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하고 보니 옛날처럼 글 쓸 일도 별로 없거니와 글을 쓴다해도 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기 일쑤다. 그런데도 탁상일지나 다이어리 혹은 메모장 등에는 필기구가 필요하다.
오늘 아침 노트에 필기를 하다 잉크가 떨어져 글자가 쓰여지지 않았다. 색깔이 다른 볼펜으로
대충 적어놓고 점심을 먹고는 우산을 쓰고 빗 속을 걸어 지하철을 타고 롯데백화점 7층
교보문고로 갔다. 각종 필기구들이 많이 있는데 예전에 애착이 갔던 LAMY가 눈에 띄어
가격을 물어보니 42000원이었다. 전시품을 꺼내 손으로 잡아보니 촉감도 좋고 글씨도 잘 쓰여졌다.
예전에 학교에 있을 때는 만년필보다도 볼펜이 많이 쓰였다. 만년필에는 고무 튜브에 잉크를
넣거나 잉크 카트리지를 꽂아서 사용하다 보면 잉크가 주변에 묻어 얼룩이 지는 수가 더러 있었다.
아들이 기념으로 받은 만년필도 LAMY여서 간 김에 만년필 잉크 카트리지(5개)도 4500원 주고 샀다.
잉크를 처음 사용한 것이 중학교에 입학하면서였다. 국민학교때는 연필을 썼고 당시만 해도
국산품 연필의 질이 좋지 않아 심은 툭툭 잘 부러졌고 나무결도 좋지 않아 곱게 깎이지도 않았다.
손으로 돌리는 자동 연필깎기도 없어서 딱개칼이나 낫이나 부러진 칼 동가리로 깎았다.
잉크병을 가지고 다니면서 펜으로 찍어서 사용했는데 잉크가 쏟아져 나와 가방이나 책, 노트 등을
시커멓게 만들므로 그 속에다 스폰지를 넣어 다니기도 하였다. 만년필도 귀해서 부잣집 자식이나
되어야 만년필을 가질 수가 있었다. 학교 졸업식이나 입학식때 선물로도 많이 팔렸다.
나는 대학생이 되어서야 만년필을 가질 수가 있었다. 그것도 실습나갔을 때 실습수당을 받아 산 것이
중공제 영웅이었다. 그 후 배를 타면서 제대로 월급을 받게 되었을 때는 몽블랑을 한 자루 사서 아껴 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