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5시에 집을 나서 부산역 인근에 있는 해기사회관 2층 사랑방으로 갔다.
6시에 식당 '흥부와 어우동'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동기회를 하기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동기회는 보통 정례적으로 매월 25일에 하기로 돼 있지만 이 달에는 멀리 춘천에 있는
동기생 친구가 51년만에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특별히 부산으로 내려온다고 해서 바꾼 것이다.
타이틀에 나오는 뱃넘학교는 한국해양대학교를 지칭하는데 지금은 종합대학교가 됐지만
우리가 다닐 적엔 항해과와 기관과가 있던 규모가 아주 작은 단과대학이었다.
입학생은 양과 합해서 200명이었는데 국립으로 기숙사비와 수업료,피복비를 국가에서
제공하므로 가정환경이 어려운 학생들이 많이 지원을 했었다.
우리 동기들은 200명 입학하여 매 학기마다 시험에서 몇학점 이상 과락하면 퇴교조치를 했으므로
최종 졸업한 사람은 168명이었다.ROTC 신분이었으므로 군사학이나 A급 과실자도 탈락시켰다.
다행히 나도 졸업은 했지만 그 중에서 40명은 운이 나쁘게도 해군에 소집되어 2년1개월, 소위와 중위로
복무를 하였다. 본래는 예비역이었지만 해군에서 필요한 숫자만큼 소집했던 것이다.
사랑방에 도착하니 춘천에서 내려온 친구를 비롯하여 많은 동기생들이 미리 나와 있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졸업하고 51년이나 흘렀으면 강산이 변해도 다섯번이나 변했을
시간이다. 그는 부부가 같이 내려왔는데 부인은 자기 친구들 만나러 가고 자신은 우리 동기생들한테로
왔단다. 나오기 전에 예전에 자기가 살았던 남천동 삼익으로 가봤더니 엄청 많이 변했더라고 했다.
우리 일행은 예약한 식당으로 내려가 저녁식사를 맛있게 하고 다시 해기사회관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
"왜 나는 목사가 되었는가?"하는 사연을 들었다. 그는 운 좋게도 해군에도 소집되지 않고 졸업과 동시에
해운회사에 취직이 되어 배를 탔다.배를 타면서 돈도 조금 모아서 조그만 집도 사고 결혼도 했다. 그 사이
진급도 하여 기관장이 되었다. 미국으로 차를 싣고 가는 카캐리어 기관장이 돼서 태평양을 횡단하던 중
사방이 깜깜한 한밤중에 갑판으로 혼자 나갔더니 망망대해를 미끄러지듯이 지나고 있고 하늘에는 수 많은 별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한참동안 어둠 속에 서 있다가 "오늘이 며칠이지?" 라는 생각이 들어 날짜를 계산해 보니 1985년 1월18일
바로 자신의 35번째 생일이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성경의 시편 90편 속의 한 귀절이 머리 속에 떠 올랐다고 한다.
"인생은 기껏해야 70년, 근력이 좋아야 80년, 그나마 거의가 고생과 슬픔에 젖은 것.
날아가듯 덧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인생 70이 끝이라면 나는 지금 변곡점인 절반에 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캄캄한 어둠 속에서 하느님의
음성이 똑똑히 들려 왔단다. "철수야 너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느냐? 그리고 인생 후반전을 어떻게 살아가겠느냐?"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지난날을 되돌아 보니 별 의미없이 살아온 게 후회스러웠다.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고 난 후 하느님께 앞으로는 의미있는 삶을 살겠다고 맹세를 굳게 하고는 자신의 신앙생활을 다잡았다고 한다.
연가로 하선한 후 기도원에 가서 보름 동안 기도를 했더니 영성이 목회자의 길로 안내하여 독서실에 나가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집 한 채 있는 것을 팔아 신학대학에 다녔다고 한다. 졸업후 부산 가야에 있는 교회에 부목사로
발령받아 내려왔는데 일년만에 그 교회에 다니는 신도중의 한 사람이 중국 심양에서 사업을 하는데 중국에 오시지
않겠느냐고 해서 가서 보고 중국으로 들어가게 됐다고 한다 처음에 갈때는 중국 교회가 신도가 30명에 불과했는데
20년간 크게 발전하여 신도가 3000여명으로 불어났다고 한다. 자기는 후배목사한테 물려주고 은퇴하여 한국으로
나와 춘천에 살고 있다고 한다.코로나가 창궐하기 시작할 때 나오면서 죽을고비도 숱하게 넘겼다고 한다.
중국에서 목회활동중 탈북자를 도와 자유를 찾게 해준 적도 있다고 한다. 자신도 부정맥으로 강론하다가 쓰러지기도
했는데 신도 가운데 한 사람이 용한 사람을 소개해 주어 막대기로 발바닥을 쑤셔서 치료를 하는데 처음엔 아파 죽을
지경이었으나 몇번 받고난 이후론 견딜만 하였고 5개월 치료 받고나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더니 깨끗이 나았더란다.
알고 보니 그도 탈북자였다고 한다. 그 외에도 자신은 비타민C 애용자로 하루에 6알을 복용하는데 암도 낫게 해 준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였다. 그는 인생 후반전을 참으로 의미있게 사는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