 흘려 얻은 소중한 물질 그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주의 손으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린 것이죠. 그렇죠 내 수고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내가 살았던 것이고 만나게 된 것이고 얻게 된 것이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내가 하나님 앞에 드렸을 뿐이다. 그러니까 다윗의 이 고백이 우리의 생각을 조금 더 깊은 곳으로 이끌어주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기쁘게 드릴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하나님께 큰일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나 컸다는 거죠. 내가 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구나 그 고백 가운데 드릴 때 기쁨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생각해 보면 헌금이라는 것은 하나님께 무엇을 보태드리는 것, 교회의 무엇을 보태주는 것 그런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인정하고 믿음으로 고백하는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드리는 11조 감사 헌금 여러분 여기에는 그냥 성경에 11조면 복 받으라 했으니까 복 받기 위해서 드린다.
여러분 잘못된 생각이에요. 그건 아닙니다. 사실은 이 예물을 통해서 무엇을 고백하는 것입니까? 내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십니다. 지금까지 나를 하고 입히시고 나를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는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그것을 담아드리는 것이 예물인 것이죠.
그래서 고린도후서 9장 7절에 보면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오.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억지로 내는 예물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여러분 여러분 하나님 앞에 헌금을 드리잖아요. 가끔은 주변에서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목사님이 왜 헌금 설교를 안 하십니까?
사실 헌금 설교가 부담이죠. 그런데 여러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여러분 헌금은 우리가 약속의 말씀대로 축복도 있지만 실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 됨으로 인정하는 것이 나의 신앙 고백으로 담김으로 말미암아 들여지는 게 뇌물이죠. 그래서 저는 이게 어떤 헌금의 강요 이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믿으면 믿음 안에서 내 신앙의 고백으로 드려지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신흥의 가족들이 하나님 앞에 억지로 인색함으로가 아니라 단 100원이라도 단 1천 원이라도 아니면 안 해도 되겠죠.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것은 내 신앙의 고백으로 드리는 것이 맞다는 것이죠. 여러분 아무리 신앙이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저 같은 목회자라고 할지라도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드리는 것이 아깝게 느껴집니다. 전들 안 그러겠어요 이것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아까워진다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 받은 은혜라고 생각하면 드릴 수 있는 만큼 내 삶에는 감사가 훨씬 더 풍성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왜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채워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에게 공급해 주셨기 때문에 이것이 바로 충성의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 우리의 모습에 드러나는 문제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감사하기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가 훨씬 많은 것이죠. 왜 저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주고 나한테 한 달란트밖에 안 주셨지 왜 저 사람한테는 더 많이 맡긴 거야라는 비교죠.
여러분 오늘 본문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주인은 종들에게 똑같은 달란트를 맡기지 않았습니다. 각각 재능에 따라서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 두 달란트 받은 사람,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달란트의 양이 달랐지만 모두 누구한테 받은 거예요?
주인한테 받은 모두 주인한테 받았다는 것이죠. 그 누구도 자기 힘으로 달란트를 만들어낸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 우리의 삶도 똑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모습은 분명히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 저 사람이 더 은혜가 충만한 것 같고 더 많이 주어진 것 같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는요. 비교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죠. 내게 주신 것이 보여지고 그것이 느껴질 때 감사가 되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가진 것의 크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요. 바로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많이 받았다고 교만할 이유도 없고요. 적게 받았다고 낙심할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은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부터 저와 여러분들이 이런 고백이 있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제게 맡겨주신 것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 나에게 오늘 주신 생명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 나에게 오늘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 오늘도 내가 누군가를 만나 삶을 나누고 살아갈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이 사실을 우리가 믿음으로 고백하는 성도의 장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제일 중요한 첫 번째는 이 달란트 뷰는 하나님이 맡기셨다. 맡기셨다. 우리의 삶도 하나님께서 이 땅에 귀한 일들로 맡기셨다.
두 번째는요. 충성은 작은 일에도 신실한 것이라는 작은 일에도 신실한 것 21절을 한번 같이 읽어보십니다.
