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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스를 쓰시는 하나님(사45:1-8)-204.8.18
하나님의 손에 들려지면 못쓰실 것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나 어떤 나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믿음의 선한 도구로 사용되어지기도 하고, 악한 도구로 사용되어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저런 사람을 사용하시는지 모르겠다는 의구심을 갖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역사를 위해 누구든지 사용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하나님의 종들은 우리 보기와는 전혀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하나님은 세상의 미련 한 자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고전1:27).
또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시는 분이십니다(고전1:28). 그것은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택하신 원리와도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보다 우등하고 잘나서 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택하사 그들을 구속사의 도구로 사용하기 원하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굴러다니는 돌들을 명하여서라도 아브라함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다는 말입니다(마3:9). 성경에도 별 볼일 없고 볼품없는 신분을 가진 자들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믿음의 선한 역사를 창조했던 사례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한 사람이 고레스 왕입니다. 알다시피 고레스는 이방나라 바사제국의 왕입니다.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던 왕이지요. 성경을 보면 믿음의 계보를 이어가는 흐름이 있거든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계보를 이어갈 혈통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바사왕 고레스는 믿음의 계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왕이었던 것입니다. 어디를 봐도 이방인이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가 하나님의 구속사의 한복판에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이 그를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도구로 사용하신 것이지요.
고레스는 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리고 바사제국을 건국한 왕입니다. 당시 유대민족을 포로로 잡아가서 지배했던 바벨론 제국은 절대 무너질 수 없는 강력한 제국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강력한 제국 바벨론이 고레스 왕에게 무너졌습니다. 메대와 바사에 의해서 말입니다. 물론 바사제국의 주도하에 말입니다. 메대와 바사가 연합하여 바벨론을 무너뜨린 것이지요. 메대는 이란 북서쪽의 고원지대에서 발흥한 메디나라고 부르는 큰 나라였습니다. 거기에 비해 바사는 작은 나라였지요. 그래서 상당기간 바사가 메대에 조공을 바치는 관계였던 것입니다. 나중에 고레스에 의해서 그 관계가 바뀌게 된 것이지만요.
(1) 너는 나를 알지 못할지라도
고레스 왕을 알기 위해 고레스의 탄생에 관한 기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왜냐면 고레스 왕은 기독교 역사에 가장 친숙한 이름이고 존재감이 있는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메대로부터 시작합니다. 하루는 메대 왕이 꿈을 꾸었습니다. 자기 외동딸 만다네의 소변이 온 나라를 덮는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메대 왕은 신하들을 불러서 꿈을 해몽하게 했습니다. 해몽가들의 반응은 흉몽이라는 것입니다. 장차 공주가 결혼하여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가 나라를 뒤집어엎을 징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메대 왕은 만다네 공주를 메대 사람에게 시집을 보내지 않고 속국관계에 있는 바사의 변방 캄비세스1세에게 시집을 보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나는데 그가 키루스입니다. 메대 왕은 일찍이 자기 심복 하르파고스에게 공주가 딸을 낳으면 살리고, 아들을 낳으면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공주가 아들을 낳은 것입니다. 얼굴이 달덩이처럼 잘 생긴 아들을 본 하르파고스는 왕의 손자를 죽이지 않고 산속에서 소를 키우는 부부에게 양육을 부탁합니다. 하르파고스가 고레스의 운명을 알아본 것이지요.
그리고 양부모 밑에서 자라던 고레스가 자기 친부모에게 돌아가는 일이 생깁니다. 열 살 때의 일입니다. 고레스가 동네 아이들과 함께 왕 놀이를 합니다. 그런데 운명을 암시하듯이 고레스가 왕이 된 것입니다. 친구들 가운데 메대 출신 아이가 있었는데 그가 자신은 절대 고레스를 왕으로 섬길 수 없다고 반항한 것입니다. 그래서 고레스가 그를 잡아다가 실컷 때려주었습니다. 결국 맞은 아이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집으로 가서 자기 아버지에게 말하게 됩니다. 그런데 맞은 아이의 아버지가 메대 왕의 측근 중에 측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맞은 아이의 아버지가 왕과 술자리를 갖게 되었습니다. 술이 거하게 취하자 왕에게 맞고 돌아온 자기 아들 이야기를 꺼낸 것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왕도 아이들의 놀이치고는 유별나다고 생각하여 아이와 양부모를 데려오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왕 앞에서 추궁을 한 것이지요. 왕이 뭔가 집히는 것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왕이 그 아이를 보니 영락없이 자기를 닮아 보였던 것입니다. 왕은 결국 양부모를 추궁하여 자기 아들이 아님을 밝혀냅니다. 그리고 왕은 심복 하르파고스를 불러 자기 명을 거역하고 손자를 살려준 고백을 받아낸 것입니다.
