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 深山忘釋(심산망석) -깊은 산속에서 부처님을 잊다.-
一尹生者, 客遊關西, 留一村舍, °滯雨未歸. °主媼, 雖老而言貌擧止, 不似村婆
貌樣, 一日,
윤생이라는 사람이, 관서지방에 나그네로 노닐었는데, 한 촌집에 머물 때, 비에 막혀 돌아오지 못 하였다. 안주인이 비록 늙었으나 말과 모습과 행동거지가, 촌 노파 같지 않았는데, 하루는,
(客-나그네 객, 遊-놀 유, 關-빗장 관, 留-머무를 유, 舍-집 사, 滯-막힐 체, 媼-어미 온, 雖-비록 수, 貌-모양 모, 擧-행동 거, 似-같을 사, 婆-할미 파, 樣-모양 양)
[滯雨(체우)]; 비 때문에 막힘, [主媼(주온)]; 주인 여자, 안주인,
媼笑而言曰: “°行次, 必伈伈, 吾爲古談, 以睨一笑, °何如?” 尹生曰: “好矣. 主翁, 不悅曰: “不緊之語, 今又欲言耶?”
안주인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행차가 반드시 심심하실 것인데, 내가 옛날 이야기나 해 드려서, 한 번 웃으시는 것이 어떠하십니까?”하니, 윤생이 말하기를, “좋지요.”하니, 주인이 좋아하지 않으면서 말하기를, “긴요하지도 않은 말을 이제 또 말하려고 하는 거요?”하니,
(媼-어미 온, 笑-웃을 소, 伈-두려워할 심, 심심할 심, 睨-흘겨 볼 예, 기울 예, 翁-늙은이 옹, 悅-기뻐할 열, 緊-굳게 얽을 긴, 耶-어조사 야)
[行次(행차)]; 웃어른이 길 가는 것을 공경하여 일컫는 말, [何如(하여)]; 어떻한가?
媼曰: “君我, 俱老, 言之何妨?” 仍言; “我本楚山妓也, 年十六, 昵於主伜, 寵
以專房, °主伜, 意外, °徑遞臨別, 而乃以所用什物,
안주인이 말하기를, “당신과 내가 함께 늙었으니, 그 말을 해서 무엇이 어려울 것이 있겠소?”하고, 곧 말하기를, “나는 본시 초산 기생으로, 나이 열여섯에 사또와 친하여, 귀여움을 받아 사또의 방에서만 함께 지냈는데, 사또가 뜻밖에 갈려 가게 되어 이별할 때, 쓰던 물건을,
(媼-어미 온, 俱-함께 구, 妨-방해할 방, 仍-인할 잉, 楚-모형 초, 妓-기생 기, 昵-친할 닐, 伜-버금 쉬, 원님 쉬, 寵-사랑할 총, 徑-길 경, 지날 경, 遞-갈마들 체, 什-물건 십) [主倅(주쉬)]; 사또, [徑遞(경체)]; 벼슬이 만기되기 전에 다른 벼슬로 옮겨 감,
°都付於我, 且厚給°盤纏而語曰; ‘吾歸之後, 汝卽上來, 同過百年, 可也.’ 我泣而許之, °主伜去後, 情不自抑,
모두 나에게 주며, 또한 후하게 노자 돈을 주며 말하기를, ‘내가 돌아간 후에, 너도 곧 올라와서, 함께 백년을 지내는 것이 좋겠다.’해서, 나는 울면서 허락했는데, 사또가 떠난 후로, 정분을 스스로 억제하지 못하여,
(都-모두 도, 付-줄 부, 厚-두터울 후, 盤-소반 반, 纏-묶을 전, 汝-너 여, 泣-울 읍, 倅-원님 쉬, 抑-누를 억)
[都付(도부)]; 모두 주다, [盤纏(반전)]; 노자(路資), 여비, [主倅(주쉬)]; 사또,
以其°所給, 換得輕寶, 而率一°小奚, 治任離行, 纔到數日程, 時値隆冬, 大雪, 飄紛, 迷失去路. 使童捨馬尋路,
그가 준 것을 가벼운 보물로 바꾸고, 동자 종 하나를 데리고, 길을 떠나 가다가, 겨우 수일간을 갔는데, 때마침 추운 겨울이라, 큰 눈이, 바람에 어지러이 날려, 길을 일어버렸다. 동자를 시켜 말을 놓아두고 길을 찾게 하였는데,
(給-줄 급, 換-바꿀 환, 率-거느릴 솔, 奚-여자 종 해, 纔-마침 재, 방금 재, 程-단위 정, 値-이를 치, 隆-클 융, 飄-회오리바람 표, 紛-어지러울 분, 迷-헤맬 미, 捨-버릴 사, 尋-찾을 심)
[所給(소급)]; 준 것, [小奚(소해)]; 어린 동자 종,
誤陷壑雪, 而竟死其中, °踽踽中道, 寒甚折股而日又昏黑, 遙望踈灯, °明滅於林間, 認爲人家, 艱尋扣焉而見, 則乃一佛庵, 而寂無人跡,