21절입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내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음에 내가 많은 것을 내게 맡기리니 내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여러분 주인은 종에게 무엇을 칭찬했습니까?
큰 일을 이루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맡겨진 일, 작은 일에 충성했다. 충성했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충성이란 무엇일까요?
한번 따라 해보실까요?
충성은 충성은 맡겨진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이것이 충성의 핵심입니다. 여러분 시계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시계 지금은 무음 시계도 있고 바늘 없는 시계도 있지만 바늘 시계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거기에 짐이 몇 가지가 있습니까? 세 개가 있죠. 초침 분침, 시침 이게 사실 이제 초침 분침 시침이 있는데 다 다릅니다. 초침은 움직이는 게 확연하게 딱 그러면서 빠르게 돌아가죠.
그 분침은 어떻습니까? 안 돌아가지는 않지만 이 초침에 따라서 열심히 또 움직이게 되죠. 시침은 어떻습니까? 시침은 사실 이게 움직이나 안 움직이나 이럴 정도로 잘 느껴지지 못해요. 그런데 1시간 지나가면 한식을 가죠.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초침, 시침, 분침 이 세 가지가 있는데 여러분들이 생각할 때는 어떤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까? 초점이 제일 중요하다 몇 분 계시네요? 분침이 제일 중요하다 없습니까?
시침이 제일 중요하다 또 계시네요. 안 드신 분은요. 몰라 몰라 몰 모를 수도 있죠. 중요도를 따지면 여러분 시침 분침, 초침 다 중요하죠 안 중요한 게 어디 있어요?
초침이 돌아야 분침이 돌고 분침이 돌아야 취침이 돌고 발음하니까 자꾸 이상한데 하여튼 이게 다 중요해요. 안 중요한 게 없다는 것입니다. 각자 자기의 역할을 감당할 때 시계가 보이는 거죠. 그렇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서 지침이 안 돈다 그러면 아무리 초침과 분침이 돌아도 시간 틀려요. 아무리 초침이 열심히 돌아도 군침이 안 돌면 우리는 시간을 제대로 못 보내는 겁니다.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두 맡겨주신 각자의 자리가 있습니다. 어떤 분에게는 시침의 자리, 어떤 분에게는 분침의 자리, 어떤 분에게는 초침의 자리 이러한 자리가 있다는 것이죠. 가정이라는 곳에서 부모라는 자리가 있고요. 자녀라는 자리가 있습니다. 직장에서도 각 직급에 따라서 각자에게 맡겨진 자리가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교회 안에서도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직분과 위치와 자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목장에서는 목장을 섬기는 여러분들이 있고요. 예배를 위해서 섬기는 여러분들이 있고 또 때마다 시마다 하는 모든 상황 속에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귀한 일들이 있죠.
그런데 여러분 그 자리의 크기보다 중요한 것은 그 자리를 얼마나 신실하게 지키느냐인 것이죠. 특별히 우리가 회복되어야 할 자리는 저는 예배의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가 오늘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런 생각을 좀 해봤습니다. 우리 교회 예배 어떠한가? 여러분 우리 교회 주일날 모이는 성도님들 참 귀하죠. 함께 모여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수 있다는 거 일주일에 한 번씩 이렇게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 너무 감사해요.
그런데 여러분 한번 솔직하게 스스로에게 이제 신앙적 질문을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우리의 신앙생활 주일 한 번으로 괜찮은가라는 질문인 거죠. 내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하나님을 믿는 자녀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녀로서 주일 한 번이 괜찮은가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새벽 예배도 있고 수요 예배도 있고 금요 성령 집회도 있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의 자리죠.
이것이 그냥 있는 자리가 아니라 사실은 모두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혜의 자리입니다.
여러분 새벽에 와서 기도할 때 얼마나 은혜가 있겠습니까?
개인적으로 믿음이 성장하고 내가 하루를 살아가는 힘을 얻습니다. 수요일 날 나의 일상 가운데 중간에 딱 멈춰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말씀을 나눈다는 거 얼마나 중요합니까?