결국 고레스가 메대 왕의 외손자임이 밝혀진 것입니다. 분노한 메대 왕은 하르파고스를 둘만의 식사자리에 초대했습니다. 왕과 독대한 식사자리에 푸짐한 고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왕은 먹지 않고 하르파고스에게 많이 먹으라고 종용합니다. 결국 하르파고스는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식사가 끝나자 왕이 말합니다. 그가 조금 전에 먹은 고기가 하르파고스의 아들을 잡아 죽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르파고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왕에게 등을 돌립니다. 그는 자기재산을 정리하여 가족에게 나누어준 후에 바사의 공주를 찾아가서 공주의 아들 고레스의 가정교사를 자처합니다.
그때부터 고레스를 대왕으로 만드는 작업을 시작한 것입니다.그리고 고레스는 바사국을 접수하고 외할아버지의 나라 메디나를 쳐들어가서 접수합니다. 하르파고스의 도움으로 메디아를 정복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는 나라 이름도 메디아에서 페르시아로 바꿉니다. 거두절미하고 고레스가 메대를 접수하고 바벨론까지 접수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바사제국의 초대 왕이 됩니다.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강력한 제국으로 거듭난 바사제국의 초대 왕이 된 것입니다. 세계사의 흐름이 바벨론제국에서 바사제국으로 재편된 것입니다. 그 중심에 바사왕 고레스가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이란 사람들은 고레스를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합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훌륭한 왕으로 키루스 왕을 꼽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교수들과 역사학자들이 뽑은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왕은 단연 키루스 왕이었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알렉산더대왕도 고레스 왕을 롤 모델로 삼았다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고레스를 흠모한 나머지 자기가 고레스의 후계자라고 자처하고 다녔답니다. 그가 고레스의 무덤까지 복구시켜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고레스는 세계사에도 위대한 업적을 남긴 왕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고레스를 그렇게 높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붙잡아 역사적인 인물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누구든지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면 상상할 수 없는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속사만 주관하시는 분이 아니시고 세상 역사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역사도 하나님이 주도해 가시는 것이지요. 크로노스라는 흘러가는 시간속에서 카이로스라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여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고레스를 세상 역사 속에서 택하셔서 하나님의 구속사의 중심적인 인물로 사용하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2) 고레스를 통하여 열방에 하나님을 알리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고레스는 캄비세스2세입니다. 고레스2세인 것이지요. 그런데 성경에 보면 고레스는 태어나기 전부터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사에 가장 요긴하게 쓰임 받기로 작정된 인물이었다는 말입니다. 실제 고레스라는 인물은 성경에 수없이 등장합니다(역대기하, 에스라, 이사야, 다니엘 등). 솔직히 이방인으로서 그렇게 많은 성경의 족적을 남긴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물론 선한 역사를 위하여 말입니다. 하나님이 고레스를 어떻게 여기셨는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사야서44장28절과 45장1절입니다.
이사야서44장28절에 보면, 하나님은 고레스를 ‘나의 목자’라고 부르십니다. 그리고 45장1절에 보면, ‘나의 기름 받은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만큼 하나님이 귀하게 쓰시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기대가 큰 인물인 것이지요. 이방인의 왕에게 나의 목자라고 쓰신 경우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왕들 가운데서도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보통 이스라엘의 왕들 가운데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만한 왕들은 비교적 예측이 가능한 왕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레스는 전혀 예측이 불가능한 왕이었습니다. 감히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이방인의 왕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속사의 중심적인 인물이 되다니요?
그가 칙령을 내려 바벨론 포로를 귀환시켜 성전을 복원하는 일을 명령하기 전까지는 하나님을 위한 사역이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부르신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본문 4절과 5절에서는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미 고레스가 탄생하기 전부터 알고 계셨고 그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만세전부터 알고 계셨음을 믿습니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말씀하십니다(엡1:4).
하나님인 이미 수백 년 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고레스의 시대가 열릴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고레스는 주전690-530년 사람입니다. 그런데 고레스가 태어나기 150여 년 전 부터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셨던 것이지요. 그리고 말씀하신 하나님은 말씀대로 고레스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를 이스라엘을 바벨론포로에서 귀환시키는 주인공으로 데뷔케 하신 것이지요. 물론 우리는 고레스가 포로 귀환령을 내리게 된 배경을 추측해 볼 수 있는 근거를 갖고 있습니다.
