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호흡, 선명한 소리의 선, 안정된 고음, 기교와 감성의 완벽한 조합 현란한 꺽기 등 즉흥성 뛰어난 흑인 R&B 보컬 스킬의 시작
주파수란 진동전류나 전파 또는 음파 등이 반사 굴절해 파상으로 방향을 바꾸는 주기적 현상으로, 그 주기적 파상현상이 1초 동안에 반복되는 횟수를 말한다. 따라서 1KHz는 1초에 1000번의 펄스가 있다는 말이며, 1분은 60초 즉 6만 번의 펄스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6만 사이클이라고도 한다.
건강한 젊은이의 청력은 초당 16만에서 2만 사이클의 주파수에 달한다. 거의 10옥타브에 맞먹는 것이며 방대한 영역의 음을 총망라한다.
인간 목소리의 기본 주파수는 남자의 경우 초당 100, 여자는 150사이클 정도다. 그러나 나이가 들며 청력은 약해진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고막이 두꺼워지면, 고주파 음은 내이에 이르는 뼈를 쉽게 통과하지 못하고, 그 결과 저음과 고음의 양극을 잃게 된다. 그건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 느끼듯, 고음에서 특히 심하다. 나이가 들며 점차적으로 고음을 내는 게 힘들고 낮은 음을 선호하게 되는 이유다.
스티비 원더(66)는 정확한 고음 구사와 믿기 힘들만큼 빼어난 청력의 소유자로 유명하다.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만으로도 그게 얼마짜리인지 맞추는 등 탁월한 청각 관련 일화는 많다.
조산아로 태어난 스티비 원더는 인큐베이터에서 산소과다공급으로 실명해 평생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야 했다. 그럼에도 한번 들은 소리는 결코 잊지 않고 기억하는 놀라운 청각과 기억력의 소유자다.
어릴 때부터 교회성가대에서 노래하며 두각을 보였고 피아노는 물론 기타, 드럼, 베이스, 하모니카 등등 무려 9가지나 되는 악기를 다뤄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소리에 대한 남다른 재능을 지닌 그는 이후 꾸준히 자신의 역량을 강화시켜가며 팝에서 록, 펑키, R&B 소울, 재즈 등등 수많은 장르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그는 자신의 곡을 쓰고 노래만 한게 아니라 다른 음악인에게도 명곡들을 써주고 제작에도 관여했다.
그가 발표한 수십 여장의 솔로앨범은 거의 대부분 흑인음악(블랙뮤직)에 빛나는 보물이자 팝음악사 명반들이다. 특히 그가 70년대 초중반 연속적으로 발매한 4장의 연작 [Talking Book](1972), [Innervisons](1973), [Fulfillingness' First Finale](1974), [Songs In The Key Of Life](1976)은 스티비 원더 일생일대 최대의 역작이고 R&B 소울 및 펑키, 재즈, 팝, 록 등등 전 영역에 걸쳐 영향을 준 20세기 대중음악의 텍스트 중 하나다.
스티브 원더는 현대 R&B음악의 최고봉이자 살아있는 신화다. 그의 등장으로 R&B 소울의 발성 등 보컬 테크닉의 영역이 구축됐다.
“아아이~예에~으~” 등과 같은 흑인음악만의 현란한 꺾기, 즉 즉흥적인 보컬 스킬의 시작도 스티비 원더로부터 시작됐다. 빼어난 호흡처리와 다양한 창법 등 소리를 좀 더 과학적이고 인체공학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여러 방법론을 선보인 것이다.
스티비 원더의 노래는 깨끗한 음색과 안정된 음정, 그리고 어느 곡을 듣더라도 소리의 선이 날카로울 만큼 선명하고 맑은 것을 알 수 있다. 호흡을 정확히 잘 하게 되면 장시간 노래해도 목에 무리를 주지 않는다는 논지도 그의 노래와 소리 구사를 통해 음악계 전역에 퍼져 나갈 수 있었다.
흑인 특유의 그루브를 살린 다채로운 리듬 연출과 그것을 타는 방법도 스티비 원더를 통해 세련화 정교화되었다. R&B 소울의 발성을 스티비 원더 이전(B.C.)가 이후(A.C.)로 구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는 현대 흑인 하이테크 발성의 시작이다.
그러나 스티비 원더가 이러한 기술적 측면만을 눈부시게 체계화시켰다면 오늘날과 같은 전설적인 평가를 받진 못했을 것이다. 노래하고 연주하고 곡을 쓰는 사람 모두에게 그가 살아있는 교과서이자 빛나는 영혼으로 추앙받는 것은 작품 하나하나에 자신의 진정성과 혼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그의 노래를 들어보면 뛰어난 악상과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진행도 일품이지만 그와 함께 자신의 감정을 노래에 완벽하게 담아내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티비 원더야말로 음악예술에서 추구하는 기술과 정신의 완벽한 결합, 그 표본인 것이다.
조성진 기자 / 스포츠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