금요일 날 와서 뜨겁게 함께 기도한다는 것 그거 굉장히 큰 은혜인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귀한 은혜의 자리들이 교회마다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이 귀한 예배의 자리가 조금씩 비어가는 것을 보면서 목회자로서는 참 마음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물론 모든 성도님들이 모든 예배에 참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직장에 문제가 있잖아요. 그렇죠 그리고 건강의 문제도 있습니다. 가정의 형편도 있고 정말 나오고 싶은데 나오지 못하는 상황들이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그 사정을 전혀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거죠. 나올 수 있는데 나오지 않는 것과 나오고 싶지만 나오지 못하는 것은 다른 문제인 거죠.
여러분 이 부분을 우리가 오늘은 묵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한번 돌아보셔야 됩니다. 예배가 내 삶에서 정말 얼마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라는 사실 우리의 삶은요 매우 바쁩니다. 각자마다 바쁜 생활들을 해요. 얼마나 피곤한지 다들 혓바늘이 돋았다고 이야기해요. 너무 바쁘게 살아요. 그런데 여러분 잘 생각해 보세요. 할 일도 많고 피곤하고 때로는 쉬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 바쁜 삶 속에서 여러분들이 꼭 지키는 삶이 있죠. 내가 꼭 지켜야 된다 하는 삶이 있습니다. 그건 중요한 약속은 꼭 지킵니다. 내 인생에 있어서 직장에서 정해진 시간 지키죠.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는 거 피곤해도요.
여러분 그것은 반드시 지키려고 애를 씁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만남의 소중함이 있기 때문에 그 소중함 때문에 내가 힘들어도 그 시간을 내어드리는 거죠. 여러분 시간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의 우선순위를 드러내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다시 한 번 나는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의 자리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가라는 거죠.
히브리서 10장 25절에 말합니다. 모이기를 피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여러분 모이는 것도 습관이 될 수 있고 모이지 않는 것도 습관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잘 생각해 보면 이렇습니다. 한 번 빠지고 두 번 빠지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예배에 나오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는 것이죠.
반대로 한번 생각해 볼까요? 피곤한데 예배의 자리를 찾습니다. 바쁜 가운데에도 내가 소중히 여겨서 주님 앞에 나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예배가 내 삶의 중심이 되는 거죠.
여러분 물론 예배를 참석하는 횟수가 믿음의 크기를 말하지 않습니다. 절대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는 우리가 지키는 자리를 보면 알 수가 있는 거예요. 내 삶의 소중한 자리는 우리는 지킨다는 거. 그래서 저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의 자리를 소중히 여길 수 있는 믿음이 저와 여러분 가운데 있기를 소망합니다.
얼마나 귀합니까? 우리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중요한 것이죠. 다니엘을 한번 생각해 볼게요. 다니엘 다니엘은 기도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을 해치려는 사람들이 왕의 금령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래서 내가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6장 10절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같이 한번 읽어보실까요? 시작.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여러분 다니엘이 위대한 것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루에 세 번 기도했다는 게 아니에요. 어쩌면 우리는 하루에 세 번 기도했던 것에 꽂힐 수 있는데요. 하루에 세 번 기도했던 것이 그를 위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는요. 전에 하던 충성이라는 것은 그 자리를 지키는 어떤 상황이 와도 그 자리를 지키는 전에 하던 대로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를 이 다니엘은 가장 소중한 가치로 여기고 살았던 것이죠. 그러니까 위기가 찾아왔다고 해서 갑자기 믿음이 생긴 게 아니에요. 내 삶의 위기가 찾아왔으니까 그때 하나님을 찾는 그러한 인생이 아니었고, 그는 평범한 날에 지켜온 기도의 자리를 통해서 위기의 날 가운데도 그러한 삶을 살아냈던 것. 여러분 이것이 바로 충성이라는 것입니다.