주전605년에 다니엘이 바벨론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그곳에서 바벨론 제국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바사제국이 들어섬도 보았습니다(단1:21). 추측컨대, 바사 왕 고레스가 왕이 되자 다니엘은 고레스에게 이사야서를 보여주었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포로로 잡혀 왕궁에서 교육을 받고 그의 신하가 되었다가 바사왕 고레스의 통치 때에도 계속해서 그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다니엘은 “이와 같이 이 다니엘이 다리오의 통치와 페르시아 사람 고레스의 통치 때에 형통 하였더라”(단6:28).
다니엘서 후반부의 계시는 고레스 왕 3년에 받은 것입니다.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제 삼년에 한 일이 벨드사살이라는 이름을 가진 다니엘에게 계시되었는데 그 일이 참되나 정해진 때는 길더라. 그가 그 일을 깨닫고 그 환상에 대해서도 깨달음을 얻으니라”(단10:1). 그렇다면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기에서 유대 땅으로 돌아가는 유대인들을 보았고, 고레스가 포로 귀환 명령을 내릴 때도 그곳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로 볼 때 고레스 왕이 유대인들에게 자유를 주고 성전 건축 명령을 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이 바로 다니엘이었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예레미야서를 읽으면서 유대 포로기의 연대는 70년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곧 그의 통치 제일 년에 나 다니엘이 책들을 통하여 주의 말씀이 대언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사 알려 주신 그 햇수를 깨닫되 곧 그분께서 예루살렘이 황폐한 가운데 칠십 년을 채우시리라는 것을 깨달으니라”(단9:2). 다니엘은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70년 포로생활이 종결될 것을 알았고, 그 중심에 고레스 왕이 있었음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는 이사야서에 나오는 고레스란 인물에 대해서 이미 읽었을 것이고,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신 주의 예언의 말씀을 충분히 잘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니엘이 어떤 방식으로든지 고레스가 포로 귀환령을 내리는데 잠정적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결정적인 역할은 하나님이 하셨지요. 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다니엘이 보여준 이사야서를 읽던 바사 왕 고레스가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결국 자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예언하신 것을 보면서 감동을 받아 포로 귀환령을 내렸다는 것이지요. 충분히 가능한 상상력입니다. 물론 고레스를 사용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스케줄대로 고레스는 이 땅에 왔고,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이루는 도구가 된 것이지요.
모든 역사의 정점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고레스의 탄생에서 역사까지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주도하셨다는 말입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는 하나님의 스케줄대로 사용되어진 것이지요. 당시 강력한 제국 바벨론을 무너뜨림도 고레스가 강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소문에 의하면 고레스는 당시 강대한 제국 바벨론을 바라보면서 저 성을 무너뜨리려면 20년은 걸리겠다고 푸념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견고한 제국이었거든요. 감히 바벨론이 무너지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다만 고레스를 통해서 하신 것이지요.
그래서 오늘 읽은 본문은 모두 다 주어가 하나님으로 되어 있습니다. 고레스가 주어가 아니라 고레스를 택하사 사용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메대를 접수할 때도 하나님이 개입하셨습니다. 당시 바사보다는 강력한 힘을 가진 메디나가 바사의 고레스를 공격할 때 메대 왕이 보낸 참모들이 바사왕 고레스에게 항복한 것입니다. 고레스가 싸워서 이긴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바벨론을 정복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이 하룻밤에 벨사살 왕을 암살당하게 하신 후 바벨론 성을 함락시키게 하셨던 것이지요. 하나님이 세상 모든 나라와 족속과 열방들을 주관하신다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개인의 탄생에서 죽음까지를 주관하신 분이 하나님이시요,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고레스가 싸움을 잘해서 메대나 바벨론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고레스는 결국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도구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높여주시고 이기고 승리하게 해주셨던 것이지요.
