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요새 많이 쓰는 AI,
세상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가운데 우리는 서
있다.
우선 어린 시절 초등학교에
들어 가면 덧셈, 뺄샘, 그다음
단계로 넘어 가서 곱셈, 나눗셈을
배운다.
저 먼 세상 메소포타미아 문명시대에도 곱셈이 있었다.
기원전 20~ 16세기에도 점토판에 5단 구구단을 공부한
흔적이 남아 있다.
지금의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가
구구단을 외워야 산수시간이
재미있다.
1980년대에는 전자계산기가 한참이나 유행해서 어려운 계산 문제를 해결해 주더니 2000년대, 말하자면 기원후 21세기가 되니 스마트 폰이라고
해서 한 손안에 전화, 사진기, 대화방, 시계, 달력, 계산기, 번역기, 물건 사는 시장기능, 길찾기, 여행 상품 알아보기, 각종 예약까지 이루 말 할 수 없는 기능을 장착하여
눈에서 손으로 손가락을 텃치함으로써 가능하게 된 문명
세계를 살고 있다.
이제는 인공지능의 시대로 넘어
간다. 로봇이 대행해 준다.
자율자동차, 바둑게임, 대화상대,
수술실에서 어려운 수술, ,청소는 알아서 척척 해 주고 다시 충전대로 귀가하는 센스도 보여 준다. 혼자 살고 있는 젊은이도 늘어 가고 혼자 사는 노인세대도 늘어 간다. 이들을 위하여 말을 알아 듣고 간단한 심부름을 해 주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음악도 골라서 들려 주고, 날씨도 알려 주고 시간도 알려 준다. 이제는 학교 숙제도 대신 해 주는 기능까지 개발되었다고 한다.
인간이 神의 위치에 앉아서 세상사를 좌지우지 하게 된 것이다.
이와 반대 현상으로 자연과 원시의 세상으로 회귀하려는
강한 충동으로 모든 인간문명을
벗어 나려는 몸부림도 보인다.
전원생활이 하나의 사치품처럼
젊은이들의 캠핑즐기기, 나무
심고 꽃가꾸기, 자연으로 찾아 나서기등 등등...
만년설도 녹아 기후변화에 영향을 주고 지구생태계에 변화를 일으키기도 하고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서 지구의 대륙판들이 요동하여 지진, 해일과 같은 지구 재앙이 닥쳐서
하루 아침에 생명체들이 헐벗는 비극앞에 노출 되기도 한다.
알고리즘이라는 생소한 단어도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면 동영상
프로그램을 모아 놓은 유트브 라는 앱에서 평소에 어떤 동영상을 즐겨 보았는 가를 축적했다가 비슷한 내용의 동영상을 계속 개인 취향에 맞춰
제공해 주기도 하는 것이다.
사람이 부모에게서 물려 받은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는 창의적인 활동까지도 인공지능 로봇이 대신하게 되어 인공지능
아티스트가 등장할 수도 있고
무대에서 그런 로봇들의 공연으로 오페라를 감상하게 되고, 그들이 만든 소설이나 시를
읽고, 그들이 그린 미술작품을 보게 될 날도 오게 될 수도 있겠다.
인공장기를 만드는 기술이 발달하여 인간의 건강수명도
연장 되고 있는데 앞으로는 뇌기능이 깜깜해 지는 치매조차도 치료할 수 있으리라.
각종 희귀불치질환에 대한
치료제도 개발 될 터이고 인류문명의 발전은 어디까지
이루어 질지 상상을 초월한다.
부부사이에 임신이 어려워 지던
시절, 소위 씨받이 대리 여성 때문에 가정 불화가 생기던 시절을 벗어나 지금은 시험관을
통하여 인공 수정으로 자식을 얻을 수도 있다. 반면에 깨어 있는 성지식과 여성 인권에 대한 인식으로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젊은 여성이 늘어나서 어린아이 출생율이 줄어 들고 늙어 가는 어른들의 수는 점점 누적되어 어린 아기 기저귀의 소비양보다
어른 기저귀 소비 숫자가 더 많아
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 온다.
이야기를 하자면 끝도 없다.
단순한 라이프 사이클에 맞추어서 인간의 삶이 이루어
지던 시절은 20세기로 끝이 났나 보다.
우리는 지금 20세기와 21세기를 걸쳐서 살아 가고 있다.
대부분 젊은 시절은 20세기에
겪었고 이제 21세기는 노년의 삶을 살고 있다. 올해 UN 에서
새로 정의 한 바에 의하면 우리 같은 70대는 진정한 의미의 노년이 아직 도래하지 않은 중년이라고 한다.
하기야 마음만은 안 그런데
외모에서 흰머리와 힘 없는 걸음 걸이등으로 노인네 소리를
듣는데도 중년으로 분류된다니
신문에선 우리 나이가 노파로 분류 되는데 이 기자들의 표현도
수정을 해 줘야 한다.
한 마디로 아주 어지럽고 궤도가 여러 개로 복잡한 철로 한 가운데
어정쩡하니 서 있는 기분이다.
자고 나면 바깥 세상보다 내 몸안에서 일어 나는 변화가 더
감당하기 어려운 매일이다.
항상 밤새 안녕하십니까? 라는
인사를 조심스레 염두에 두고 아침에 깨어 있어야 한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마음대로
조정하는 인공로봇은 아직까지
만들어졌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그리하야 입춘 절기 지나면 복수초가 피어 나고 산수유가 피고, 매화가 피고 벚꽃, 살구, 목련이 피어나는 꽃 칼렌더는
인공지능의 간섭 분야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하지만 모를 일이다.
화훼들의 꽃시계까지도 어떻게
인간의 요구에 맞춰 사철 꽃들이 만발한 환경을 개발해 낼지..
3월이 머지 않았다.
매화 소식을 찾아서 길 떠나야
할 때가 오나 보다.
파교를 지나 설산에 숨은 매화를 찾아 나서는 옛선비에게는 단순히 꽃만을 보려는 마음이 아니라 자기 마음의 본성자리를
찾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이라고
어느 교수는 말한다.(강판권 지음, 미술관에 사는 나무들, p.68)
그는 또 말한다.
'눈 덮힌 산에 고고하게 핀 매화를 본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단지 매화꽃을 보기 위한 것이라면 굳이 그 먼곳까지 갈 필요가 없다. 지천에 깔린게 매화이므로..'
그의 이 글을 읽고 무조건 부산이던 통영이던 길 떠나려던
나의 들썩거리던 마음을 다 잡았다.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