상황이 좋을 때만 지키는 자리가 아니라 기분이 좋을 때만 찾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은혜의 자리를 귀하게 여기면서 살아왔던 그의 삶 이것이 다니엘의 위대함을 표현해 주는 모습인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우리 교회가 예배의 자리가 회복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여러분들의 예배가 하나님 앞에 회복되기를 소망합니다.
쉽지 않죠 예수 믿고 산다는 것이 여러분 주님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때로는 희생과 헌신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죠. 새벽을 깨운다는 거 얼마나 어려운 건지 아십니까? 어렵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 새벽에 하나님을 만나고 시작한다는 게 얼마나 귀한 일이 수요일 저녁에 얼마나 쉬고 싶겠어요. 그런데 하루의 분주함을 내놓고 말씀이 사모되어져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사모함 되어서 나온다는 거 정말 귀한 것이죠.
금요일 밤이면 한 주를 마감하면서 사실 세상은 불금이라고 이야기하고 얼마나 재미있는 것들이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금요일 밤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리고 기도하는 소리 그것이 교회에 울려퍼질 때 하나님은 기뻐하실 자리가 되는 것이죠.
여러분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교회 부흥은 사람이 많아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교회 부흥은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자라나는 거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예배로 사랑하고 우리의 찬양으로 살아나는 기도로 살아나는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들의 예배의 자리가 회복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의 자리가 회복되기를 소망합니다. 맡겨진 직분의 자리, 섬김의 자리가 회복되어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한 주 내가 지켜야 할 자리를 한번 다시 한 번 묵상해 보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 안에서 내가 이런 직분을 받고 내가 이 신앙생활을 이만큼 하면서 내가 지켜야 될 자리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이 다라고 생각해서 가볍게 여기지 마시고, 작은 것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셨다면 그 자리를 지키는 그것이 바로 충성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맡겨주신 자리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는 충성된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 번째는요. 충성은 주인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에 주인이 맡겨주셨는데 주인을 신뢰하지 못하면 충성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적어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24절 25절에 보면 한 달란트 받은 종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같이 한번 읽어보실까요?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요.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신지 않은 데서 거두고 해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여러분 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왜 숨겼을까요?
이 문장을 보면 한마디로 두려워서요. 두려워 뭐가 두려웠습니까?
주인을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주인은 지나치게 엄격한 사람이라고 인식한 것입니다. 그냥 두려운 존재로만 생각한 것이죠. 그렇게 생각하니까 야 내가 이것 가지고 실패하면 어떡하지 안 돼 야 책망받으면 어떡하지라는 그 두려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땅에 묻어두었던 것이죠.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아느냐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아느냐에 따라서 신앙의 패턴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무서운 감독관이라고 생각되어지면 신앙생활에 부담될 수밖에 없죠.
그런데 하나님이 진짜 사랑과 임자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시라고 신뢰한다면 마음이 달라지겠죠. 그 마음이면 완벽하게 말고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실패해도 주님 앞에 돌아갈 수가 있는 작은 일에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는 거예요.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 신실한 분이시기 때문에 여러분 미쁘신 하나님 우리는 때로 흔들릴 수 있지만 우리 주님은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약해질 수 있지만 우리 하나님은 약하지 않으신 분 우리는 넘어질 수 있지만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붙잡아주십니다.
여러분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누구보다 자신 있게 주장했던 사람이에요. 나는 절대로 절대로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강력하게 선포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큰 소리 쳤던 베드로가 두려움 앞에 무너졌습니다. 충성의 실패죠.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말씀합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렇게 주님은 세 번 물으셨고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주님이 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이 말씀하시죠.
네 양을 먹이라
여러분 이게 놀라운 은혜 아닙니까? 베드로가 끝까지 신실했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에게 다시 맡긴 게 아닙니다. 베드로는 실패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그를 버리지 아니 하셨기 때문에 베드로의 신실함이 아니라 주님의 신실하심이 그를 세운 것이죠. 그리고 그 사랑을 경험한 베드로는 결국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으로 무너졌던 사람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어.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했던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을 당당히 전하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그를 변화시켰어요? 자신의 결심이었을까요?