잘못하여 깊은 눈구덩이에 빠져, 마침내 그 가운데서 죽은지라, 중도에서 머뭇거리는데, 심한 추위는 다리가 끊어지는 듯한데, 날이 또한 어두워지는데, 멀리 바라보니 등불이 숲 사이에서 깜박거리는 것을 보고, 사람 사는 집이 있음을 알고, 간신히 찾아가 두드리고 보니, 곧 한 부처님의 암자인데, 고요히 사람의 자취가 없고,
(陷-빠질 함, 壑-골 학, 竟-마침내 경, 踽-홀로 갈 우, 股-넓적다리 고, 遙-멀 요, 踈-트일 소, 멀 소, 灯-등불 정, 艱-어려울 간, 尋-찾을 심, 扣-두드릴 구, 焉-어조사 언, 庵-암자 암)
[踽踽(우우)]; 머뭇거림, [明滅(명멸)]; 깜박거림,
卓上只有白衣, 一佛°而已, 自度於心曰: ‘房奧旣溫, 燈火且明, 而僧則°無之, 怪矣怪矣.’ 然而事到窮處, 無異藩谷,
탁상 위에는 다만 흰옷과 한 부처가 있을 뿐이라, 스스로 마음에 생각하기를, ‘방 아랫목이 이미 따뜻하고, 등불이 또한 밝은데, 중도 없으니, 괴상하고 괴상하도다.’ 그러나 일이 이렇게 궁한 처지에 이르렀으니, 달리 갈 곳이 없어,
(卓-책상 탁, 只-다만 지, 佛-부처 불, 已-뿐 이, 度-헤아릴 탁, 奧-아랫목 오, 怪-기이할 괴, 矣-어조사 의, 然-그러나 연, 到-이를 도, 藩-덮을 번, 지킬 번, 谷-좁은 길 곡) [而已(이이)]; ~뿐이다, [無之(무지)]; 없음,
躬解°馬卜, 作粥啜之, 獨臥房中, °輾轉不寢, °少焉, 凍軆解而煩熱甚, °以其無人也故, 盡脫衣裳, 只着單襠, 而露體°偃臥,
몸소 말안장을 풀고, 죽을 쑤어 먹이고, 홀로 방 가운데 누워,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더니, 얼마 후에, 언 몸이 풀리면서 답답하고 열이 심해서, 사람이 없기 때문에, 옷을 모두 벗고, 다만 잠방이만 입고, 몸을 드러낸 채로 쓰러져 누웠는데,
(躬-몸 궁, 卜-안장 복, 粥-죽 죽, 啜-마실 철, 먹을 철, 輾-구를 전, 焉-어조사 언, 煩-괴로워할 번, 裳-치마 상, 只-다만 지, 襠-잠방이 당, 偃-쓰러질 언, 臥-누울 와)
[馬卜(마복)]; 말 안장, [輾轉(전전)]; 누워서 이리저리 몸을 뒤척임,
[少焉(소언)]; 조금 후에, 얼마 후에, [以其(이기)]; ~ 때문에, [偃臥(언와)]; 쓰러져 누움,
°不意, 一僧卽來强奸, 雖欲不從, 夜半深山, 其誰來救. 原來此僧, 已自十餘歲,
削髮出家, 學得°辟穀方, 獨居庵中,
뜻밖에 한 스님이 와서 강간을 하니, 비록 따르지 않으려 하였으나, 밤중에 깊은 산에서, 누가 와서 구해 주겠는가. 원래 이 스님은, 이미 십여 세부터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 곡식은 안 먹고 솔잎, 대추, 밤 등을 먹고 사는 방법을 배워, 홀로 암자에 사는데,
(奸-강통할 간, 雖-비록 수, 深-깊을 심, 誰-누구 수, 救-구원할 구, 已-이미 이, 削-깎을 삭, 髮-터럭 발, 辟-피할 피, 穀-곡식 곡, 庵-암자 암)
[不意(불의)]; 뜻 밖에, [피곡(辟穀)]; 곡식은 안 먹고 솔잎 대추, 밤 등을 먹고 사는 일,
年方二十八, 上所云卓上白衣佛者也, °戒行雖高, 情慾所動, 如何可抑. 翌日, 開戶視之, 則積雪連簷, 欲歸°無奈, °荏苒終冬,
나이 바야흐로 이십팔 세라, 앞서 말한 탁자 위의 흰옷 부처님이 곧 그라, 계행이 비록 높았으나, 정욕이 움직이니, 어찌 억제 하리오. 이튿날, 창문을 열고 보니, 눈이 처마까지 쌓여, 돌아가고자 하나 어찌 할 수 없어, 그럭저럭 겨울을 나니,
(方-바야흐로 방, 云-이를 운, 卓-책상 탁, 戒-경계할 계, 雖-비록 수, 抑-누를 억, 翌-다음날 익, 開-열 개, 戶-외짝문 호, 積-쌓을 적, 連-잇닿을 연, 簷-처마 첨, 奈-어찌 내, 荏-들깨 임, 苒-풀 우거질 염)
[戒行(계행)]; 계율에 따른 행동, [啓行(계행)]; 계율을 잘 지키어 닦는 행위,
[無奈(무내)]; 어찌 할 수 없음, [荏苒(임염)]; 세월이 덧없이 흐름,
兩情°俱洽, 僧曰: ‘我不求君, 君不尋我, 而°那知積雪, 作我°斧柯? 我行因君而毁, 君節緣我而虧, 事機至巧, 湊合至矣.
