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군대한본영이 세계 구세군 빌딩 중 최대 규모의 빌딩을 지어 헌당했다고 자랑이 한창이라고 하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구세군의 창시자 윌리엄 부스를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된다. 언론에 따르면, 지난 7월 24일(토) 오후 2시에 구세군아트홀 2층 (충정로 3가 58-1번지)에서 헌당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지하 6층 지상 17층 규모의 건물은, 구세군이 지난 1991년 선교 2세기를 열어갈 새로운 교두보 마련을 목표로 ‘구세군 충정로 자산 개발계획’을 세워 군국자립헌금 100억원을 모금하는 등 건축계획을 실행했고, 이후 90년대 중반 “IMF 사태”로 건축계획을 잠정 유보하기도 했으나 상암동 구세군 부지를 매각, 600억원을 확보해 지난 2006년부터 선교빌딩 건축에 박차를 가했다고 한다. 현재 정동 중앙회관에 자리한 구세군 본부는 충정로 100주년 빌딩이 세워짐에 따라 이곳으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며, 정동 중앙회관은 역사박물관 및 청소년 교육센터 등으로 활용될 예정이라고 한다.
크리스천투데이의 보도에 따르면, “이날 헌당예배에서 서기장관 박만희 정령은 ‘충정로 구세군 빌딩은 지하 6층 지상 17층 규모로 구세군 선교를 나타내는 돛단배의 모습을 형상화한 건축물’이라며 ‘구세군 업무시설을 비롯해 근린생활시설, 종교문화집회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본부로 사용될 빌딩 옆에는 구세군 아트홀도 마련됐다. 예배에 참석한 국제 구세군 쇼어 클립턴 대장은 ‘지난 2008년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건축 예정지는 단지 공터일 뿐이었다.’며 ‘결국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아름다운 성공과 성취를 허락하셨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귀한 건물이 되길 바란다.’고 축사를 전했다. 이번에 신축된 한국 구세군 100주년 기념빌딩은 세계 구세군 빌딩 중 최대 규모라는 평가다.”라고 보도하고 있다.
필자는 처음 구세군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을 때 단지 그 단체는 일종의 사회 구호단체의 모임인 줄 알았다. 군복을 입고 군인들을 흉내 내고, “자선냄비”로 모금을 하여 가난한 자들이나 돕는 구호단체쯤으로 알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교회사를 통해서 구세군의 창시자 윌리엄 부스의 사역에 대해서 알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그러다가 또 다시 생각이 바뀌었는데, 오늘날 구세군의 사역들을 보면서 과연 윌리엄 부스가 오늘날의 구세군이 펼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얼마나 실망하고 있을지를 생각해 보게 된 것이다. 아마 지난날 어린양의 보혈을 외치며 구령했던 구세군의 군사들과 더불어 지금 구세군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을 치고 있을 것이다.
윌리엄 부스의 사역을 기록한 “신약교회사”(말씀보존학회)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많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윌리엄 부스(1820-1912)는 평생 동안 1611년판 <킹제임스성경>만을 사용했다. 그의 생애 기간 중 이미 배교한 보수주의자들이 애호하던 “성서들”(1885년의 RV, 1901년의 ASV)이 잘 알려져 있었지만 그는 올바른 성경을 선택할 줄 아는 분별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2백만이 넘는 부랑아와 거지들을 구원으로 인도했다. 그는 감리교단이 획일적인 복음을 전할 것을 요구하며 그의 사역에 제동을 걸자 교단을 떠났다. 감리교단은 그가 목사로서 교회 안으로 데리고 들어온 사람들을 싫어했기 때문에 그를 순회 전도자로 만들려고 했다. 그가 데려온 사람들 중에는 뚜쟁이들과, 죄수들과, 창녀들과, 주정뱅이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캐더린 부스(윌리엄 부스의 아내)는 감리교 총회에서 남편이 교단의 정치 목사들로부터 목사직을 내놓고 순회 전도자가 되도록 권고받자 양산을 내던지면서 “절대로 안돼”라고 소리쳤다. 결국 윌리엄 부스는 목사직에서 쫓겨났다. 그는 런던에 있는 헬즈키친으로 가서 거리에서 설교했다. 그의 동조자들도 그와 함께 설교했다. 그들은 돌팔매질을 당했고 달걀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와중에서도 그들의 공격자들에게 “고맙습니다.”라고 고개숙여 인사했다고 한다. 부스는 커다란 베이스 드럼과 빨갛고 노란 깃발(피와 불을 상징)을 들고 시내로 가서 수천 명을 구령했다...”
그가 인도를 방문할 당시(1900) 그는 이미 위대한 인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가 배에서 하선할 때는 밴드가 동원되었고 공작, 공작부인들, 인도의 황후와 지도급 인사들이 마중을 나왔다. 그러나 부스는 이런 환영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는 갑판에 서서 “인도의 가난한 사람들은 어디 있는가? 나는 그들을 보러 왔다.”라고 외쳤다. 그는 문둥병자들과 부랑자들을 보러 왔었다. 부스가 죽게 되었을 때 사람들이 그에게 아침식사로 물에 넣어 요리한 달걀을 가져오자 그는 울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왜 우는지를 묻자 그는 “수백 명의 런던 시민들이 오늘 아침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어 굶고 있는데 나에게 이런 달걀을 가져왔는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바첼 린세이는 이 십자가 군병을 위해 가장 훌륭한 비문을 기록했다.
“부스는 커다란 베이스 드럼을 들고 ‘당신은 어린 양의 피로 씻김을 받았는가’라는 찬송을 인도했다. 성도들은 진지한 미소를 띄며 ‘그가 온다. 당신은 어린 양의 피로 씻김을 받았는가, 그 사람이 온다구.’라고 말했다. 거리를 방황하던 문둥병자들은 그 행렬을 따랐고, 휘청거리고 있던 주정뱅이들도 어두운 도랑에서 기어나왔고, 매춘부들도 골목길에서 마약으로 창백해진 얼굴과 술냄새를 풍기며 따라 나왔다(여전히 정욕으로 가득차고, 나약한 의지력을 갖고 있었지만). 동시에 세상의 악으로 찌들어 있던 성도들도 죽은 행실과 냄새나는 모습을 지닌 채 행렬에 참가했다. 당신은 어린 양의 피로 씻김을 받았는가? 부스는 때로 행렬을 멈추고서 기도를 할 때도 어린 양의 피로 씻김을 받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깃발로 가득 찬 공중을 통해 그의 주인을 쳐다보았다. 당신은 어린 양의 피로 씻김을 받았는가? 그리스도께서는 행렬이 무릎 꿇고 있는 동안 그의 용사 부스를 위해 흰옷과 면류관을 들고 부드럽게 강림하셨고 그는 그 거룩한 지성소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왕이신 예수님을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보고 있었다. 당신은 어린 양의 피로 씻김을 받았는가?”
“신약교회사”의 저자인 피터 럭크만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역사상 그 어떤 영적 운동도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은 적이 없다. 사람, 운동, 기계화, 그리고 기념비가 그것이다. 사람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요, 운동은 가르치는 것이며, 기계는 문화를 뜻하며, 기념비는 배교를 의미한다.”
정말 한국의 구세군은 “당신은 어린양의 보혈로 씻김을 받았는가?” 라고 물으며 구령을 하지 않고 거대한 빌딩과 함께 기념비만 남기고 이대로 막을 내릴 것인가?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내게 자랑할 것이 없으니 이는 내가 부득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라.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정녕 내게 화가 있으리라!』(고전 9:16). 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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