그것만으로는 아니죠. 끝까지 자신을 사랑해 주신 주님의 은혜가 경험되어졌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나 같은 자에게도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은혜 주셔서 일으켜 세워주시는구나. 끝까지 자신을 사랑하신 주님의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에 그는 다시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배에 참석을 많이 한다고 하나님이 더 사랑하실까요? 덜 사랑하실까요?
그런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를 무조건 사랑하십니다. 예배를 들 참석해도 사랑하십니다.
믿으십니까? 그 차원이 아니라 여러분 우리가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이유는 그 자리에서 만나는 주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이에요. 내가 잃어버렸던 은혜를 다시 회복시키시는 은혜의 시간이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은 우리가 주일날 거룩한 주일날 나와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 번씩 내가 일주일 동안 실패했습니다. 괜찮다 괜찮다 사랑한다 하더라도 다시 할 수 있다. 힘을 얻어 일주일 동안 살아가는 또 일주일 동안 살면서 우리 인간적으로 얼마나 많은 죄악들을 짓습니까? 얼마나 많은 실패를 합니까? 하나님 앞에 충성되지 못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다시 주일날 오면 하나님께서 괜찮다 하더라 사랑한다 하더라 이렇게 보듬어 안아주시면서 우리에게 위로해 주시고 힘 주시고 또 한번 해보자 또 한번 해보자. 그렇게 말씀하시는 주님 우리는 또 월요일부터 힘차게 나갑니다.
그런데 사단은 또 우리를 그냥 두지 않죠 우리의 관계 속에서 또 무너뜨립니다. 또 실패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주님은 한 번도 우리를 놓으라고 말하지 않고 어서 오너라 내 안에서 내게 주시는 은혜를 가지고 다시 한 번 그렇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이것이 예배를 드리는 이유인 것입니다.
여러분 마치 나뭇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야 생명을 공급받는 우리가 지금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 이야기해 성령의 열매는 내 노력이 아니라 나무가 가지에 붙어 있어 열매를 맺는 것처럼 우리도 말씀과 기도, 예배를 통해서 주님의 은혜가 계속해서 공급되는 것 그래서 예배의 시간이 소중한 것이다.
여러분 이 은혜를 기억할 때 충성은 우리의 인생이 무거운 의미가 아니라 사랑의 응답으로 바뀌는 거죠. 억지로 감당하려던 것이 감사의 자리로 바뀌는 것이고요.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했던 것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결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저는 귀한 우리 성도님들께 한 가지 권면을 드리고 싶습니다. 내가 있어야 할 책 그 자리를 다시 지키십시오. 여러분들에게 은혜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축복입니다. 특별히 여러분 이번 한 주 동안 한번 살면서 예배에 대해서 한번 묵상해 보십시오. 참석을 안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내가 예배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 자리에서 내가 하나님과 만남을 얼마나 깊이 누리고 있는지, 그리고 바라기는 다음 주에 오실 때는 이런 마음으로 오셨으면 좋겠어요. 하나님 내가 예배드릴 때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내 가운데 인자하셔서 풍성한 은혜로 채워지는 역사가 경험되어지기를 합니다. 내가 한 주 동안 실패했지만 하나님이 나에게 괜찮다 사랑한다 축복한다라는 말씀을 통해서 새 힘을 얻고 또 나가는 한 주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예배자로서는 큰 은혜가 있어요. 바라기는 오늘 이 충성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걸 맡겨주셔서 저는 아침마다 일어날 때마다 늘 고백합니다. 하나님 오늘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도 젊은데 그런 얘기를 하니까 말할 수 있지만 저는 그래요.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하루 하나님이 안 주시면 오늘 내일이 없는데 나에게 주신 하루가 얼마나 귀한지 여러분 그 고백이 되어질 때 우리의 삶 가운데는 어떤 일이 있어도 감사가 고백되어질 수 있는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이고 내 삶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께 바라기는 우리의 삶의 자리가 나 혼자 사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하나님이 말씀해 주시고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하나님이 복 주시는 은혜의 삶을 살아가는 그리하여서 충성되이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믿음의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