두 사람의 정분이 서로 흡족하여, 스님이 말하기를, ‘나도 그대를 구하지 않았고, 그대도 나를 찾지 않았지만, 눈이 쌓여 나로 하여금 그대와 짝이 되게 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 나의 계행은 그대 때문에 훼손되고, 그대의 절개는 나 때문에 이지러졌으니, 일이 교묘하게 이에 이르러, 합치하게 되었도다.
(俱-함께 구, 洽-젖을 흡, 尋-찾을 심, 那-어찌 나, 斧-도끼 부, 柯-자루 가, 毁-헐 훼, 緣-인연 연, 虧-이지러질 휴, 機-기틀 기, 巧-교묘할 교, 湊-모일 주)
[俱洽(구흡)]; 서로 흡족함, [那知(나지)]; 어찌 알겠는가?
[斧柯(부가)]; 도끼와 도끼 자루, 짝이 됨,
治天, 所以做成君我之好箇因緣也, 何必往訪°故夫, 作了°副室乎? 與我°偕老, 共享安樂, 如何?’ 我亦思之, 言實有理,
이는 하늘이 그대와 나의 좋은 인연을 만들어 준 바라 것이니, 어찌 반드시 옛 낭군을 찾아가서, 첩이 될 필요가 있겠는가? 나와 함께 늙어가며 함께 안락함을 누리는 것이 어떻겠소?’하니, 나 또한 생각해보니, 그 말에 실로 이치가 있는지라,
(做-만들 주, 箇-낱 개, 訪-찾을 방, 了-마칠 료, 副-버금 부, 偕-함께 해, 享-누릴 향) [故夫(고부)]; 옛 낭군, [副室(부실)]; 첩, [偕老(해로)]; 함께 늙어감,
仍隨其僧而來居于此, 則有子孫, 家亦°稍饒, 斯豈非天耶. 彼翁, 卽當日山僧.” 翁亦笑不言.
곧 그 스님을 따라 이곳에 와서 살면서, 자손을 두고, 집안 또한 조금 넉넉하니, 이 어찌 하늘의 이치가 아니리오. 저 늙은이가 곧 당일의 산승이요.”하니, 늙은이 또한 웃으면서 말이 없었다.
(仍-인할 잉, 隨-따를 수, 僧-중 승, 居-살 거, 于-어조사 우, ~에 우, 稍-조금 초, 饒-넉넉할 요, 斯-이 사, 豈-어찌 기, 耶-어조사 야, 彼-저 피, 翁-늙은이 옹, 笑-웃을 소) [稍饒(초요)]; 조금 넉넉해짐,
副墨子曰: “噫! °釋氏之言, 曰: ‘雲駛月運, 舟行岸移.’ 邂逅°少艾於暗室之中, 若非病身則孰能守其操, 而不運移者乎? 良可奇遇也.”
부묵자가 말하기를, “슬프도다! 석가모니가 가르치되, ‘구름이 달리니 달이 옮기고, 배가 가면 언덕이 옮겨진다.’했으니, 젊은 여자를 어두운 방 안에서 만났으니, 병신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 지조를 지키어, 행동에 옮기지 않겠는가? 참으로 기이한 만남이로다.”
(副-버금 부, 墨-먹 묵, 噫-탄식할 희, 釋-버릴 석, 駛-달릴 사, 邂-만날 해, 逅-만날 후, 艾-쑥 애, 操-잡을 조, 奇-기이할 기, 遇-만날 우)
[釋氏(석씨)]; 석가모니 부처, [소애(小艾)]; 젊고 어여쁜 계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