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blog.daum.net/lunasj/2763302, 나무위키 이시카리누마타 호로신 불곰 사건 항목
1923년 일본 홋카이도 우류군 누마타시 호로신 지역에서 일어난 일본 역사상 두번째로 큰 피해를 낸 불곰 습격 사건.
1915년의 산케베츠사건이 7명의 사망자와 3명의 중상자를 낸 최대피해사건이나 주로 여자와 아이들이 희생되었던 것에 비해 호로신사건은 사망자 5명, 중상자 2명 중 1명을 제외한 전 피해자가 건장한 사내였다.
1923년 8월 21일
누마타시 에비시마지구에서 열린 축제에는 오락거리가 없던 근처 개척마을 사람들이 축제에서 열리는 연극을 보기 위한 목적으로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오후 11시 반쯤 축제가 끝나고 호로신 지역 마을에서 온 사람들도 늦은 밤길을 재촉해 고개를 넘고 있었다. 그 중 무라타부부와 두아들 그리고 마을 청년 하야시 겐자부로로 이루어진 5인 집단이 있었다.(일설에는 20명, 아마도 4~5인의 몇몇 집단으로 나뉘어져 이동중)
하야시는 도중에 소변을 보느라 50m정도 뒤쳐져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곰의 습격을 받게 되었다. 팔팔한 19세 청년이었던 하야시는 필사적으로 저항했고 옷에 곰의 발톱이 걸려 우물거리는 틈에 도망치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앞서 가고 있던 집단에 달려가 경고하였다. 그러나 곰이 먼저 앞질러 와서 무라타일가 중 앞서 걷던 15세의 차남 무라타 코지로를 때려 죽이고 18세의 장남 유로에게 중상을 입힌 다음 아직 숨이 붙어 있던 그를 땅에 파묻었다. 그리고 코지로의 시체를 복부부터 파먹기 시작했다.
공포에 질린 남은 사람들은 300m 정도 떨어진 농가에 뛰어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바닥화로에 자작나무 껍질을 던져넣어 불길을 크게 일으킨 다음 벽장, 서까래 등에 숨었다. 30분 후 곰이 코지로의 내장을 씹으며 나타나 창문으로 농가 내부를 들여다 보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방석과 집기 등을 던져 위협하자 현관문으로 이동하였다. 54세의 무라타 산타로가 몸으로 문을 받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려 했지만 곰은 문과 사람을 한꺼번에 넘어뜨리며 내부로 침입. 무라타는 곧 일어나 옆에 있던 삽을 들어 저항했으나 일격에 중상을 입고 쓰러졌다.
곰은 화로의 불길을 아랑곳하지 않고 방에 들어가 발로 불을 비벼 끄고 한구석에서 떨고 있던 무라타의 부인 우메를 물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산타로는 중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삽을 들어 미친듯이 곰을 후려팼으나 꿈쩍도 하지 않고 우메를 문 채 유유히 집 맞은 편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숲 속에서는 우메의 살려달라는 비명이 두 번 들리고 그후 불경외는 소리가 들렸으나 점점 소리가 작아져 이윽고 아무 것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8월 22일
농가에 있던 사람들은 밤새 공포에 떨었고 아침에 소동을 모르는 이웃사람이 온 후에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근처 수풀 속에서 하반신을 먹히고 상반신만 남아 있는 우메의 시신이 발견되었고 최초습격장소 근처에서 땅에 파묻힌 채 아직 숨이 있던 무라타 유로를 찾아 바로 병원으로 옮겼으나 얼마 뒤에 숨졌다.
8월 23일
이 참극은 곧 누마타시 전체에 알려졌고 23일에는 근처 우류촌에서 스나자와 유타로를 비롯한 3명의 아이누족 사냥꾼이 달려왔다. 그 중에 56세의 나가에 마사타로는 사건의 내용을 듣고 "그런 흉악한 곰은 반드시 내 손으로 잡아야 한다"며 혼자 산으로 들어갔다. 이 날 산속에서 몇방의 총소리가 들렸으나 나가에는 돌아오지 않았다.
8월 24일
제대군인, 소방단, 청년단으로 이루어진 300명의 토벌대가 호로신지역에 도착했고 근처 마을의 60세이하 모든 남자들도 합류하여 대대적인 작전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토벌대가 산에 들어가고 얼마되지 않아 최후미에서 갑자기 불곰이 나타나 57세의 우에노 유마츠를 일격에 때려 죽이고 오리가사 토쿠지에게 중상을 입혔다. 그러고도 포효를 올리며 토벌대에 쇄도했으나 제대직후의 전직 군인이 엉겁결에 쏜 총에 맞아 움직임을 멈춘 틈에 다른 토벌대의 일제사격을 받아 숨이 끊겼다. 이 습격장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전날 혼자 산에 들어갔던 나가에의 유체가 발견되었으나 몸의 다른 부위는 다먹히고 머리만 남아있었다.(일설에는 왼쪽 다리)
죽은 곰은 몸무게 200kg의 다 큰 숫컷으로 해부결과 위에서 소쿠리에 가득 찰 정도의 인골과 아직 소화 덜된 사람의 손가락이 발견되었다.
이 불곰의 가죽은 현재도 누마타시 향토사자료관에 전시되어 있다. 사건현장은 후에 탄광이 개발되어 인구 2,000명의 큰마을이 생겼으나 폐광이 된 후 인적이 끊겼고 지금은 댐에 의해 수몰되었다.
사건의 원인 - 최초습격장소에는 근처 마을에서 폐사한 말의 사체가 묻혀 있었다. 곰은 며칠동안 말사체를 파 먹고 있었는데 피해자집단이 지나가자 먹이를 빼앗으려 온 걸로 착각하고 공격한 것으로 생각되어 지고 있다.
1923년 일본 홋카이도 우류군 누마타초에 있는 이시카리누마타 호로신 지역에서 불곰이 개척민 및 사냥꾼을 습격한 사건이다. 5명이 죽고 3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 사건은 일본 역사상 두번째로 큰 피해가 난 동물습격 사건이다. 최대 피해가 난 사건은 7명의 사망자(사망한 태아 제외시 6명)와 3명의 중상자가 발생한 1915년의산케베츠 불곰 사건 이지만, 그 사건의 피해자는 여자와 아이였다. 반면 이 사건의 피해자들은 1명을 제외하면 모두 건장한 남자였다.
이 사건이 생기게 된 배경이 된 누마타초는 홋카이도에서 가장 유명한 쌀농사 지역이었는데, 면적의 약 80%는 미개척된 삼림으로 되어 있었고, 따라서 불곰이 살기 딱 좋은 지역이었다. 게다가 오지라 곰 습격을 받아도 제때 공권력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첫댓글 이게 그 곰 가죽인가벼 으..
1915년 사건은 이렁사진들 나오넹
으악~~~!!!! 불쌍해~~!!!!!
와 몇명이 달려 붙어도 쨉도 안되네... 말.. 너먹어.. 오해야 ㅠ
진짜 찐공포다 십핥
우와..진짜 저럴땐 어케해야 하냐;;; 일본은 불곰 사건 많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