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구유학의 탐구 5-2 조광조와 이상정치(지치(至治))의 추구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1482-1519)는 열일곱 살 때 무오사화로 평안도 희천 땅에 유배된 김굉필의 문하에서 수업을 받았다. 34세에 벼슬에 나가 바로 사간원(司諫院)의 정언(正言)에 임명되었을 때 그는 상소(사간원청파양사계, 司諫院請罷兩司啓)를 올려 언로(言路)를 막은 대사헌(大司憲)과 대사간(大司諫)을 파직시키도록 요청함으로써 도학이념에 따른 정치적 개혁의지를 강경하게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그는 정몽주와 김굉필의 문묘(文廟) 배향을 요청함으로써 조정에서 사림파를 높이고 사림파를 기준으로 확립할 것을 제시하였다. 이와 더불어 그는 임금에게 ‘선비의 기개’(사기, 士氣)를 배양하도록 요구함으로써 선비의 비판을 과감하게 용납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는 당시 여러 차례의 사화를 당하여 많은 선비들이 희생되면서 선비의 기개가 꺾여 있는 현상을 지적하고, 선비의 기개를 배양하기 위해서는 임금이 과감하게 선비의 비판을 수용할 것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또한 그는 도학적 정통론의 입장에서 국가의 도교 사원에 해당하는 소격서(昭格署)를 폐지하도록 강경하게 요청하여 결국 일시적이지만 폐지되게 하였으며, 북쪽 변경을 노략질하는 만주족(야인, 野人)을 기습하는 것을 왕도(王道)의 정대한 방법이 아니라 하여 중단하게 하였고, 연산군을 몰아 내고 중종을 추대한 반정공신들의 대다수가 허위로 공신이 되었다 하여 공신을 엄격히 다시 심사하여 훈작을 박탈하게 하는 등 의리에 어긋난다고 판단되는 것은 철저히 시정하고자 하였다.
이처럼 불의를 용납하지 않았던 것은 국가가 이익을 탐내는 세력에 의해 병들게 되는 것을 막고, 사회의 기강을 정대하게 바로잡으려는 도학의 의리정신에 의한 정화(淨化)를 추구한 것이다. 그의 강경한 의리정신의 원칙론과 불의를 제거하기 위한 과감한 개혁의 요구는 반대파의 음모에 몰려 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면서 꺾이고 말았다. 이 사화로 그는 39세의 나이에 전라도 능주에 유배되었다가 그 해에 사약을 받고 죽음을 당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조광조의 의리정신과 개혁의식은 도학적 이념에 기초한 요순(堯舜)의 이상정치를 그 시대에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율곡은 조광조의 짧은 일생과 불과 4년 동안에 걸친 관직생활을 통한 업적을 네 가지 주제로 간결하게 집약시켜 주고 있다. 곧 ‘임금의 마음을 바로잡는 것’(격군심, 格君心), ‘왕도정치를 세상에 펴는 것’(진왕정, 陳王政), ‘의로움이 실현되는 길을 여는 것’(벽의로, 闢義路), ‘이욕(利欲)이 분출하는 근원을 막는 것’(색리원, 塞利源)의 네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도학의 이상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기본과제를 이루고 있는 것이며, 또한 의리를 사회기강의 기준으로 정립하고자 추구하는 것이다.
조광조가 추구하였던 이상정치, 곧 ‘지치(至治)’의 과업을 이 네 개의 주제를 중점으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임금의 마음을 바로잡는다’는 과제는 욕망에 따라 그릇되게 흐르기 쉬운 임금의 마음을 바로잡기 위해 군왕에게 간언하는 선비의 역할을 제시한 것이다. 도학의 정치원리는, 곧 정치의 모든 사업이 임금의 마음 하나에서 나오는 것이라 보고, 선비는 도학의 이념에 따라 임금의 한 마음을 바로잡는 역할을 담당한다는 체계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왕도정치를 세상에 편다’는 것은 이미 도학의 이상정치를 왕도정치로 확인하는 것이다. 왕도는 패도(覇道)에 상반된 개념으로 힘에 의한 정치가 아니라 덕에 의한 정치요 그것은 덕치(德治)이며 인정(仁政)이다. 그는 자신의 임금을 요순(堯舜) 같은 성왕(聖王)이 되게 하고, 자신의 시대 백성을 요순시대의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을 이상정치의 목표로 밝히고 있다. 그것은 복고적 과거지향의 이상론이 아니라 현실에서 이상의 실현을 추구하는 도학정치의 신념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의로움이 실현되는 길을 연다’는 것은 선비정신의 기준이 되는 의리를 사회에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의로움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바른 언론이 나올 수 있는 길을 넓혀야 한다는 ‘언로를 여는 일’(개장언로, 開張言路)을 중시하고 있다. 또한 그는 언로가 소통하는가 막혔는가에 따라 왕도가 베풀어질 수 있는지 여부도 결정되는 것이라 본다. 곧 언로가 막히면 올바른 말을 앞에서 하지 못하고 뒤에서 하게 되므로 사회가 혼란에 빠지고 멸망하기에 이르는 것이라 보았다.
나아가 ‘이욕(利欲)이 분출하는 근원을 막는다’는 것은 의로운 길을 여는 것과 표리관계를 이루고 있다. 의로움이 실현되면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는 욕망이 견제될 것이지만 의로움이 막히면 이익을 추구하는 욕망이 분출하여 불의가 온 사회에 퍼지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기묘사화에 투옥되었을 때 옥중에서도 한 사람의 선비로서 자신이 추구하던 바는 오직 “이익을 추구하는 욕망의 근원을 막아서 나라의 명맥을 영원하도록 하고자 한 것일 뿐이다.”라고 주장하는 것도 사사로운 이익의 추구가 불의를 불러일으키고 불의가 나라를 병들게 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루고 있는 것임을 깊이 통찰하였기 때문이다.
율곡은 조광조가 이상정치(지치, 至治)를 위해 추구한 핵심 과제를 요약하여 ‘도의를 숭상하고’(숭도의, 崇道義), ‘인심을 바로잡으며’(정인심, 正人心), ‘성현을 본받게 하는 것’(법성현, 法聖賢)이라 지적을 하고 있다. 특히 조광조는 그 이상정치의 주체가 임금의 마음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궁극적 목표가 백성을 위한 것이요 백성을 보호하는 것임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한 마디로 도학적 이상정치가 ‘민본(民本)’의 원리를 실현하는 데 있는 것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는 임금과 신하의 존재란 백성을 위하여 있는 것이므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백성을 위해 마음을 써야 하며, 그랬을 때만이 정치가 바르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임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또한 그는 백성의 보호를 정치의 근본으로 삼아야만이 나라가 견고해지고 정치의 도리가 설 수 있는 것이라 주장하였다.
[출처] 한구유학의 탐구 5-2 조광조와 이상정치(지치(至治))의 추구
[출처] 한구유학의 탐구 5-2 조광조와 이상정치(지치(至治))의 추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