세계사의 무대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고레스를 등장시켜 하나님의 역사를 창조하는 인물로 세우셨던 것이지요.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고레스를 보게 됩니다. 물론 고레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것이지요. 그러나 유난히 고레스는 특별한 은혜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분명히 고레스는 하나님이 쓰시는 종이었습니다. 그가 육신적으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동참한 적이 없어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이미 그를 선한 역사를 이루는 도구로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은혜를 입혀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이성과 지성을 초월하시어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초월적인 하나님이신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때로 우리의 이성이나 지성으로 하나님을 판단하려는 무모한 짓을 저지릅니다. 얼마나 미련한 것입니까?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시지요. 이사야서55장8절을 보면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생각과 다르다고 말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방법도 우리 인간의 방법과는 전혀 다르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9)고 말입니다. 어찌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신묘막측 하신 비밀을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3) 궁극적으로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고레스를 쓰시는 하나님(4절)
그러면 하나님이 이방인 고레스를 들어 쓰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고레스 자신을 위함이 아니고 이스라엘을 위함입니다(4절). 오직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고레스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자기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사랑하시는데 하나님은 어떤 것이라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신다는 증거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 하신다는 말씀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자기 백성들을 통하여 당신의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이방인에게 맡겨두지 아니하셨습니다. 혹은 썩어질 우상에게도 당신의 영광을 맡겨두신 적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당신의 백성들에게 맡겨두신 것입니다. 당신의 교회 안에 당신의 영광을 맡겨두신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백성들과 당신의 교회들을 통하여 당신의 영광이 드러나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당신의 영광을 찾으십니다. 당신의 백성들로부터 당신의 영광을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의 책임이 큰 것입니다.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찾으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특별한 케이스를 통해 영광을 드러내시기도 합니다. 이방인을 통해서도 당신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원하시고, 때로는 우상이나 더러운 것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도 하십니다. 물론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라온 고레스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통로로 사용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고레스가 교만할 수 없는 것은 자기 백성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감히 톱이 켜는 자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도끼가 치는 자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감히 무엇을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그냥 한 시대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 불러주심에 감사하고, 사용될 수 있음에 감사할 일이지요. 하나님은 당시 세상의 가장 큰 능력을 가진 자, 영향력을 갖고 있던 자 고레스를 사용하셔서 모든 열방에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원하셨습니다. 분명한 것은 고레스가 출중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를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고레스를 짓기 전부터 구별하셔서 고레스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로 활용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고레스를 고레스 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교훈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고레스가 영향력이 있고, 큰 인물이었기에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고레스를 영향력 있는 일군으로 만드셔서 쓰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명하신 분이십니다. 지명하시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명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조성하십니다(사43:1). 조성하신다는 말은 다듬고 가꾸고 단장하신다는 말입니다. 이른바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만들어 가시는 것이지요. 그리고 조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운행하십니다. 운행하신다는 말은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인물로 다스려가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지명하는 권세가 없고, 조성하는 권세도 없으며, 운행하는 권세도 없습니다. 오직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사용될 뿐입니다.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자로 서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쓰시기에 부족하지 않고, 불편함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어드리는 것이지요.
고레스는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통로였습니다. 하나님이 고레스를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높여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하는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드러내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비록 이방인이라도 하나님이 주도하심을 보여주기 원하셨던 것이지요. 이것은 장차 우리에게 주실 복음의 능력이 제한 없음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복음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레스를 통해서 모든 열방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오기를 바라시는 것이지요. 그것은 지금도 사회적으로 영향력있는 사람을 택하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구원은 무조건 낮고 천한 자에게만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혹은 무조건 가난하고 무지한 자에게만 임하는 것도 아닙니다. 복음은 모든 자들에게 동일하십니다. 때로는 세상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택하시어 하나님의 영광이 필요한 자들을 초청하십니다. 고레스를 통하여 하나님은 엄청난 역사를 이루게 하십니다. 열국을 그 앞에서 항복하게 하십니다. 열왕들의 허리를 풀게 하십니다. 성문을 그 앞에 열어서 닫지 못하게 하십니다(1절). 또한 험한 곳을 평탄케 하십니다. 놋문을 쳐서 부수고 쇠빗장을 꺽어 버리십니다(2절). 그것만이 아닙니다. 흑암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십니다(3절).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해뜨는 곳에 사는 자들이든지, 해지는 곳에 사는 자들이든지 모두가 다 고레스를 도우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시는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6절). 각 나라와 족속과 열방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여호와 하나님이신 줄을 알게 하려 하시는 것이지요. 그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이시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7절). 그 하나님은 하늘을 주관하시고, 궁창을 다스리시며, 땅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8절). 그 하나님을 고레스를 통해서 드러내고 싶은 것이지요. 결국 그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드러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이 쓰시기에 적합한 인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빚어 가시는 데 불편하지 않도록 나를 그분의 마음으로 충만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내안에 계시는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내안에 계시는 주님이 나를 만지시고 다스려가시도록 주님의 마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말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나를 만지시고 만져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도구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마치 고레스를 그렇게 사용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은 못하실 것이 없으십니다. 비록 나는 알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이 나를 부르사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면 못할 일도 없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반드시 내가 너를 들어 사용하리라’, ‘내가 너와 항상 함께 하리라’고 말입니다. 고레스를 쓰시는 하나님이 반드시 나를 들어 쓰실 줄로 믿습니다. 최종적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서 말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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