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때 시골에서 자랄 때에는 보릿고개 시절이라 배부른 때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봄이면 길가에 올라오는 삐삐도 뽑아서 씹어먹고 산골짜기에 소 먹이러 가서
송구도 깎아먹기도 하고 더덕이나 딱, 도라지 등 뿌리도 캐어 먹었다. 도라지는 맛이 쓰서
그냥 먹지는 못한다. 삶아서 물에 우려 쓴맛을 뺀 다음 나물로 무쳐먹는다.
이른 봄에 고구마 순을 보리밭 고랑에 옮겨 심어 놓으면 보리를 베고 나면 줄기가 한발이나 자라나
뿌리가 들기 시작한다. 한여름에는 고구마 잎이 무성해지면 둑을 고무신을 신은 발로 툭툭 차면
색깔이 바알간 새끼 고구마가 모습을 드러낸다. 손으로 쓰윽 뽑아서 껍질에 묻은 흙을 풀잎에
문지른 다음 입으로 가져가 한 입 베어 물고 우적우적 씹으면 단맛이 입 안에 가득했다.
배 고프다고 이것 저것 주워 먹다보니 가끔 배탈이 났다. 배가 아프면 시골에선 약도 없고
병원도 없었으므로 기껏해야 쑥을 뜯어다 돌로 찧어서 쑥물을 내어 마시거나 어머니가 손으로 배를
쓰다듬으며 "내 손이 약손이다" 주문을 외우시는 것이 유일한 처방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배가 아픈 경우를 제외하곤 남이 내 몸을 만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배를 타고 동남아를 다닐 때나 패키지 여행을 갔을 때도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곤 마사지를 하지 않았다.
어제 시골에 사는 막내 동생이 자기 친구가 이사를 가면서 안마의자를 주고 갔다면서 화물차에 싣고 와서
거실에다 설치를 해주고 갔다. 안마의자가 상당히 고가여서 누가 저런 물건을 사겠는가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웬만한 집에는 가정 필수품처럼 들여 놓은 것 같았다. 둘째 동생집에도 조카가 부모를 생각해서
구입했는데 나보고 와서 한번 앉아 보시라고 해서 앉았더니 스윗치를 누르자마자 목덜미부터 허리 다리 발다닥까지
주무르고 두들겨 안마를 하는데 마치고 나니 컨디션이 훨씬 나아진 것 같았다.
거실 한켠에 안마의자를 셋팅해 놓으니 공간상으로는 조금 좁아졌지만 이제 우리집도 부자가 된 기분이다.
젊을 때야 높은 산도 깊은 바다도 날개 돋친듯 쏘다니곤 했지만 이제 나이가 드니 육신도 내 몸이 아닌듯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으니 세월이 참으로 무상하다 싶다. 그나마 아직까지 네 발로 움직일 수가 있으니
다행이다. 안마의자한테 부탁해서 오랫동안 친구로서 잘 사겨보자고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