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失手)라면 잃을 실자와 손 수자가 합쳐진 말이다. 글자 뜻대로라면
손을 잃는다는 의미가 아닌가? 바꾸어 말한다면 손에 들어 오는 것이 없이
손해를 본다는 것이리라. 사전에는 '조심하지 아니하여 잘못함, 또는 그런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도 있다'는 말은 아무리 나무를 잘 타는
원숭이지만 잘못하면 나무에서 떨어지는 경우도 생긴다는 의미다.
아침에 식사를 마치고는 잠시 후 커피를 한 잔 하는 게 습관화가 되었다.
비서라도 있으면 커피를 한 잔 타 오라고 시키겠지만 백수가 되고 보니
부탁할 데도 없어 손수 타지 않으면 안된다.
커피포트에 물을 한 잔 부어 놓고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에 들렸다 나왔다.
그 새 물이 끓은 줄 알고 커피믹서 봉지 끝을 가위로 잘라서 빈 잔에 쏟아부은 다음
커피포트에 있는 물을 잔에 따라 부었다. 그러면 보통 커피믹서는 더운 물에 잘
풀리는데 오늘 아침엔 풀리지 않고 물 위로 허옇게 떴다. 앗뿔사! 물이 끓은 줄
알았더니 급한 김에 화장실에 가면서 스위치를 누르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실수를 반복하면서 생활해 나간다.
내가 아는 지인중에는 '실족회'라는 작은 모임을 만들어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자신의 실수를 발표하면서 서로 웃기도 하고 타산지석으로 삼기도 한다고 했다.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실수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일에는 실수가 있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투철한 사명감, 책임감외에도 숙련이 필요하다.
오늘 아침엔 어제 저녁 끓인 매운탕을 쉬지 않게 한번 더 끓여 놓아라는 마누라의 엄명애
아침 식사 후 베란다에 내어놓았던 밥솥을 들어서 가스렌인지 위에 올려 놓고 불을 켰다.
중불 정도로 조정해 놓고 나는 서재로 들어와 책상 앞에서 콤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빠졌다.
시계를 보니 7시 50분을 지나고 있었다. '이크 큰일 났구나!' 하고 서제 문을 열고 방을 나서자마자
고깃국물 냄새를 코를 찔렀다.
가스렌지로 달려가 보니 솥 안의 압력에 김이 새는 소리가 쉭쉭 나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졸아서 눌러 붙지 않은 것이었다. 30여분 동안 달궈 놓았으니 속에 있던 매운탕은 이미 곰탕이
돼 있었다. 가스렌지 불을 꺼놓고 서재로 돌아와 다시 인터넷을 하다가 점심때가 되어 보온 밥솥
뚜껑을 열고 밥을 푸려고 보니 밥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침밥을 먹으면서
마누라가 점심때는 "따신 밥 해서 드시라"는 말을 예사로 들었기 때문이었다. 할 수 없이 아타트 상가
마트에 가서 햇반을 사왔다. 그런데 전자렌지에 넣고 몇분간 가열을 해야 되는지 알 수가 없어
아들딸들에게 전화를 해도 연결이 잘 되지 않았다. 대략 2분간 한다는 기억이 남아있어 그대로 했더니
먹을만하였다. 후반부 가스렌지건은 실수라기 보다는 경도인지 장애나 치매증상에 가깝다. 약이라도
사 먹어야 할랑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